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의 그릇된 사설에 미혹돼 자칫하면 생사의 갈림길에서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뻔했다. 다행히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수련생을 안배하시어 내가 악마의 정신적 통제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셨기에 환골탈태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할 수 있었다.
나는 38세에 군대에서 한 시청 부서의 공무원으로 전역했다. 그때 나는 그래도 건강한 편이어서 일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40세부터 각종 질병이 점차 나를 괴롭혔다. 처음엔 허리와 다리가 아파 허리를 펼 수 없었고 심지어 걸음을 떼기도 어려웠는데(군대에서 허리를 다친 적이 있음), 병원에서 디스크로 판정받았다. 2개월 넘게 병원에 입원해 세 차례 견인술을 받아 증상이 완화됐지만, 퇴원 후 ‘디스크’라는 고질병이 나를 괴롭혔다. 2년 후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간헐적으로 ‘멈추는(기외수축)’ 불편함이 생겨 매일 기진맥진했는데, 밤이면 너무 졸려서 두 눈을 뜨지 못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해 고생이 막심했다. 한 동료의 제안으로 함께 가서 한 가지 기공(전에 기공을 전혀 접하지 못했음)을 연마했는데, 두 번째 날에 몸이 심하게 불편해서 거의 쓰러질 것 같아 그만뒀다.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의사는 “혈압이 너무 높아요”(측정치 170/280mmHg)라고 말하며 반드시 입원해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다. 입원 한 달 후 혈압이 정상으로 되어 퇴원할 때 의사는 거듭 당부했다. “몸이 불편하면 바로 병원에 와서 진찰받으시고 하루 4번 제시간에 약을 꼭 드셔야 합니다!”
그 몇 년간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외에 번거로운 집안일도 감당해야 했는데, 매일 자전거를 타고 직장과 두 가정 및 학교 사이 수십 킬로미터를 오가며 뇌혈전에 걸린 노 장모님의 일상(장인이 돌아가셔 장모님을 보살필 사람이 없음)을 보살펴야 하고 어린 초등학생인 딸을 학교에 보내고 데려와야 했다. 그러나 나는 힘이 솟구쳐서 피곤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또한, 매년 직장에서 선진근로자, 그 지역 모범노동자로 선정됐고 수차례 개인 3등 공로 영예를 지녔다.
나는 건강이 근본적으로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심성 관련 고비도 넘겼다.
한번은 하부조직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업무차 찾아왔다. 나는 우리 사무실에 금방 입사한 기사를 그녀에게 소개했다. 손님을 보내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새로 온 동료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내게 크게 외쳤다. 나는 바로 이것은 우연이 아닌 수련과 상관된다고 깨달았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평온하게 조급해 말고 할 말이 있으면 차분하게 말하고 내가 무언가 잘못했으면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동료들은 그가 너무 경솔하고 충동적이라고 지적했다. 그 동료도 화가 풀려 조용히 내게 여기에 기사로만 근무하러 온 것이 아니고 사무실의 모든 업무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그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인재를 묻어버린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하자 사무실엔 바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1999년 ‘7·20’ 장쩌민 집단과 중공은 온 세상에 파룬궁(法輪功)에 대해 먹칠하면서 박해를 시작했다. ‘검은 구름이 성을 뒤덮어 성이 무너지려고 한다’라는 것과 같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법을 심도 있게 공부하지 못한 나는 미혹되어 구세력이 ‘집에서 연마하라’라는 안배대로 매일 그들이 제공한 신문과 잡지, 동영상(실은 사악한 중공이 사실을 왜곡하고 대법에 먹칠한 사설임)을 ‘강제로 공부’ 당했다. 나는 직장에서 규정한 한정된 범위에서 활동해야 했고 비록 연공은 할 수 있으나 일부 ‘과학 양생 학습’과 같은 것에 참가했기에 대법과 다른 수련생과의 접촉을 차단당했다. 내 생각도 점차 대법을 떠나 건강이 계속 나빠져서 ‘대면적 심근경색’에 이르러 만 60세(2010년)에 병원에 입원해 심장 스텐트 삽입술을 받았다. 수술 후 반드시 약을 먹어야 했는데, 고질 위장병이 또 도져 ‘약을 먹지 않으면 심장 통증으로 견딜 수 없었고 약을 먹으면 위장 통증으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매일 식이요법과 ‘과학 양생’을 꾸준히 하고 영양 전문가의 권고에 따라 영양 건강식품을 비싸게 사들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돈을 많이 사용했지만, 위장 통증이 조금 완화된 외에 심장병이 수시로 발작했다. 2013년 겨울 어느 날 밤 내가 금방 숙소 정원을 산책하려는데 심장이 갑자기 심하게 아파 즉시 숙소에 돌아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아내는 외국에 사는 딸의 아이를 돌보러 가서 큰 집에 나 혼자 살고 있어 마음이 매우 허전했다. 평소에 여러 매체에서 보도한 독거노인들이 자택에서 혼자 숨진 사례들이 자주 머릿속에 떠올라 괴로웠다. 나는 병원에 실려 가 근심과 걱정에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냈고 언젠가 나도 톱기사에 올라 ‘주인공’이 될까 매우 두려웠다.
2014년 6월 4일에 나는 뜻밖에 나의 어머니 댁에서 걸려 온 유선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매우 익숙하고 오랜만의 목소리인 예전의 노수련생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공기가 정지된 것 같고 많고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흐느끼면서 겨우 “제가 바로 갈게요……”라고 말했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 법신상 앞에 꿇어앉아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또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길을 잃었던 내가 마침내 집을 찾았다! 그래서 나는 이날을 ‘대법을 다시 수련하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날’로 정했다.
그날부터 나의 주왠선(主元神)이 내 몸과 마음을 다시 통제했다. 나는 먼저 밍후이왕에 내가 미혹된 기간에 저지른 대법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언행을 무효로 하는 엄정성명(전에 이미 사악한 중공, 공청단원, 소선대 조직을 탈퇴하는 성명을 했음)을 발표했다. 또한 새롭게 출발해 정진하며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을 열심히 해서 내 잘못으로 대법에 초래한 손실을 더더욱 만회하며 구세력의 안배를 전적으로 부정하고 확고히 대법을 끝까지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나는 매일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서 다섯 가지 공법을 전부 연마하고 4회의 정각 전 세계 발정념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했다. 그리고 전심전력으로 법공부, 대법 외우기를 하고 다른 수련생과 협조해 대법서적과 진상 소책자와 전단을 인쇄하고 배포했다. 또한, 미혹에 빠진 다른 수련생을 수련으로 되돌아오게 하고 진상을 알려 삼퇴(三退, 중공, 단원, 소선대 조직을 탈퇴)를 권했으며 수련생을 도와 장쩌민 고소 관련 법률문서를 기안, 수정, 우편으로 발송하는 등을 하면서 전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한번은 법공부를 마치고 교류할 때 한 수련생이 자신이 약속을 이행한 체득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문득 몇 년 전에 고택 철거에서 내게 배당된 보상금을 내 여동생 네 명과 논의하겠다고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이 떠올랐다. 이 일은 이미 여러 해가 지나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수련생은 실언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약속을 이행해야 하기에 나는 식은땀이 났다. 수련생인 어머님께 말씀드리자 찬성하셨다. 나는 배당된 3만3천 위안(약 614만 원)을 남매 5인 평균으로 나누어 여동생 네 명에게 각각 7천 위안(약 130만 원)씩 줬다. 여동생들은 오빠가 자신에게 배당된 돈을 평균치보다 더 많이 줬다고 말하면서 향후 오빠와 부모님 관련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오빠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더 화목해졌다.
이 일이 지난 일주일 후에 내게 갑자기 심한 병업 상태가 나타났다. 오른쪽 뇌의 심한 통증, 인두와 후두가 부어오르고 아프고, 코막힘, 기침이 멈추지 않고 기침에 가래가 끓고 콧물이 진하게 계속 흐르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매일 밤 침대 옆에 휴지통, 가래 뱉는 그릇, 충분한 휴지를 준비해야 했는데, 이전에 여러 차례 나를 괴롭혔던 감기로 생긴 폐렴과 비슷했지만, 법공부와 연공을 할 때는 기침이 멎고 코도 막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 상황을 보고 웃으면서 “사부님께서 너를 정말 잘 대하시네, 네가 정진하니 소업을 안배하셨어”라고 말씀하셨다. 이 상황 4일째 밤에 깊은 잠결에 한 남성이 중음(中音)으로 한 말이 매우 분명하게 들렸다. “너는 이렇게 집에서 죽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몰라!” 나는 놀라서 깨어났고 이것은 내가 대법을 다시 수련하기 전의 상황이고 현재 사부님께서 보살피고 계시니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일어나 앉아 신심 가득하게 그 말에 답했다. “나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고 내 운명은 사부님의 안배에만 따를 것이며 누구의 말도 효력이 없으니 듣지 않는다!” 순식간에 뜨거운 흐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것을 느꼈고 4일간 나를 괴롭혔던 증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내 마음은 사부님께 대한 감사로 가득 차서 눈물을 머금고 일어나 며칠 동안 쓰던 휴지와 휴지통, 타구를 걷어내고 얼굴과 손을 깨끗이 씻고 사부님 법신상에 세 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며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제자의 생명은 사부님께서 주셨습니다! 제자는 꼭 사부님의 가르치심을 마음에 새기고 정진하며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확고히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람을 많이 구해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합격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내가 수련하면서 걸어온 시행착오를 반성해보니 결국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제대로 하지 못해 구세력이 틈을 파고든 것이었다. 교훈이 뼈에 사무쳤다! 그땐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생각이 느슨해져서 개인의 이해득실만 따지고, 색욕심, 명리심, 두려움 등이 때때로 나타나 사악이 틈을 파고들어 병업 상태가 나타나 대법과 가족에 손실을 초래했다.
내 경험이 다른 수련생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련생 여러분들은 이를 교훈 삼아 정법 노정에서 평온하게 잘 나아가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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