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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초월해 수련의 초심을 되찾다

글/ 대만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0년에 타이중(台中)에서 대법을 만나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에 수련 중에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일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을 격려해 스스로 수련의 초심을 되찾으려 합니다.

저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수련할 기연이 생겼습니다. 2000년, 아들의 선생님이 제게 파룬따파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황했습니다. 제가 스포츠 프로그램을 매우 좋아했고 태극권도 배우고 싶었지만 이 몸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먼저 법공부를 하고 정공을 연마하면서 동공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된다고 긍정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이때부터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 “저도 홍법하고 싶습니다”

수련 초기, 우리 지역에서는 주말이면 홍법(洪法: 파룬궁을 전함) 행사를 자주 진행했습니다. 대법의 소중함과 공산악당의 박해 실상을 잘 알고 있는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홍법 활동에 참가해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홍법할 때면 수련생들이 1장, 3장과 4장 공법을 선보였는데 당시 저는 4장 공법 중 허리를 굽혀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소아마비 때문에 한쪽 다리에 힘이 없어 허리를 굽혀 내려앉기만 하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로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홍법에 나가기 위해 저는 4장 공법을 열심히 연마하기 시작했습니다.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넘어지면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났으며 사부님 구령에 맞게 속도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음악을 따라 할 수 있었고 더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러 차례 홍법 퍼레이드에 참여해 몇 시간 동안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수련하기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2. 첫 번째 시련

우리 부부는 줄곧 금슬이 안 좋았기에 남편은 일찍이 새 가정을 꾸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자녀 부양료 문제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 제가 그의 뜻을 따르지 않자 그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대법을 수련하게 된 저는 만사에 인연이 있음을 깨닫고 순리에 따르려 했습니다. 사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하므로”[1],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2] 저는 제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헤어지는 데 동의했고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게 살기를 축복했습니다. 이때부터 자유자재로 생활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긴 저는 포기하는 것이 쟁취하는 것보다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3. 두 번째 시련

이혼 후 전남편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자 유언비어를 퍼뜨려 뒤에서 저를 헐뜯는다고 저에게 알려주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언제나 웃으면서 “남의 입을 우리가 간섭할 수 없습니다.”라며 받아넘겼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오로지 아이들에게 합격한 엄마가 되려 했고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여력이 있으면 홍법 활동에 참가해 중생을 구했습니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고 사부님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직장이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신이 꼭 정말로 나쁜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다고 해서 당신이 꼭 정말로 좋은 것도 아니다.”[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의 부당한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친구 집 앞에서 전남편을 만났습니다. 술에 만취해 이성을 잃은 그는 저를 보자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가 뒤에서 저를 헐뜯는다고 사람들이 알려줄 때는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눈앞에서 시비를 걸자 저는 잠시 멍해졌다가 화가 치밀어 맞받아쳤습니다. “그렇게 거짓말을 계속하다간 지옥에 떨어져 혀를 잘릴 거야!” 제 말을 듣더니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무표정한 얼굴로 “너희 둘은 똑같아!”라고 말하면서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얼빠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고 마음의 평형을 잡지 못했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그가 분명 나쁜 사람인데 왜 같다고 하지?’ 안으로 찾고 찾다가 수련인이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없다는 것을 끝내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수련인이 폭언을 하다니, 제 선(善)과 인(忍)은 어디로 갔을까요? 정말 우리 둘은 똑같았습니다. 만약 제가 제고되어 속인과 같은 층에 있지 않으면 부딪히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서둘러 친구에게 귀에 거슬리는 충고를 해줘서 감사하다고 했으나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친구의 입을 빌려 저를 깨우쳐주신 것을 알게 됐습니다.

4. 세 번째 시련

몇 년 후, 아들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고 주위 환경이 좋아져 저는 만족스러웠습니다. 평소에 출근하고 연공하고 법공부를 하고 휴일에는 아이들이 함께 홍법에 참가해 즐겁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처럼 전남편이 아이들을 데려가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말했고 할머니는 제가 허락해주길 바라셨습니다. 입으로는 아이들 의견을 들어 보겠다고 했지만 마음은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데려가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더니 뜻밖에 한 아이가 생각지도 않고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형제니까 헤어지지 말고 같이 가거라”라고 말했지만 슬펐습니다. 너무나 상심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며칠 전 단체 법공부할 때 맨해튼 진상을 지원하는 것에 관해 교류하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저는 조건이 안 된다고 아쉬워했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곁에 없으면 혈혈단신인 제가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즉시 신청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여정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회사에 물건 정리하러 갔다가 동료에게서 감명 깊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료가 우리 아이들에게 왜 아빠한테 간다고 했는지 물었더니 아빠도 자식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고 한동안 참지 못했습니다. 눈물을 닦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이들이 실제 행동으로 제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지지한 것입니다. 저는 반드시 꾸준히 수련해 사부님의 안배를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5. 수련인이 되다

비록 수년간 수련하면서 몇 가지 큰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맨해튼에서 진상을 알리면서 이제 겨우 수련의 문에 들어선 느낌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생활의 중심이 모두 아이들이 첫째고 일이 둘째였으며, 여력이 있으면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홍법을 했습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객지에서 매일 아침 연공이 끝나면 보드 판을 펴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다 보면 저녁 법공부와 발정념 시간이 됩니다. 일상이 규칙적이고 충실해져 매일 법(法)에 젖어 있어 출가한 듯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형식상 전업(專業) 수련인이 됐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매우 많은 합리적 욕구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매주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만 상황을 알아봅니다. 어디에 가면 맛있고 싼 것을 사서 쌓아 둘 수 있는지 속인의 생각을 했고, 어디에서 활동하면 따라가 자료를 배포했지만 사실은 관광하고 싶은 속인 마음도 있었습니다.

어느 해 우연한 기회에 현지 수련생 집에서 몇 개월간 묵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최상위 사무직에 있어서 소득이 많았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수련했고 각자 다른 곳에서 전문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가족 경제도 이 수련생이 도맡았습니다. 그녀는 매일 퇴근 후와 휴일에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 발정념을 하고 나서 저는 취침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매일 대법 일을 하는 시간이 일반인업무시간의 2~3배라고 느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냉장고에서 흰 토스트 두 조각을 꺼내 직접 우려낸 홍차 한 잔을 곁들여 식사한 뒤 출근했습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말 외에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준 느낌은 늘 그렇게 우아하고 소박해 이웃집 소녀처럼 느껴졌는데 이미 박사학위를 받은 지 20년이 됐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한번은 그녀의 아버지가 소업하게 되어 우리가 가서 발정념으로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끝나고 나서 그녀는 담담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아버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에요. 무슨 근본적 집착이 있는지 잘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궁금해서 그녀에게 토스트를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먹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 매일 똑같이 먹으면 번거로움을 덜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엇이 수련인의 상태이고 무엇이 대법을 첫 자리에 놓는지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람마다 수련의 길이 다르기에 참조하지 않지만, 사부님께서는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6. 수련의 초심을 되찾다

그때 저는 확실히 한동안 정진했습니다. 요즘 들어 점점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고 안일한 마음이 점차 중해져 비가 좀 오면 연공하러 나가지 않자 수련생들은 저를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저녁에 발정념을 하고 자면 아침에 연공하러 일어나지 못하고 의지력이 약해 항상 잠을 충분히 자고 다시 보충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자신과 남을 속이는 구실일 뿐입니다.

이전에 중국영사관에서 줄을 서서 현수막을 펼칠 때는 아무리 거센 눈보라도 대법제자의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교대하고 나면 온몸이 얼음막대처럼 얼어 있었고 굳은 다리를 간신히 끌고 근처 공중화장실로 가서 몸을 녹였습니다. 몸이 녹으면 다시 대장부가 되어 또 제일선에 나섰는데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왜 ‘어린 양’이 됐을까? 예전에 수련생 언니, 아주머니들과 함께 있을 때 저는 소화상(어린 스님)처럼 고된 일을 참고 견뎌냈습니다. 지금 수련 기간이 길어지자 오히려 대화상(큰 스님)이 되어 고생을 전혀 겪어내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길은 아주 좁아 조금만 빗나가도 문제가 생긴다.”[4]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구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5]

가장 큰 고비는 저 자신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엎어졌다가 계속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수련 초기의 열정을 되찾고 싶고 대열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반드시 수마(睡魔: 졸음마)를 이겨내고 안일한 마음을 버릴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착실한 수련을 견지함은 매 대법제자의 장기적인 고험이다.”[6] 수련생들과 함께 정진해 사부님을 따라 원만해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1년 대만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고)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캐나다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착실한 수련’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 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청성’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속인 마음을 버리고 착실한 수련을 견지하자’

 

원문발표: 2021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23/4352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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