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찾는 것에 대한 체득
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 수련인은 안으로 찾는 것의 중요성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안으로 찾아야 할까요? 또 무엇을 찾아야 할까요? 어떤 수련생은 정말 안으로 찾을 줄 모르고, 어떤 수련생은 안으로 찾을 때 집착심만 찾습니다. 제가 몇 차례 안으로 찾은 경험을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해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 안으로 찾았을까요? 모순에 직면하면 ‘내가 어디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2009년 상반기, 수련상태가 좋지 않아 아버지와 갈등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한번은 아버지와 다투어 집을 뛰쳐나가려고 막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사부님의 법신께서 상냥하게 “수련인은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 저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왜 모순이 생길 때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을까요?” 저의 물음에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전에 저는 아버지와의 모순이 어떤 집착에서 비롯된 것인지 찾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어떤 집착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부자간의 갈등을 부추길 만한 요인을 찾지 못하다가 어느 날 또 아버지와 마찰이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화가 나서 저를 때리려 하자, 순간 문득 ‘나는 수련인인데 어찌 이 정도로 수련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면서 ‘아, 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얀 솜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저를 때리러 오지 않으셨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당시 매우 기뻤습니다. ‘아, 오랫동안 이 고비를 넘지 못했었는데 오늘 겨우 한고비를 넘겼구나.’
얼마 후 또 모순이 발생해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왜 또 이런 일이 생겼지? 내가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은 것일까?’ 순간 또 하얀 솜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모순은 다시 해결됐습니다. ‘집착심을 찾을 때는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는지 생각하자 문제가 곧 해결되다니, 혹시 안으로 집착심을 찾는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습니다.
얼마 지나 또 아버지와 갈등이 생기자 이번에는 제가 먼저 안으로 찾았습니다. ‘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이 일념이 나오자 모순이 또 해결됐습니다. 이전에는 안으로 찾을 때면 집착심을 찾았고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봐도 저처럼 이렇게 안으로 찾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찾는 것이 맞을까? 틀리면 안 되는데.’ 집안을 거닐면서 생각해봤습니다. ‘구(舊)우주가 괴멸(壞滅) 시기에 들어선 것은 대법에서 벗어나 조성한 것이고, 생명이 대법에 부합하면 변이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법수련에서 내가 자기 수련에서 나타난 부정확한 상태에 대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안을 향해 찾으면, 대법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안으로 찾으면 대법이 내 부정확한 상태를 직접 바로 잡아줄 것이다.’
제가 안으로 어떻게 찾는지 깨닫고 단체 법공부 때 수련생들과 이 문제를 교류하면서 그 하얀 솜 같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그것은 집착심이 아니라 요소예요”라고 했고 다른 수련생은 “이렇게 안으로 찾으니 아주 간단하네요”라고 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어떻게 안으로 찾을지 모른다고 하기에 저는 그녀를 찾아가 교류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저는 한 수련생과 늘 모순이 있었고 항상 불평이 있었습니다. 제가 방금 그 수련생 집에 가면서 줄곧 ‘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니 수련생 집에 도착하기 전에 그에게 불평하고 불만스럽던 마음이 다 사라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그는 또 저에게 “저번에 그렇게 안으로 찾은 후 그 수련생에 대해 더는 불평하지 않았어요. 그녀를 다시 만날 때 다른 수련생들과 다름없이 조금도 못마땅한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찾아도 수련생과의 원망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맞는 것입니다. 수련인으로서 업력, 원망, 사상 업력, 집착심과 관념, 외래 교란 등은 모두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범위에 포함됩니다. ‘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고 안으로 찾는다면 대법에 부합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빠뜨림 없이 전부 포함하는 것입니다.
안으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깨달았기에 저는 그 후로 이렇게 찾게 됐습니다. 2010년 하반기, 저는 타지에 있는 한 수련생 공장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되자 저는 ‘내가 이렇게 찾는 것은 대법이 직접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이다. 대법에 대해 존경하는 태도라야 하니, 안으로 찾을 때 가부좌하고 제인[結印]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즉시 가부좌하고 제인 자세를 취한 후 ‘내 어디가 대법에 부합하지 않을까’ 하고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바로 ‘띵[定]’에 들어갔습니다. 제 공간장에 고슴도치 한 마리와 색마 하나, 그리고 아주 작은 어떤 동물 하나가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러자 대법이 아주 미시적인 의념으로 저에게 그들의 거취를 결정하게 했습니다. 저는 어떤 기준으로 그들의 거취를 결정할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내 공간 속에 존재하려면 대법에 동화되어야 한다. 대법에 동화되지 않으면 곧 제거될 것이다”라고 그것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것들은 곧 사라졌습니다. 어떤 생명을 남기고 제거했는지 대법은 저에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지난 후 저는 ‘나는 대법제자인데 어떻게 내 공간 속에 이런 저급한 영체들이 있었을까’ 하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법공부를 하다가 사부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수련인의 사상이 법을 이탈하면 사악이 파고들어 올 수 있다.”[1] ‘아, 알고 보니 내 사상이 법을 떠났기에 저급한 영체가 들어왔었구나.’ 깨달았습니다.
저는 보통 아침 출근 전에 안으로 찾는데 이렇게 하면 공간장 안이 훤히 뚫려 있고 길을 걸을 때면 날듯이 가볍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은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2011년 상반기쯤, 한번은 출근 전에 안으로 찾았는데 큰 손들이 무언가를 눌러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세력이 저를 방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무엇인지 자세히 보고 미리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은 저에게 보여주지 않고 “모든 것은 대법이 하고 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안으로 찾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4일 뒤, 아침에 출근하자 한 기술자가 다가와 “당신이 재료를 잘못 배합해서 쓸 수 없게 됐습니다. 몇천 위안을 손실 보게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배합할 때 두 분께 확인받고 했는데 그럴 리가요.” 그 기술자는 “어차피 잘못됐어요. 이런 재료는 못 써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재료를 못 쓰면 제 월급에서 제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기술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급여를 덜 받는 게 문제가 아니라 대법을 잘 실증하지 못해 마음이 매우 괴로웠습니다. 제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사부님 법신께서 매우 상냥한 목소리로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제가 함께 일하는 동료 수련생에게 이 일을 말하자 그녀는 “그 말대로라면 당신 잘못이 아니고 교란이지요. 안으로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하면서 안으로 찾아봤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찾았더니 공간장 안에 있던 벽이 사라지고 공간장이 깨끗이 정리된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다른 공간의 요소가 해결되면 표면 공간의 교란도 없어지기에 이 일이 잘 처리됐음을 알았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그 기술자가 다시 찾아와서 “문제가 해결됐어요. 그것을 다른 재료에 섞어 쓸 수 있게 됐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월급이 깎이는 줄 알았다고 농담했습니다.
2014년 어느 날, 퇴근 후 안으로 찾고 있었는데 정신이 흐릿해졌습니다. 이틀 연속 이러했고 사흘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란임을 깨달은 저는 저를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그 생명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안으로 찾는 것은 대법이 내 수련 중 모든 부정확한 상태를 직접 바로잡는 것이다. 네가 날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것은 대법이 나를 바로잡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대법에 대해 대단히 불경한 것이다. 너는 너무 함부로 날뛴다. 대법에 불경한 죄로 너를 처리하겠다.’ 그러자 저는 정신을 차렸고, 공간장에서 죄수를 실은 차 한 대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에는 고층 생명 하나가 앉아 있었는데 똑똑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며칠 만에야 보게 된 이것이 도대체 어떤 놈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자세히 보려고 하자 죄수를 실은 차량에 천이 씌워졌습니다. 대법이 저에게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더 보지 않았습니다.
2017년 11월, 그동안 저는 비교적 정진했고 매일 안으로 찾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째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의심이 갔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부족한 점이 있는 법인데 어찌 대법에 맞지 않는 것을 찾아내지 못할 수 있을까?’ 한번은 밍후이왕에 접속하려 할 때 배가 너무 아파 발정념을 하려다가 돌이켜 안으로 찾아보려 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했더니 배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생들과 이 일을 교류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무엇을 찾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자 저는 “구우주의 생명이 자신이 어디에서 변이됐는지 아나요? 그들이 알 필요가 없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제가 수련 중에 나타난 부정확한 상태에 대해 마음을 써서 안으로 찾으면 대법이 제 부정확한 상태를 바로잡아 주게 됩니다. 저는 수련인이기 때문에 어떤 누락은 제가 알아야 하지만 어떤 누락은 몰라도 됩니다. 자신의 바르지 않은 상태만 바로 잡으면 되지, 굳이 찾아내서 뭐하게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때는 공간장이 선명하지 않고 30분이 지나도록 맑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염두가 약하거나 어떤 때는 아예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한번은 30분 넘게 안으로 찾아도 공간장이 맑아지지 않아, 이렇게 하지 말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라고 몇 마디 하자 공간장이 제가 볼 수 있는 속도로 맑아졌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안으로 찾을 때 분명하지 않을 때면 먼저 입으로 몇 번 말하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왜 말로 하는 것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은지 그 원리는 모르겠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해 주신 안으로 찾는다는 것은 집착심을 찾는 데만 국한되지 않고 무한한 내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할 때 다른 생각을 하거나 흐리멍덩할 때면 사상이 법에 있지 않은 것이고, 발정념을 할 때 입정이 안되고 손이 넘어갈 때, 정공을 연마할 때 졸고 있는 등을 말합니다. 이런 상태들은 어떤 집착심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저는 외부 교란에 의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업 박해의 경우 어떤 수련생은 어떤 집착을 찾아 병업 박해를 부정할 수 있으나, 어떤 수련생은 아무리 집착심을 찾아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실 병업 박해의 원인은 비교적 복잡합니다. 어떤 것은 단지 집착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 집착심을 찾기만 하면 해결되지만, 어떤 것은 집착심 요소뿐만 아니라 업력이 내리누르는 것이고, 어떤 것은 어떤 생명에게 빚을 진 것이어서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이때 집착심만 찾아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병업 박해를 부정하는 문제는 교류할 내용이 좀 많기에 다른 글에서 쓰겠습니다.)
개인적인 체득으로 보면 이렇게 안으로 찾는 방식은 빠뜨리지 않고 찾는 것이기에 어떤 때는 무엇이 조성한 것인지 알 필요도 없이 문제가 해결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마음에 두지 않거나, 건성으로 하거나,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한다면 대법은 바로잡아 주지 않습니다. 일심불란하게 ‘내가 어디에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한 번만 생각해도 해결이 되고, 어떤 때는 몇 분을 생각해야 하는데 교란의 경중에 따라 해결 시간이 달라집니다.
이상은 제 현재 층차에서의 개인적 인식을 쓴 것이므로, 수련생들께서는 법을 스승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2-미국플로리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2년 2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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