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 대법제자 샤오전
[밍후이왕] 2013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해서부터 내 인생에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고 나와 가족은 모두 대법에서 혜택을 보았다. 아래에 나의 경험을 써내어 사부님의 제도에 감사드리려 한다.
1. 대법이 나에게 따뜻한 가정을 주다
2012년 말, 집안에 뜻밖의 변고가 일어났다. 남편과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나를 속이고 노인과 우리 두 곳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하고, 남편 친구와 그 이외에 친척, 동창생 돈을 빌려 공사에 투자했다. 공사한 친구를 도와 보증인으로 빌린 돈도 있어 총 100만여 위안이 되었다. 그 친구는 많은 빚을 진 후 갚을 능력이 없어 달아났다.
일을 숨길 수 없게 돼서야 남편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사정을 전혀 모르는 나에게는 정말 청천벽력이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와 남편은 모두 직장인이다. 원래 우리는 집과 차가 있고 잘 살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막대한 부채로 짓눌리게 되었다.
남편은 이 친구와 1년 넘게 왕래했다. 그들은 거의 매일 함께 술을 마셔서 나는 남편에게 “우린 일정한 직업이 있는데 종일 술을 마시며 막 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라고 자제하기를 권유했다. 남편은 큰 사업을 해보겠다면서 전혀 내 권유를 듣지 않았다. 내가 말을 많이 하면 귀찮아하며 나중에는 아무것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 당시 아들이 아직 어리고 남편의 일을 나는 관여할 수 없어 낮에 출근하고 퇴근한 후 아들을 돌봤다. 남편은 월급을 집에 가져오지 않고 자기가 관리했는데 남편이 이런 큰일을 저지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내 월급은 천여 위안밖에 되지 않아서 백여만 위안은 정말 천문학적인 숫자였다.
빚진 돈은 갚아야 했기에 우리는 우선 차와 집을 모두 팔고 세 식구는 셋집에서 살았다. 긴급한 일을 다 처리한 후 나는 더는 남편을 보고 싶지 않았다. 돈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들 온 가족이 나 몰래 두 곳 부동산을 저당한 일만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부부 사이에 믿음이 전혀 없다고 느꼈다.
어린 아들을 보고 앞으로 직면할 삶을 생각하고, 남편과 그의 가족의 행위를 생각하니 억울함과 원망이 가슴에 맺혔다. 나는 너무 싫어서 도저히 남편을 대하고 싶지 않아 친정집으로 가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했다.
친정집에 돌아가자 부모님은 내가 그렇게 큰 타격을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조심스럽게 나와 말했다. 나 또한 부모님이 근심할까 봐 그들 앞에서 감히 무슨 내색을 하지 못하고 밤에 잠잘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울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노인과 어린아이를 보면 나는 죽을 수도 없었고 믿음이라곤 전혀 없는 남편과 거액의 채무를 생각하면 또 살길이 막연했다. 나는 인생의 가장 암울한 몇 달을 보냈다.
나중에 대법 보서 ‘전법륜(轉法輪)’을 본 후 순간 햇살이 내 삶을 비추는 것 같았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으며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는 안 되고 진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러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혼하려고 생각했던 나는 셋집으로 다시 옮겨갔다.
그때 수련에 갓 들어선 나는 심성이 높지 않아 내 봉급은 가족의 생계유지에 썼고 남편의 봉급을 가정에서 쓰지 않았기에 빚진 돈을 남편이 혼자 갚게 하고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나는 스스로 남편을 도와 함께 갚았다. 지출을 절약하기 위해 4년 동안 나는 새 옷이나 화장품을 산 적이 없고 직장의 식당도 가지 않고 집에서 남은 밥을 싸 갔으며 남은 밥이 없으면 찐빵을 먹었다.
이런 생활을 이전에 나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에게 파룬따파의 지도가 있어 마음은 매우 충실했고 즐거웠다!
모든 여유시간에 법공부를 하여 대법은 어느새 나를 바꾸어 놓았고, 마음속 원망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더 생각했다. 남편이 이렇게 한 것도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했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남편이 받은 타격도 나만 못지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법에서 배운 법리로 남편을 일깨워주고 생활의 각 방면에서 남편에게 신경을 써 가정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으며 기운 내라고 남편을 격려했다. 나는 더는 아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나무라지 않고 명절이 되면 내 옷은 사지 않더라도 노인의 옷을 사드렸다. 노인은 평생 쉽지 않다. 그들은 자녀들이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길 바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들도 아주 괴로웠을 것이다.
법을 배우고 수련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내 흉금도 점점 넓어져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아들은 나의 언행을 보고 진심으로 말했다. “엄마는 매우 선량합니다. 엄마 마음에 원망이 없어졌습니다.” 그때 생활이 빈곤하긴 했지만 따뜻했다.
지금 이미 8~9년이 지났고 그때는 평생 다 갚지 못할 것 같았던 빚을 거의 다 갚았다. 남편은 나의 수련 전후의 변화를 확실하게 보았다. 파룬따파의 보호가 없이는 지금의 따뜻한 집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기에 내 수련을 매우 지지하고 대법 사부님을 매우 존중한다. 2015년 남편도 장쩌민 고소에 참여하여 파룬따파를 위해 공정한 처리를 요구했다.
2. 아들이 대법의 혜택을 보다
내가 수련에 들어섰을 때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지금은 이미 고등학생이 됐다. 아들은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서지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법공부하여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를 마음에 새겼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고집에 셌다.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지 않으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이 들 때까지 울었고 어린 나이에 자주 어른에게 대들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시간만 나면 나와 함께 법공부를 했는데 특히 신전문화 이야기를 듣기 좋아해서 밤이면 항상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서서히 성격이 점점 좋아져 항상 미소를 지었다. 아들을 뭐라고 해도 조급해하며 화내지 않았고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집안 경제 조건이 좋지 않아 나는 항상 아들에게 빚진 것 같았는데 아들은 먹고 입는 것을 따지지 않았고 동급생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뭘 먹고 싶고 뭘 가지고 싶냐고 물으면 항상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제 이렇게 컸는데도 무슨 옷을 사주든 말없이 입었고 가리지 않고 “좀 싼 것으로 사면 돼요. 비싼 것을 사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공부는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이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학원에 가지 않아도 성적이 반에서 줄곧 앞자리를 차지했다. 게다가 매우 가볍게 공부했다. 고등학교 학업이 어려워서 다른 집 자녀는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아주 늦게까지 공부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들은 저녁 자습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다 했다면서 거의 숙제를 하지 않았다.
내가 수련하기 전, 아들의 초등학교 3학년 영어는 80점밖에 되지 않아 거의 반에서 꼴찌였는데 대법 수련을 시작한 후 아들 성적은 왠지 모르게 좋아졌다. 파룬따파가 지혜를 열어준다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3. 어머니가 대법을 배워 기억을 회복하다
내 어머니는 70세가 넘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자녀에게 부담 주기 싫어 줄곧 혼자 살았다. 우리 오누이 둘 중에 내가 친정과 좀 가까워서 자주 어머니를 보러 갔다. 어머니가 혼자 식사를 잘하지 않을까 봐 걱정되어 하루, 이틀이면 어머니에게 밥을 가져다드렸다. 나는 출근해야 하고 아들이 고등학생이고 엄마를 돌봐야 했기에 매우 바빴다.
2020년 12월, 어머니가 갑자기 노년 치매 증상이 있어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주변에 사람이 필요했다. 어머니를 돌볼 가사도우미를 청하는 것도 시름 놓이지 않아 십여 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어머니를 돌봤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물론 우리는 속인 사회 중에서 수련하기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慈悲(츠뻬이)이다.”:[1]
나는 사직할 때 자신의 득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평생 고생했기에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출근하지 않았지만 출근할 때보다 더 바빠서 아침부터 밤까지 팽이처럼 바삐 보냈다. 어머니는 오줌을 가리지 못해 하루 최소 네 번 기저귀를 갈아줘야 했고 갈아줄 때마다 깨끗하게 씻겨드렸다.
노인은 아이와 같지 않아 그 지린내는 코를 찔러 토할 것 같았다. 때론 밥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깨끗하게 치운 후 돌아오면 더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나는 즐거웠고 집 안을 깨끗이 청소했으며 어머니가 좋아하는 각양각색의 음식을 해드렸다.
대법 음악을 틀어 어머니에게 들려주었고 노년 수련생도 매일 집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하여 한 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의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왔다. 어머니 상태가 가장 나빴던 그 며칠은 나마저 다른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뭐든지 모두 기억하고 오줌도 가릴 수 있으며 개인위생도 스스로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내 삶이 매우 고달파 보이겠지만 나는 삶의 곳곳에 햇살이 넘침을 느끼고 있다. 나는 파룬따파의 법광(法光) 속에 젖어 인생의 노정이 한없이 밝아졌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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