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부님께서 샌프란시스코로 오셔서 미국 서부 천국악단을 설립했을 무렵 악단에 가입했습니다. 저는 작은북을 선택했습니다. 악단 설립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시간이 훌쩍 흘러 16년째에 접어듭니다. 매우 긴 느낌이지만 일순간 같기도 합니다. 저는 경천동지하고 기세등등한 전설이 없고, 심금을 울려 눈물을 자아내는 굴곡도 없으며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모두 부족함이었고 사람 마음과 충돌하고 겨루는 가운데 비틀거리며 걸어 지나왔습니다.
평범함 속에서 꾸준함을 유지하다
한 가지 교류할 게 있다면, 이 16년간의 평범한 세월 속에서 줄곧 사부님 손으로부터 천국악단 모자를 받았던 당시의 약속을 실천한 것입니다. 동시에 제가 매우 소중히 여기는 많은 단원과 함께 공동으로 진상을 알리는 이 환경을 만들고 지킬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환경에 대해, 타인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책임감의 존재는 제게 있어서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마땅히 그렇게 가서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법(法)을 전하고 공(功)을 전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수련생에 대해 책임짐에 따라 거둔 효과가 좋았으며,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도 비교적 좋았다.”[1]
저는 책임감 있는 태도가 있다면 얻는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저는 책임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순조롭게 많은 시련을 걸어 지나왔습니다.
천국악단이 일찍이 뉴욕에 설립됐을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저는 단원들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동경하고 대단히 부러워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오셨을 때 저 역시 매우 감격했습니다. 매일 밤 퇴근 후에 가서 연습했고 매우 행복하며 의욕이 넘쳤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은 작은북입니다. 그때는 비교적 연주가 쉽다는 생각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노련해지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면 또한 다른 항목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격동된 기분은 한동안 지속됐습니다. 그러나 열정은 서서히 식었고 나태함과 태만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곡을 모두 알게 돼 더 이상 연습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악단 연습을 하려면 매우 멀리 가야 했고 오가는 길에 시간이 소요돼 저는 가고 싶지 않았으며 퍼레이드에만 참가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혼자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연습할 때도 기존의 2백여 명이 성황을 이루던 데에서 몇 년 후 2, 30명만 남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전히 그날의 장면이 생각납니다. 악단에서 매우 난도가 높은 새로운 곡을 보내왔는데 저는 작은북 악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주변을 보니 20여 명뿐이었고 단상에서 지휘자가 매우 걱정스러워하며 “사람이 이렇게 적은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항목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았고 불과 몇 년 만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조사(助師)’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상의 신들은 모두 우리를 보고 비웃습니다.
나중에 새로운 곡이 나와서 다시 우리에게 동력을 더해 주었고 저는 그때부터 비로소 작은북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휘자 수련생은 우리를 훈련시키는 책임을 맡았고 비록 매우 열심히 우리를 도왔지만, 여전히 별로 나아진 기색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 견지한 후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우리의 위기를 해소해주셨습니다. 동부 출신의 한 전문 지휘자가 색다른 훈련방식을 가져와 악단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 해결됐습니다. 먼저 기술을 향상시켜야 하고 각각의 파트는 전문 선생님을 찾아 가르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때 작은북을 택했던 것은 제가 별다른 기술 없어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감당 없이 좋은 결과를 얻는 이치가 어디에 있을까요? 맨 처음에는 몸을 고달프게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가장 가벼운 것입니다. 악단 연습 때는 다른 팀원들은 앉아서 연습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대여섯 시간을 무거운 북을 메고 서 있어야 했는데 멜수록 더 무거웠습니다. 저는 고생하기 싫어서 제 경력을 내세우며 아무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단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북을 메는 데 성공하는 바람에 결국 저는 몸을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비뚤어진 생각을 억지로 내리눌러야 했습니다.
그다음은 기술 향상입니다. 저는 매우 장시간 기술 면에서 계속 리듬 파악에만 머물러있었습니다. 나중에 난도가 매우 높은 ‘성조기여 영원하라(The Stars and Stripes Forever)’라는 곡이 제 관념을 뒤집었습니다. 전문 선생님은 처음에는 격려하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먼저 연습하게 하면서 우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보셨습니다. 그런데 오래 지나도록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8분음표만 연습하게 하셨고 난도 높은 기교는 전혀 배우지 못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왜 우리를 열심히 가르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은 우리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어서 기초라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됐다고 토로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우리보다 마음을 쓰시는데 저는 평소에 별로 연습하지 않아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마음고생’[2]을 체득하다
그때부터 5~6년간 저는 각고의 노력으로 연습했고 지금도 여전히 배우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과정은 저를 무엇이 ‘마음고생’[2]인지 체득하게 했습니다. 저는 원래 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평소 연습은 오랜 시간 북을 치는 것이었는데 이런 연습은 다른 수련생들에게 ‘고기소를 다져서 수련 성취되기’라고 불렸습니다. 음악적 아름다움이 없었고 무미건조하기만 했습니다. 손은 또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다지기’는 좌우가 불균형이었고 소리는 높았다 낮았다 했으며 급할수록 손에 힘을 주지 못해 귀에 들어오는 것은 전부 소음이었습니다. 이렇게 2년간 제가 어떻게 연습하든지 막론하고 조금의 발전도 없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팀원을 보니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배우자마자 할 수 있었고 리듬감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악단에 들어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도 잘 치지 못해 매우 낙담했습니다. 저는 ‘신적(神迹)’이 자신의 몸에 체현되어 나오는 것을 상상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잘할 줄 알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제가 기대했던 ‘신적’은 절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른손 손목은 연습을 잘못해 통증이 생겼고 심지어 속인 업무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분명 노력해 연습했는데 아무런 성과나 희망이 보이지 않아 매우 낙담했습니다. 옛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면서 저도 나이가 많아 북을 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만두려는 생각이 싹텄습니다.
다행히도 작은북 팀원들이 잇따라 자신들의 방식으로 저를 격려해주어 제 책임감을 일깨워주었고 제가 서서히 슬럼프에서 걸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제가 매주 악단에 가는 동력입니다. 심성을 제고하고 서로 격려하는 매우 좋은 수련환경입니다. 매우 총명한 사람, 기술이 강한 사람, 마음을 열심히 기울이는 사람, 고생을 겪고 괴로움을 견디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매우 마음을 쓰는 사람, 이와 같은 사람마다 몸에 지닌 특별한 기질이나 성격이 한데 모여 올바른 장을 형성했습니다. 모두가 노력을 들여 이 환경을 수호하려 했고 이 환경을 수호하는 것 역시 자신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매번 악단에 가면 타인에 대해서도 일종 격려이고 마찬가지로 이 장을 안정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는 서서히 이런 확고함은 오랜 세월 누적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제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매번 ‘전법륜’을 펼치면 ‘책임’과 ‘인내’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렇게 거의 2년간의 지루한 연습을 거쳐서 한층 더 연습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바로 표면적인 연습 뒤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어 제 법기도 한 단계 더 높이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는 16년간 사용하던 대법 법기로서 위력이 거대하고 비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런 기연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천지개벽 이래 있었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관념을 바꾸자 ‘신적’이 조용히 강림하다
관념을 바꾼 이후 저는 더는 연주를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낙담하지 않게 됐습니다. 서서히 악기 연주에 흥미가 생겨 이제는 틈만 나면 연습하곤 합니다. 연주하지 않으면 손이 근질근질합니다. 2년 후 어느 날, 제가 갈망해도 얻지 못했던 ‘신적’이 조용히 강림했습니다. 제가 북채를 잡고 연습할 때 자연스럽게 일부 기교를 할 줄 알게 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느린 16년간, 애초 작은북 팀의 가장 젊은 팀원이었던 제가 이제는 장년 팀원이 됐고 저는 초기 단원 중 유일하게 남은 작은북 팀원이 됐습니다.
이기심을 제거하고 마음의 용량을 확대하다
제가 ‘원로’급에 속하기에 성부장(聲部長)이라는 직함이 ‘자연스럽게’ 주어졌습니다. 듣기에 매우 위풍당당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불을 때고 밥을 짓는 그 소화상(小和尙)’[1] 의 일입니다.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관여해야 합니다. 일상적인 악기 연습부터 퍼레이드에서 크고 작은 세부 사항, 매번 악기의 조립 분해, 의상과 소품 수선과 보충, 수련 과정에서 자신이나 다른 단원이 부딪힌 심성 고비까지 모두 제 직책 범위에 포함됩니다. 저는 원래 구속당하지 않는 성격이고 남의 일에 관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책임감은 줄곧 제 마음의 용량을 확장하고 이기심을 제거해 없애고 있습니다. 이 책임감 덕분에 저는 타인에게 쓰는 시간이 자신에게 쓰는 시간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한동안 타악기를 다루는 팀원들이 줄을 설 정도로 저를 많이 찾아왔고 저의 출석률도 타악기 팀원 중에서 가장 높았습니다. 다른 단원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휴가를 낼 수 있으나 저는 수많은 팀원을 책임져야 하기에 결석할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일반인 선생님이 와서 수업하는 것을 준비해드려야 해서 매주 일요일에도 제시간에 연습 장소에 도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악단이 휴식하면 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물론 제가 악단에 나간 것은 한가해서가 아니고 의무감 때문이었는데 오늘까지 견지해 온 것도 그 덕분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작은북 팀은 많은 팀원이 바뀌었고 가입한 적이 있는 사람이 50여 명 정도 됩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저는 모두 별도의 시간을 내 연습을 시켰고 어렵게 잘 연습시켜놓으면 그가 떠나곤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여러 번이나 들어왔다가 나갔습니다. 이런 심성 고비는 모두 제 인내력 강화를 돕고 있습니다.
저는 천국악단 단원들과 함께 이 항목을 개창하고 수호할 수 있었고, 이 환경 속에서 수련하고 서약을 실천할 수 있어서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마음고생(苦其心志)’
(미국 서부 천국악단 수련심득 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2년 4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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