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가끔 점심에 드라마 ‘서유기’를 찾아 보여줘서 일부분을 보곤 했는데, 당승 사제가 시련에 부딪혔을 때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나는 같은 부분을 두 번 보고 절실하게 깨달았다.
1. 명사(明師)를 만났는데, 어찌 중도에 포기할 수 있겠는가
당승이 손오공을 오지산(五指山)에서 갓 구해줬을 때, 손오공의 야성은 길들이기 어려웠고 곳곳에서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과시했다. 한번은 투숙하다가 강도에게 약탈을 당해 연이어 6명을 살해했다. 마지막 남은 강도 한 명이 연신 살려달라 애원했고, 당승도 손오공에게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했지만 오공을 막지 못했다. 제자가 이렇게 많은 생명을 살해해 당승은 마음이 아파 오공을 지도해 일깨워주려 했지만 오공은 당승의 말을 듣지 않고 화가 치밀어 사부를 버리고 갔다. 오공은 동해를 지나는 길에 용왕을 찾아 술을 마시다 용왕에게서 “명사를 만났는데, 어찌 중도에 포기할 수 있겠는가?”라는 간곡한 점화를 받았다. 이때, 내 눈에서 비오듯 눈물이 흘렀고, 용왕의 말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고 있던 나를 깨웠다.
당시 나는 사악에 두 번째로 납치되어 핍박으로 ‘전향’해 집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낙담하고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생각이 들던 차였다. 매일 잠들면 깨어나고 싶지 않았고, 추잡한 자신을 마주하기도 싫었으며, 대법을 수련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악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며 내 의식에 ‘우울증에 빠져 죽는다’는 정보를 계속 넣었다. 어느 날, 머리가 심하게 아팠고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곧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최후로 한 번 사부님의 설법이 듣고 싶어, 정말로 이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며 떠나겠어’라는 또렷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의식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사부님의 설법이 담긴 플레이어를 더듬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깨어났다. 제구실하지 못하는 제자를 사부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때, 이 일생에서 대법 사부님만이 유일한 명사이시고, 대법 수련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2. 법을 외우며 안으로 찾으니 사부님께서 대법의 현묘함을 깨닫게 해주시다
다시 대법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어떻게 법을 배워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디에서 뛰쳐나오는지도 모를 난잡한 생각이 거의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사악한 구세력은 내가 ‘형식’상에서 대법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기세등등하게 나를 끌어내리려 했다. 나는 대법을 떠나고 싶지 않아 억지로라도 법을 암기하면서 빨리 자신을 바로 잡기를 바랐다.
사실, 법을 마음에 닿게 배우지 못하는 것은 내 수련에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다. 수련에 입문한 지 6년밖에 안 되었기에 법을 빨리 얻고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잡으려는 조급함이 있었다. 동시에 강렬한 자아와 과시심,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의 작용 하에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보고 수련생들이 나를 홀씨 할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법리를 빨리 보아내려 조급하게 굴면서 수련생 교류에서 한 수 뽐내고 싶어 했다. 이런 까닭에 매일 나도 모르게 법리가 펼쳐지기만 바라면서 법공부를 하고, 대법으로 진정하게 자신을 지도하거나 착실히 수련하지 않았다. 이런 분명한 문제를 수련에서 바로잡지 못하면서 자신이 한마음으로 정진만 생각한다며 덮어 감췄다. 그렇게 자신과 남을 속였다.
그 외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법공부를 할 때 수련 지식을 많이 파악함으로써 자아를 완벽하게 해 자신이 세상 경험도 많고 박학다식하다는 것을 내세우려 했다. 법을 이용해 이기적인 나를 채운 것이다. 이것이 구세력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부님의 요구와 완전히 정반대였다. 심지어 시련에 부딪히면 속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시련이 너무 혹독하다고 은근히 원망했다. 사실 모두 자신이 생생세세에 쌓은 업력이다. (사부님께서 이미 많이 없애주셨고, 고만큼 남은 것으로 심성을 제고하게 하셨다) 강렬하게 구하고 밖으로 찾았으며, 자아에 집착하고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법으로 지도하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아 수련에서 여러 번 고꾸라졌다.
이번에 열심히 법을 외우면서 법의 현묘함을 알았다. 노년 부녀가 생리한다는 사례를 외우면서 책을 접고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대법은 정말로 신기하다. 생리적으로 보면 우리 노년 부녀는 이미 폐경이 정해져 있는데, 어찌 다시 올 수 있는가? 이 얼마나 신기한가?’ 이 생각을 하며 화장실을 갔는데, 나도 정말로 생리가 왔다! 정말 불가사의했다!
나는 반복해서 법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사람 마음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 있는가? 사부님께서도 알려주셨다. 사람의 이치는 모두 반대되는 이치고 사람 마음은 반대되는 이치에서 형성됐는데 왜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가? 우리는 신의 몸을 새로 만들어 하늘로 돌아가려고 하세했는데, 왜 아직 사람의 것을 가지려 하는가? 빨리 내려놓자! 내려놓자! 나는 가부좌하고 내려놓는다는 의념을 내보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내게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 것을 느끼게 해 주셨다. 참으로 행복했다. 몸에서 단번에 큰 덩이 물질이 많이 떨어져 나갔고, 등은 단번에 가뿐해졌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등이 무겁고 온몸이 묶인 듯 불편했다) 따뜻함이 몸을 감쌌고 주변은 조용하면서 멈춘 듯했지만 머리는 맑았다. 사람의 언어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진정하게 법을 외우고 안으로 찾으면 자신의 수련에서 많은 문제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대조해 안으로 찾으니 대법과 사부님의 요구대로 수련한 것이 전혀 아니었고, 이미 낭떠러지에 가 있으면서도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수련에서 부딪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모두 좋은 일이라는 법리를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이번 겁난으로 방할을 해주지 않으셨다면 나도 모르게 사법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다. 극히 위험하다!
법을 통독해도 효과가 좋지 않은 수련생은 빨리 법 암기를 시도해 보기 바란다.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고, 법공부해도 법을 얻지 못하니 너무도 슬픈 일이다. 대법으로 수련을 지도할 줄 모르면 대법의 입구에서 체조하는 것과 같다.
3. 당신은 어찌 감히 양심을 속이고 사부를 해칠 수 있는가
이런 것을 경험한 나는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1]를 알게 됐고, 대법에 박대정심한 내포가 있음을 믿게 되었다. 전에 나는 자신이 그어놓은 틀에서 줄곧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추구했지만 얻지 못했기에 대법과 사부님을 100% 믿지 못했다. 사실 이는 신사신법의 문제이다. 감성적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보이는 것만 믿는’ 관념은 내가 진정으로 사부님과 대법을 인식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까닭에 관건적인 시기에 나는 ‘감히’ 사부님을 ‘배신’했던 것이다. 비록 진심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정말로 사부님께 죄스럽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죄송한 마음이다! 제자 마음 깊은 곳에서 사부님께 용서를 빕니다!
오늘 본 ‘서유기’에서 오공은 당승이 주문을 외우자 머리가 아프고 참기 어려워 거짓으로 용서를 빌어 주문을 외우는 것을 멈추게 하고는, 당승이 뒤돌았을 때 금강봉으로 사부를 치려 했다. 이에 당승은 마음이 아파 “너는 어찌 감히 양심을 속이고 사부를 해치려 하느냐?”라며 오공을 질책했다. 그 순간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혼내시는 것 같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혼내주시길 얼마나 바랐던가! 하지만 현실에서 사부님은 제자를 원망하지 않으시고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점화해 주시고 제자를 격려해 주셨다. 사부님의 흉금은 얼마나 넓으신가! 제자로서 어찌 이렇게 사부님을 대할 수 있는가? 순간 후회와 감사의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이것은 현재 단계에서 나의 약간의 깨달음이다. 느낀 바가 있어 말하는 것이고, 진정으로 자신을 분석하고 진심으로 사부님께 참회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동시에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린다. 밍후이왕에 있는 얼굴도 모르는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헌신과 소중한 수련 경험 하나하나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 곁을 떠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신 수련생들의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이 기회에 굽은 길을 걸었던 수련생들과 함께 노력하려 한다. 수련생이여, 사부님께서는 위대하시고 법도 위대하다. 우리가 현재 단계에서 깨달은 것은 작디작은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는 사부님께 죄송한 마음이지만 정작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시련에 빠진 우리를 사부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성이 법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법은 표준이 있다. 사부님은 겁난에서 우리에게 바른 이치에 따라 하라고 하셨다. 우주에서 모두 보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께서 무엇에 의거해 우주의 법을 바로 잡으시겠는가?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는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고 다시 잘할 수 있다! 대법과 사부님만이 진정으로 우리를 구도해주신다. 수련의 시간은 갈수록 적어지니 우리 서로 일깨워주고 마지막 수련의 길을 바르게 잘 걸어 사부님의 자비롭고도 고생스러운 구도를 저버리지 말고, 중생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말자. 그리고 만고에도 만나지 못할 수련의 기연을 저버리지 말도록 하자!
법에 부합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법을 배우다‘
원문발표: 2022년 3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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