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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깨고 신(神)으로 나아가다

글/ 중국 동북 지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의 (중국)대륙소식을 볼 때마다 늘 수련생이 납치되고 불법 심문을 받으며 형을 선고받는 소식을 보게 돼 매우 마음이 아픕니다. 수련생은 모두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려움의 정도가 매우 크고 시간까지 촉박한 상황에서 박해를 받으니 얼마나 손실이 큰가요! 친척과 친구를 포함한 모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조성하니 그야말로 손실이 매우 큽니다.

현재 사악한 공산당은 곳곳에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 안면인식, 모니터링 추적, 신고 포상 등 온갖 방법을 다 씁니다. 이는 확실히 중생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대법제자는 또 물러서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우리가 사람 여기에 국한돼 사람 이 층의 이치로 가늠하면 정말 매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인이고 초범적인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이 중시하는 것은 정념이다. 정념이 아주 강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인이고 당신은 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며, 당신은 속인 요소와 저층 법리에 통제당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1] 그렇다면 우리는 신통해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신통해질 수 있을까요?

션윈 공연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본 것이 생각납니다. 한 수도인이 하산할 때 사부가 그에게 두 가지 보물을 줬습니다. 영패(令牌, 도교에서 사용하는 법기의 일종) 하나와 은신의(隱身衣) 한 벌이었습니다. 위험에 부딪혔을 때 영패를 꺼내면 위험이 풀린다고 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내게 은신의가 있다면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안전할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있을까요?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여기서는 法輪(파룬)·氣機(치지)를 넣어주어야 하며, 일체 수련의 기제(機制) 등 많고도 많은, 만 가지도 넘는 이런 것을 모두 당신에게 주어야 하는데, 마치 종자처럼 당신에게 심어준다.”[2]

이 만 가지도 넘는 것들에 이 영패와 은신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패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법제자’라는 이 우주 제일의 칭호로, 어떠한 층차와 공간에서든 막힘없이 통용됩니다.

사부님께서는 우한(武漢)의 30세 젊은이가 색마를 만났을 때 먼저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다.[2]’라는 생각을 하자 색마가 단번에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밍후이왕 교류문장에서 한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고 돌아오면서 다른 사람의 차를 탔는데, 나쁜 사람이 수련생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 여성 수련생이 자기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그 나쁜 운전기사는 단번에 풀이 죽어 손을 풀어줬고 수련생은 차에서 내려서 갈 수 있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확고한 정념으로 자신의 신분을 알리면 다른 공간의 무수히 많은 정신(正神)과 호법(護法)신이 도와주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사례는 고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은신의를 다시 말하자면, 제 이해로는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은신의를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무술기공을 설법하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다른 공간에 둔갑해 들어갈 수 있다.”[2]

사부님께서는 이런 능력은 속인에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속인이 아닙니다. 수련 교류에서 이런 경우도 많습니다. 예컨대 어떤 여성 수련생이 경찰에 쫓기고 있는데 언덕에서 내려오다 발견됐고 경찰이 포위해오고 있었습니다. 숨을 곳이 없는 것을 보고 쑥 풀대 몇 가닥 뒤에 숨어서(전혀 숨을 수 없는 곳임), 그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이 경찰들은 부근에서 찾다가 찾지 못해 돌아갔습니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다른 공간에 둔갑해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높은 층차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션윈(神韻) 공연에는 ‘일몽삼백년(一夢三百年)’과 비슷한 프로그램도 꽤 많았는데, 그 경우도 속인입니다. 사실 고서에서도 이와 같은 기재가 많이 있으며 소도(小道)에서는 어떤 사람이 손으로 벽에 문을 하나 그리더니 곧 열고 나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가 벽에 손으로 문 하나를 그린 것이 무슨 작용을 일으킨 걸까요? 벽의 분자 성분은 전혀 바뀌지 않았으며 바뀐 것은 그의 마음입니다. 그가 이것을 벽이 아닌 문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외계인조차 이 물질 공간을 돌파할 수 있는데 우리는 왜 돌파할 수 없을까요? 우리가 이 두 눈을 지나치게 믿고 관념을 바꾸지 않았기에 돌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 공간을 돌파해 다른 공간을 여는 열쇠를 진작에 주셨다고 인식합니다. 함께 ‘전법륜’ 중의 이 단락 법을 읽어봅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미립자 물질에는 분자ㆍ원자ㆍ양성자가 있는데, 맨 아래로 캐 내려가, 만약 층마다 당신이 이 한 층의 면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한 개의 점이 아니라 분자 한 층의 면ㆍ원자 한 층의 면ㆍ양성자 한 층의 면, 원자핵 한 층의 면을 보았다면, 당신은 곧 부동(不同)한 공간 중에서 존재하는 형식을 본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포함한 어떤 물체든 모두 우주공간의 공간 층차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통한다.”[2]

만약 정말 그것들이 어떻게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통하는지 똑똑히 알 수 있다면 이 공간을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정념을 이야기하므로 어떻게 돌파하는지 알 필요 없이 돌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수련생이 한 가지 일(아마 밍후이 교류문장일 것임)을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한 수련생이 자전거를 타고 자료를 배포하는데 경찰이 쫓아왔습니다. 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달리는데, 건물 가운데 철조망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계속 내달려 철조망을 통과해 지나갔습니다. 뒤에 있던 경찰들이 그 광경을 보고 멍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션윈 공연에도 신통을 운용한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예컨대 ‘제공징악(濟公懲惡)’이라는 무용극에서 제공은 잔인하고 흉악한 자들을 아예 안중에 두지 않고 인형 다루듯 마음대로 지휘했습니다. 그 소화상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이런 공능은 법에 모두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하기를,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데 신통을 운용하는 것을 허용하십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3]라고 명시하셨고 우리에게 신통을 운용하는 것에 관해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가 깨우치지 못했을 뿐입니다. 능력은 사부님과 법에서 비롯된 것이며, 우리는 정념정행하면 공능을 운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 수련하고 있는데 왜 신통해지지 않는지 저 자신도 자주 생각합니다. 법리적으로 깨닫는데 왜 하지 못할까요? 우선, 진정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관념을 바꾸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을 낮게 보고 사악을 크게 보는데, 근본적으로 법을 낮게 보고 작게 본 것입니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 대법이며 우리 사부님은 대궁(大穹)의 주(主)이십니다. 법이 얼마나 크고 사부님께서 얼마나 높으신지,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런 개념이 없고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봉신연의’에서 십이상선(十二上仙)은 모두 법력이 있었고 그 제자들도 매우 신통했습니다. 한 수행인의 법력과 능력은 그의 근기, 오성과 관련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사부의 능력에 달렸는데 즉, 층차와 법력에 달렸습니다. 그들의 사부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이었고 여래 그 층차보다 조금 더 높았습니다. 그럼 우리의 사부님은 누구신가요? 대궁의 주이십니다. 우리의 위치와 능력을 가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와 같은 위치와 능력이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막중한 사명을 짊어지고 있고, 이처럼 큰 능력이 없으면 이런 사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으므로 중생을 구하면서 초범적인 현상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어느 수련생이 교류문장에서 박해가 마치 여의봉을 들었으면서 매 맞는 것과 같고 금그릇을 들었으면서 밥을 구걸하는 것 같다고 비유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모욕입니다. 수련생이 박해당할 때 사부님께서 어떤 기분이실까요? 구세력은 뭐라고 말할까요? 우리가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마땅히 사부님께 청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 사부님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구세력은 틈을 탈 것입니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면 사부님께서는 정말 괴로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확고하게 신사신법하고 사람의 관념을 바꾸어 사람의 인식에서 벗어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더욱 잘할 수 있으며, 최후의 길을 잘 걸어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층차의 한계와 법에 대한 인식에 한계가 있어서 일에 대한 견해가 적절하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6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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