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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소굴에서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어가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20여 년간의 수련 노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고 사당(邪黨)의 잔혹한 박해를 여러 번 겪었다. 매 한 관(關), 매 한 난(難)은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감당하에,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하나의 고비 또 하나의 고비를 돌파했다. 법리를 깨달았을 때의 기쁨도 있었고, 난관을 넘을 때 하루가 일 년 같을 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로 감개무량하다.

2016년 진상을 알리던 중 나는 또 한번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무고당해 억울하게 4년을 선고받아 검은 감옥에서 박해받았다. 대법제자가 감옥에 들어온 후 첫 관문은 바로 전향하느냐 전향하지 않느냐의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사악은 먼저 터무니없는 사설로 당신을 세뇌한다. 당신이 만약 머리가 청성하고 법리가 명백하여 그들의 터무니없는 사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악도 어쩔 수 없다. 만약 법리가 분명치 않아 당신이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들 유혹에 빠져 전향하게 되며, 그로 인해 도적의 배를 타고 그릇된 길로 가게 된다.

전향과 전향하지 않는 문제에서 나는 사부님의 “하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萬) 가지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1] 는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그들의 모든 전향자료와 사설에는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2] 로 했으며, 구세력의 안배를 철저히 부정하고 사악의 모든 불법적인 요구를 거부했다. 예를 들어 명찰 달기, 수감번호 보고, 노동 개조, 머리를 감싸 안고 몸수색 받는 것, 서명, 보고하기, 감옥 수칙 외우기 등이다. 이 규칙들은 모두 죄인을 위한 것이지 대법제자와는 관계가 없다.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자신의 신분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감옥에서 범죄자에 대한 모든 요구를 나는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대법에 대한 모욕이다. 내가 사악의 모든 배치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나를 잔혹하게 박해했다. 화장실 가는 것을 제한하고, 잠을 못 자게 했다. 이름표를 착용하지 않으면 매점에 못 가게 하고 면회도 못 하게 했으며, 수감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수감실 모든 사람이 다 나를 따라 벌서게 했다. 증오심을 조성하는 것은 사당의 유전자로써 늘 쓰는 수법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자 또 ‘밀폐된 좁은 고문용 독방(黑小號)’에 나를 감금하고 계속 박해했다. 추운 날 배불리 못 먹게 하고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으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서, 군인의 부동자세로 벌을 세워 움직이지 못하게 했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주먹질과 발길질이 난무했고 욕을 퍼부었다. 배고픔과 추위, 게다가 지쳐서 손과 다리가 찐빵처럼 부었고, 발과 손은 얼어서 자홍색을 띠었다.

살을 에고 뼈를 깎는 이 마난 속에서 나는 발정념과 법을 외우는 것을 느슨히 하지 않았다. 얼마나 외울 수 있으면 얼마를 외웠고 ‘9자진언(九字真言)’을 반복해서 외웠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기간에 사악은 감옥 수칙 38조를 외우라고 강요하며 교도관이 직접 점검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매일 법만 외웠다. 어느 날 교도관은 감옥 수칙을 외운 상황을 점검했다. 내게 다가와 외우라고 하자 나는 외우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왜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며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합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 후로 출소할 때까지 아무도 내게 감옥 수칙을 외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35일 후, 나는 고문용 독방을 나왔다. 한 경찰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내게 서명하라고 했다. 고문용 독방에 갇혀 15점, 이름표를 착용하지 않아 15점, 수감번호를 보고하지 않아 15점을 깎는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깎고 싶은 대로 깎으세요, 점수는 당신이 주는 것이고 저는 일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죄인들은 점수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저는 죄인이 아닙니다. 저 또한 점수를 쟁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명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서명하지 않겠으면 돌아가세요.”

이어 나를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감방으로 옮겨갔다. 거기에는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 3명과 1명의 기록원, 바오자(包夾-수감자로 구성된 감시자) 몇 명, 그리고 개조 위원회 부주임이 있었다. 개조 위원회 부주임은 늘 사무실의 잡일과 청소를 하고, 교도관들에게 밥을 가져다주었다. 교도관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감방에 가져와 나눠 먹는데 달걀, 찐빵, 국, 반찬, 때로는 과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종래로 그것을 먹지 않았다. 대법제자로서 기개가 있어야지 절대로 그런 이득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함께 한 방이 된 바오자가 있는데, 전에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 준 적이 있다. 고문용 독방에서 금방 나온 내가 사악에 시달려 길도 제대로 걷지 못하자 그녀는 나를 위해 밥을 타오고 빨래를 해줬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자 그녀는 이는 자신이 맡은 임무라며 또 조용히 말했다. “이는 당신을 따라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저는 이런 것들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바오자도 진상을 똑똑히 알고 있다. 수련생들은 함께 법을 외우고 기회가 있으면 법리를 교류하고 함께 정진했다. 하지만 실내에는 CCTV가 있기에 방심할 수 없다. 수련생들은 모두 이름표를 착용하지 않았기에 교도관은 우리를 매점에 못 가게 하고 문밖에도 못 나가게 했다. 목적은 다른 수련생들이 우리를 본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먹고 싸는 것을 모두 방에서 해결했다(실내에 수도관과 화장실이 있음).

반년 후 감옥에서는 전향하지 않은 대법제자들을 모두 당시 내가 있던 ‘대대’로 옮겨왔다. 그것은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들이 그들의 전향작업에 영향 줄까 봐서다. 나는 노년 대대로 이동됐다. 그곳의 수련생들은 모두 전향하지 않았고 이름표를 착용하지 않았으며 노동 개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점에 갈 수 있고 저녁에는 연공할 수 있는데 환경은 좀 느슨했다. 수련생은 여기 우두머리 대장이 대법진상을 알고 선보를 받았기에 이 대대의 대법제자들의 환경이 느슨해진 것이라고 알려줬다. 노년 대대에는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매일 일하러 나가야 하고 일을 마치면 머리를 감싸고 줄을 서서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그러나 대법제자들은 모두 머리를 감싸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동작은 교도관이 죄인에게 요구하는 것이며 대법제자들은 거기에 속하지 않기에 할 수 없다. 내가 처음 일하러 나갔을 때, 한 교도관이 몸수색하려고 다가왔다가 내가 머리를 감싸지 않은 것을 보고 곧 화내려 했다. 하지만 내가 이름표를 달지 않은 것을 보고는 그냥 넘어갔는데, 이는 비록 나를 모르지만 대법제자만 이름표를 달지 않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작업장에 가서도 대법제자들은 노동 개조에 참여하지 않고 그곳에서 법을 외우고 발정념을 하며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이는 대법제자의 사명이다. 나의 옆 침대의 여인은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왔다. 진상을 알린 후 나는 그녀에게 ‘홍음(洪吟)’을 외우는 것을 가르쳐주었는데, 그녀도 열심히 배우며 매일 ‘9자진언’을 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소 경찰들이 대대적으로 인사 이동되면서 전임 대장이 퇴직하고 대부분 교도관이 바뀌었다. 새로 부임한 교도관들은 이전의 관리패턴을 모두 뒤집었고, 특히 파룬궁의 문제에 대해 잔혹하게 박해했다. 연공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전 대법제자들의 침대 앞에는 구속복(約束衣, 주로 양손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옷, 구속띠는 한 가닥의 범포띠로 마치 무장 벨트처럼 위에는 또 두 개의 버클이 있다)이 놓여 있었다. 연공하기만 하면 수감실의 모든 사람을 동원해 구속복을 입혔다. 또 강제로 반드시 이름표를 달게 했는데, 수련생들이 달지 않고 사악에 협조하지 않으니 그들은 흰 천을 윗옷 가슴부위에 재단하고 죄명과 이름을 적었다. 낮에 강제로 달면 밤에 우리는 뜯었다. 나는 대법제자이지 범죄자가 아니므로 절대로 달지 않았다.

반박해 중 나는 다시 독방에 감금됐다. 매일 한 끼에 국물도 없고 물도 없이 달걀만 한 옥수수떡 1개에 3~4조각의 오이 조각을 주고는 군인 자세로 벌서게 했다. 나는 사악의 명령을 듣지 않고 연공했다. 사악은 연공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문으로 나를 괴롭혔고, 구속복으로 나의 손발을 묶었다. 내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치자 또 머리 씌우개를 씌우고 눈과 콧구멍만 내놓았다. 밥을 먹을 때는 씌우개를 벗기고 죄수에게 밥을 먹이게 했는데 먹일 때 그녀들은 욕하면서 온몸의 살을 꼬집었다. 구속복은 독방의 비품이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다 씌운다. 먼저 큰 띠로 허리를 단단히 매고, 두 손을 뒤로 등지며, 손목은 벌크로 단단히 조이고 두 팔은 끈을 더해서 가운데로 당기는데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으며 그 고통은 형용할 수 없다. 두 종아리는 다시 밧줄 세 개로 세 곳을 묶는데, 당신에게 비뚤게 서 있으라는 게 아니라 앉아 있게 한다. 저녁 10시 이후에는 머리 씌우개를 벗기고 양팔과 종아리의 끈 두 개는 풀고 하나만 남긴다. 구속복의 벌크를 앞쪽으로 돌려 쉬게 하지만 한 자세로 있어야 하며 몸을 돌릴 수 없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는데 구속복는 밤낮 몸을 떠나지 않는다.

나는 ‘왜 같은 난관이 반복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으로 찾아보니 예전의 그 험악했던 환경에서 느슨한 여기 환경에 온 후 자기도 모르게 환희심이 생겨 사악이 틈을 타게 된 것이었다. 원인을 찾은 나는 사부님께 잘못을 사죄했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 번거로움은 모두 환희심이 불러온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정념으로 환희심과 그 배후에 있는 모든 패괴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고 다그쳐 법을 외웠다. 법리를 깨달으니 그다지 고통스럽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감당 속에서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과 정념의 위력에서 나는 또 한번의 고비를 넘겼다. 8일 만에 형구를 벗어버리고 21일 만에 구금에서 풀려났으며, 이후 출소할 때까지 더는 이름표를 달지 않았다고 나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수련의 길 곳곳에는 유혹이 가득하다. 하지만 당신이 명예와 이익과 정에 대해 크고 작은 유혹을 타파할 수 있을 때 사악은 방법이 없다. 모든 유혹의 속임수를 똑똑히 알아본다면, 당신은 수련의 길에 유감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여러 해 동안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두려운 마음, 사심,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가담한 악인에 대한 원망, 안으로는 찾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것 등등이다. 정법이 막바지에 이른 이 제한된 수련 동안 법을 더 많이 배우고 열심히 안으로 찾아 있지 말아야 할 그런 속인의 마음을 닦아 없애고 다그쳐 중생을 구도하겠다.

개인의 체험으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롭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가: ‘홍음-도(道) 중에서’

 

원문발표: 2022년 7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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