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습관화됐고 성격이 급하다. 수련생과 교류할 때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자신의 인식을 말하려 한다. 수련생이 예전에 선의적으로 내게 남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한다고 일깨워줬지만 나는 해내기 어려웠다. 나중에 한 가지 일이 발생해 나를 바꾸었다.
그날 버스를 타면서 함께 앉은 젊은 두 여자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 둘은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진상을 알리려 생각했다. 말을 꺼내자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 당신은 파룬궁을 수련해요?” 두 사람은 즉시 시큰둥했고 나를 상대하지 않았다. 나는 강요하지 않았고 옆에 서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직장은 내가 아는 곳이고 현직 책임자는 나의 한 동창이다. 나는 본래 그들과 말을 걸고 기회를 빌려 진상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이때 내가 내릴 정거장에 도착해 내렸다.
집에 돌아온 후 이 일은 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깨닫지 못했다. 밤에 나는 “어떤 사람은 기를 아주 많이 연마(練)했을 때, 손가락 볼록한 곳이 부풀고, 신체가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곁에 가면 주위에 장(場)이 있는 것을 느낀다.”[1]라는 법을 외울 때 “손가락 볼록한 곳이 부풀고, 신체가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이 법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나는 왜 이 일을 떨쳐버릴 수 없는지 알게 됐다. 겉으로 나는 진상을 알리는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책임자를 하는 동창을 내세워 자신을 돋보이려 했다. 속인의 기세로 자신을 과시하고 뽐내고 싶었다.
법의 점화로 내 수련의 전환점이 됐다. 그 후부터 내가 매번 무엇을 말하려 할 때 우선 자신의 말하는 동기를 본다. 내가 발견한 것은 놀랍게도 매번 내가 표현하려는 배후에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다. 내가 생각을 움직이면 나를 과시하는 마음이 있다. 단지 정도가 많고 적을 뿐이다. 자신이 일부러 이렇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자연히 거기에 존재한다. 이것은 표면적인 내가 표현하려는 일에 덮어 감춰졌다. 이것은 쟁투심, 변명, 허영심, 질투심, 색욕심, 독선적인 등 사람 마음이 함께 작용했다. 나는 감정적이고 경박하며 참을성이 없고 눈에 남의 문제점만 보인다. 완전히 내가 무엇을 닦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자신을 바로 잡으려 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 할 때 머릿속에 늘 먼저 “손가락 볼록한 곳이 부풀고, 신체가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이 법을 생각했다. 다시 자신의 말을 생각하며 ‘기’를 ‘공’으로 보고 남 앞에서 과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 법은 내가 제고하는 데 정말로 유익하고 수련생에게도 유익하다. 만약 좋은 점이 크지 않으면 말하지 않거나 적게 말한다. ‘말하려’ 하는 그 생각을 참고 노력해 수구를 해낸다. 물론 매번 참을 수 있는 것은 나이고 때로 말이 많으면 지난 후 반성한다.
내가 매번 말하는 것을 좋아할 때 배후에는 사람 마음이 있다. 그 사람 마음이 거기에 있어 말하지 않으려 해도 확실히 쉽지 않다. 나는 수구를 해내려고 결정했다. 우선 먼저 수의(修意)를 해내야 한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버리고 사람 마음에 에너지를 불어넣으면 안 된다. 집착심이 존재하는 공간을 청리하고 근본적으로 그것을 해체한다.
사람 마음을 끊임없이 배척하면 자신이 표현하려는 생각은 갈수록 적어지고 대다수 남의 말을 듣고 싶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말할 것이 없다. 듣는 과정에 나의 문제점을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볼 수 있고 자신을 바로 잡는다. 사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갈수록 알게 됐다. 대법제자마다 모두 사부님께서 파악하고 계시며 진정으로 사람을 제고하게 하는 근본은 대법밖에 없다. 어느 하루 나는 법공부팀에서 다른 수련생의 교류를 들을 때 갑자기 조용히 귀담아듣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가볍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이고 지혜롭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하는 과정에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내수공법은 정(靜) 중에서 연마(煉)할 것을 요구한다.”[1] 이 한 단락 법에 더욱 깊은 인식이 있게 됐다. 최초 나의 이해는 ‘조용하다’라는 것은 조용히 연공하는 거로 생각했다. 나중의 이해는 단지 ‘조용하다’에서 비로소 자신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고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다. 더 나중에는 ‘조용하다’에 거대한 에너지가 집결해 있다는 것을 인식했고 이것은 우리가 후천적으로 양성된 나쁜 관념과 물질을 해체할 수 있다. ‘조용하다’에 일종 위엄과 자비가 있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 어떤 외래 요소에 끌려가지 않고 진정으로 무위(無爲)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더욱 큰 지혜로 현재 어지러운 세상일과 사람 마음을 볼 수 있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이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 해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4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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