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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돈-원수-수련생

글/ 중국 대법제자 후이쓰(慧思)

[밍후이왕] 내가 오늘 말씀드릴 것은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니가 사돈을 맺고 원수가 되었다가 다시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게 된 이야기이다.

나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다른 성(省)에서 일하셨고, 어머니 혼자 고향 둥베이에서 고생스럽게 우리 세 자녀를 키우셨다. 30년 전, 나는 어머니를 떠나 혼자서 남쪽으로 일하러 갔다. 내가 사회에 막 발을 디뎠을 때, 어머니는 현지의 유명점술가를 찾아서 내 결혼이 어떠한지 점을 보셨다.

그 사람은 어머니에게 미래의 사돈댁 용모와 체형이 어떠한지 알려주면서 특별히 당부하였다. “당신 두 집안은 불연(佛緣)이 연화된 것이니 소중히 여기세요.” 어머니는 그때 부처를 별로 믿지 않으셔서 그다지 탐탁지 않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런 불연도 원하지 않습니다.” 점술가는 오히려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이 불연은 천 년에도 만나기 어렵고 백 년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니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나와 우리 부모님, 시어머니가 모두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이 불연이 원래 파룬궁을 함께 수련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룬궁은 파룬따파라고 하며 불가의 고층차 대법이다.

몇 년 후, 친정어머니가 시부모를 처음 만났을 때, 놀라서 멍해졌다. 점술가가 말한 시부모의 용모, 체형은 실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1m 70cm의 키다리셨고, 시아버지는 키가 크지 않고 안색이 점술가의 말과 같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좋지 않은 마음이 생길까 봐 결혼 후 몇 년이 지나서야 내 결혼을 어떻게 봤는지 알려 주셨다.

시어머니는 성격이 거세고 난폭하시다. 어머니도 성격이 드세시며 일리가 있으면 상대를 지나치게 몰아붙인다. 시아버지는 대형 국영기업 중간 간부이시며, 아버지는 이 기업의 해외 근무 일반 노동자이셨다. 아버지는 실직한 지 여러 해가 되셔서 집안 형편이 어렵다. 시아버지는 남(南)쪽 간부 건물에 사셨고 친정 부모는 내가 결혼할 때 둥베이에서 옮겨와서 북쪽 노동자 구역에 사셨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양가 노인들은 결코 잘 알지 못하셨다. 즉, 서로 뿌리도 모르고 내력도 모르셨다. 시아버지는 우연히 나를 한 번 보셨는데, 기껏해야 1분의 시간으로 이 인연을 맺었다. 시아버지는 내가 곱고 참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부하 직원에게 나를 알아보라고 하셨으며, 그 후 나는 남편을 만나 선을 보고 부부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기업 중간 간부에 불과하셨지만, 시어머니는 관리 부인으로 자처하며 늘 남보다 한 수 위라고 여기셨다. 시어머니는 친정 부모님을 마구잡이로 트집 잡는데, 주로 친정이 가난하다고 싫어하셨다. 내가 결혼할 때, 여동생은 아직 중학교에 다녔다. 시어머니는 심지어 내 여동생이 공부를 계속하여 아들을 힘들게 할까 봐 친정집을 “채울 수 없는 구덩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늘 친정집에 가서 소란을 피우고 친정 부모님 앞에서 여러 차례 나를 모욕하고 책망하며 남편을 부추겨 이혼을 강요하셨다. 친정아버지는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내가 딸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었어. 후회막급해서 죽겠네! 시어머니가 이런 사람인 줄 일찍 알았으면 딸을 그 집 문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을 텐데!” 나와 남편의 직장에서 분배하는 집이 아직 내려오지 않아서, 남편은 시댁에 살았고, 나는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살았다. 시어머니가 욕하면 나는 친정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나는 친정에서 오래 살았다.

한번은 남편이 또 시어머니의 핍박에 못 이겨 친정에 와서 이혼을 재촉한 적이 있다, 우리 어머니는 다급해져서 말씀하셨다. “내 딸이 임신하지 않았으니. 이혼하게나!” 하늘의 뜻이 내가 이혼하지 말아야 했는지 한 달 후에 임신하자 시어머니는 조용해지셨다.

몇 달 후, 시어머니는 내 얼굴에 ‘임신 반점’이 자라지 않은 것을 보고 여아를 잉태한 것으로 확신하셨다. 곧 또 일이 생겼다. 시어머니는 매일 친정어머니를 찾아와서 나에게 낙태를 요구하라고 하셨다. 내가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었을 때, 남편이 또 우리 집으로 와서 나에게 낙태하라고 했다. 친정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첫 아이네. 6개월이 됐는데 낙태하다가 잘못하면 둘 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잖은가.” 시어머니는 단념하지 않고 또 한의사를 찾아 나의 맥을 짚어보게 하셨다. 그래서 지인이 배가 불룩한 날 데리고 농촌으로 가는 봉고차에 태웠다. 몇 시간 동안 요동치며 타고 가서 옛 한의사를 찾았다. 한의사가 말했다. “틀림없이 남자애야. 남자애 아니면 내 간판을 떼버려요!” 돌아온 후 지인이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지만, 시어머니는 나와 지인이 한패가 되어 그녀를 속인다고 생각하시다가, 지인이 거듭 해명하고서야 그만뒀다.

아들이 태어난 지 평안하게 반년이 지났다. 남편은 외지로 일하러 갔으며, 나는 자주 출장을 다녔고, 아이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겼다. 시어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손자를 학대했다고 또 눈에 거슬려 했다. 게다가 남쪽 간부 건물 사람과 북쪽 노동자 구역 사람들이 모두 알고 서로 험담해서 앞의 원인이 뒤의 결과를 더 해 모순이 쌓일수록 깊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친정어머니 품에서 아이를 빼앗아 간 후, 갈등이 폭발했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두 사람은 서로 욕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키가 큰 시어머니는 걸상 하나를 집어 들고 친정어머니 머리를 내리치셨는데 친정어머니는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흐르며 땅에 쓰러지셨다.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뇌진탕이었다. 이번에 두 집안은 완전히 원수가 되었다.

내가 외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아주 멀리서 시아버지가 내 아들을 안고 계시는 것이 보였다. 내가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몸을 돌려 시댁으로 돌아가셨는데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으셨다. 거의 1~2년간, 나는 아들이 보고 싶어도 반드시 남편이 외지에서 돌아와야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시어머니는 또 남편에게 나와 이혼하라고 했는데, 이혼하지 않으면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버리겠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남편이 굳게 결심했다. “이혼 안 해요! 죽어도 이혼하지 않겠어요!” 또 재떨이를 박살 내서 손에 피가 났다. 시어머니는 그제야 단념하셨다.

1999년도까지 직장 마당에서 파룬궁을 가르치는 사람이 있었으며 시어머니가 배우러 가셨다. 친정어머니는 본래 배우고 싶었지만, 시어머니가 가는 것을 보고 가지 않으셨다. 친정아버지는 대법책을 보고 파룬궁이 좋다고 생각해서 집에서 배우셨다. 시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하신 이후로 나는 더는 그 천덕꾸러기 며느리가 아니어서 시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시어머니가 파룬궁의 저서인 ‘전법륜(轉法輪)’을 공손하게 읽으시는 것을 보았는데, 모르는 글자는 한 획 한 획 공책에 베꼈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가 나를 보면 항상 찌푸렸는데 이제 웃는 얼굴로 맞이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주시며 전체적으로 상냥해지셨다. 친정아버지는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로 몸이 이전보다 많이 좋아지셨다.

두 분의 변화를 보고 나는 대학 다닐 때 배운 그런 기공을 포기하고 싶었다. 나는 십여 년을 연마했으나 몸이 줄곧 좋지 않았고, 그 기공은 심성 수련을 말하지도 않았으며, 나의 성격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에 가장 미쳐 날뛸 때 나와 어머니는 잇따라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후 나의 성격은 밝은 햇빛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성격도 좋아지셨다. 파룬따파의 법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깨우치고 우리 마음을 씻어냈다.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선(善)을 위해,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니 사이에는 교류가 없었지만, 서로를 마음속으로 깊이 용서하셨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으셨다면, 두 집안은 정말로 서로 왕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당에 한 쌍의 친자매가 한 가지 일로 몇십 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았고 만나면 빙빙 돌아서 간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이전의 원한을 단호히 내려놓을 수 없다.

아들이 다섯 살이 되자 시어머니는 다른 성(省)으로 가서 시누이 아이를 돌보시려고, 남쪽으로 떠났으며 내 아들은 친정어머니에게 맡기셨다.

2006년에 나는 중국공산당에 납치되어 불법으로 세뇌반에 갇혀 박해받았다. 양쪽 노인들은 걱정이 참 많으셨다. 나는 그들의 딸, 며느리이자 그들의 수련생이기도 하다. 시어머니는 먼지투성이가 되어 다른 성에서 급히 돌아와 나를 구해주셨다. 시어머니는 헤어진 지 여러 해가 된 남쪽 간부 건물과 북쪽 노동자 구역 사이의 마당을 지나 친정 부모님 댁에 찾아가서 모든 은혜와 원한 일체를 내려놓고 문을 두드리시며 “형님!”이라고 외쳤다. 우리 어머니는 문에서 가볍게 대답하셨다. “어이구!” 천만 마디 말보다 더 아름답게 두 사람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얼음과 눈이 녹았다.

앞으로 그들은 서로 보살피고 격려하며 수련 길에서 영원히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매일 즐겁게 외출하여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렸고 삼퇴(三退, 중공의 3대 조직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다. 비바람도 막지 못했고 파룬따파 수련이야말로 사람이 이 세상에 온 참뜻임을 알렸다. 두 분은 낙관적이고 여유로우며 남을 위하면서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이 되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으로 새 생명을 다시 만드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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