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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대법에 용해돼 하나의 법 입자가 되다

​글/ 타이완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시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릴 적부터 가족의 죽음을 보며 인생에 대해 의문이 생겼고, 끊임없이 인생의 참뜻을 찾았습니다. 중년이 되어 마침내 기쁘게도 대법을 얻었고, 사존의 보호를 받으며 더듬더듬 20년 가까이 수련해 왔습니다. 오늘 사존께 이 몇 년간의 수련심득을 보고하려고 합니다.

1. 남을 얕보는 일에서 근본 집착을 찾아내고, 사람의 껍데기에서 벗어나다

한번은 수련생과 항목 일을 교류하게 됐는데, 떠나기 전에 수련생은 저에게 “당신은 좀 잘난 체하고 남을 얕보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머리가 띵하고, 마음이 억울하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알았으니 돌아가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 문제점을 찾지 못했을 때 며칠도 안 돼 다른 수련생이 저에게 또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심성을 향상시키라는 것임을 알기에 안으로 잘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표면에 머물러있을 뿐 집착이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여러 수련생이 저와 교류했고, 저는 집착을 하나씩 찾으면서 주렁주렁 이어진 집착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며 자라왔고, 성적을 추구하는 좋은 학생이었습니다. 성장한 후에는 업무 표현을 추구하는 좋은 직원이었습니다. 사람 속의 추구는 노력과 근면이며, 이건 잘못이 없습니다. 하지만 50년 넘게 살아온 인생에서 이런 관념은 더욱 완고하고 깊이 숨어 있어 이것이 바로 저이고, 제가 원하는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사람은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피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1]

이때에야 저는 제가 50년 동안 추구한 성적은 모두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라는 걸 똑똑히 보아냈습니다. 더 미시적으로 보면 안전감이 부족한 것으로 저에게 권력과 세력이 없어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잘 살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해 목적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제가 사람 속의 행복을 추구할 때 자신도 모르게 남과 비교하기 좋아하는 쟁투심을 키웠고, 남들이 우러러보며 존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걸 찾아냈습니다. 제 목적만 주목하고 타인의 수요는 신경 쓰지 않았으며, 목표에 도달했을 때 또 환희심과 과시심이 생겼습니다. 또한 남이 도달하지 못한 것을 보면 혐오하는 마음이 나왔고, 성과를 즐기며 편한 것만 좋아하고 힘든 일은 싫어하는 안일한 마음……등등 집착이 하나둘씩 파헤쳐질 때, 그 가짜 저는 정체를 드러냈고, 저도 서서히 사람의 껍데기를 벗어버렸습니다.

2. 순진함을 지키고 생각이 세간의 가상에 이끌리지 않다

저는 20년 가까이 수련했지만 세 가지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연공할 때 집중하지 못하고 법공부할 때 졸렸으며, 발정념하면 손이 떨어졌습니다. 주이스(主意識)를 잡아 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시도 때도 없이 딴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을까? 내일 교류 때 무슨 말을 할까? 오늘 신문은 어떠어떠하네.’ 등을 생각했는데 이런 수련상태는 다년간 지속됐습니다. 관념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되고 그것이 가짜 자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럼 진정한 저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요?

연상의 수련생 한 분이 있는데 그녀는 말투가 아주 온화했습니다. 매번 그녀와 대화할 때마다 크나큰 에너지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 해 전에 그녀는 저와 이렇게 교류한 적이 있었습니다. “밖을 보지 말고 안으로 보고, 안으로 찾으세요. 줄곧 보다 보면 아주 조용한 곳이 보일 겁니다.” 그녀는 저에게 뭔가 일깨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부동한 층차의 가장 미시적인 물질은 일정한 때가 되면 물질이 없어진다. 물질이 없어진 후에는 물질의 과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 보면 곧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한다. 물질 입자의 존재를 볼 수 없는 그 조용하고도 조용한, 통상적으로 나는 그것을 보통 사수(死水)라고 부르며 또 본원이라고 부르는데, 생명이 없는 물임을 발견한다.”[2]

순간 마음이 흠칫했습니다. 제가 줄곧 안으로 찾고 미시적인 부분으로 나아간다면 물질의 본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밖으로만 보았으니 본 표면 현상들이 모두 무(無)이고 텅 빈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련생의 일깨움은 저를 막 꿈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밖으로 본 것은 모두 가상이고 안으로 찾는 것만이 근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법공부와 연공할 때 생각이 세간의 가상에 이끌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때 제 생각은 더는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차츰 고요해졌으며, 법공부 상태도 더욱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계속하여 저는 이 상태를 평상시로 확대해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이 그 순진함을 지키게 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자 제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줄어들고, 눈에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이 모두 좋고 바르자, 당연히 모순과 난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3. 수련 중에서 집착을 찾고, 구세력의 배치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다

제가 남편과 결혼한 후 남편은 한 컴퓨터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해마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친구와 함께 투자했다가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정부에서 세금을 추가 납부하라고 요구하거나, 동료를 위해 돈을 갚는 등 일이 생겨 끊임없이 적자가 났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돈으로 메워야 했습니다. 저는 늘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계속 그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적자일 때 끊임없이 원망했지만, 또 정에 이끌려 돈을 지원해줘 해마다 이런 고난 속에 보냈습니다. 매년 몇 십만 대만 달러에서 몇 백만 대만 달러가 들어갔고 10여 년이 되니 회사경영에 넣은 우리 집 적금만 해도 천만 대만 달러(약 4억 3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이것은 재무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도 나빠져 하마터면 이혼의 길을 걸을 뻔했습니다.

이렇게 20년 가까이 지내왔습니다. 장기간 회사 적자 때문에 저는 돈에 대해 집착이 생겼는데 이것은 ‘이익’에 관한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남편에 대해 원망하고 불신하는 등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는데 그 근본이 바로 ‘정’에 대한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그 밖의 이 일을 친정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이런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은 ‘명’에 대한 시험이 아니겠습니까? 이 명·리·정의 시험에서 저는 애써 조심스레 대응하려 노력했지만 불쾌한 감정이 올라오면 여전히 고비를 넘지 못했고, 늘 이렇게 감정에 휩쓸렸습니다. 이렇게 뼈아픈 고통을 겪다가 어느 날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이것을 제거해 더는 구세력이 나를 통제하지 못하게 하겠다.’ 이튿날 몸에서 한 겹의 껍질이 벗겨진 것 같았고, 예전과 다른 홀가분함을 느꼈습니다. 이때에야 사부님께서는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상 중에서 집착하는 그런 것이 형성된 물질은 무엇인가? 산이고, 거대한 산인데, 마치 화강암같이 견고한 돌덩이로서, 일단 형성되면 사람은 그것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3] 이때 저는 그 집착하는 자체가 일종의 물질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이 확고한 걸 보시고 사부님께서는 이 물질을 제거해주셨고, 몸은 전에 없는 홀가분함을 느꼈습니다.

제 심성이 끊임없이 향상되자 원래의 고난들이 갑자기 멈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전염병 발생 상황으로 회사 주문서는 또 전혀 볼 수 없었고, 손실금액이 또 백만 대만 달러(약 4300만 원)이 넘었습니다. 이때 저는 또 법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법공부팀에서 제가 겪고 있는 난관을 교류하자 한 수련생이 “구세력이 경제로 당신을 박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어서 다른 수련생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 법리를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저는 의문스럽게 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부님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는 구세력 자체의 출현과 그것들의 배치한 일체마저 모두 부정하는 것으로, 그것들의 존재마저 승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의 이 일체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행한 일체야말로 위덕이다. 그것들이 조성한 마난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승인하지 않는 가운데서 자신의 길을 잘 걷는 것이며, 그것들 자체를 제거하는 마난의 표현마저도 승인하지 않는다.”[3] 그제야 이 20년 동안 제가 줄곧 마난 속에서 집착을 찾으며, 20년 가까이 집착과 엉켜있으면서도 구세력을 승인했기에 여전히 그것의 속임수에 빠지고 말았다는 것에 놀라며 깨달았습니다.

구세력이 경제로 저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 운명은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주문서가 회복됐을 뿐만 아니라, 전염병 발생 상황 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게다가 얼마만큼의 자산을 순조롭게 처리하면서 자금이 많이 넉넉해졌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회사를 이사한 후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는 이 장소가 제 소원에서 비롯된 것이고, 법을 실증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때 저는 다음 단계 서약과 임무를 잘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더 순수해지기를 바랐습니다.

4. 나의 소원이 이 길을 성사시키다

2년 전, 타이완에서 션윈을 홍보하는 교류회에서 한 수련생은 그녀가 어떻게 음악회 형식 및 음악, 예술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을 교류했습다. 당시 느끼는 바가 있었고 초등학교 음악방식이라면 저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충분한 자금과 장소가 없어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씨앗처럼 제 가슴에 묻혔고, 2년 뒤에 저는 20년 넘게 시달렸던 명·리·정의 난에서 벗어나 자금과 장소가 모두 구비됐습니다. 하지만 이때 오히려 제가 움츠러들었습니다. ‘내 성격이 조용하고 명랑하지 못한데 내가 적합할까? 낯선 사람과 만나는 걸 싫어하는데 주류인사를 관리할 수 있을까?’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저를 뒤덮었고, 사실 하기 좋아하든 싫어하든 모두 정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직업의 귀천, 신분과 지위를 너무 중하게 보았는데 이건 차별하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두려운 마음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질질 끌면서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오히려 남편이 계속해 재촉했습니다. “이건 당신이 사부님과 한 서약 아니야? 당신은 아직도 빨리 행동하지 않네. 당신, 대법제자가 하지 않는다면, 그럼 일반 사람인 내가 이 음악회를 열면 되지.” 그 외, 수련생도 끊임없이 자신의 사례를 들며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사람 구하려는 마음 하나뿐이었어요. 그러자 사부님께서 수많은 음악인 및 예술계 인사들이 오도록 이끌어주셨어요. 그러니 당신이 하려고만 한다면 사부님께서 꼭 당신을 도와 배치해 주실 겁니다.” 남편과 수련생의 격려 하에 저는 두려움을 돌파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의 소원이 촉성한 이 한 갈래 길로서 우연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4] 저는 이 모든 것이 제 소원으로 촉성된 것이고, 이 일체가 더욱더 많은 주류인사들과 인연을 맺어야 할 제 다음 단계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년 수련 과정에서 제가 어느 길을 걷고, 어느 항목을 하며, 어느 수련생과 만나고, 어떤 난관을 넘어야 하는지, 심지어 난관을 넘지 못할 때 제가 법에서 바로잡도록 어느 수련생이 일깨워주는지…… 등등 이 모든 일체가 절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사부님의 질서 있는 배치이고, 자비로우신 보살핌이었습니다.

일련의 수련 과정을 겪으면서, 전에는 사람의 일면으로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데서, 이제는 우선 자신을 순정하게 한 후 본성의 일면이 주도 작용을 일으키게 합니다. 자신을 대법에 용해시켜 하나의 법 입자가 되려고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두 자신을 대법 중에 놓았는데, 당신은 마치 대법 중의 한 입자(粒子)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5]

이상은 개인 수련심득과 인식으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미국법회설법-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도항-북미 대호수지구법회 설법’

(2021년 타이완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1년 12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22/43516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2/22/43516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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