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64세로 퇴직하기 전에 문화관에서 일했다. 2004년, 나는 ‘전법륜(轉法輪)’ 보서를 읽은 후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05년에 이르러서야 연공을 시작했다. 연공하기 전부터 손으로 무엇을 만지면 전기가 있었다. 법공부를 할 때부터 나에게는 이미 공이 있었던 것이다.
1. 어느 날 맞은편 이웃이 따뜻한 두부 한 대야를 들고 우리 집에 와서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녀는 그저께 급성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 가서 수술하려 했지만, 두 가지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몹시 심해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 내가 들려준 진상과 건네준 소책자가 생각나서 소책자를 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성심으로 염했더니 기적이 발생했다. 급성 맹장염이 나아서 수술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는 셋째 날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녀가 대법을 믿고 복을 받아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복을 받은 많은 사례에 관해 들었지만 말하지 않겠다.
2. 한 번은 딸 집에서 컴퓨터 쓰는 법을 배우려고 하는데 컴퓨터가 고장 났다. 당시 가족들은 고칠 수 없고 부품을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수련생의 컴퓨터가 고장났을 때 고치지 않고 먼저 발정념을 하니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위는 내뱉듯이 그러면 발정념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발정념을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방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발정념을 했다. 10분도 안 되어서 딸이 큰 소리로 불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나는 왜 부르냐고 물으며 발정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말을 하면서 방에서 나와보니 컴퓨터가 잘 되고 있었다. 사위에게 부품을 바꾸었냐고 물었는데 사위는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기쁘게 말했다. “이보게, 내가 발정념을 해서 컴퓨터가 좋아진 것이네.” 사위는 나중에 누가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하면 발정념을 해보겠다고 농담식으로 말했다. 나는 본인이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딸은 우연히 고쳐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딸이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직 믿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3. A 수련생은 직장 대문 밖 양쪽 벽에 세인을 세뇌하는 표어가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가보니 흰 벽에 붉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나는 흰 페인트로 칠하자고 제안했다. 검은 페인트를 흰 벽에 칠하면 그들이 반감을 품을 것이고 이는 나중에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하는 것에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A는 이미 검은색 칠을 할 준비를 다 했다. 나도 더는 흰 페인트를 고집하지 않았다. 우리가 쓰려고 열었을 때 검은 페인트가 흰 페인트로 되어 있었다. A는 대뜸 흰 페인트로 칠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때 또 다른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우리 세 사람은 이 기적을 목격했다.
4. 어느 해에 여섯 살도 채 안 된 외손자와 어린 사촌누이가 나와 함께 있었다. 그 둘은 내가 결가부좌를 하는 모습을 앉아서 배우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는 9자 진언을 염하게 했다. 아이들은 열심히 여러 번 염했다. 잠시 후 외손자는 내 앞에 와서 가슴에 단 작은 파룬 휘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또 파룬 휘장 가까이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저쪽을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나는 아이에게 파룬 휘장이 그쪽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고 나에게 파룬 휘장을 달라고 했다. 나는 수련하지 않으면 안 준다고 했다. 어린 사촌은 파룬 휘장이 회전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나는 사부님 법상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는 ‘전법륜’의 사부님 법상을 보여 주었다. 아이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보고 웃고 계세요.” 흥분한 나는 아이에게 사부님께서 어떻게 웃으셨는지 물었다. 아이는 두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고 말하면서 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위로 움직이는 동작을 했다. 나는 말했다. “너는 정말 운이 좋구나. 이것은 너희 둘이 방금 아주 잘했기 때문이야. 사부님께서 너희를 좋아하셔서 너희에게 웃으셨고, 동생에게 파룬 휘장이 회전하는 것을 보게 한 것이야. 너희들이 정말 부럽구나.”
5. 나는 2007년에 기차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가 경찰 2명에게 강제로 철도파출소로 끌려갔다. 소장은 내가 가진 진상자료를 내 옆에 두고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나는 찍지 말라고 했고 찍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듣지 않고 반복해서 찍었지만 결국 그는 아직도 찍히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를 권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가버렸다. 나를 지키던 두 경찰은 처음에는 날 몹시 흉악하게 대했지만 점차 내가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자 모두 가명으로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했고 나를 우호적으로 대했다.
6. 다음날 현지에서 차가 와서 나를 파출소로 데려갔다. 저녁에 당직자는 나에게 수갑을 채우지 않았는데 아침에 소장이 출근하자마자 나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 철제 의자에 앉혔다. 나는 당시 그들이 수갑을 채울 줄 모르고 앉았다. 그들은 갑자기 내 발에 족쇄를 채웠고 손에 수갑을 채우려 했기만 쉽지 않았다. 그들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수갑을 채우려 하자 나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빼냈다. 그들이 다시 힘껏 수갑을 채웠고 나는 소리치며 빼냈다. 양손을 당기며 한쪽씩 빼내는데도 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정말 지쳐 죽을 지경이었다. 차마 더는 그들과 싸울 수 없어서 더는 빼지 않았다. 이번에 그들은 힘껏 나를 짓눌렀다. 나는 몸이 얼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또 내 머리에 검은 천 자루를 씌웠다. 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어떤 여자가 내 앞에 와서 “아이고” 하면서 내 손을 들고 소리쳤다.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이러면 손 못 쓰게 되는데, 이러면 안 되지!” 나는 그녀에게 참 착하다고 하면서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한다고 했다. 그녀는 소선대에만 가입했다. 나는 그녀에게 가명을 지어 삼퇴시켜 주었고 나는 괜찮으니 가보라고 했다. 그녀는 이곳에서 밥을 짓는 일을 했다. 그녀가 간 후 손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날 대신해서 감당하신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수갑을 찰 수 없었다. 이렇게 하면 그들을 구하는 데도 불리하다. 나는 사부님께 손을 빼내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정말로 빠지게 됐다. 이후 다시는 수갑을 채우는 사람이 없었다.
7. 이후 나는 구치소로 끌려갔다. 어느 날 나는 바람을 쐬면서 마당에서 ‘논어’를 외웠다. 다 외우고 나서 부소장이 다가오더니 “당신은 시위하는 겁니까?”라고 화를 내며 말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 뒤 사람을 데리고 와서 문을 열더니 나보고 나오라고 했다. 나는 문을 나서기도 전에 끌려 나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두 발로 걷어차였다. 나는 너무 큰 43호짜리 신발을 신고 있었기에 신발이 벗겨졌다. 그는 한쪽 신발을 들고 먼저 내 몸을 때린 후 내 입을 신발 밑창으로 세 번 내리치고는 자리를 떴다. 내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내가 강인하다고 했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맞는 것을 다 봤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입에서 피가 나는지, 입이 부었는지, 얼굴이 빨간지 물었다. 그녀들은 아무 말도 없었고 단지 얼굴에 흙이 좀 묻었다고 하면서 닦아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을 때린 대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나는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나를 때릴 때 나는 불법적으로 맞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내가 진상을 말하는 것을 듣기 두려워하게 되어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말하는 데 불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통이 그에게 가도록 일념을 움직였다. 내 얼굴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모든 고통이 그에게 가서 그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이다.
8. 2012년 여름 어느 날 밤, 나는 거리에서 두 중학생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다가 악의적으로 고발을 당했다. 나는 파출소로 납치돼 철제 의자에 앉혀졌다. 한 경찰이 위에 달린 수갑을 내 손발에 채웠는데 수갑이 펄쩍 뛰어올랐고, 이어서 수갑을 조였는데 다시 펄쩍 뛰어올랐다. 그는 더는 수갑을 조이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서 수갑을 차지 못 하게 하신다고 깨달았다. 그들이 가고 간수가 한 명밖에 없을 때 손발을 모두 수갑에서 빼냈다. 간수에게 다시 수갑을 채우지 말라고 했고 그가 채우자 나는 잠시 후에 그것을 다시 빼냈다. 그러자 그들은 가장 작은 수갑으로 바꾸었다. 지키는 사람에게 나는 여전히 빼낼 수 있다고 했고 손과 발을 모두 빼내 보였다. 그러자 그들은 더는 나를 채우지 않았다.
9. 2014년에 납치됐을 때 나는 혈액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나는 수갑을 풀지 않으면 채혈할 수 없으니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열쇠가 없다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았고 채혈하지 않았다. 그들은 볼펜 심으로 열어보려고 했지만 한참 동안 시도해도 열지 못하고 저녁이 됐다. 그곳은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들은 조급해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삼퇴를 권하는 데도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면 안 된다.’ 이때 찰칵찰칵 소리가 나더니 수갑이 저절로 풀렸다. 그들 둘은 동시에 갑자기 고개를 들어 이구동성으로 나에게 큰 소리로 초능력을 썼냐고 물었다. 나는 초능력을 안 썼고 당신들을 구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기뻐했지만 내 마음은 무거웠다.
10. 2015년, 지방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을 때 나는 법정에서 수갑을 스스로 풀고 두 손으로 들고 자신을 변호하고 진상을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삼퇴하고 평안을 지키라고 권했다. 기본적으로 아무 방해를 받지 않았고 법원 직원도 매우 진지해 보였다. 일부는 얼버무렸다. 법정을 나서는데 한 여직원이 내 옆을 지나가다가 멈춰 서서 내가 푼 수갑을 보며 “우리도 앞으로 신체 축소술을 수련해야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철제 의자에 달린 수갑이 절 조이다가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이것이 신체 축소술인가요?”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나갔다.
이상은 지금까지 내가 수련하면서 직접 겪었던 경험들이다. 아직도 못 쓴 것들이 많다. 수련 중에 법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깨달음이 부족하며, 사람 마음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하고 닦아내지 못하는 바람에 두 번이나 곤두박질쳤지만,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와 가지(加持)를 받으며 나는 아주 빨리 일어났다. 마음속으로 사부님에 대한 감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최후의 얼마 남지 않은 수련에서 세 가지 일을 더 열심히 잘하고, 더 많은 세인을 구하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다.
개인의 인식이므로 합당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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