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북방 도시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예전에 풍속이 소박하고 정열적이었다. 나는 전통적인 가정에서 생활하며 어릴 때부터 가족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나에게 좋은 교육을 받게 하셨다.
중학생 때부터 나는 새로운 사물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고 세상의 신비를 탐색하고 생명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공상과학, UFO, 버뮤다 실종사건 등등을 보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역사·문학·철학·종교 서적을 많이 찾아봤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중국공산당의 무신론 교육은 더욱더 사람을 막막하게 하고 실망시켜 이렇게 창백하고 무력한 교조에 싫증과 의문을 품게 했다. 대학 입시 때 가정의 변고로 인해 출가해 비구니가 되고 싶은 소망이 생겨서 간단한 여행용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와 근처의 한 관광지로 출가하려 했다. 출가하면 속세에서 벗어나 더는 정에 갇히지 않을 줄 알았다. 그곳에 도착한 후 방금 울었던 듯 눈이 벌겋게 되어 절 문을 지키는 한 비구니를 보고 또 막막해졌다. 출가도 해탈할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90년대에 기공(氣功) 붐이 중국을 휩쓸면서 각종 기공파들이 생겨났다. 대학에도 기공 붐이 일었는데 동창의 온 가족이 기공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기공들은 다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1993년 외지에서 공부할 때 서점에서 ‘파룬궁’이란 책을 본 적이 있고 동창도 내게 파룬궁을 소개해 준 적이 있으나 여전히 대법과 스쳐 지나갔다.
만 권의 책을 읽으며 만 리 길을 걷는다는 말이 있다. 외지에서 공부하던 나는 미래 삶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을 품고 있었다. 자신의 포부를 실현하고 싶었고 자신의 힘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싶었다. 졸업 후 이상을 실현하고 삶의 돛을 올릴 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나를 다시 한번 막막하게 만들었다. 일하다 보면 사사건건 갈등이 생겼고 사람들의 냉담함과 서로 계산하는 사회에 나는 적응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결국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나는 또 한 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대학에서도 속인의 지식만 약간 배울 뿐이었다. 난 어디에서 왔을까? 주변인들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조용히 떠날까? 인간은 도대체 영혼이 있을까? 나는 심신이 지쳐 조울증에 걸렸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를 치료해주려는 마음이 간절해 좋은 의사를 찾아보셨다. 그러나 약물치료만으로는 완치될 수 없었다. 3개월간 한약을 먹고 잠은 잘 수 있었지만, 정신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1995년 어머니는 우연히 파룬따파를 만나셨다. 보물을 얻은 것처럼 바로 집으로 돌아와 내게 대법을 소개해주셨다. 그 자리에서 사부님의 다롄(大連) 설법 비디오를 봤다. 그리고 열이 나기 시작하고 목에 작은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파룬궁이 좋은 것 같아서 나도 지인에게 추천해줬다.
1999년 전,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든 파룬따파 연공장을 볼 수 있었다. 고향을 떠나 큰 도시에 갔는데 여기에서 또 한 번 대법과 인연을 맺었다. 한 번은 공원에서 사람들이 파룬궁 연공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대법과 스쳐 지나지 않았다. 마침내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몸과 마음에 환골탈태하는 변화가 생겼으며 사람이 살아온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이고 파룬따파를 배우면 생명의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하여 진선인(真‧善‧忍)대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더는 남과 시시콜콜 따지지도 다투지도 않았으며 사람들의 나에 대한 오해도 참을 줄 알았으며 더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어디를 가든지 파룬따파 제자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법제자들과 함께 법을 배우고 연공했고 곳곳에서 대법을 알렸고 대법의 수련심득을 교류했다. 평소에 어떻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어떻게 남을 위할지 생각했다. 대법에 관심 있는 사람만 있으면 ‘전법륜(轉法輪)’을 선물해 많은 사람에게 법을 얻게 했다. 내 생활은 알차고 행복했고 희망으로 가득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를 광적으로 박해할 때까지 나는 여전히 굳건히 수련의 길을 걸었다. 그때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회사에서 일했는데 명절이 되면 타지에서 일하러 온 노동자들에게 명절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기 위해 내 월급으로 명절 음식을 사 와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또 늘 묵묵히 내 돈으로 비누와 약을 사 와 회사 공동 구역에 두어 동료들에게 비상시에 쓰게 했다. 고민하는 동료가 있으면 휴식 시간을 이용해 대법 법리로 일깨워줌으로써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내 생활은 단순하고 평화로웠다. 사당(邪黨)이 파룬따파를 박해한다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대법은 좋은 것이고 사부님께서는 바르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해, 큰 도시에 일하러 온 외지인을 조사하는 과정 중에서 내 대법제자 신분이 드러났다. 이후로 파출소가 끊임없이 회사에 와서 소란을 피워 수십 년간 일해왔던 회사를 할 수 없이 떠나야 했다. 동료들은 파룬따파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고 중국공산당에 탄압당하고 있으며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날 모두 동정했다. 나는 이번 일로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다. 여전히 대법제자가 가져야 할 도덕성을 유지한 채 바르게 살려고 했다.
지금은 고향에 돌아와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내 생활은 평온하고 충실했다. 번화가에 있어도 마음은 물처럼 고요했고 샘물에 씻긴 듯 마음이 맑았다.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은 변했고 남을 잘 대해줄 줄 알았다. 내 생명은 대법에서 다시 태어났고 마음의 용량이 커지고 있다.
수련의 길에 막막함이 있었고 고통이 있었으며 험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은 내 인생의 길을 밝게 비춰줬다. 정말로 빛이 찬란한 길이었다. 앞길이 아무리 멀어도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수련길을 잘 걷겠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2년 3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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