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미국 여행할 때 법을 얻어 5장 공법을 배웠다. 귀국 후 주변에는 수련생이 없었고 다만 대법 책 한 권만 있었기 때문에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2년 동안의 세월을 낭비했다. 진정한 수련은 올해부터 했고 발정념과 진상을 알리는 것은 스스로 인터넷에서 배워서 했다.
처음에 나는 두려움 때문에 수련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수불(修佛)·수도(修道)하는 사람을 선택해서 진상을 알렸다. 이렇게 좋은 법이므로 그들도 나처럼 걸어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그들은 그들의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사당(邪黨)의 선전 독해를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에 파룬궁(法輪功)이란 말만 들어도 안색이 변했으며, 이로 인해 나는 좌절했다.
나는 그들의 수련 법문을 포기하라고 했던 것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법 공부를 통해서, 그들에게 사당의 본질과 파룬궁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주고 그들이 대법 진상만 알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때 나는 너무 높게 말하거나 너무 많이 말했고, 종종 사람의 특성에 따라 겨냥성 있고 선택성 있게 말하지 못했는데 지혜가 부족했다.
동시에 진상을 알릴 때 내게 두려운 마음이 아직도 있으니 그들도 이런 표현을 했다: 그들도 파룬궁을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이 당(黨)·단(团)·대(隊)에 가입했어도 삼퇴(三退)는 두려워했다. 나는 돌아가서 반성했다. 내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진상을 알릴 때, 자연 확고하지 못했고 또 그들이 나를 신고할까 봐 걱정했다. 그러므로 사당의 본질에 대해 철저히 알릴 수 없었고 다만 파룬궁은 무엇인지만 알렸다.
끊임없이 법 공부하면서 나는 자신의 자아를 살펴봤다. 많은 수련생의 교류 문장을 보면서 내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함에 있어서 두 가지 큰 집착과 관념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부족하나마 반년 동안 법에 대해 이해하고 진상을 알린 체득을 쓰고자 한다.
첫 번째는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 문제다. 모두 공감하겠지만, 나는 많은 노 수련생들을 존경하는데, 나 자신과 비교해 보면 정말 넘어설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매일 나오는 것을 견지하며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나는 할 수 없었다. 나는 젊고 직업이 있다. 대법제자에 대해 사당이 갖가지 방법으로 잔혹하게 박해한 것을 폭로한 내용들을 보았기에, 신수련생인 나로서는 정말 두려웠다. 내 곁에는 교류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나는 나가서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 않으면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진상은 사부님이 대법제자에게 요구하신 세 가지 일 중의 한 가지다. 나는 전에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방법대로 따라했지만, 결국 낯선 남자가 “계속 말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겁을 줘서 나는 정말 두려웠다.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나는 마침내 알게 됐다. 대법제자는 모두 고층차에서 온 주(主)이고 왕인데, 어찌 인간 세상에서 자신의 방법으로 한 가지 일을 잘 해낼 수 없단 말인가? 게다가 사부님께서 본보기가 없고 모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나는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길로 걸어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나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의사다. 나는 나의 환자들과 동료들, 그리고 나의 가족과 학생들부터 진상을 알리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이 사람들의 가정을 회사로 여기고, 만약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이 진상을 안다면 그의 가족들도 다 진상을 알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가족에서부터 출발해 하나하나씩 돌파해 나가서 점차 30여 명이 당·단을 탈퇴했다. 일부 소선대도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꽤 많았는데, 그들에게는 진상을 알리면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마음에 새겨두라고 알려줬다. 법 공부를 강화한 후, 진상을 알리는 효과에 바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나의 가족들은 모두 구원됐고, 친구 중에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이 법 공부, 연공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의 부모님은 나와 함께 연공을 한 지 이미 몇 개월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옆에 없어도 매일 견지했고 아버지는 연공하고 반년 후 결가부좌를 하셨다.
지금은 원칙상 진상을 똑똑히 알리며, 삼퇴를 해도 정황을 본다. 여건이 되는 나는 사부님 모든 설법과 동영상을 다운로드해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법 공부 했는지, 책을 봤으면 연공할 사람이 있는지 보고, 누가 연공하고 싶다고 하면 나는 바로 가르쳐줬다.
나는 진상을 알릴 뿐만 아니라 명백한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추진하면서 그들이 법 공부, 연공을 하도록 일깨웠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일단 대법 책을 보았다면 모두 명백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자신에게 진상을 알리는 방식, 방법과 범위를 설정했는데, 바로 내게 진료받는 사람, 나의 친적과 친구, 그리고 나의 학생과 동료 및 동아리(스키 동아리, 강의 동아리, 오토바이 동아리) 친구들이다. 지금은 누가 나와 약속하고 밥을 먹고 만나기만 하면, 오랫동안 만났지 못했던 나로서는 약속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1년이면 1, 2백 명이나 된다. 우리는 또 법 공부 중에 그들과 법리를 탐구한다. 이것은 나 자신의 정황에 따라 진상을 알리는 방식으로, 나는 반드시 견지할 것이다.
두 번째는 진상 자료를 인쇄하고 배포하는데 관한 문제다. 현재 나는 이것을 할 수 없고 나 혼자서 할 능력도 없으며 주위에 수련생도 없어서 교류할 수 없다. 내가 지금 취하고 있는 방법은, 메모리 카드 몇 십 개를 구입해 사부님의 설법 동영상과 서적 및 연공 동영상 등을 다운로드 해서 누가 필요하면 누구에게 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흥미를 느끼면 만나서 이야기하고 나는 계속 따라간다. 나는 또 일부 독해가 아주 심한 사람에게는 ‘9평공산당’을 보여준다.
이것은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더는 나 자신을 신수련생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대법 수련에 들어와 진심으로 수련한다면 반드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천천히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놓고 법과 같이 있을 때는 두려운 마음이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큰 법은 자연히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원용할 수 있다.
나는 사부님의 신경문 ‘깨어나라’를 보고 더욱 긴박함을 느꼈다.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뒤따라 가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또 자신의 사심(私心)을 발견했다. 원만을 집착하는 것은 구하는 것이고, 수련은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진상을 알릴 때의 심태다. 나는 진상을 알릴 때 구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알려주면 당신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생각하며 진상을 알리기도 전에 이미 선입견을 가졌다. 또 하나는 너무 높게 말해선 안 되고 상대방의 이해 능력과 실제 정황에 서서 알려줘야 한다. 천천히 알려주면 되는데,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한 번 안 되면 다시 알리고, 신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과정 중에서 구함이 없이 알려야 하고 자비롭게 알려야 효과가 좋다.
우리 젊은 층은 모두 일정한 사교 범위가 있다. 우리와 익숙한 사람이나 일부 새로 알게 된 사람, 또는 우리를 믿는 사람을 우선 진상을 알릴 대상으로 여기고 이들에게 진상을 알린다. 점차 진상을 알리는 일은 우리 생활 중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변한다.
어떤 경우든지 우리는 되도록 개인의 사람 마음의 생각과 용량에서 가능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천성과 성격, 취미와 신앙을 모두 잘 알기 때문에 우리는 아마 선입된 관념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이 사람은 신앙이 없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이 사람은 성격이 안 좋아 다툼을 좋아한다’는 이런 분석이나 생각과 관념을 우리는 모두 버려야 한다. 심지어 낯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도 ‘이 사람은 선해 보이니 말하기 쉬울 것 같다’는 등의 생각을 하게 되는데,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없어야 한다. 상대를 선택하지 말고, 만나면 바로 자연스럽게 말하면 된다.
그러면 점차 우리의 정념도 강화되고 사람에게 설정된 관념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을 대하고 모두에게 알리고 모두 구해야 한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과정이다.
사부님은 2016년 뉴욕법회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하는 과정 중에서 당신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지 당신의 성공 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하는 과정 중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과정은 당신이 수련 제고하는 과정이며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1]
이상은 나 개인의 수련 심득 체험이다. 나는 혼자 수련하기 때문에 자신이 혼자서 조금씩 생각하고 나 자신의 방식과 나에게 적합한 방식대로 진상을 알리고 있다.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나를 일깨워 줬다. “사부는 법을 전하는 중에서 여러분더러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하였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정진하고 정진하지 않는 것이 모두 그 속에 있으며, 어떤 과위를 성취하는가도 모두 그 속에 있다.”[2]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있을 때에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2]
사부님의 정법 노정이 발전함에 따라 아주 빨리 법정인간(法正人間)의 단계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어떻게 바르게 걷고 잘 걸을 것인지 모두 엄격하게 대해야 하며 정말로 깨어나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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