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 원고를 쓰면서 일부러 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속인 사회는 아직 이성 간 왕래의 잣대에 대해 매우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연초에 한 남자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 둘 다 법공부 팀이 없었고, 혼자서 책을 보니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마침 이런 장소가 있어 잠시 같이 공부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가 법공부를 했던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지만, 주변에 이웃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출입은 곧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고 누군가 경멸의 비웃음을 띠고 몰래 우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 수련생에게 “낮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나쁜 쪽으로 생각할 거예요. 앞으로는 안 올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저를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결국 그가 반박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더는 그와 함께 법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처음엔 둘이서만 법공부를 하는 게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고, 미혼인 남녀가 늘 같이 있다 보면 좀 어색했지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남자 수련생은 제게 집착이 있어 이웃의 주의를 끈 번거로움이 생겼다며 제게 마음을 내려놓고 계속 법공부 하자고 말했습니다. 이런 화법과 사고방식은 사실 마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 달콤한 말로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법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형식이 틀렸습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이치가 있고 사람의 행위규범이 있습니다. 커플 관계가 아닌 이성 간의 왕래가 지나치게 밀접하면 반드시 주목과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는 누가 궁금해하고 오지랖이 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예의 법도가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덕이 추락한 현대인들조차도 잘못되었다고 보는 일을 무슨 집착이 없고 내려놓았다는 이유로 우리가 함부로 행동해서는 더 안 됩니다.
인간의 도덕규범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인간의 도덕을 정당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는 어떠한 구실로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무슨 사람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규범한 것은 예의 법도의 경계선을 넘을수록 사람의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심지어 더욱 깊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은 어느 층차에서든 모두 가장 좋은 것으로, 사람 이 층차에서 대법제자들은 단지 그로 하여금 더욱 원용(圓容)하게 할 수 있을 뿐 그에게 어떠한 손실도 가져다줄 수 없다.”[1] 그러므로 우리의 언행을 자신에 따라 아무것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아마 우리가 의도적으로 이 방면에서 방종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방면의 예의 법도를 정말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좋은 것이고, 적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위의 그 남자 수련생처럼 법공부를 잘해보고 싶을 뿐). 다만 과정의 것을 무시했을 뿐이며, 행위가 상식에 맞지 않고 심지어는 속인들마저도 경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관여하시니 분명 점화가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바르게 깨우칠 수 있는지입니다. 만약 점화를 교란으로 보고, 잘못된 길을 계속 고집스럽게 돌파와 내려놓기로 여긴다면 매우 끔찍하고 슬픕니다.
이 일로 저는 다른 한 가지 문제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수련생이라는 명목으로 집착에 대해서 방임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 가지 사례를 들고자 합니다. 한 번은 많은 수련생과 함께 야외에 있었는데, 판단력을 잃어 저를 도와 잘 할 수 있는 분이 누군지 물어보았습니다. 한 남자 수련생이 저에게 달려오면서 자신이 돕겠다고 말했습니다. 색심(色心)이 있는 모습은 분명했고 행동은 매우 방종(放縱)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비켜서 그를 물러가게 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웃으면서 “뭐가 두려워요, 모두 수련생인데.”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한 여성 수련생이 다가와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뭐가 두려워요? 모두 수련생인데.”라는 이 말을 저는 너무 많이 들었지만, 우리가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하지 않거나, 가늠하는 표준은 법이 아닌가요? ‘모두 수련생인데.’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서로의 마음이 모두 충분히 순수하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성끼리 구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이 말에는 얼마나 되는 사람 마음과 비(非)이성이 포함되어 있는지요! 수련생끼리 함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이 있으며, 수련하여 닦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두 수련생이라는 말은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련인이고 성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와 무례를 단순함으로 여기면 안 되며 그렇게 유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문제를 지적받을 때, 상대방을 복잡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나 허물이 없다는 눈빛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대법제자의 행위는 반드시 올발라야 하고 사회의 기풍이 날로 나빠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상은 제 개인 수련의 약간의 체득이며, 사실 사람됨의 매우 얕은 약간의 이치입니다. 다소 망설였지만 본 것이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어서 써냈습니다. 이 방면에서 굽은 길을 걷지 않도록 수련생에게 다소 일깨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적절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양해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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