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윈얼(雲兒)
[밍후이왕] 최근 법공부팀의 엄중한 병업 상태에 빠진 수련생과 함께 수련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인식과 체득이 있어 여러분과 교류하려 한다.
1. 수련생을 이성적으로 ‘돕다’
난(難)에 처한 수련생은 어느 방면에서도 모두 잘 수련하지 못한 것이 아니고 병업 가상 배후에 많은 원인이 있다. 수련생은 난에 빠져 자신의 수련 상태를 보지 못하며, 법리에서 인식이 똑똑하지 않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며, 당황하고 두려워해 정념이 부족하다.
마치 수련생이 얕은 강물에 넘어져 엎드려 감히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변 곳곳이 위기이고 언제든 익사할 수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수련생은 서 있어 강물이 얕아 일어나면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수련생에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격려해주며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수련생이 일어나면 정진하는 발걸음은 더욱 빠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가 누구를 돕는 문제가 아니고 인연 때문에 함께 모인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함께 수련을 제고하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마다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하고 조금도 느슨히 해서는 안 되며 이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되고 더욱 바르게 이 시간을 잘 이용해야 한다.
자신이 이성적이어야 수련생도 이성적으로 도와줄 수 있고 수련생을 더욱 잘 도와줄 수 있다. 자신이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을 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수련생을 도와 발정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과 공간장을 바로 잡은 것이다. 이왕 정체라면 소우주의 공간일 것이다. 그중 어느 수련생의 바르지 않은 표현을 바로 잡고 정체를 성취하는 기회다.
2. 수련생을 ‘돕는’ 것은 자신을 닦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즐거우며 마음이 편하고 성취감이 든다.
처음 한동안은 머릿속에 온통 어떻게 수련생을 도울지 생각했다. 법공부, 연공할 때도 어느 방면에서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며 수련생의 어떤 집착심이 있는지 생각했다. 머릿속은 온통 이런 생각뿐이고 수련생을 돕는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매일 바쁘고 충실하다고 느끼며 무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닦는 것을 잊었다.
나중에 이것은 구세력의 올가미에 걸린 것이라고 인식했다. 정체 수련에 대한 교란이고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하며 수련생을 돕는다는 집착심에 빠진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과시심과 일을 하는 사람 마음이 섞여 있고 마음이 순수하지 않아 쉽게 수련생의 시련을 증가시킨다. 자신의 위치를 잘못 놓고 기점이 바르지 않아서 자신이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이 한동안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에게서 찾아 자신을 닦는 것이 소중하다. 수련생의 신체가 괴로운 것은 ‘눈에 보이는 고통’이다. 자신이 여러 해 한 층차에서 배회하고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하며 때로 걱정하고 압력이 있으며 무거운 상태는 마찬가지로 관이 아닌가? 왜 중시하지 않았는가? 왜 자신에게 ‘방할’하지 않았는가? 수련생의 상태를 조급해하고 걱정하는 것도 신사신법하지 않는 표현이고 집착심이다. 수련생의 문제를 정시하고 법리에서 교류하며 함께 법공부를 하고 자신을 낮춘다. 우쭐대며 하늘의 공적을 자신의 공적으로 삼는 마음을 제거하며, 마음 편히 이 길을 가는 것은 모두가 함께 향상하는 계단으로 여긴다.
3. 수구
시련 속에 있는 수련생은 어느 방면에서 잠시 법리가 똑똑하지 않아 나약하게 표현되고 초조한 마음이 나오며 자기 수련 중의 문제를 모두 폭로하려 한다. 가정에서 속인과의 교제에서 사적인 일과 사소한 일도 포함한다. 하루빨리 시련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수련생의 말을 들은 수련생은 마땅히 법리에서 교류하는 외에 가장 좋기는 기타 수련생에게 전하지 않아야 하고 수련생의 일을 사례로 삼아 습관적으로 기타 수련생 사이에서 말하고 전하면 안 된다. 수구를 하지 않으면 번거로움을 불러온다.
수련생 사이는 속인 중의 관계가 아니고 육친도 아니며 친구도 아니다. 함께 대법을 배우는 성연(聖緣)이다. 이 성연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말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참고 하지 않는 것도 닦는 것이다. 수련생이 우리가 속 시원하게 말하고 속인의 이야기를 나누며 속인 마음을 평형시키는 대상이 아니다. 도와주고 소중히 여기며 협력하고 무사하게 공헌하는 쌍방이다. 포기하지 않고 함께 시련에서 걸어 나와야 진정 정체를 원용할 수 있다.
그 외 수련생의 작은 집착심을 보거나 혹은 법에 있지 않은 인식이 있으면 급히 지적해 줄 필요가 없다. 누락을 조금 말해도 마음이 괴롭기에 긍정적인 격려와 정념으로 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 지름길이 없고 극단적이지 말아야 한다
수련생이 난 속에 오랫동안 있으면 초조한 마음과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고 빨리 벗어나려는 집착심이 생긴다. 예를 들면 수련생과 교류에서 자신의 집착심, 누락을 정확하게 지적해 줘 병업 가상이 단번에 사라지기를 바란다. 혹은 갑자기 자신이 어떤 집착심을 깨달아 몸이 즉시 가뿐해지기를 바란다. 또는 꿈에서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고 구세력이 어떤 틈을 탔는지 발견하기를 바란다. 혹은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자신에게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봐줘 빨리 해결하기를 바란다.
어떤 수련생은 끊임없이 수련생에게 ‘의견을 준다.’ 어떤 수련생은 어느 문제를 겨냥해 발정념을 하자고 제기하고 어떤 수련생은 수련생을 도와 선해하자고 하며 어떤 수련생은 수련생을 도와 공간장을 청리하자고 한다. 예를 들면 수련생 집에 있는 작은 동물 그림을 정리한다. 옷에 있는 용과 봉황 그림을 오려 버리고, 신발 위의 악어 그림을 오려내 신발도 망가뜨린다. 이불 위의 양과 원앙 그림도 오려낸다. 이런 그림 위에 모두 영체가 있다고 하고 모두 생명체이며 수련인을 교란한다고 한다. 집에 사망한 육친의 사진도 남기면 안 되고 음기가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홍루몽(紅樓夢)’ 책에 색마가 있기에 남기면 안 된다고 한다. 어떤 이는 수련생 집의 속인이 사용하는 카드와 증명서에 있는 각종 광고, 의료보험 카드에 있는 여자 의사와 간호사의 배경도 좋지 않다며 청리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것이 색마의 교란을 불러온다고 한다. 이런 수련생은 좀 강해 병업 상태에 있는 수련생은 따라간다. 수련생 집의 속인은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이다. 이러면 대법에 오해를 불러온다. 수련생은 호전되지 않고 신심도 잃었다.
내 생각에 이런 소법소도의 방법은 좀 편파적이고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수련은 착실하게 수련해야 하고 지름길이 없으며 마음 조용히 법공부를 하고 진정으로 법을 배우면 바른길을 걷는 것이다. 수련생이 간절히 법공부를 하려 하고 모든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를 할 때 수련생이 당시 몸에 큰 변화가 없어도 수련생은 이미 병업관을 넘은 것과 같다. 왜냐하면 대법은 뭐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법에서 닦은 선한 마음과 정념으로 수련생을 ‘돕다’
수련생 몸의 변화에 집착하지 않고 수련생의 심성제고에 조급해하지 않으며 마음 편히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신사신법을 닦는 과정이고 고생을 하고 소업하는 과정이다. 그사이에 나는 수련생의 공간장에 나쁜 물질 원망, 쟁투심, 상처, 의지심, 화풀이하고 반복하고, 부정적 사유, 사상 업력 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표현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 질책하지 말아야 하며 수련생에게 사상부담을 주면 안 된다. 자신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고 고생을 해야 하며 담당해야 하고 정체를 원용하는 일부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때는 이런 것을 교류할 때가 아니고 고생을 참고 견디며 업력을 없애야 한다.
수련생이 견지하게 하고 정념을 가지 하도록 격려해준다. 동시에 자신을 찾고 수련생의 원망이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모른다. 수련생의 질투는 자신의 과시심이기 때문이다. 수련생의 자신에 대한 상처는 자신이 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련생의 쟁투심은 자신이 강하기 때문이다. 수련생의 의지심은 자신이 수련생에게 정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생의 사상업력과 부정적인 사유는 자신도 이 방면에서 줄곧 존재하고 발정념해 청리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시간을 배치해야 법공부 시간을 좀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아를 닦아버리는 기회다. 아마 사람을 구하는 시간을 지체하지만, 수련생이 함께 정진할 수 있다면 사람을 구하는 역도가 더욱 크다. 몸도 좀 힘들지만, 이것은 관념을 제거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수련생이 다시 우리 중간에 서 있을 때 정체적인 원용의 시각이다.
선은 또 심혈을 기울여 진심으로 하고 선한 마음으로 하며 대법에서 수련해 낸 것이 진정한 선의 표현이다. 수련생 마음의 매듭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고 시간과 정력을 들여 분석하며 개인 생활에서 도움을 더 줘야 한다. 현 단계에서 때로 선도 사람 속의 정처럼 표현된다. 수련생과 농담하는 것도 이성적이고 자비로워야 한다. 이런 열심히 하는 마음이 없으면 형식일 뿐이다. 수련생을 돕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많은 유감을 남긴다. 사실 간단하다. 수련생을 자신의 아이 수련생처럼 보고 자기는 부모 수련생이라고 보면 자연히 어떻게 해야 정성을 다한 것인지 알 수 있다.
6. ‘세 가지 일’을 모두 하는 것이 수련 상태를 가장 빨리 잡을 수 있다
한동안 수련 과정에서 나는 수련생을 도와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수련생이 수련 상태를 바로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가장 좋은 길이다.
여러 사람의 격려 아래 수련생은 약물을 버리고 속인의 치료를 멈추며 사상업의 교란을 억제하고 대량으로 법공부하며, 심한 고통을 참고 연공을 견지하고 발정념했다. 신체상의 변화를 느끼고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자신을 책임진다고 판단된다. 집착심을 내려놓는 것은,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한다. 단순하게 개인이 어찌할 수 없이 감당하는 기점에서 중생 구도를 위해 감당해야 하는 각도로 바꾸는 것이다.
나는 수련생의 고통과 고생을 이해하고 육체상의 감당과 사상업의 시달림을 이해한다. 나는 수련생의 의지력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대법 위력의 끊임없는 발전이다! 우리가 다시 함께 거리에 걸어 나가 진상을 알리는 순간 나는 알았다. 수련생이 돌아왔다. 수련생이 바로 잡혔다. 얼굴의 미소는 내심에서 나오는 행복이다. 그것은 정법 시기 대법제자의 행복이고 조사정법을 담당할 수 있고 중생 구도의 사명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다.
한 달간 수련생은 엄중한 병업 상태에서 걸어 나왔고 정상적인 생활과 일을 할 수 있었으며, 더욱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대법제자가 됐다. 우리 팀 전체 수련생은 대법의 위대함과 초범성을 목격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느꼈고 동시에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했다.
개인의 현 층차에서의 일부 인식이므로 타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4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4/11/441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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