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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버려진 아기가 신동이 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글은 2017년 12월 인터뷰한 내용이다. 이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 한 대법제자 가정의 스토리이자 불굴의 의지를 가진 수천만 대법제자 가정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파룬따파 전파 30주년을 맞이해 삼가 이 문장으로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위덕을 칭송하는 바이다!

아래는 어린이 대법제자 징롄(淨蓮)과 어머니가 구술한 인터뷰 내용이다.

징롄의 꿈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징롄이라는 어린이 대법제자이고 올해(2017년) 8살입니다. 제게는 두 가족이 있는데, 하나는 작은 집, 하나는 큰 집입니다. 작은 집에는 외할머니, 아빠, 엄마, 여동생, 저 이렇게 5명이고, 큰 집은 전 세계 대법제자가 만든 집으로, 이 가족은 전 세계 도처에 다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제 가족입니다.

제 꿈은 영어를 배워 영문판 대법서적을 보는 것입니다. 밍후이 학교에 다니고 페이톈(飛天) 대학에 다니고 싶은 꿈도 있답니다.(제 다리가 비교적 길거든요.) 션윈 언니들이 참 부럽고 매년 설날 때면 션윈이 가장 보고 싶어요!

징롄의 어머니 “당신께 징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아래는 징롄의 어머니가 그간 발생한 일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1. 징롄의 내력

제가 19살이던 그 해 어느 날, 간호사이신 어머니께서 한 작은 종이박스를 품에 안고 급히 귀가하시더니 “내가 무슨 일을 했는데 이게 옳은지 모르겠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어머니께서 보자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았는데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주름이 쭈글쭈글한 갓난아기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버려진 아기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명을 구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이 없어요”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니가 안심하고 웃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아기에게 물 몇 모금을 먹이고는 제게 아기를 맡기고 출근하셨습니다.

맏이인 저는 갓 태어난 아기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달이 차지 않은 아기는 새끼 고양이 같아 좀 겁이 났지만 어머니가 퇴근해 돌아오실 때까지 한 시간 넘게 아기를 돌봤습니다.

귀가하신 어머니는 징롄의 내력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징롄의 생모는 뱃속의 아기가 29주가 안 됐을 때 낙태를 결심하고 한 개인진료소를 찾았는데, 제 어머니가 간호사로 근무하시는 바로 그 진료소였습니다. 진료소에서는 ‘리바놀’이라는 분만촉진제를 투여했는데, 강제로 떼어져 나온 징롄은 덜 익은 과일과 같았습니다! 강제로 모체에서 분리된 아기는 곧 죽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징롄이 출생했을 때 다리를 몇 번 쳤지만 울지 않았단다.” 그 후 징롄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검은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어졌습니다. 태반, 핏물, 거즈 등 쓰레기도 함께 이 의료용 쓰레기봉투에 넣어졌습니다. 그렇게 쓰레기봉투는 수술실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버려졌고 의사들은 점심을 먹고 쉬려고 떠났습니다.

3시간여가 지난 뒤에 쓰레기봉투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담당 의사는 점점 커지는 아기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차마 직접 죽이고 싶지 않아 링거실에 가서 주임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시켜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링거실에서 당직을 서고 계셨던 어머니는 이 의사를 따라 수술실로 가서 곧 ‘처리’당할 아기를 한번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시는 어머니는 검은 쓰레기봉투를 열고 가련한 아기를 보니 너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고, 즉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살인 방화하는 것을 보고도 당신이 상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心性(씬씽)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사람을 체현해 낼 수 있겠는가? 당신이 살인 방화하는 것마저 상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상관할 것인가?”[1]

어머니는 ‘살생의 참극을 보고만 있을 순 없다. 내가 상관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버려진 아기의 운명은 이때부터 달라졌습니다. 진료소 주임 의사의 동의를 거쳐 어머니는 소독용 보자기를 찾아 아기를 감싸(이 보자기는 지금까지 어머니가 보존하고 계심) 한 종이박스에 담아 30분의 휴식 시간을 얻어 집으로 데리고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미혼인 저는 버려진 아기의 엄마가 됐고 저희는 이 아기에게 ‘징롄(淨蓮: 깨끗한 연꽃)’이라는 듣기 좋은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당시 저와 어머니의 상황을 좀 말씀드리자면, 파룬따파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정, 직장, 금전, 주택을 잃었고, 신동으로 알려졌던 저는 아버지와 학업뿐 아니라 대학의 꿈까지 잃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핍박을 받다 남방으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막 안정이 됐지만 아직 경제적인 조건이 열악해 아이를 양육할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는데, 이렇게 작은 아기를 키워야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저는 파룬따파 제자로서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므로 기왕 데려왔으니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우고 나중에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면 아기를 다시 보내기로 했습니다.

2. 사람들이 서로 징롄을 입양하려 하다

경제적으로 열악해 징롄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파상풍 주사 한 대를 놓아준 것 외에는 다른 약물을 쓰지도 않았는데 징롄은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징롄은 달을 다 채웠고 체중도 2kg이 됐습니다. 어머니는 징롄을 안고 진료소에 가셨는데 과일도 사 들고 작은 축배를 들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개월이 된 징롄은 쌍꺼풀이 있는 큰 눈과 희고 고운 피부를 가졌으며, 귀엽고 사랑스러워 모든 사람이 예뻐했습니다.

첫 번째로 징롄을 입양하려던 사람은 한 파룬궁수련생의 친척으로, 장사를 하며 두 아들을 키우는데 딸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징롄을 너무 좋아해 제 어머니께 고생비 명목으로 몇만 위안(몇백만 원)을 주려고 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끝내 징롄을 보내지 않았지만 그녀는 몇 달이나 애를 썼습니다. 두 번째로 입양 의사를 밝힌 사람은 진료소 외래환자 진찰실의 주임이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아무튼 징롄을 입양하려는 사람이 열 명 넘게 줄을 섰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근무시간을 교대로 맞추고 돌아가며 징롄을 돌봤습니다. 우리 둘은 정 못 키우게 되면 다시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로 생각은 했지만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정을 아는 사람이 온갖 말을 다 했는데 아기를 키우려면 거액이 들고 정말 고생한다며 대부분 양육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실정을 모르고 마음대로 떠들어 대는 사람은 더 많았습니다만 어머니와 저는 압력과 곤경이 얼마나 크든 징롄을 시종일관 우리 집 아기로 여겼습니다.

3. 대법이 깨우침을 주고 지혜를 열어주다

징롄이 한살이던 때, 저는 결혼해 남편과 외지에서 생활했고 어머니와 징롄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징롄이 두 살이던 해, 저는 아이(징롄의 여동생)를 가졌고 어머니는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때 저와 남편은 대법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중공의 박해로 감옥에 불법감금을 당했고, 어머니는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은 저와 징롄, 갓 태어난 제 아기까지 셋을 돌봐야 했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가장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 몇 년간, 가족은 징롄의 호구(戶口) 문제로 사방을 다니다 이 문제를 처리해줄 기관을 찾았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호구가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학교는 둘째치고 기차도 못 타는데 징롄은 호구가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독학만 했습니다. 징롄이 어떻게 글자를 익혔는지 아십니까? 징롄은 파룬따파를 통해 배웠는데 한 살 때부터 혼자 집에서 대법 관련 영상을 보고 들으며 지혜로 깨우쳤습니다.

세 살 때는 외할머니(제 어머니)가 보서인 ‘전법륜’을 읽어주어 글자를 빨리 익힐 수 있게 됐습니다. 징롄이 글자를 익히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는데, 네 살 때 ‘전법륜’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정체자 ‘전법륜’을 말이죠. 엄격히 말하자면 징롄은 저희 집에 온 첫째 날부터 저희를 따라 사부님의 설법 녹음과 대법 음악, 그리고 외할머니와 엄마인 제가 법을 읽는 것을 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살 때부터 징롄은 정체자 ‘홍음’을 읽고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뜻인지 다는 모르지만, 사부님의 각 지역 설법도 많이 읽었고 매일 ‘전법륜’ 반 강의를 꼭 배웠습니다. 한번은 이틀 안에 ‘전법륜’ 다섯 강의를 읽기도 했습니다. 법공부를 할 때는 가부좌를 하고 어른처럼 ‘전법륜’을 두 손으로 받치고 읽었습니다. 노수련생들은 징롄이 법을 읽을 때 똑똑한 발음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틀리지 않게 잘 읽는다고 칭찬했습니다. 지금은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고 몇 단락만 더 외우면 제1강을 다 외웁니다.

징롄은 가부좌를 비교적 많이 하는데 한번 가부좌하면 한 시간을 하고, 잠시 입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단체 법공부를 할 때도 거의 가부좌를 하며 할 일이 없어 심심풀이로 책을 볼 때도 가부좌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리가 아픈 관은 이미 돌파해 두세 시간 가부좌해도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남편은 감옥에서 돌아온 후에 한동안 소침해져 연공을 안 하려고 했는데 징롄이 가부좌하는 것을 한번 보고는 남편도 묵묵히 가부좌하고 앉아 연공했습니다. 여섯 살인 징롄의 어린 여동생도 가부좌 관을 넘어 때로는 한 시간을 가부좌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여동생이 징롄이 법에 있지 않은 점을 보고는 솔직하게 지적해주기도 했습니다. 두 어린 제자는 모두 마음을 닦을 줄 압니다.

징롄은 매일 두 번 발정념을 하는데 한번은 발정념을 할 때 사자머리에 양복을 입은 대마두(大魔頭)를 보았습니다. 연화수인(蓮花手印)을 하니 큰 연꽃 한 송이 속에서 총과 검이 날아 나왔고 대마두는 즉시 물로 변했습니다.

징롄은 안으로 부족한 점을 찾았는데 매일 5세트 공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연마해내지 못한다며 앞으로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어른을 따라 나가서 두 차례 진상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는데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것도 수련해 제거했습니다.

8년간, 어린이 수련생인 징롄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불광(佛光) 속에서 약 한 알 먹은 적 없고, 파상풍 예방주사를 한 번 맞은 것 외에 예방주사를 맞은 적이 없습니다. 병업이 있을 때도 정념으로 대할 줄 압니다. 가족 모두 징롄을 매우 아낍니다.

외할머니는 8살인 징롄이 글을 읽을 때 초등학교 3학년의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고 하십니다. 징롄은 현재 오전에는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오후에는 문화 방면 지식을 배웁니다. 물론 장난기가 있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것은 외할머니의 엄격한 교육 덕분입니다. 그 덕분에 징롄은 현대 변이된 문화를 적게 접촉했고 속인의 TV, 게임, 핸드폰을 멀리했으며, 파룬따파의 에너지장 속에서 적게 오염되어 ‘세뇌’되지 않았습니다.

징롄은 밍후이왕의 동영상, 전자책, 소책자를 많이 보고 들었습니다. 징롄은 책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특히 역사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역사 이야기도 대부분 다 봤습니다. 4대 명작 중에서 ‘홍루몽’을 제외한 나머지 세 책도 다 보았습니다. ‘수호전’은 5일 만에 ‘삼국연의’는 7일 만에 다 봤습니다. 말하자니 좀 부끄럽긴 한데 어려서 신동으로 소문났던 저도 징롄이 본 많은 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징롄의 이야기를 들은 어떤 수련생 아주머니가 우리를 찾아와 같이 식사하려 했는데, 이 수련생은 징롄이 메뉴를 직접 쓴 것을 보고는 정말 글씨를 잘 쓴다며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징롄 스스로는 예쁘게 못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징롄은 정체자를 많이 봤기에 쓸 줄 아는 정체자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한 고등학생 오빠가 징롄이 자기보다 쓸 줄 아는 정체자가 많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기어코 겨루다가 결국 징롄에게 승복했습니다.

저는 자랑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징롄이 대법을 통해 지혜가 열린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 대법의 제도를 받지 못했다면 지혜는 고사하고 목숨도 구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징롄은 우리 집 아이일 뿐만 아니라 사부님의 어린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운 좋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법을 수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징롄 자신도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4. 그 당시 신동 이야기

저희 가족은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1998년, 어머니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셨고 중공 사당이 대법을 박해한 뒤로도 확고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셨습니다. 두 번 베이징에 청원을 가셨고, 세 번의 불법 가택수색과 일곱 번의 불법 감금을 당하셨습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1년간 박해를 당하셨습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연루될까 봐 어쩔 수 없이 어머니와 이혼해 멀쩡했던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소문난 신동이었습니다. 5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6살 때는 학년을 뛰어넘어 3학년이 됐고, 8살 때는 중학교에 지원해 합격했으며, 선생님과 학우들 모두 저를 좋아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의 목표는 저를 소년과학기술대학에 지원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에 들어가고 두 달 뒤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법회설법’에서 사부님 법상이 저를 보며 미소를 지으셔서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다음 페이지를 펼치니 파룬도형이 나왔는데 4개의 태극이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보았지만 이렇게 신기한 책은 전혀 본 적이 없어 단숨에 그 당시 몇 권 안 되던 대법 책을 다 보았습니다. ‘전법륜’에서 공능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직접 천목이 열리는 체험을 했고 숙명통공능도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대법 책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에 저도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정상적인 생활, 학업, 가정,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악인(惡人)에게 납치돼 세뇌반으로 끌려가 한 무리 사람들에게 세뇌공격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데리러 세뇌반에 오셨는데 악인이 제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지만 저는 “그러면 저는 나가지 않겠어요”라고 했습니다. 화가 난 악인은 저를 쫓아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꿋꿋하면서 낙관적으로 견뎌냈고 현지 파출소 경찰도 다들 어린 소녀인 저에게 탄복했습니다.

제 남편도 중학교에 다닐 때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모가 돈을 벌러 도시로 떠나고 홀로 농촌에 남아 생활하는 아이였는데 대법이 바로 그의 신념을 지탱했고 그 역시 지혜가 열렸습니다. 대학 입시 때 그는 600점이 넘는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합격했고 대학에 다니면서 한밤중에 일어나 연공하고 법공부도 꾸준히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마찬가지로 중공의 박해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신앙 덕분에 함께 하게 됐습니다.

이 몇 년간, 저희 집은 남방에서 북방으로, 북방에서 다시 남방으로 오면서 많은 수련생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밍후이왕에 투고하는 이 자리를 빌려 저희에게 도움과 따스함을 주신 모든 대법제자 여러분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버림받았던 가련한 갓난아기 징롄은 기적적으로 생존하고 완벽한 가정과 자기를 매우 아끼는 가족을 얻었습니다. 집이 누추하고 좁아 아이들의 잠자리가 불편하고 아이들은 늘 수련생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주는 낡은 옷을 입지만 건강하고 쾌활하며 성실합니다. 징롄은 초등학교에 다닐 수 없지만 파룬따파를 통해 지혜가 열려 글자를 알고 책을 읽을 줄 알아 일찍부터 문화교양을 터득했으며, 제멋대로 굴지 않고 조용하면서 철이 들었습니다(타인의 평가). 징롄의 모든 것은 파룬따파를 믿어 얻은 것으로 이는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증명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5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5/27/444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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