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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

글/ 중국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8년에 나는 운 좋게 대법을 얻어 오늘까지 23년이 되었다. 비바람 몰아치는 속에서 줄곧 걸어 지나왔으며 가장 큰 깨달음은 대법의 아름다움과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였다. 감사의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1998년 가을, 우연처럼 보이는 기회에 친구가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보냈는데, 그때 마침 추수철이라 낮에는 온종일 농사일로 바빠서 밤에 책을 읽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책에서 논술하신 법리에 감탄했다. 이 책의 말씀이 너무 옳다고 느껴,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부터 이 책을 보는 것이 내 생활의 첫 번째 요구가 되었다. 파룬따파의 넓고 큰 의미는 내 마음을 녹였고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내가 대법의 진선인(真·善·忍) 기준에 따라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할 때, 심성은 끊임없이 승화하고 본체(本體)의 변화를 가져왔다. 나를 괴롭혔던 알레르기성 두드러기, 미란성 위축성 위염, 류머티스 관절염이 나도 모르게 모두 좋아졌다.

진심으로 대법을 수련하여 온 집안이 광명을 보았다

1999년 7월 20일, 미친 듯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거짓말은 중국 대지의 구석구석에 가득했다. 나는 매우 막연했는데 도움도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대법을 왜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가? 사악한 당(黨)의 매체를 본 주위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을 왈가왈부하고 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 오늘 직장 사람들이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을 듣고 모두 속았다고 내게 말했다. “나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파룬궁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은 모두 안 됩니다. 나는 그들(독해 된 사람)과 토론했습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남편은 내 주변 사람이다. 내가 대법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의 내 변화를 그는 똑똑히 보았다. 남편은 수련하지 않았지만, 나를 지지했다. 그도 대법에서 혜택을 보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시어머니는 뇌출혈로 마비가 되어 말을 할 줄 모르셨다. 가끔은 약간 의식이 있었지만, 간호를 받으셔야 했다.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바지에 변을 봐서 내가 닦아 드렸는데 시어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나는 괜찮으며, 익숙해질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전에는 딸이 남긴 밥도 못 먹어 메스꺼웠고, 술 마신 남편이 구토하면 남편과 함께 구토했다. 시어머니는 씹는 기능이 거의 없어서 유동식만 드실 수 있으셨다. 배변이 잘되도록 야채와 고기를 잘게 썰어 죽에 넣고, 식사도 혼자 하실 수 없어서 한 입 한 입 떠먹여 드렸다. 낮에는 내가 간호했고 밤에는 남편이 모셨는데, 시어머니는 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6층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이 노친네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 못 견디겠어.”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 친어머니시고, 또 당신을 그리 아끼시는데 원망해서는 안 돼요. 사람들은 고부가 한 쌍의 원수라고 하는데, 내가 어머니를 모실 때 왜 담담하고 상냥하게 할 수 있는지 아세요? 대소변을 닦아낼 때도 원망하지 않았고 시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려고 노래를 불러드리는데 말씀은 못 하시지만 즐거운 웃음으로 대답하셨어요. 대법이 나를 변화시켜 다른 사람에게 잘 대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답니다. 나의 이 모든 표현은 가식이 아니에요.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시어머니를 엄마처럼 인내하며 모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남편은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비록 나의 행동에 대하여 의사 표현은 거의 하지 않지만, 여전히 눈에 띄는 존재였다.

몇 년 전, 내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나를 박해한 세뇌반을 고소하자 경찰이 납치하여 간수소로 끌고 갔다. 30일 후 사부님의 보살핌으로 간수소를 뛰쳐나올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라는 것을 알았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아는 남편이 묵묵히 구출하는 데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간수소에서 나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610’ 사람들이 말하기를 당신들 연공하는 사람은 가장 이기적이어서 가족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어도 그녀는 연공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 남편은 당시 엄숙한 얼굴로 파룬궁이 왜 어떠냐고 말했다. 파룬궁은 어느 쪽이든 다 좋은 사람이다. 당시 ‘610’ 관계자와 다른 국보 경찰(國保警察)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돌아온 후 남편은 나에게 그들 회사 정법위 서기도 그에게 압력을 가해 그를 정직(停職)시키고, 그와 나를 이혼시키려고 했다. 남편은 그 정법위 서기에게 말했다. “내 아내의 연공은 진심이다. 그녀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공경한다. 나보다 우리 부모님에게 더 잘하고 결점이 하나도 없다. 나는 그녀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다!” 남편은 또 나에게 “당신이 파룬궁을 연마해서 잘못된 것이 없음을 나는 알아요. 그러나 나는 그들을 당해낼 수 없소.”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내 앞에서 바람막이가 될 필요가 없어요. 내 뒤에서 날 지지만 하면 됩니다.”

남편은 지금까지 앞에서 나를 칭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수련한 후에 심성이 점점 좋아졌고 몸이 아픈 적도 없고 동서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득실을 따지지 않는, 나의 모든 것이 바뀐 것을 가까이에 있는 남편이 가장 잘 본다. 사당이 미친 듯이 박해를 해도 남편은 시종일관 정의의 편에 서서 내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지지했다.

나는 대법, 진선인(真·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 외에 또 가족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자주 말해 주었다. 시댁의 시누이와 내 여동생들은 모두 진상을 알게 되어 대법이 좋다고 믿었고 나를 존경했다. 나의 어린 여동생은 “큰언니는 수련한 후에 너무 많이 변했고 심성도 점점 좋아졌다. 언니의 변화로 보아 파룬궁은 틀림없이 매우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 가요. 나도 대법서적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대법을 얻기 전에 여동생은 자주 휴가를 내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여동생은 이미 어머니에게 괴롭힘을 당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빨리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가 대법이 좋다고 여기시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사악한 당(黨)에게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하셨고, 여동생의 직장을 잃게 할까 봐 두려워하셨다. 내가 말씀드렸다. “어머니, 몸이 좋지 않으신데 여동생까지 연루시켜 심신을 지치게 했네요. 만약 어머니가 수련하셨다면 건강이 좋아졌을 것입니다. 어머니 자신의 복일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복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도 생각해보니 그러해서, 그렇게 수련을 시작하셨다.

연공 후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 몸에 있는 모든 병, 특히 그녀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류머티스 관절염도 없어졌다. 그녀가 고향에 돌아갔을 때 그녀를 만난 사람들은 그녀가 십여 년 전보다 더 젊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사람을 보자마자 “나는 원래 신체가 좋지 않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해서 좋아졌다. 파룬궁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와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한 후의 변화를 보고 고모, 여동생도 잇따라 대법 수련에 들어왔다.

책임을 맡으니 중생이 은혜에 감사하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장래에 성취하는 것은 절대로 그 소법 소도(小法小道)의 것이 아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점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법제자 그것은 바로 대법제자의 책임을 짊어지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1] “대법제자는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2]. 내가 진정으로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알게 된 후, 영광스럽기도 했고, 압력도 느꼈다. 저녁에 고층 건물 등불이 켜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중생이 아직 진상을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했다. 큰길을 걸을 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법제자들 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사악한 당의 미친 박해에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나서서 자신의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나중에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중생을 구하려면 반드시 더욱더 많은 대법제자가 걸어 나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자발적으로 현지의 협조 책임을 졌다.

우리 수련생들이 비교적 분산되어 있다는 특징에 맞추어, 법학습 팀을 구성하고 연락처를 구축하여 모두를 자주 모아 함께 교류했다. 난관에 부딪힌 수련생들에 대해 나는 자발적으로 그녀 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법을 배우고 자신이 관(關)을 돌파한 체험을 교류했다. 전염병 발생 기간에 병업 박해를 받은 수련생이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없어서,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협조하여 그녀 집에 가서 함께 법학습하고 교류했다. 그녀의 남편과 자매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수련 환경을 만들었다.

나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대법에서 심신을 수련하여 혜택 본 일을 주위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사부님의 짧은 경문을 세인들에게 외워 들려줬다. 내가 숙모에게 경문 “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와 “대법의 복”을 외워 드렸더니, 그녀는 ‘진선인(真·善·忍)’이 정말 좋다. “이 참음은 정말 좋다.”라고 말했다.

원래 진상 자료는 모두 현(縣)의 수련생이 우리에게 제공했는데, 어느 단계에서 전체 지역이 심하게 박해를 받아 진상 자료 공급이 수련생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함께 교류하고 모두 현의 수련생에게 더는 의지할 수 없다고 느꼈다.

2010년, 주변 노년 수련생의 건의에 따라, 나는 수련생들에게 사람을 구할 진상 자료의 공급을 보장하는 작은 꽃(진상 자료점)을 피우기로 했다. 나는 컴퓨터, 프린터, 소모품을 샀다. 처음에는 작은 내 침실에 놓았다. 비록 남편이 진상을 알고 나를 지지했지만, 이럴수록 그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염려되어 감히 말하지 못하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야 진상 간행물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편이 일찍 퇴근했는데, 나는 자료를 인쇄하고 있다가 완성된 간행물을 서둘러 이불로 덮었다. 그는 내 방에 들어와서 한 권을 들고 보면서 말했다. “정말 잘 썼네. 당신들이 보내서는 안 되고 공산당이 보내야 하는 것이오.” 내가 말했다. “사람을 해치는 공산당은 발송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야말로 사람을 구하지요.” 짤막한 대화에서 깨달았다. 이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저를 깨우쳐 주신 것이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남편은 정의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때 이후로 떳떳해졌다. 나는 밍후이 간행물을 준비해서 다른 수련생들과 협조하여 일정 시간마다 보냈다. 새해가 되면 마을 집집이 보냈다. 현지에서 다 보내고 근처 마을에도 보냈다.

10년 동안 마(魔)의 교란 중에서 수련했다. 자료를 제작하여 배포하고 프린터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심성을 시험하는 일을 만나면, 법학습을 많이 하고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잡았다. 심성이 높아지고 기술도 향상되었다. 우리의 작은 자료점은 사부님의 보호로 사람을 구하는 역할을 평온하게 발휘했다.

교란에 직면하여 관념을 바꿨다. 요 몇 년 사이 주민자치센터(社區) 직원과 경찰이 집에 왔는데 매번 그들과 대립하지 않고 원망도 두려움도 없이 옛 친구 대하는 것처럼 선의로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주었다. 어느 한 단계에서 인터넷상으로 각지 국보대장(國保隊長)들도 박해에 참여하여 이용된 것이 밝혀졌고, 수련생은 현지 국보대장도 배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국보대장 집에 가서 그와 그의 가족에게 진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그의 집에 온 것을 보고 대단히 거북해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알아들은 후에 내게 말했다. “당신이 세뇌반(洗腦班)에 가는 것은 나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세뇌반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당신을 볼 면목이 있겠습니까?” 나는 그를 떠나,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그의 아내는 아직도 나에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한번 또 한 번 그의 집에 가서 진상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와 아들은 진상을 깨닫고 삼퇴(三退: 중공 사당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했다.

얼마 전 사당은 소위 ‘제로화 행동’을 했다. 우리 마을 수련생들은 교류했다. 평소 그들을 찾아보려고 해도 의견이 맞지 않았는데, 집에 찾아온 이상 우리와 인연을 맺으러 온 것이니 다그쳐서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고 주민자치센터 직원들과 경찰에게 광명의 기회를 선택하라고 했다. 우리가 자주 현지 공안국의 경찰에게 진상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정념을 가지게 되었고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당의 제로화 행동은 모두 형식적인 방식으로 대처했다. 어떤 사람들은 서명하고 사진 찍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우리 모두 그들에게 우리가 협조하지 않는 것은 당신들을 위해서라고 하자, 그들은 몇 군데만 가면, 곧 흐지부지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말 그들이 선한 선택을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우리 마을 중생은 진상 자료를 많이 보고 듣기 때문에 중생의 태도도 변했다. 예를 들어, 내 친구가 어느 날 나를 보더니, 파룬궁을 잘 수련해라. 정말로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놀라서 그녀에게 무슨 체득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심장병을 앓았고 몸이 약해 머리를 감고 빨래하면 감기에 걸렸는데, 일 년 내내 주사 맞고 약을 먹다 보니 해마다 오빠와 언니의 의료보험을 다 썼다. 내가 그녀에게 알려줬던 9자 진언(九字眞言),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 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매일 성심껏 염한 후부터 그녀의 몸은 모두 좋아졌다. 간혹 몸이 좀 불편하면 여덟 살 난 아들이 “엄마 빨리 파룬따파 하오를 염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원래 일할 힘이 없어서, 전적으로 남편 혼자서 일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나가서 알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자치센터 주임의 어머니는 나에게 “파룬궁이 보낸 물건은 내가 모두 본다.”라고 말씀하셨다. 동네 기독교인 아주머니도 너희 책자 안의 작은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다.

9자 진언,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성심성의껏 염하고, 심신에서 혜택 본 세인의 첫마디가 바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였다. 설날에는 사부님께 올릴 과일 등 공물을 사 달라며 훙바오(紅包)를 보내기도 했고, 연말연시에 이 대사님께 새해 연하장 보내는 것을 잊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모두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존께서 베푸신 그들의 가족을 구도한 은혜에 감사드렸다.

제자는 반드시 시간과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진정하게 수련하고 실속있게 수련하여 사람을 많이 구하겠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은사의 자비와 고심하신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8년 9월 29일 ‘유럽법회에 보냄’

 

원문발표: 2021년 1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20/4345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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