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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업관’에 대해 말하다

글/ 베트남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4월 중국에서 법을 얻었다. 당시 나는 병을 없애기 위해 대법을 수련한 것이 아니라, 그냥 대법이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해에 나와 함께 대법을 얻은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책을 읽은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지만 나는 반가부좌도 하기 어려웠다.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튿날 가죽 허리띠로 가부좌한 두 다리를 묶어놓고 음악을 틀고 연공했다. 아, 너무 아팠다! 아파서 땀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지만, 테이프 A면의 연공음악이 끝날 때까지 견지했는데 30분에 불과했다. 조심스레 다리를 내릴 때 제일 아팠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도 나는 이를 악물고 며칠 동안 견지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땐 아직 ‘전법륜’을 한 번도 다 못 읽어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淸理)해 주시는 것인지를 전혀 몰랐다. 그러나 어렴풋이 책에 이것은 병이 아니니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구절을 기억하고 있어서 약은 먹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비록 열이 났지만 힘들지 않아 낮에는 여전히 가게에 나가서 일했다. 가게에 놀러 온 옛 동창이 우연히 내 손이 닿자 소리쳤다. “너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열이 나지? 어서 약 좀 찾아 먹어.” 나는 진짜로 괜찮다고 했다.

후에 한번은 가부좌하고 있는데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사부님의 ‘양손을 옆으로 갈라 공능을 체외로 내보낸다.’ 구령을 듣자 갑자기 모든 사람이 없어지고 나는 입정(入靜)했다. 느낌은 아주 편안했는데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사부님께서 책에서 이런 상태를 말씀하신 부분이 있다. “또 한 가지 상태가 있어 앉아있다 보면 다리도 없어진 것을 발견하는데, 다리가 어디로 갔는지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으며, 신체도 없어지고 팔도 없어지며 손도 없어져 머리만 남아있다. 더 연마(煉)해 나가면 머리도 없어지고 오로지 자신의 사유만 있음을 발견하며, 약간의 의념(意念)이 자신이 여기에서 연공하고 있음을 안다.”[1]

이런 체험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7.20’이 발생했고, 나중에 나는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중공 악당이 대법을 박해하기 전 입문한 지 2개월 안 된 집착심이 가득한 제자에게 초상적인 입정을 체험하게 해 사당이 천지를 뒤엎는 듯이 거짓말로 대법을 비방해도 대법 수련을 견지하게 해주셨다.

중요한 ‘작은 고험’

법을 얻기 전에 거의 해마다 급성 인후염에 걸렸다. 2005년의 어느 날, 나는 독감에 걸린 듯이 열이 나고 목구멍이 아프고 인후 쪽에 이물질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동네에 개인 진료소가 하나 있었는데, 수련 전에는 매번 급성 인후염에 걸리면 그곳에 갔다. 내 증상을 잘 아는 의사는 매번 노란 링거 2병을 놔줬다. 매번 두 번째 수액을 맞을 때부터 목구멍은 편안해졌다.

그 날, 지병이 도지자 머릿속에 바로 2병의 링거가 나타났다. 몇 걸음이면 동네 진료소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안 된다. 난 대법제자다. 이건 소업(消業)이다. 사부님께서 신체를 청리해 주시는 것이다.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나 마음은 평온하지 않았고 정념이 부족했다. 또 ‘만약 주사를 놓지 않고 끌어 고름이 생기면 어떡하지? 혼자서 살고 있어 집에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불안했고 허튼 생각을 한참 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집에 자료점을 하고 있었다. 현지 자료점은 중공의 공안에게 불법적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안전을 위해 수련생 1명하고만 연락했고 출근하는 외에 나는 거의 혼자였다. 이런 ‘급성’ 병업 고비 앞에서 스스로 생각을 정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목구멍에 고름이 생기든 말든 몸을 사부님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결심을 내리자 마음이 안정됐다.

그러자 기적이 나타났다! 목구멍의 통증이 금방 사라지고 편해지고 아프지 않게 됐다. 나는 놀랍고도 기뻤다. 바로 허스(合十)하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 “당신이 수련하면 나는 당신을 끝까지 책임질 뿐만 아니라 나는 매 시각 내내 모두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법신이 바로 내 곁에 있었다. 내가 어떻게 마음을 움직이는가를 보고 계신다. 나의 정념이 나오자 사부님께서 업력을 없애주셨다. 이것은 수련 길에서의 만난 ‘작은 고험’이었다.

성공적으로 병업 고비를 넘긴 경험이 생긴 후 수련에 신심이 크게 생겼다. 평소 착실하게 법공부하는 외에 매일 ‘전법륜’을 읽고 외웠다. 그냥 사부님의 법을 머리에 새겨두고 싶었고 어떤 일이 발생하든 법을 마음속에 담고 싶었다.

병업 고비를 넘기기 어려운 수련생들의 마음을 잘 안다. 나도 불안하고 앞으로의 날들을 걱정하는 그런 심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 나온 것은 법공부를 철저히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와 잘 다니는 외국 수련생 언니가 있었는데, 병업 고비를 넘기지 못해 2019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말로 안타까웠다.

그녀는 법을 얻은 지 9년이 됐고 대법의 일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암’ 병업 가상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줄곧 속인의 병이 아니라고 했으며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권했다. 예의상 그녀는 입으로는 알았다고 했지만, 뒤돌아서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의사의 화학치료 방안을 하나 하나 받아들였다. 죽기 전에 그녀의 손바닥과 발바닥에 검은 반점이 생겼다. 중독된 증상이었다. 화학치료로 그녀의 신체는 커다란 손상을 입었다. 이 외국 언니가 평소 자신의 모국어로 된 대법 책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대법 수련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밍후이왕에 “사부님의 신경문을 읽고 세상을 떠난 수련생에 대한 약간의 교류”란 글이 올라왔다. 이 수련생이 글에서 말한 인식에 나는 매우 찬성한다. 예를 들어 신체가 소업할 때 첫 일념에 ‘그것을 좋은 일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나쁜 일로 생각하는가?’는 중요하다

작년 어느 날 집에서 청소하다가 갑작스레 허리를 삐었다. 당시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순간 석고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파서 감히 움직이지도 못했다. 5분가량 서 있었을 것이다. 천천히 몸을 침대 옆으로 옮겼다. 가까스로 침대에 누울 수 있을 몸자세로 바꿨다. 이건 좋은 일이고 소업(消業)임을 명백하게 알고 있으나 증상이 더 심해질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때 갑자기 오늘 동공(動功)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때 빨리 동공을 하자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바로 일어났다. 그러나 허리가 아프기 때문에 잠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당기면서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앉은 뒤 천천히 일어섰다. 당시 내 모습은 아주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후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일어나 연공하려는 목적은 허리의 통증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만 오늘 동공을 하지 않았기에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리는 대략 일주일간 아팠다. 일상생활에 확실히 불편을 가져다줬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나았다.

몇 개월 전, 밤에 잘 자고 있는데 꼬리뼈가 있는 직장 쪽이 아파 깨어났다. 비몽사몽 간에 화장실에 가서 잠깐 앉아있었지만 통증이 완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침대로 돌아와 아프든 말든 계속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현상이 대략 두세 번 있었다. 속인이었더라면 직장암에 걸리지 않았는가 생각했을 것이다. 후에야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이런 체험을 하게 한 것은 이와 같은 정황을 몇 번 겪은 새로 법을 얻은 언니를 일깨워주기 위함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절반 말했을 때 나는 그녀의 말을 이어 말했다. “밤에 몹시 아파 깨어났죠, 그리고…” “네, 맞아요! 당신도 그랬어요?” 나는 웃으며 “몸이 아프든 말든 나는 잤어요. 여기가 아프든 저기가 아프든 상관하지 않고 먹을 것 먹고 잘 것을 자면 돼요. 언니는 걱정하지 말아요. 연공인에게 병이 없음을 믿으세요. 병이 있으면 공능이 나올 수 없어요. 그건 사부님께서 언니의 신체를 조절해주시는 것이에요. 두려워하지 말아요.”라고 했다.

병업 고비는 대법제자가 신사신법하는가 시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믿음(信)’의 문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설법 – 뉴욕법회설법’

 

원문발표: 2022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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