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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얼음장 같던 가정이 화목하게 변하다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54세로,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대법을 사람들에게 전해주셨기에, 비로소 오늘날의 저와 지금의 화목한 가정이 있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남편의 변화​

결혼 후, 저는 남편이 가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유흥에만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거칠고 급하며 쉽게 분노했고 저에 대해 걸핏하면 때리고 욕했습니다. 남편은 먹고 마시며 외도하고 도박하는 등 좋지 않은 것들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제가 외지의 친정집에 있을 때 전근이 안 돼 임시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로 우리는 자주 다투었습니다.

저도 원래부터 고집이 세고 강한데, 성격이 비슷한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싸워서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저는 싸워서 이기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주방에서 제가 남편에게 거슬리는 말을 한마디 했다는 이유로, 남편은 부뚜막의 작은 대야를 제 몸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대야에 있던 것은 프라이팬에서 갓 볶아 나온 뜨거운 콩기름이었는데, 다행히 제가 재빨리 피해서 참극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원래 몸이 안 좋아서 평소에 아이도 안아 줄 수 없었습니다.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몇 번이나 기절한 적이 있었지만, 남편은 이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 저는 병원에서 자궁근종 수술을 받은 후 의식을 잃었는데, 남편은 제 곁에서 돌봐주지 않았고, 복도에서 다른 사람과 한참이나 열변을 토했습니다. 퇴원할 때, 저는 몸이 허약하여 걸을 수 없어서 한 발짝씩 옮겼는데 저를 위해 택시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얼음장 같은 가정을 꾸리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차마 어린자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몇 번이나 죽었을 것입니다.

고향 집에 있던 언니는 저의 불행한 삶을 보고 늘 저를 일깨워줬습니다. 먼저 파룬따파를 수련한 언니는 제게도 배워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대법의 심오한 법리를 저는 별로 깨닫지 못했고, 다만 사람은 도덕이 있어야 하고 양심이 있어야 하며 사람을 속이지 않고 해치지 않으며 타인의 이익을 가지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잘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하면 복을 받게 된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이왕 이 가정을 떠날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으니, 그럼 안으로 찾아보고 자신을 바꿔보려 했습니다.

저는 선을 수련해 내려고 노력했고, 남편의 좋은 면을 보며, 말하거나 일할 때 가능한 한 부드럽게 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대법의 법리에 따라 잘하기만 하면, 남편이 조금 나아지고 제게 조금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의 집착심이 무겁고 심성을 지키지 못하면, 남편은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제가 환골탈태하는 변화 과정을 보면서,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따금 신전문화(神傳文化),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善惡有報)는 법리, 대법이 널리 전해진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에게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QR코드를 줘서 방화벽을 넘어 진실한 뉴스를 보게 했습니다. 이렇게 남편은 갈수록 대법을 지지했고 저의 수련을 지지했습니다. 남편은 성격이 시원스럽고 솔직하여 입바른 소리를 잘했습니다. 제가 들락날락하며 법을 실증하는 일로 바삐 보낼 때, 시댁 식구들과 남편 친구들은 남편에게 저를 좀 단속하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하는 일은 바른 일이에요. 아내 사부님께서 우주를 구하고 계신 거예요. 우리는 먹고 마시고 노는 것밖에 모르고 약간의 정의와 양지도 없는데, 사는 게 동물과 뭐가 달라요?”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남편 직장의 서기가 남편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를 ‘전향’시키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어디로 전향시킬까요? 나는 이렇게 하늘도 두렵지 않고 땅도 두렵지 않고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인데도, 아내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입을 것을 주면서 매사 모두 내게 양보했어요. 평상시에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며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당신들처럼 먹고 놀고 마시며 외도하고 도박하는 사람으로 ‘전향’시킬까요? 당신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대법제자와 비교가 안 돼요. 그들은 중생을 위해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데, 당신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팔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 직장의 서기는 부끄러워하며 더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일이 있고 난 뒤, 동료는 “형, 형은 지금 대법 진상을 알리는 건 아닌가요?”라고 말하자 남편은 “내가 말한 건 사실이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말로 저를 지지할 뿐만 아니라, 경찰 앞에서도 위험에 직면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법제자를 구했습니다. 박해가 가장 심했을 때, 경찰은 광적으로 사람을 납치했습니다. 한번은 고향 집에서 경찰이 대법을 수련하는 언니를 찾지 못하자 저도 수련한다는 사실을 알고 먼 길을 달려 우리 집에 수색하러 왔습니다. 남편은 아파트 문 입구를 가로막고, 차 안에 앉아 수색을 명하고 있는 경찰에게 “우리 집은 아무것도 없지만 칼은 많아요.”라고 엄숙하게 경고했습니다. 남편이 예전에 싸움을 좋아했고 손찌검을 많이 해서 주변에 소문이 났습니다. 경찰은 이 형세를 보고 풀이 죽어 차를 몰고 가버렸습니다. 집 안에 있던 언니는 평안 무사했습니다.

때때로 제가 태만해지면, 남편은 “빨리 심성을 제고해야죠!”라고 저를 재촉했습니다. 남편은 대법을 믿고 대법제자를 지지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직장에서 매우 순조로웠고 건강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이 가정은 지금 따스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들의 기적이 다시 대법의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실증하다​

아들은 일반중학교에 입학했고 게다가 반을 나눌 때 다른 지역 학생으로 여겨 가장 열등한 반에 배정됐습니다. 이 사실은 남편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습니다. 아들은 반항하면서 자포자기했고 온종일 문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무단결석하고, 학교 일진들과 함께 보호비를 받으며 PC방을 다녔습니다. 공부할 마음이 없었고 성적은 학년에서 꼴찌였습니다. 저는 마음이 다급했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라서 체벌로 아들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아이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라 억울하고 고집스러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저는 아이를 고향 집으로 보내 대법을 수련하는 언니에게 돌봐 달라고 했습니다.

언니는 인내심을 가지고 타이르면서 아들을 조금씩 이끌어줬습니다. 아들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했고, 타인을 배려하고 사람을 돕는 것을 즐기도록 가르쳤으며, 부모의 어려움을 이야기해줬습니다. 네 엄마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일찍이 이 가정을 떠났을 것이라고 아들에게 알려줬습니다. 아들은 어릴 때 저를 따라 대법을 배운 적이 있었고 대법의 신비로움도 알았습니다. 어떤 때는 머리가 아파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때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끊임없이 염했습니다. 학우들이 급히 120에 응급 전화를 걸었는데, 구급차가 도착할 무렵이면 아들은 정상으로 회복되곤 했습니다.

1년 뒤, 아들은 고향 집에서 돌아왔습니다. 저는 언니로부터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을 조금 배웠습니다. 어머니의 태도를 내려놓고 아이를 친구 대하듯 하면서 때리지 않고 욕도 하지 않으며 서로의 의견만 나누었습니다.

아들은 공부에 매우 열중했고 선생님과 학우에 대해 까다롭게 굴지 않았으며 타인을 돕는 것을 즐겼습니다. 아들의 학업성적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꼴찌에서 200등까지 올라갔습니다. 아이의 이러한 변화를 보고 선생님은 매우 기뻐했고 동시에 “이 아이는 품성이 매우 우수해요. 다만 기초가 너무 약해서, 이런 상태로 고등학교에 합격하기는 매우 어려워요.”라며 걱정도 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 마침 합격선이 아들의 점수로 떨어졌습니다. 학교 책임자는 기뻐하며 제게 전화를 걸어와 “대체 집에서 향을 얼마나 피우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책임자에게 “우리 집 향은 높아서 끝에 손이 닿지 않아요. 우리는 대법을 수련하기 때문이에요. ‘진선인(真·善·忍)’의 법리에 따라 하기만 하면 복을 받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기적은 다시 한번 일어났습니다. 수능시험 때, 선양의 한 대학교는 우리 성(省)에서 두 명을 추가 모집했는데, 아들이 또 그 대학교 합격선보다 거의 백 점 낮은 성적으로 두 번째 지망으로 합격했습니다. 아들의 상황으론 세 번째 지망한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기뻐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고, 남편도 가족 식사 모임에서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아내가 아들을 잘 키워줘서 감사드립니다!”라고 연신 말했습니다.

아들은 졸업하기도 전에 남방의 대도시에 가서 실습했습니다. 아들은 겸손했고 향상하려는 마음이 있어 직장 책임자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졸업 후, 그 직장에 남아 곧바로 취직되었습니다. 아이는 회사에서 고생을 겪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속에 진선인의 이념을 확고히 지키면서 행동을 하고 일을 합니다. 지금 향수하고 이익을 따지는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상급 책임자는 아들의 귀한 인품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보고 임금을 올려준 것은 물론 자주 단독으로 일부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합니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스트레스가 매우 크며, 끊임없이 자신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아들은 영어 기초가 매우 약했고 해외에서 돌아온 그런 사람들과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계 기업의 각 부분에서, 회의할 때는 모두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상사는 아들이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은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면서 영어 과외를 받았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회의할 때 영어로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들 꿈에 누군가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비록 또렷이 보지 못했지만, 의식적으로 대법 사부님의 법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깨어난 후, 아들은 이 꿈에 대해 끊임없이 돌이켜보았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회의할 때, 모두 원탁에 둘러앉았고 책임자는 우호적으로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뜻은 이야기해 볼 수 있는지였습니다. 아들은 일어서서 미소를 띤 얼굴로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유창하게 설명해야 하는 내용을 잘 표현했습니다. 모두 아들을 바라보면서 깜짝 놀라 멍해졌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아들은 나중에 저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전염병 기간 이 3년 동안, 아들은 집에 오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그리울 때 우리는 영상통화를 하는데, 아들은 근무 상황이나 부딪힌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만약 바르지 못한 곳을 발견하면 바로 지적하여 아들이 바로잡게 했습니다. 이제 아들은 대도시에서 매우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여자 친구도 찾았습니다. 아들은 주변의 친구들도 선을 향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비록 아들이 대법 수련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줄곧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행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당기면서 가지 못하게 하다​

수련 전, 시어머니는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늘 뒤에서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저에 대한 안 좋은 말을 했으며, 저를 업신여기고 괴롭혔습니다. 저는 빙빙 돌려 남편을 꼬드겨서 시아버지에게 일러바치게 했습니다. (내가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시아버지는 내 편을 들어줬고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무서워함) 그래서 그들 사이를 긴장되게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일자리가 없어서 집에 있었습니다. 온몸이 다 아파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밤에 잠이 들면 다음 날 눈을 뜰 수 있을지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항상 밖에서 싸움질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았고, 집에 돈이 떨어진 것을 보고도 나가서 도박했습니다. 한번은 남편과 살고 싶지 않았는데, 남편은 뜻밖에도 아이를 안고 도박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도박에 미쳐서 아이까지 도박에 내걸까 봐 몹시 두려웠고 시부모님이 남편을 잘 가르치지 않은 것에 매우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어머니는 오히려 우리 집에 와서 생활비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퉁명스럽게 시어머니를 내쫓았습니다. 살림살이에 돈이 필요했으나 남편은 임금을 받고도 제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 이웃에 사는 언니네 집에 가서 돈을 빌렸습니다. 언니는 저와 아이가 불쌍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아껴 먹고 아껴 입으면서 늘 저를 도와줬습니다. 언니의 이런 도움에 의지하면서 그때의 간고했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수련 후, 저는 먼저 가정 관계를 바로잡아야 하고 일에 부딪히면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번은 저와 시어머니, 동서 세 사람이 함께 밀전병을 구웠습니다. 제가 만든 전병은 동서가 만든 것보다 한결 나았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오히려 “어머니가 가르쳐주시지 않았어? 어떻게 이 모양으로 만들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그만두지 않았고 생트집을 잡는 말투로 “너희 사부님께서 참으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어? 너는 못 해냈잖아! 왜 눈물을 흘려? 왜 참지 못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거실에 있던 남편이 동서가 갑자기 주방에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고 분명히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가와, 제게 “엄마가 또 생트집을 잡은 거 아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얼른 “아니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떠난 후, 시어머니는 차분해진 말투로 “넌 정말 제고됐구나!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일함에 우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선해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시어머니에게 “제가 일을 잘못했을 때, 꼭 제게 알려주세요. 고칠게요.”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시아버지가 입원했을 때, 제가 병문안을 가서 시어머니에게 돈을 드리자 미안해하시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거침없이 “아가, 이 대법은 참으로 훌륭하구나! 네가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내게 돈을 줄 수 있겠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수련 전이었다면 저는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명절이면 저는 시어머니에게 돈을 드리지만, 시어머니는 받지 않습니다. 저는 “저는 예전에 돈이 없었지만, 이제는 퇴직금이 있어요. 비록 많지 않지만, 어머님께 효도해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노년에 며느리가 내게 이렇게 잘해 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네가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내게 이 복이 없었을 거야!”라며 우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유난히 깔끔하셔서 예전에는 저를 당신 집에 머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설령 섣달그믐날 밤에 만두를 다 빚어도 우리 모자를 시댁에 머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나는 가운데서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안고 두껍게 쌓인 눈을 밟으면서 우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달라졌는데, 제가 시댁에 가기만 하면 그곳에서 며칠씩 지내면서 말벗이 되어드리곤 합니다. 시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셨고 자주 가족들에게 “우리 큰 며느리는 대법을 배운 후, 정말 변했어요. 며느리가 변했고, 내 아들과 손주도 모두 변했어요. 이 대법은 정말 훌륭해요! 이것은 모두 리(李) 선생님의 덕분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잡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추워할까 봐 춥지 않은지 수시로 저의 손과 발을 만져보곤 합니다. 매번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매번 시댁에 갈 때, 시어머니는 제가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항상 “하루 더 머물렴!”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저는 시어머니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 ‘9자진언(九字真言)’을 염하라고 자주 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염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지난해 하루는 시댁에서 일찍 일어나 연공을 하는데 다 마치지 않았을 때 시어머니를 보니 심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물어보니 팔과 등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검사 후, 등만 해도 여러 가지 질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젊은 시절 매우 힘들게 일해서 나이가 많아진 후 병이 생겨났습니다.

진찰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저는 “어머님, 진찰도 받았고 약도 드셨는데 이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어요. 얼마나 고생스러우세요. 제가 어머님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성심껏 염하는 것을 가르쳐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성심껏 한 번씩 따라서 염했습니다. 오후에 정말 아프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시어머니는 기뻐하시면서 제게 “대법을 염하니 정말 좋구나. 나는 계단을 올라갈 수 있게 됐어.”라고 알려줬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두 가지 신비로운 일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해 여름 아침, 매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서 모두가 비가 내리기를 바랐습니다. 이날, 마침내 비가 내릴 기미가 보였습니다. 하지만 고만한 비는 도로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만 내렸고 이쪽에는 조금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는 제가 알려드렸던 말이 생각나서 “대법 사부님께 일이 있어 청을 드리옵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끊임없이 “대법 사부님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염했습니다. 그러자 한 덩어리의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시어머니가 계시던 그 땅으로 몰려갔습니다. 시어머니가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큰비가 좍좍내려 그쪽 편의 땅을 흠뻑 적셨습니다.

또 한 번은 시어머니가 밀을 수확할 때, 마침 큰 비가 내렸습니다. 그때, 밀을 주머니에 다 담았고 위에는 비닐로 덮었습니다. 이 비는 나흘, 닷새 동안 내렸는데 이런 경우라면 습기와 곰팡이가 나지 않는 곡식이 없을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다급하게 베란다로 나가서 “파룬따파하오! 대법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밭에 달려가서 밀을 향해 “내 며느리는 대법을 수련하고, 나는 진심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어. 너희들은 절대 곰팡이가 피지 말아라.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하렴!”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가 그친 후, 저와 시누이는 시어머니댁에 갔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며 제게 “정말 신통하구나, 이 비가 이렇게 며칠이나 내렸는데 밀은 아무 일도 없어. 곰팡이라도 났다면, 이 여름 바삐 보낸 게 헛되었을 텐데. 너희들도 유기농 곡식을 못 먹었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시어머니는 ‘파룬따파하오’를 더욱 성심껏 염하게 되었고, 또 “얼른 가봐. 네 아버지에게도 ‘9자진언’을 염하게 하렴!”하며 저를 재촉했습니다.

여기까지 쓰자 이미 눈물이 가득 흘렀습니다. 우리 온 가족은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온 가족은 파룬따파의 불광이 비추는 가운데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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