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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눈에서 진선인(真·善·忍)을 보았습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6년 7월에 막 대학을 졸업한 저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이미 대법을 수련하신 어머니는 파룬궁(法輪功)이 좋다며 저에게도 수련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녁에 어머니를 따라 연공장에 갔는데 보도원이 몇 가지 동작을 저에게 가르쳐 줬습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오자 저는 설사에 구토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좋은 일이라며 사부님께서 몸을 청리(清理)해 주시는 거라고 했습니다. 이로부터 다년간의 복통이 나았고 더는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하고 타인을 선의로 대하는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해마다 모범 직원으로 선정되다

저는 법을 얻고 얼마 안 돼서 세무직 공무원으로 회계와 통계 업무를 주로 했습니다. 매월 저는 정해진 기간 내에 회계와 통계 보고서를 시(市) 담당부서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는 컴퓨터나 소프트웨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문제가 많았습니다. 제때 보고하기 위해 거의 매달 연장 근무를 해야 했는데 특히 매년 마지막 날에는 항상 연장 근무를 하다 보니 새벽 5~6시가 돼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1] 이것은 제 일이기에 지금까지 불평 없이 최선을 다하며 한 번의 착오도 없이 성실하게 잘했으며 해마다 직장의 모범 근무자로 평가받았습니다.

부서에서 일손이 부족해 저는 영수증 수령·보관·영수증 대리 발행·수출 납부서 대리 발급 등을 겸해서 합니다. 보고 기간에도 때때로 영수증과 보고서를 심사합니다. 일은 많으나 지금까지 힘들다고 여기지 않고 항상 열심히 모든 일을 해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른 부서로 옮겼고 제 업무를 인계받은 동료는 일이 너무 많아 상사와 갈등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함으로 사부님께서 지혜와 능력을 주셨기에 쉽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부서로 전임하기 전 저는 진지하게 인계받는 동료에게 자기 경험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알려줬을뿐더러 앞으로 그녀가 일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서면으로 적어줬습니다. 지금의 속인들 사이에서는 동료가 자신을 앞지를까 봐 속마음을 숨기고 기술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저는 대법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무사무아(無私無我)에 따라 해야 합니다.

대우가 공평하지 않아도 웃어넘기다

내가 조사과로 전근됐을 때 부서 책임자는 각자가 나누어 담당하는 납세자의 체납 상황에 따라 장려금을 지급하는 새로운 심사 제도를 규정했습니다. 우리 과는 네 사람인데, 한사람은 과장이고 또 한명은 부과장이며, 저 한 사람만 여성인데 주로 내근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에 출근했더니 거의 모든 세금 미납자가 제 담당인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두 과장은 세무국 최고 상여금을, 저는 최저 상여금을 받았습니다. 사무실 동료들까지 불공평하다며 과장이 어떻게 했다고 알려줬으나 저는 듣고 웃어넘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한번은 직장에서 직원 평가를 시행했습니다. 거의 모든 동료가 제게 표를 던졌으나 상사는 오히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결국 다른 동료를 추천했는데 그녀는 두 표밖에 얻지 못했습니다. 동료가 이 사실을 제게 알려주었을 때 저는 태연히 받아들이고 그녀를 위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두 표 중 한 표가 제 것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속인의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명리를 추구하며 심지어 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대법은 제가 흙탕물에서 나왔어도 물들지 않는 연꽃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 눈에서 진선인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박해로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당했습니다. 돌아온 후 회사 책임자는 제게 영수증 발매 업무를 맡겼습니다. 영수증을 사러 온 납세자가 필수 절차를 전부 갖추면 저는 즉시 발매했고 그들을 괴롭힌 적이 없을뿐더러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성실하게 처리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 동료들은 모두 밥을 먹으러 가고 저만 여전히 바삐 보내고 있는 것을 본 어떤 납세자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일을 마치고 점심을 사주려 했습니다. 제가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남을 위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매우 감동했습니다. 한번은 한 회계사에게 진상을 알려줬습니다. 그는 “당신 눈에서 ‘진선인(真·善·忍)’을 보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설을 쇨 때 과장은 납세자가 직장에 선물한 구매 카드를 제게 하나 주려고 했으나 저는 사양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세무 기관에 대해, 문에 들어서기 힘들고 담당 직원들도 편하게 대하기 어려운 곳이라고 합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타낸 수련인의 높은 경지는 일반인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한번은 기업 회계사가 영수증을 찾으러 왔는데 새로 바뀐 담당자가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아 그 기업은 몹시 조급해했습니다. 이 일은 제가 맡은 업무가 아니었으나 매우 다급한 그의 모습을 보고 저는 전화를 걸어 담당자에게 연락했는데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업의 급한 불을 꺼줬습니다. 그 기업 회계사는 저를 “참 좋은 사람이네요. 정말 선량합니다!”라며 감동했습니다. 그는 기업 책임자에게 저를 칭찬하는 편지를 쓰겠다고 했는데 저는 말했습니다. “칭찬 편지를 쓰지 마십시오. 저는 파룬따파 수련자로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그 후 저는 진상을 잘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며 고문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게다가 직장에서도 공직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제 마음의 믿음을 무너뜨리기는커녕 점점 더 신사신법(信師信法)에 대한 믿음을 굳게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 잘못이 없으며 중공의 사악한 거짓말이 이 나라 사람들을 해치고 있음을 알았기에 저를 해친 사람들을 원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히 여겼습니다.

출소 후 직장도 잃고 생활 보장도 없는 저는 아버지 댁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어머니가 돌아가심) 함께 살았습니다. 새어머니는 저를 잘 대해 주셨습니다.

저는 여동생과 화랑을 열어 골동품 서화를 팔고 싶어 여러 점포용 건물을 찾았으나 세가 너무 비싸서 임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여동생이 아버지가 제 이름으로 점포용 건물을 샀는데 지금은 새어머니가 임대했고 임대료가 새어머니 손에 있다며 아버지에게 가서 돌려달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버지의 집이니 저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화랑을 차리는 것을 물으셔서 건물을 빌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집이 있다며 우리를 데리고 집을 보러 갔습니다. 돌아와 새어머니에게 이 집에 화랑을 차리겠다고 했더니 뜻밖에 새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며 “이 집은 내가 세를 낸 거야. 만약 너희들이 화랑을 열려고 한다면 나는 이 집을 떠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얼른 “새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화랑을 안 차릴 테니 아버지와 잘 지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집에서 나와 혼자 생활했습니다. 아버지는 줄곧 저를 도와주셨고 나중에 저는 다시 회계 일을 찾았습니다.

모순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다

남편은 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제가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을 때 저와 이혼 절차를 밟았습니다. 딸은 그때 겨우 다섯 살이었는데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 전 남편이 딸을 못 만나게 해 몇 번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감옥에서 돌아온 후 그는 줄곧 딸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는 재혼하고 또 딸을 낳았습니다. 제가 돌아온 후 여동생에게 부탁해 제가 쓴 편지와 2천 위안(약 38만 원)을 그에게 가져다줬습니다. 그는 돈만 받고 딸을 여전히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딸이 그리워 딸아이 학교 앞에 가서 자주 딸을 만났는데 나중에 전남편에게 들켰습니다. 그는 전화를 걸어 저와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를 만나서 몇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새 아내가 제 뺨을 때렸습니다. 저는 그녀와 똑같이 화를 내지도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때리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딸을 만나러 간다고 알리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자, 그녀는 때리는 걸 맘췄습니다. 이후 태도가 누그러져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며 그녀는 제가 딸을 만나는 것도 허락했습니다. 나중에 그녀에게 파룬따파를 수련하기에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대법제자는 속인과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딸은 중학교 2학년이 됐습니다. 그 후 딸의 학비와 생활비는 모두 제가 부담했고 지금까지 대학 3학년에 다니는 딸의 각종 비용을 전부 제가 부담해 왔으므로 전 남편 부부의 부담을 크게 줄였습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저는 절대 이렇게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한번은 저와 딸이 한 상가의 간이음식점에서 식사했습니다. 그 결제방식은 카드에 저축해 각 음식점에서 가서 소비한 다음 다시 카드를 돌려주면 남은 돈을 인출받습니다. 저는 40위안(약 7천 원)을 저축했는데 계산원은 카드에 액수를 적은 후 돈을 카드와 함께 제게 주었습니다. 저는 카드만 받고 돈을 계산원에게 돌려주면서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이라고 했습니다. 계산원은 그제야 반응을 보였습니다. 밥 먹고 계산할 때 저는 계산원에게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일반인이면 돈을 돌려주지 않을 겁니다.”라며 대법 진상을 알려줬습니다. ‘삼퇴’(중공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하면 평안을 지킬 수 있다고 하자 그녀는 가입했던 소선대에서 탈퇴했습니다. 딸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엄마의 이런 선량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상적인 근무 환경이든 박해 환경에서든 저는 항상 사부님의 가르침을 명심하며 사람을 선의로 대했습니다. 친지와 친구들은 모두 대법제자를 선량한 좋은 사람으로 인정합니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은 대법제자를 선의로 대해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딸은 어려서부터 제 곁에 없었으나 사부님께서 항상 돌봐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지만, 공부를 잘해 괜찮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지금 연구생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몇 년간 수련에서 고난을 겪었으나 불광(佛光)의 혜택을 받았으므로 저는 정말 다행이고 행복합니다. 대법의 순정함과 아름다움은 저에게 명리를 담담히 하고 남을 선의로 대하게 해 제 마음은 평온하고 유쾌하게 바뀌었습니다.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2년 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2/21/4389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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