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현대관념 행위에 관한 사부님 설법을 읽을 때마다 나는 진지하게 나 자신을 대조하지 못했다. 자신은 사부님 말씀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고 속인처럼 그렇게 뚜렷한 변이된 관념과 행위가 없으며, 이 방면에서 제법 괜찮게 수련했다고 느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내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는데, 사실 자신은 현대관념 행위가 아주 많았다. 그리고 전통으로 회귀해야 하는 절실한 의의도 인식하게 됐다.
하루는 수련생인 어머니와 줄곧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해 교류를 나눴다. 바로 ‘부모님께서 밥을 먹으라고 하실 때 내가 제때 응하지 않으면 왜 언짢아하시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나는 어머니께 “제가 배고프지 않아 밥을 먹고 싶지 않은데도 부모님과 반드시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뭐죠? 설마 제게 그만한 자유나 결정권도 없는 건가요?”라고 여쭈었다. 어머니는 “부모가 밥까지 해서 너에게 먹으라는 데도 그렇게 안 하겠다는 거니?”라고 되물으셨다. 나는 “그럼 제가 밥을 할 경우 제가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되는 건가요?”라고 여쭈니 어머니는 말문이 막히신 듯 한마디만 하셨다. “전통적인 가정관념은 바로 그런 거야!” 나는 너무 이해되지 않았으며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여겼다.
다음날 퇴근길에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전날의 의문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명백한 해답을 얻지 못해 아예 생각을 멈추고 전자책을 들고 법공부를 했다. 원래는 전날 다 읽지 못한 각지설법을 계속 이어서 봐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사부님께서 새로 발표하신 ‘홍음6’을 열고 진지하게 보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 “5천 년 문명은 하늘로 돌아가는 통로”[1]라고 말씀하셨다. 이 한 구절을 보았을 때 이 구절이 단번에 내 머릿속 깊은 곳에 넣어지는 듯했고, 그 순간 진동을 느껴 다시 한 번 더 읽었다. 그리고 갑자기 명백해졌다. ‘5천 년 문명’ 그것은 바로 전통문화를 말하는 것이다. 전통으로 회귀하지 않으면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걸을 수 없다. 사부님께서 ‘홍음6’ 첫 번째 시의 첫 구절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이 구절로 전달하시려는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홍음6’을 처음 읽었을 때를 돌이켜 봤는데 당시에는 이런 시는 대부분 가사(歌詞)로써 속인에게 써주신 것이라 여겼다. 나는 진지하게 배우지 못해 사부님의 고심함을 저버렸다. 이때부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지하게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신 이유를 더 깊이 깨닫게 됐다.
나는 계속해 진지하게 읽었다. 예전과 다른 점은 이번에는 읽는 속도를 늦추고 매 시를 두 번씩 읽으면서 매 구절이 마음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깨우쳐주고 싶어 하시는 법의 내포를 사고하며 읽었다. 몇십 분간 10여 수 정도밖에 못 읽었지만 수확이 아주 많았다. 사부님의 시는 내가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표면적인 해답은 없었지만 나는 단번에 명백해졌다. 내가 말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추구’는 사실 바로 현대관념 행위의 일종이었다. 나는 이것이 법에 녹아 들어간 후에 얻은 답안임을 알았다. 귀가한 후에 어머니와 이 일에 대해 교류했는데 어머니는 “사부님께서 네가 진지하게 법공부를 하는 것을 보시고선 이 한 층의 법리를 점화해 주셨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내 마음속 의혹이 해답을 얻었다.
나는 현대 중국인이 숭상하는 자유는 서방의 현대문명에서 배워온 것임을 깨달았다. 오늘날의 이런 ‘자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자유’를 가지려면 자기중심적이 전제가 되는데,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자신은 조금의 억울함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심지어는 타인의 생각과 느낌조차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런 이념은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완전히 상반되며, 더욱이 사부님께서 법에서 가르쳐주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2]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로서 이런 현대 변이관념을 더 버려야 사부님 요구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또 생각했는데 바로 속인들도 말하는 ‘부모가 자녀를 가르침에 있어서 명령식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되고, 친구를 대하듯 해야 하며, 평등하게 교류하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평등은 부모가 자녀를 교육할 때 친구처럼 평화롭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지 현대관념식의 서열 무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게다가 자녀는 자신을 부모와 친구의 위치에 둬서는 절대 안 되고, 생각나는 대로 마구 말하거나 위아래 없이 굴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공경해야 한다. 현대관념 속 부모와 자녀 사이의 ‘평등’도 일종 변이된 현대관념 행위이다.
중국 고대의 전통적 가치관에서 자녀는 반드시 어른을 공경해야 하며 설령 부모가 잘못했더라도 큰 소리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제자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친유과(親有過), 간사경(諫使更), 이오색(怡吾色), 유오성(柔吾聲), 간불입(諫不入), 열복간(悅複諫), 호읍수(號泣隨), 달무원(撻無怨).” 이 구절의 뜻은 이러하다. 부모님께 과실이 있을 때는 고치시도록 간청을 드려야 하는데, 말할 때는 기쁜 얼굴과 부드러운 어조여야 한다.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재차 밝은 어조로 간청을 드린다. 설사 울며 통곡하게 되더라도 부모님께서 매질하더라도 원망이 없어야 한다.
현재 아이들에 대해 말하자면 사당(邪黨)의 악영향과 현대의 변이 관념과 행위의 이끌림 하에 이런 고훈(古訓)이 현실 앞에서 힘을 잃었다. 나도 일부 대법제자의 자녀가 속인의 큰 염색항아리 속에서 오염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들었다. 나는 법공부를 통해 설령 구원을 받은 속인이라도 전통으로 회귀해야 장래에 남겨질 수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됐다.
사부님께서 ‘홍음6’에서 ‘현대관념 행위(現代觀念行爲)’를 언급하신 횟수가 놀라울 정도로 많다. 행간에는 속인에 대한 간절한 희망, 대법제자에 대한 높은 요구가 배어 있다. 갑자기 나는 사부님께서 매우 다급해 하심을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세인을 위해, 더욱이 대법제자들을 위해 조급해하신다. 나는 더 빨리 자신의 현대관념 행위를 찾아서 버리고 전통으로 회귀할 것이다. 그리고 대법 속에서 최대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바로잡아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상은 현 단계에서의 조그마한 얕은 견해로서 옳지 않은 곳은 바로잡아주길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6-생명을 위해 노래하노라(爲生命而唱)’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6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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