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후이(安徽) 대법제자 셴후이(賢慧)
[밍후이왕] 수련초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사부님! 제자는 죄가 너무 많아 생생세세 고생하면서 빚을 갚기도 했겠지만, 금생에 겪은 고생과 고통 역시 한마디로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저의 조부는 지주였으므로 1949년 중공(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찬탈한 후, 우리 가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집에서 쫓겨났고, 조부모는 연이어 억울하게 돌아가셨으며, 제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와 형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계가 막막한 어머니는 재가했고, 저는 한 빈농 노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대기근 시기에는 저는 쥐를 잡고 나무껍질과 나물을 캐 먹고, 풀베기를 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한 번은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을 따다가 연못에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초등학교를 7년간 다녔다고는 해도 이름만 올려놓았을 뿐, 매일 돼지 풀을 뜯고, 땔감을 줍고, 밭에 똥거름을 주어야 했으므로 학교에는 별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삼복과 엄동설한에도 늘 양부모에게 쫓겨나다시피 밖에 나가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늘 양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그렇게 양부모에게 당하고, 밖에 나가서는 아이들에게 비웃음과 욕설의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내 또래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 놀거나 잠을 잘 때, 저는 어른들이 하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내 목숨은 왜 이렇게 고달픈가?’라고 신세한탄을 했고, 밤에 자리에 누울 때마다 ‘잠들면 영원히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고생스러웠지만, 그래도 양부모는 저를 고등학교까지 공부시켜 주었습니다. 졸업 후 낮이면 온갖 일을 하고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1976년 저는 마침내 대학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서라이서취 대학(社来社去-농촌학생은 졸업 후 농촌으로 돌아감)’에 입학해서 졸업하고 졸업 후 시내에서 직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월급이 30위안이 넘었습니다. 첫 월급을 타 천을 사서 양부모에게 옷 한 벌씩 해 드렸습니다. 1995년 양부모는 연이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느 정도 생활 터전이 잡히자, 결혼해서 금슬 좋은 부부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꾸었는데, 저에게 다시 재난이 닥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위장병, 관절염, 말라리아 등 갖가지 지병이 도졌고, 새롭게 류머티즘 관절염, 두통, 간염, 담낭염, 부인병, 심장병, 빈혈, 혈소판 감소, 신장병 등등의 병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결국, 저의 병은 가정의 재앙이 되었고, 부부 사이의 감정의 골도 점점 깊어갔습니다. 저는 병을 고칠 방법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1992년 3월 집을 떠나 선전(深圳)시로 갔습니다.
선전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1993년 3월 우연히 ‘선전시 정협강당에서 국가기공협회가 각종 기공사의 기공전수 보고대회’를 연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질병에 시달리면서 여러 종류의 기공 수련을 접해보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국의 기공 대가들이 모이는 전국대회라니,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날 저녁, 한 기공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 기공사가 몇 마디 말을 한 후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 모습은 제가 나중에 ‘전법륜(轉法輪)’에서 본, ‘축유과’와 흡사했습니다. “팔이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입으로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며 그는 당신에게 팔을 내밀라고 하고, 이 한쪽 손의 합곡혈(合谷穴)에 대고 입으로 훅 불어 그것이 다른 한쪽 손의 합곡혈로 나가게 하는데, 한 가닥 바람과 같은 감각이다. 다시 만져보면, 그것이 그렇게 아프지 않다.” 당시는 대단히 신기하다고 느껴져서 ‘전국에서 온 십여 명의 대기공사 중에는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두 명의 동료와 함께 또 갔습니다. 덩치가 큰 젊고 소탈해 보이는 한 사람이 연단에 오르자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저도 일어서서 손뼉을 쳤습니다. 제가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그 기공사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법만 말해주고 기능은 연출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저는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푹 잠이 들어 얼마나 잤는지 모릅니다. 동료가 깨울 때까지 잤습니다.
잠에서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서 있었습니다. 저도 얼른 일어섰습니다. 그때 대사님이 “내가 당신들에게 병 한 가지씩 치료해 줄 것이니, 모두 자신의 병 한 가지를 생각하고, 만약 자신에게 병이 없다면, 가족 중 누구의 병이라도 생각하세요.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면 당신들은 함께 오른발을 구르세요.”라고 하였습니다. ‘남자는 신장이 약하고, 여자는 간이 약하다’는 말이 있는데, 저 역시 간이 안 좋고, 이미 간경화 전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므로 간질환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준비됐나요?”라는 대사님의 물음에, 모두 이구동성으로 “준비됐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대사님이 외쳤습니다. “자,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나, 둘, 셋!”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저도 오른발을 굴렀습니다. 대사님은 “자, 모두 앉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앉자마자 또 잠이 들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양아버지가 위독하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난감했습니다. ‘아직 병을 고칠 수 있는 기공사를 찾지 못했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병을 고칠 수 없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양부모가 키워준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흘째 되던 날 비행기를 타고 안후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양아버지가 아무 이상 없는 것을 보고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왔다 가려면 몇 달 치 월급을 써야 했으므로 심신이 몹시 지쳐버렸습니다.
1994년 내지로 돌아와 성도(省城)에 작은 개인기업을 설립해 힘들게 일하면서 빚을 다 갚고 나니, 몸이 쇠약해져서 40대 중반인 데도 마치 70대 노인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오랜 지병에 새로 병이 더 생겼고, 네 차례나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난소종양 수술까지 받았으므로 더욱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늘 부정맥, 조박, 두근거리는 가슴 등등……, 삼복더위에도 솜옷을 입고 햇볕을 쬐어도 땀이 나지 않는 건강상태에서 학질에 걸려 극도로 몸이 피폐해졌고, 절에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빌다가 부체를 불러들이게 되어 온종일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게 되었으므로 이미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을 알았습니다.
1998년 5월, 한 파룬궁 수련생이 여러 차례 파룬궁을 연마해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나에게 권하지 마세요. 저의 몸은 이미 구할 수 없게 되었어요!”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제 말을 개의치 않고 권했습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12월에 살아남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고, 연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연공동작을 배운 3일 뒤 잠을 자고 일어나자, 얼굴에 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아 손으로 만져보니 온통 물이었고, 옷과 이불이 전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또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상쾌하고 온몸이 가벼웠습니다. 저는 새벽 연공을 하기 전 너무 기뻐서 수련생들 앞에서 소리쳤습니다. “저는 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다 나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돌봐주셨습니다. 이제 저에겐 아무 병도 없습니다! 이 공은 정말 대단합니다. 너무 신기합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사부님, 저는 사부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라고 소리치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습니다. 그 격동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선전 정협 강당에서 있었던 기공보고회에서 사부님께서 저에게 두 가지 고질병을 치료해 주신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사부님께서 저를 잠들게 한 것은 저의 머리를 조절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발을 구르게 하시어, 조금이라도 바람을 쐬면 머리가 아팠던 고질병을 치료해 주셨고, 지독한 간질환도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한 가지 병만 치료해 준다고 하셨지만,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 없었던 두 개의 고질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법을 배운 지 3일밖에 안 되었는데, 사부님께서 20여 가지의 고질병을 치료해 주셨으며, 가장 좋은 건강상태로 조절해 주셨습니다!
“사부님, 저는 사부님께서 많은 애를 쓰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사부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해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모든 고통과 마난은 살아생전에 제가 진 업을 갚도록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고, 완전하게 환골탈태시켜 주셨으며, 구사일생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부님의 보호로 20여 년간 반(反)박해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반드시 처음과 같이 수련을 견지하며 정진할 것입니다! 정진하고 더 정진하여 마지막까지 잘 걸어갈 것입니다. 짧은 시 한 편 올립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
소년시절 남에게 업신여김 당하고
중년에 병마에 시달리다가
노년에 대법을 만나
스승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네.
원문발표: 2022년 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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