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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인(真·善·忍)의 인도로 좋은 사람이 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전 스물일곱 살이 되던 해 심각한 류머티즘에 걸려서 침대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업무 능력을 잃었다. 또한 천식형 기관지염, 장티푸스, 부건염(附件炎), 안면마비, 오십견, 현기증, 자궁근종, 요통, 다리 통증, 감기, 발열 등도 일상적이었다. 삼복에 가죽옷을 입어도 매우 춥다는 느낌이 들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겨우 한 달쯤 지났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온몸의 병이 다 없어져 홀가분한 그 기분은 정말 즐겁기 그지없었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내 온몸의 죄를 씻어버리고 나를 구해주심에 감사드린다.

1. 진선인(真·善·忍)의 인도로 좋은 사람이 되다

나의 남편은 세 살 때 양조부모님 밑으로 입양됐다.(양조부님이 친조부님의 남동생임) 양조부모님은 자식이 전혀 없어 손자를 얻어 여생을 보내셨다. 나와 남편이 만나기 전, 양조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남편은 농촌 사람이었고 나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친정을 따라 농촌에 내려가서 우리 둘은 서로 알게 되었다. 1980년에 내가 시내로 돌아간 후에 우리는 결혼했다.

당시의 중국 농민은 바로 천한 2등 공민이었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것은 방금 불구덩이에서 뛰쳐나와 다시 불구덩이로 뛰어든 것과 같았다. 우리 가족은 발칵 뒤집혔는데, 당시 부모님은 나와 인연을 끊으셨다. 남편의 가족은 내가 남편과 평생을 살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아서 내가 도망가고 알이 이혼할까 봐 염려했다. 그래서 내가 남편과 결혼할 때에 결혼식도 없이 예물 한 푼도 주지 않았으며 새 이불 한 채도 주지 않았다. 당시 둘째 고모는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새 이불 두 채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나중에도 해주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이런 특수한 역사 시기, 특수한 가정환경에서 결혼했다. 결혼 후에 우리는 양조부님과 함께 생활했다.

1년 후 딸이 생겼다. 산기가 차자 나는 일을 해야 해서 도시로 이사 갔다. 양조부님은 고향을 떠나기 어려워 고향에 남으셨다. 몇 년 후, 양조부님은 연세가 많아서 생활에 보살핌을 필요로 하셨다. 이러한 이유로 남편은 양조부님을 모시고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 했지만 내게 입을 열기 어려워했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양할아버지가 너무 아파 일어나지 못하시는데, 이대로면 며칠 못 사실 거야.” 그는 내가 양조부님을 우리 집으로 모셔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까 봐 염려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때 나는 이미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 법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남편과 삼륜차를 몰고 양조부님을 우리 집에 모셨다. 양조부님은 큰 병은 없었지만, 영양이 부족하셨다. 나는 매일 양조부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서 드리고, 여러 가지를 번갈아 사서 영양을 보충해 드렸다. 한 달 남짓한 몸조리를 거쳐서 양조부님은 얼굴이 불그레하시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지 않아 혼자 밖으로 나가 거닐 수 있게 되셨다. 1리(500m) 남짓 걷는대도 기침이 없고 숨도 고르며 몸이 매우 가벼우셨다. 나는 또 양조부님께 사시사철 옷을 사 드렸다. 남편에게 매주 양조부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가라고 했다. 정기적으로 이발하고 수염을 깎으셨다.

남편은 내가 양조부님께 이처럼 효도하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는 걱정하던 마음이 마침내 떨어져 나가 뒷근심이 없어지고 마음의 병이 사라졌다. 딸도 나를 따라 배워 증조부님의 발을 씻기고 손톱을 깎아 드렸다. 온 가족이 대법의 법광(法光) 중에서 행복으로 흠뻑 젖었다!

나의 친정 올케가 말했다. “시누는 이렇게 양조부님을 모셔왔어요? 애초 그들 집에서는 한 푼도 주지 않았는데 어째 그리 뻔뻔스러운가요? 시누가 (그분을) 부양하지 않으면 그분도 할 말 없죠.” 친정 올케가 나를 대신하여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내가 말했다. “올케언니, 제가 파룬따파를 배웠으니 진선인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양조부님께서 애초에 양손자를 얻은 것은 노후를 위해서가 아닙니까? 노친을 봉양하는 것은 조건을 말할 수 없는 당연한 도리입니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제게 남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양조부님이 실망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양조부님이 만년의 처량함을 느끼시게 하고 아이 아버지를 불편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양조부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 내가 효성스럽다고 칭찬하신다. 내가 마을에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를 높이 보았다. 친정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아버지, 어머니 체면을 세워 줬구나. 너의 시댁 양조부님과 시아버지께서 너를 많이 칭찬하셨다. ‘좋은 손자가 있어도 좋은 손부가 있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양조부님은 우리 집에서 10년을 살다가 87세 되던 해 겨울에 병이 나셨다. 때때로 대변을 아무 데나 봤다. 한번은 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섰는데 문을 열자마자 악취가 물씬 풍겼다. 양조부님의 침실에서 거실, 그리고 화장실까지 벽 전체에 대변 묻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양조부님이 침대에서 대변을 본 후 화장실에 갈 때 대변이 묻은 손으로 벽을 짚어 생긴 것이다. 나는 두말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노친의 더러운 바지와 침대 시트를 벗겨내어 깨끗이 씻었고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해 정월 초이튿날 양조부님은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양조부님의 뒷일을 처리할 때 시아버지, 시가의 둘째 큰아버지, 둘째 고모는 풍습에 따라 양조부님의 유골을 고향으로 모셔가 사흘 동안 두어야 한다고 상의하셨다. 나의 친정 둘째 삼촌, 둘째 고모는 내가 손해를 볼까 봐서 나도 모르게 시아버지를 찾아가 상의했으며, 이 3일간의 접대 비용은 시아버지가 부담하기로 하셨다. 시동생 부부가 그 말을 듣고서 가만있지 않았다.

내가 이것을 알고서 즉시 시아버지를 찾아가 상의드렸다. “아버님, 이치대로 말하면 누가 이 일을 준비하고 누가 돈을 내서 대접하겠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농촌에 살아서 한 푼 벌고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쨌든 생활비용을 벌고 양조부님께서도 장례비를 준비해 두셔서 충분히 쓸 수 있으므로 친척과 친구 대접하는 비용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내가 시아버지를 위하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자 시동생 부부도 조용해졌다. 나는 시동생에게 담배, 술, 고기 사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사흘 후에 남은 담배, 술, 고기는 모두 나누었다. 양조부님께서는 땅에 묻혀 편안히 지내시고, 친지들은 만족하셨다.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둘째 큰 형님(남편 둘째 형의 아내)이 내게 말했다. “동생네가 양조부님을 모셔간 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열흘 보름도 지나지 않아 돌려보내실 거야. 그 집(나를 지칭함)에서 모실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동생네를 칭찬하고 감탄하네. 남들은 역시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네.”

이 일을 통해 나는 대법 사부님의 위대함, 파룬따파의 위대함을 실증했다! 나의 두 조카딸도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2. 수련 환경이 돌변하면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더욱 증명해야 한다

1999년 7월 20일, 장마두(江魔頭)를 비롯한 사악한 집단이 파룬따파를 미친 듯이 탄압하고 대법제자에게 잔혹한 박해를 가해 우리의 수련 환경이 단번에 변했다. 나는 상경하여 법을 수호하고 돌아온 후 해직됐고 회사의 모범에서 단번에 박해대상이 되어 노동 일을 했다. 나는 열악한 외부환경으로 타격받지 않고 매일 즐겁게 일을 했다.

저녁에 나와 수련생들은 현지에서나 시골에 가서 진상 자료를 전해 사람을 구하고, 진상 스티커를 붙이면서, 현수막도 걸었다. 진상 스티커를 붙이려고 떼어내면 번개처럼 번쩍하고 빛이 났다. 때로는 밤에 나가 다음날 날이 밝으면 집으로 돌아오는데 몇 마을을 돌아다닌다. 사부님 보호 아래 놀라움이 있어도 위험은 없었다. 집에 도착한 후, 나는 정리하고 출근해서 매일 바쁘게 지냈다.

2000년 2월 14일, 출근해서 막 작업복을 갈아입었는데 회사 공안처의 두 경찰이 와서 옷도 갈아입지 못하게 하며 나를 납치했다. 나는 얇은 작업복(동북의 겨울은 매우 춥다) 차림으로 납치되어 공안처에서 불법 심문을 당했는데, 오전 내내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들이 사부님을 모함할 때, 내가 말했다. “우리 사부님은 1억 명의 제자가 있습니다. 우리 제자들이 사부님께 1위안씩 돈을 드리면 사부님은 억만장자이지만 사부님은 제자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으시며 선을 향하는 마음을 요구하실 뿐입니다.” 내가 대법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나를 현지 구류소로 보내어 42일 동안 불법으로 수감되었다.

구류소에서 돌아온 후 나는 몸에 맞는 옷 한 벌을 사고 머리 모양을 제대로 자른 다음 활기차게 출근했다. 이웃한 부서의 지도자와 노동자들이 모두 나를 보러 왔는데, 42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서다. 지도자와 노동자들이 나를 보고서 말했다. “어떻게 해서 탄압할수록 활력이 생깁니까?” 나는 말했다. “저는 억울한 누명을 썼고, 또 대법이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파룬따파는 천고에 없는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장래의 진실은 반드시 천하에 밝혀질 것입니다. 마음에 진선인(真·善·忍)을 담고 있는 수련인은 좋은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공장장이 말했다. “정말 궁금합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어떻게 모두 일을 잘하나요? 도대체 누가 틀렸나요?”라고 말했다. 우리 부서에는 또 두 명의 수련생이 있는데, 모두 남들보다 앞선다고 평가받았다.

직장의 통계원이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화장품을 발랐나요? 얼굴이 뽀얗고 반들반들합니다.” 수련 전, 내 얼굴에 대칭적인 나비 반점(얼굴 두 볼에 대칭적으로 분포된 갈색 색소 침착)이 가득했기 때문에 화장품도 적잖게 썼고 방법도 많이 생각해 봤지만 모두 소용 없었고 갈수록 이상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은 성명쌍수(性命雙修)공법이며, 대법 사부님은 우리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해줬다.

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일찍 오고 늦게 가며 부지런히 일을 잘한다. 나는 회사에서 유일한 제품 품질 검사 면제 노동자로서 보너스는 거의 매달 제일 많다. 두 달 후, 공장장이 말했다. “당신이 일하는 것을 보니 심란합니다. 반드시 당신 직무를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제품 검사 업무를 하도록 배치되었다. 이런 환경일수록 더욱 엄격히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

나는 징벌적인 수단으로 불합격 제품의 노동자를 처리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에 따라 선한 방식으로 관리했다. 노동자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업무의 품질과 사람됨의 이치를 설명했고 일을 잘하는 것이 사람됨의 본분임을 해설했다. 이렇게 하여 전체 단위 제품 합격률이 크게 높아지고 생산량이 크게 높아졌다. 반년 후 나는 다시 관리 업무에 복귀했다.

나는 직장의 수련생들과 협조하여 직장 사람들에게 진상을 말해 인연이 있는 사람을 구했다. 공장장은 본명으로 사당(邪黨) 조직에서 탈퇴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도 모두 삼퇴를 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사당은 대법제자에게 미친 듯이 박해했다. 진수(真修) 대법제자는 하나도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이성적으로 각자의 환경에서 대법을 증명하고 중생을 구했다.

3. 사부님께서 우리 집의 사람 목숨이 달린 큰 어려움을 해결하셨다

남편은 택시 기사인데 수련하지 않았지만 파룬따파를 지지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를 박해하던 가장 사악한 그 시기에 그는 우리가 대법 진상자료 운반하는 것을 도왔다. 2021년 8월 2일 오전 9시쯤(정상적으로는 11시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는다) 그는 집에 돌아와서 당황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까 정말 아찔했어! 생각만 해도 무서워.” 나는 급하게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인데?”

남편이 말했다. “방금 내가 정상적으로 차를 몰고 사거리를 직진할 때 갑자기 누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서 ‘꽈당’하고 내 차 앞에서 넘어져 급브레이크를 밟고 차에서 내려보니 70~80세 할아버지였소. 나는 ‘할아버지 어떠세요? 괜찮아요? 신호 위반을 하셨으니 얼마나 위험합니까!’라고 했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어, ‘괜찮아, 자네가 나를 도와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기만 하면 돼.’ 내가 그를 도와 오토바이를 일으키자 할아버지는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셨어.”

“나는 생각할수록 무서워서 집에 왔지.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가 심하게 넘어졌는데 아무렇지 않으니 너무 신기했소. 이 일은 나를 탓할 수 없고 노인이 신호 위반한 것이지만 어쨌든 그는 사람이며 정말 거기서 부딪혔다면 하고 생각하니 내 마음조차도 불안했어. 게다가 뒤에 차가 있으면 골치가 아프게 되지. 정상적으로 직진하다가 갑자기 급정거하면 일련의 추돌 사고가 바로 일어나.”

놀라서 하얗게 질린 남편을 보고 말했다. “그렇지 않나요?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이 인명과 관련된 큰 어려움을 해결해 주셨어요! 당신이 대법을 믿어 대법 사부님의 보호를 받았어요! 우리 빨리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려요!” 나는 두 손을 모아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남들은 모두 재물을 잃으면 재난을 면한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재물을 잃지 않았고 재난도 면했다.

남편이 눈시울을 적시며 혼잣말을 했다. “파룬따파에서는 누가 누구를 믿으면 이익을 얻는가 보다. 나는 정말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려야겠어.”

 

원문발표: 2022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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