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전북 김제시 우석치과 최성기(55) 원장은 12년째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고 있다. 그가 파룬궁에 대해 처음 듣게 된 건, 2000년경 일본 유학 후 대학병원에 있었을 때였다. 어느 날, 병원 교수님들이 중국의 한 유명한 기공을 화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기공이 정말 대단했는데, 지금은 중국에서 탄압받아 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평소 기공과 도(道)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최 원장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곧바로 ‘저건 반드시 뭔가가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연마했다면, 분명히 대단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기공에 대해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훗날 자연스럽게 그것이 파룬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간 여러 기공을 연마했던 그는 문득 말로만 듣던 파룬궁을 이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최 원장은 파룬궁 역시 일반 기공일 거로 생각하고 인터넷에서 연공 비디오를 보고 혼자 동작을 익혔다. 그렇게 막 연공할 무렵, 그는 평소 다니던 동네 편의점에서 파룬궁 전단을 보게 됐다. 반가운 마음에 물어보니 파룬궁을 수련한 지 6년 된 편의점 사장의 아내가 몇 년째 전단을 비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수년간 찾을 수 없었는데, 수련을 결심한 뒤에야 지척의 수련생을 알아본 것이다. 우연이라 하기엔 절묘한 운명이었다.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도대체 최 원장님이 뭐가 부족해서 수련을 하나요?”이다. 그렇다. 과거 10여 년간 우석대학교 교수직을 거쳐 지금은 치과 원장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중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 중인 아내와 두 아들과 딸까지, 그는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부족할 것 하나 없는 그가 날마다 가부좌하고 앉아 자신을 닦고, 주말이면 거리에 나가 연공하고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눠준다.
그는 말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석양이 지는 시간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슬픔과 허무감이 몰려와 두렵고 힘들었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어요.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왜 사는 것인지 등 의문을 많이 품고 있었습니다.”
존재에 대한 의문은 도(道)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검도(劍道)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검도 25년 경력의 공인 5단인 최 원장은 검도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기공, 단학, 소림 심법 등등 여러 가지 수련법을 배웠다.
끊임없이 새로운 책을 사고 배우고 연마하고 다시 찾기를 반복했던 그가 한순간에 멈추게 된 것은 파룬따파 수련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 덕분이었다.
치과 의사, 목에 힘을 빼다
최 원장은 자신의 일본 유학 중에 겪었던 일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 대학에는 치과의사만 600명이 넘었습니다. 일본 의사들에게 저는 못사는 나라에서 온 한낱 유학생일 뿐이었죠. 한국에서는 목에 힘을 주고 우월한 존재로 지내던 제가 그곳에 갔더니 아무런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지도 못했던 대우 덕에, 유학 5년 동안 제 안에 ‘피해의식’이란 게 깊이 자리 잡게 됐습니다.”
덕분에 최 원장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 내가 정말 그 알량한 치과의사라는 명(名) 하나를 이렇게 붙잡고 있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진 허상 속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그토록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때의 자기반성은 후에 수련에 매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 관념 하나 버리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인데 수련에 입문해, 앉아서 대법 책만 보며 수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죠.” 그는 일본 유학 중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명예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수련 초 최 원장의 아내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도대체 당신이 뭐가 아쉬워서 밖에 나가서 전단을 나눠주고 있나요?” 최 원장은 웃으며 덧붙였다. “개인적으로 저는 인간의 삶 자체가 그렇게 대수로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투쟁심을 닦다
검도와 여러 수련법을 꾸준히 연마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건강은 늘 양호한 편이었다. “파룬궁을 시작하고 신체적으로는 그렇게 드라마틱한 변화를 못 느꼈습니다. 하지만 25년간 검도를 연마했기 때문에 자신이 굉장히 투쟁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던 걸 볼 수 있었습니다.”
25년이 넘도록 조금씩 몸에 밴 투쟁심은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솥단지’처럼 끓어올랐다. 수련한 뒤에도 이런 마음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다. 가장 많이 부딪힌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수련 초에, 예전처럼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내다가도, 다시 뉘우치고 사과하곤 했습니다. 아내는 당황스러워했어요. 불같이 화내던 사람이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과하니까요. 아내에겐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이 좀 더 필요한데 말이죠.” 그는 수련 초 자기 모습을 회고하며 웃었다.
안으로 닦는 법을 배우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문제가 생기곤 한다. 최 원장은 자신의 마음을 닦아 환자와의 문제를 해결했던 에피소드를 말했다. “한 환자가 의학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입 한쪽이 계속 부어있었습니다. 제가 맡았던 환자는 아니었지만, 병원장으로서 그 문제를 책임져야 했죠.” 그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 이 문제는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구나!’라고 문득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환자를 담당했던 의사를 원망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회의에서 최 원장은 담당 의사에게 원망했던 것을 사과했다. 그리고 그날 문제의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환자의 상태는 매우 좋아져 있었다. 최 원장은 마음속으로부터 거대하고 깊은 종소리가 진동하는 것만 같았다. “아, 안에서 찾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최 원장은 이어 말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심성을 수련하자 상황이 바뀌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다
최 원장은 대법 수련이란 “인생 자체가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삶의 근본적인 이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생사고락에 대해 어느 정도 달관할 수 있게 된 점도 굉장하죠. 일단, ‘대기권’에서 바라보던 세상을 ‘성층권’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고, 쓸데없는 고민과 번뇌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게 어딘가요?” 그는 수련서를 읽으며 심리적으로 끊임없이 찾고 갈구하던 욕망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세상사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닫고 나니 모든 부분에서 많이 편안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자신에게 부족함이 많다는 최 원장. 그는 굵고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련인으로서 제 몫을 잘할 수 있도록 더 정진하고 싶습니다.” 그의 뒤로 석양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원문발표: 2022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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