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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진선인(真·善·忍)이 학생들을 변화시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퇴직하기 전, 저는 중학교 교사였습니다. 질병에 시달려 오랫동안 치료하지 못하다가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 전 가스 중독으로 좌반신 근육 위축에다가 심각한 류머티즘 등을 앓고 있었습니다. 수련 후 제 몸은 빠르게 회복됐습니다. 움츠러든 좌반신에 근육이 생기고 납작하던 혈관이 다시 부풀어 올랐으며, 류머티즘과 다른 증상도 곧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병원에 간 적도 없고 주사도 안 맞았으며 약도 먹지 않았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하고 나서 인생의 목적과 사람됨의 이치를 깨달은 제 인생관은 급변했습니다. 사람과 일을 대함에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직장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명예를 다투지 않았습니다. 특히 담임 교사였던 저는 파룬따파 법리로 반을 지도하면서 제 자녀처럼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배움에 관심을 쏟았습니다. 저의 선량한 인품에 감화돼 학급 전체가 화목한 분위기였습니다.

몇 가지 작은 이야기

1999년 9월, 저는 중1 담임을 맡았습니다. 얼마 후, 가오펑(高峰)이라는 남학생의 어머니가 저를 만나러 학교에 왔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우리 학교에서 며칠 공부시킨 후 일류 중학교로 전학시키겠다며 아들이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단지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뭐라고 해도 전학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엄마, 우리 담임선생님이 얼마나 좋은지 선생님을 만나보세요. 우리 반 친구들도 좋으니 전학 안 가요”라고 했습니다. 가오펑은 전학을 거부하며 한 달여를 끌었습니다. 그래서 가오펑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 학교를 떠나려 하지 않게 한 선생님을 보고 싶다며 저를 보러 왔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눈 뒤 그녀는 저를 인정함과 아울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인정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떠났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가르치던 어느 날, 학교의 10여 명 선생님이 우리 반에 와서 제 국어 수업을 들었습니다. 수업 전에 저는 학생들에게 국어 사무실에 가서 의자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교실로 의자를 옮긴 후 잇달아 자신의 의자 위에 있는 작은 방석을 수업을 들으러 온 선생님의 의자에 놓았습니다. 사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고 반 간부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자발적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선생님의 반 학생들은 모두 선생님처럼 마음이 착합니다”라고 말하며 감동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우리 반에 수업을 들으러 오신 선생님은 모두 작은 방석을 깔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쉐팅(王雪婷)이라는 여학생의 부모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저를 보는 그들을 보자, 저는 그들이 딸의 한쪽 말만 들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총명한 여학생을 배움의 인재로 여기며 좀 엄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참을 수 없어 부모님께 제가 그녀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고자질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여학생 부모님에게 제가 반 1등 학생을 시켜 그녀에게 문제를 가르쳐 주게 했고, 학과 선생님과 그녀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지 협의한 등등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여학생의 각 과목 성적을 손바닥 보듯 한 저는 그녀의 부모에게 “따님이 천부적으로 영리합니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면 대학에 갈 수 있어요. 발전 가능성이 있으니 함께 노력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매우 감동한 여학생의 부모님은 이전 태도를 매우 후회했습니다. 그 후 왕쉐팅은 크게 진보했습니다. 그녀가 졸업 후 한 번은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다시 한번 저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저는 수업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인성 함양을 매우 중시합니다. 왜냐하면 한 아이의 도덕관념은 중학생 때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서 학생들이 받는 도덕의 영향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학생들을 인간으로서 진실하고, 착하고, 양보함으로 이끌어주면서 옛 성현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려줬습니다. 수업 중에 인용되는 사례도 학생들에게 도덕성을 일깨울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주번이 반 학생들을 감점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학생들이 주번에게 따지게 하거나 사무실에 찾아가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안으로 찾으며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보아야지 책임을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반 학생들이 감점을 따지지 않고 주번과 다투지 않았기에 우리 반에서 받은 규율과 위생 우승기(優勝旗)는 아주 적습니다. (학교에서는 우승기로 담임 교사의 업무를 평가함) 그래도 교직원들은 우리 반 학생들이 자질이 높고 규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의 품격을 키우는 것을 자신의 영예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비록 저 자신의 명예는 손실을 보았지만, 학생은 이익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너그럽고 넓은 아량을 가지는 것은 그들 평생의 재산이며 장차 금전과 명예로도 바꿀 수 없는 평생의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자습 시간에 공부 잘하는 학생을 시켜 다른 친구들에게 문제 풀이 방식을 해설해 주고 숙제를 못 하는 학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게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서로 돕는 좋은 품행과 덕망을 키워줌과 아울러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선생도 학생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언어 구사 능력을 단련시켜 앞으로 직장에서 주눅 들지 않고 침착한 마음가짐과 조직력을 갖추게 합니다.

학습 성적이 몹시 나쁜 남학생들이 몇 명 있었는데, 국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과목의 시험 성적이 한 자릿수입니다. 저는 그들을 싫어하지 않고 실천하는 능력을 배우도록 격려했는데 한 가지 기술만 있으면 장래에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의 책상과 의자, 전등, 문이 고장 나면 저는 모두 그들에게 수리하게 했고 일이 끝난 후 반에서 그들을 칭찬해줍니다. 그들도 매우 기꺼이 반을 위해 힘쓰려고 합니다.

매번 학부모회를 열 때마다 저는 이 성적이 나쁜 아이들의 학부모들에게 학습에 있어서 아이들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몸과 마음을 건강히 자라게 하며 앞으로도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 생활하게 하도록 건의합니다. ‘동쪽이 밝지 않으면 서쪽이 밝다’ ‘하늘은 눈먼 새라도 굶겨 죽이지 않는다’ 등의 말로 학부모들을 일깨웠고 그들은 성적이 나쁜 아이들도 제가 똑같이 관심을 두고 보살피는 모습을 보자 매우 감격했습니다. 그중 왕좡(王壯)의 아버지는 친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저를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로 인도해 학급 기풍이 바르고 학생들이 서로 마음이 맞아 싸우고 욕하며 훔치는 현상이 없고, 학생들끼리 서로 관심하고 착하게 지냅니다. 아이들은 하교하면 모두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학업성적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 수업 분위기가 좋아 담당 교사들이 수업에 힘들지 않아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시험을 막론하고 우리 반 학생 중에는 커닝을 하는 학생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교사는 “○○반 학생들은 모두 그녀처럼 마음씨가 착하고 정말 학생답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반 과목을 가르치는 몇몇 교사들도 “전 학년 8개 반에서 5반(우리 반)만 수업할 때 마음이 편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반의 수학 선생님은 교습 능력이 보통이고 반의 질서를 잘 유지하지 못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모든 선생님을 존중하라고 훈계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적이 없었던 이 수학 선생님은 제 반을 맡아 정말 행운이라며 매우 감격했습니다. 연말 전 학교 회식 자리에서 그녀는 제가 즐거움을 줬다며 무대에 올라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와 그녀의 공동 노력으로 우리 반의 수학 평균 성적은 학년 상위권에 오르게 됐습니다.

몇 년간 일부 교사들은 모두 복습반을 운영해 돈을 벌었는데 저도 일찍이 이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복습반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영원히 복습반을 꾸리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은 월급을 받았으니 여러분을 잘 가르쳐야 해요. 만약 매월 복습반을 운영해 학생들에게 돈을 받는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담임을 맡든 과목을 맡든 따로 복습반으로 돈을 벌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영어를 가르치는데 본 도시의 중견 청년 교사이자 본교의 영어교육 연구팀 팀장이기에 학생을 모집해 복습반을 운영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제가 수업을 맡은 한 담임교사가 제게 “선생님은 한 달에 1만 위안(약 190만 원)을 적게 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차별하지 않고 학부모로부터 선물을 받지 않으며 학부모가 강제로 준 선물은 모두 선물가격에 따라 돈을 돌려보냅니다. 학생도 학부모도 제가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학부모들은 “이런 선생님은 이제 정말 드물지”라며 감탄했습니다.

대략 2007년에 제가 가르친 학생이 전국 중학생 영어 올림픽에서 종목별 1등을 했습니다. 수업을 주관한 교장은 전교 교사대회에서 “○○ 선생님이 학생을 잘 가르쳤는데 어느 학부모가 돈을 줬나요? 선물을 줬나요? 없습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2009년, 저는 중학교 2학급 영어 과목을 가르쳤는데 담임이 아니었습니다. 이 반 담임 선생님이 한 번은 보름간 병가를 냈는데 학교에서는 이 반을 가르칠 생물 선생님을 임시 담임 교사로 지정했습니다. 이 생물 선생님의 딸도 이 반에서 제 영어 수업 대표였습니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나갈 무렵, 저는 학생들에게 영어 짧은 작문을 하나 쓰게 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다 쓰지 못한 학생들에게 “다 쓰지 못한 것은 방과 후 임시 담임 선생님께 드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생물 선생님의 딸 왕신신(王欣欣)이 벌떡 일어나 “선생님이 우리 반의 임시 담임 선생님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마치 솥뚜껑이 터진 것처럼 반 전체가 들끓더니 저에게 임시 담임을 맡으라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산후이자(單會佳)라고 부르는 남학생은 두 손을 읍하고 저에게 “선생님, 우리 담임 선생님을 맡아주세요. 우리 담임 선생님을 맡아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잇달아 임시 담임이 아니라 담임을 맡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교실 입구에 앉아 있던 한 어린 남학생이 재빨리 일어나 책상을 들어 교실 입구를 막고 저를 못 나가게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저를 에워쌌는데 어떤 학생은 책상을 두드리고 어떤 학생은 책가방을 두드리며 기어코 담임 선생님을 승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쓰라렸는데 그때 학교에서는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이미 제 담임직을 해임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학생들 그러지 말아요. 선생님은 담임이 아니라도 학생들을 책임을 질 거예요. 이따가 다음 수업에도 가야 하고, 화장실에 갈 학생도 있으니 선생님을 보내줘요!”라고 말하면서 겨우 교실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담임 교사가 아니라 학생과 접촉하는 시간도 많지 않지만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하나, 특히 학습 과정에서 학생의 마음을 정화하고 선으로 이끌어주는 사례들로 이미 학생들은 깊이 감화됐습니다. 학생들은 저의 선함과 정성을 느끼고 품행과 사람됨을 인정하며 저를 신뢰했습니다.

1999년에 제가 담임을 맡은 그 반 학생은 이미 졸업한 지 여러 해가 됐습니다. 주요 대학에 진학한 몇 명 학생이 지금은 대형 공기업의 중간 간부이고 초중고교 교사가 된 학생이 몇 명이며 다른 직종에 취업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시의 한 수련생이 저에게 말하기를, ‘삼퇴’를 권할 때 젊은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 아가씨는 당시의 담임이었던 ○○선생님이 바로 파룬궁을 연마하셨다고 하며 파룬궁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련생은 그가 가입했던 중공 조직에서 탈퇴를 권유했고 그녀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키가 작은 남자가 왔습니다. 보니 제 반이었던 양(楊) 씨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선생님, 지금 직장을 구하지 못했는데 주민 구역에서 파룬궁 감시를 하라며 게다가 하루에 돈을 얼마 주겠다는 것을 제가 거절했습니다. 선생님처럼 좋은 사람을 감시하고 미행하라고 하는데 제가 갈 수 있을까요? 돈을 벌지 못할망정 그런 부도덕한 짓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의 바른 행동을 인정하면서 인간으로서 도의와 양심이 있어야 한다고 격려했습니다. 이후에 그는 직업을 찾았습니다.

맺음말

중공 사당(邪黨)의 박해로 저는 교사 생활을 끝내지 못했고 1999년 맡았던 담임 교사도 끝까지 하지 못했습니다. 50살 때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 이유로 중공에 불법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당시 학부모들은 저를 보고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선생님이 계속 담임을 맡았다면 우리 딸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거예요.” “우리 아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했을 겁니다.”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을 그만두고서부터 제 딸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들을 전학시키려 했던 가오펑의 어머니는 저를 보고 “선생님, 괜찮으세요?”라고 다정히 물었습니다. 이어 며칠 전 우리 학교에서 체육 과목을 가르치던 장(張) 씨 선생님이 결혼했는데 신부는 어느 회사 사장의 딸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결혼식은 사정으로 가지 않았음)

가오펑의 어머니는 그 결혼식에 참석해 우리 학교의 신임 교장인 왕(王) 교장 선생님을 찾아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학교의 ○○ 선생님이 얼마나 좋나요. 반을 잘 이끌어주고 영어 수업도 잘하시는데 왜 담임 교사를 못 하게 하시나요. 우리 아들은 ○○ 선생님이 담임이 되지 않자 기분이 가라앉고 공부할 기분이 나지 않아 성적도 줄곧 좋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저의 가장 큰 아픔이자 아쉬움입니다.”

진선인에 대한 이번 박해는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일 뿐 아니라 많은 학생의 장래를 망쳤고, 전통 도덕으로 돌아가 성실하고 선량한 인품을 형성할 수 있는 많은 인연을 파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과 악에 응보가 따른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며 가까운 장래에 신께서는 반드시 중공을 청산할 것입니다. 중공이 붕괴할 때 중생이 바른길로 돌아오고 강산은 다시 맑아질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전통과 선량함으로 돌아가 다시 역사의 영광을 되찾을 것입니다.

(주: 현재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당사자의 안전을 위해 문장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5/15/4421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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