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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제자, 끊임없이 수련하는 중에서 인생을 바로 잡다 (하)

[밍후이왕](전편에 이어)

4. 홀로 출국해 기초를 다시 다지다

해외로 온 후 나는 거의 혼자 수련하는 환경에 처했다. 현지 수련생들은 흩어져 살았고 한번 만나려면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기에 대부분 혼자 연공하고 법공부했다. 문제에 맞닥뜨리면 더 이상 다른 사람 뒤에 숨어서는 안 되고 스스로 직면해 해결해야 했다. 게다가 학업 부담도 아주 커서 가끔 이건 불가능한 임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 일반인 친구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정신이 무너져 어쩔 수 없이 퇴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착실히 수련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는 중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 자신보다 진정한 우리의 자아를 더 잘 아시고 우리에게 넘어갈 수 있는 고비만 배치해주신다는 걸 믿었다.

그 외에, 인생 중에서 직면해야 할 고비와 시련에는 지름길이 없다. 오직 착실하게 하나씩 완전히 해결해야 뒤에 쌓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 나는 늘 보기에 고만고만하면 된다고 여기면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했다. 학업의 어려움을 ‘원활’한 방식으로 덮어 지나갔다. 하지만 빚진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해결해야 할 난제들은 여전히 거기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내가 새로운 환경에 왔을 때 예전에 떨어진 기초를 만회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전부 외국어로 배워야 했다. 난이도가 곱절로 높아진 건 내가 그간 잘하지 못했기에 누적된 것이다. 해외로 나오면 꼭 편해지는 것도 아닌데 일체는 본인이 지닌 업력과 인연에 달렸다. 어느 환경에서든 모두 거기에서 겪어야 할 고생이 있고 사람마다 반드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스스로 개척해야 할 길이 있다.

그래서 나는 교만과 조급함을 버리고 착실히 마음을 비우면서 한 과목, 한 과목씩 난관을 극복했다. 시간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만약 해야 할 진상 알리기 항목이 있으면 항목을 첫 자리에 놓았다. 현지 수련생이 아주 적기에 만약 내가 하지 않으면 할 사람이 없었다. 가끔 정말 시간이 부족하면 가부좌하는 것으로 수면을 대신했다. 너무 피곤하면 사부님의 법을 외우기도 했다. ‘몸을 고달프게 하고(勞其筋骨) 마음을 괴롭게 하는데(苦其心志)’[6],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9]. 한동안 낮 수업 때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저녁 꿈에 사부님께서 칠판 앞에서 강의를 해주셨다. 강의 후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알겠느냐고 물으셨고 나는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 사부님께서는 계속해서 자상하고 인내심 있게 “괜찮아. 모르면 한 번 더 강의해줄게.”라고 말씀하셨다. 차츰 내 성적은 갈수록 좋아졌고 졸업을 앞두고 몇 번 시험에서 거의 다 만점을 맞았다.

한번은 시험 때 출제 범위가 책 두 권 내용이었다. 하지만 언어 수준의 제한으로 나는 선생님이 그중의 한 책만 복습하면 된다고 얘기하신 줄 알았다. 그래서 비록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시험지를 받아보니 절반은 내가 전혀 복습하지 않은 문제들이어서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모든 일이 우연하지 않기에 이것 역시 넘어야 할 고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우선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다 풀었다. 그다음, 나머지 문제들을 하나씩 열심히 읽어보았다. 문제 제목을 읽은 다음, 마치 친구를 대하듯이 제목과 대화를 나눴다. 예를 들어 제목이 ‘○○○는 무슨 원리인가?’이면 나는 ‘○○○’ 이름부터 열심히 읽었다. 읽으면서 제목에 물었다. “그럼 ○○○는 무슨 뜻이야? 나에게 너를 소개해줄 수 있어?” 두 번 물어보니 제목은 정말 속으로 나에게 답안을 알려줬다. 그래서 이 직감을 믿고 이것에 따라 이름 뒤에 포함된 원리를 생각해봤다. 그렇게 감응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면서 답안지를 모두 풀었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바로 복습하지 못한 그 책을 펼쳐보았다. 출제 제목을 찾아보니 내가 적은 답안이 거의 다 맞았다. 알고 보니 모든 시험문제 뒤에 다 생명이 있고 우리가 마음만 내려놓으면 모두 대화할 수 있었다. 이 일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열심히 복습하지 않고 요령을 부리려는 마음을 갖고는 기적을 경험할 수 없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을 노력했지만, 자기 능력의 제한 때문에 전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때 사부님께서 원용(圓容)해주실 것이다. 기점은 여전히 우선 자신이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나는 1학점이 부족해 학교에서는 내게 졸업을 1년 연기하고 두 과목을 더 이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제때 졸업하지 못하게 되어 마음이 좀 울적했지만 이로 인한 각종 마음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이때 션윈 예술단이 갑자기 우리 지역에 와서 첫 번째 공연을 하기로 했고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현지에서 오직 나와 다른 한 수련생만 시간을 낼 수 있어 이것이 바로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협상 후 수련생이 나보다 외국어를 훨씬 잘하고 대형 활동을 조직한 경험도 있기에 우리는 역할을 분담했다. 그녀가 단체, 노동조합 사람들을 만나고 전시회 등과 연락하기로 하고 나는 집집마다 다니며 션윈 홍보 책자를 배포하기로 했다. 우리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 연공과 법공부를 한 후 각자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날 지도에 표기해놓은 지역에 따라 한 가방 잔뜩 자료를 메고 집집마다 나눠줬고 길에서 인연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알려줬다. 내 생각은 아주 간단했는데 바로 모든 사람에게 션윈이 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차량이 없었기에 나는 걸어서 이 도시의 모든 땅을 다 돌아다녔다. 일부 주류층 인사들은 산에 살고 집집마다 거리가 꽤 멀었다. 사부님께서는 인연 있는 사람을 길 입구에 서서 기다리게 배치해주셨고 그는 자발적으로 이웃들까지 불러 나의 션윈 소개를 들었다. 가끔 길을 잃었을 때 마음씨 고운 사람이 웃으면서 나에게 길을 알려주기도 했다.

날마다 큰 가방을 메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은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었다. 한동안 아침 일찍 일어나 결가부좌 할 때 몸이 노곤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자기 수련을 엄숙히 대하지 않아 중생 구도의 효과에 영향 주고 정법 시간과 자원을 헛되이 낭비할까 봐 이를 악물고 견지했다. 어느 날 피곤함이 극에 달해 걷는데 갑자기 다리가 구부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도 놓쳐 걸어가려면 두 시간이 걸렸다. 속으로 너무 억울했고 별의별 나쁜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예를 들어 ‘이렇게 걷다가 다리가 못 쓰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나타(哪吒: 봉신연의와 서유기 등에 등장하는 소년 모습의 도가 신)가 떠올랐다. 나타가 육신을 다 내놓자 그의 사부님은 그를 위해 금신(金身)을 새로 만들어주셨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사부님께서는 모르시겠는가? 일체는 사부님이 장악하고 계시기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일은 틀림없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럼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한 걸음씩 집으로 걸어갔고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제거하고 교란을 똑똑히 구분했다. 집에 와 한잠 자고 일어나 이튿날 마찬가지로 법공부와 연공을 마치고 문을 나섰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상태도 금방 지나갔다. 예전에 교류문장 한 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수련생은 엉덩이뼈 관절 괴사 상태였고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은 것도 모두 이렇게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처럼 걸을 수 있고 그 어떤 ‘통증’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진정 그녀가 걸을 수 있게 지탱해준 것이 다른 공간에서 연화(演化)해 낸 밀도가 더욱 높은 신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물질과 정신이 일성이라는 법리를 한층 더 깨닫게 됐다. 사람 표면의 물질로 넘어가기 힘든 고비들은 오직 정신적으로 아주 견고해져야만 더욱 높은 각도에 서서 표면 미혹의 제한을 타파할 수 있다.

션윈 공연 전 마지막 날 나는 자료를 나눠주다가 한 산골짜기로 왔다. 그곳은 무릉도원의 느낌이 들었고 산을 에돌아가자 갑자기 공중에 커다란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 아름다운 경치는 가슴속까지 스며들었다. 이건 내가 한동안 견지한 것에 대한 사존의 격려라고 생각한다. 이후에 몇 차례 션윈 공연이 매진됐는데 배후에는 모두 사부님의 가지(加持)가 있었고 우리는 다만 두 발로 뛰기만 했을 뿐이다.

한 번은 다른 도시에 일을 보러 갔을 때 마침 반나절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관광지에 가서 진상을 알리려 했다. 관광버스가 물밀듯이 몰려왔고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중국에서 주입된 증오 때문에 나에게 별의별 나쁜 말을 다 퍼부었고,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두 팔로 날 공격하려 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애써 미소 지으려 노력했지만, 눈물이 핑 도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억울했고 오랫동안 관광지를 지킨 수련생들에게 진심으로 탄복했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마음을 내려놓고 움직이지 말자고 일깨워줬다. 진상 자료를 받지 않은 관광객들이 멀리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자비심이 나온 것 같았고 기회와 인연이 소중하니 마땅히 그들을 일깨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억울하다고 느끼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한 마음으로 바꾸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멀리 떠나가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외쳤다. “진상을 보세요. 분신자살은 거짓입니다.” 그러자 버스를 타려던 사람들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일제히 되돌아왔다. 너나 할 것 없이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줄을 서서 한 사람이 한 부씩 진상 자료를 가져갔다. 정말 사부님 말씀과 같았다.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당신들이 하는 일에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좀 조정하고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한다면 상당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10]

5. 정을 간파하고 순리에 맡기다

해외에서 석사 공부를 마친 후 나는 한 연구기관에 들어가 박사 연구를 했다. 대학에서 급여를 지불해주기에 예전처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를 벌 필요가 없었다. 자유 시간이 늘어나면서 결혼에 대한 집착이 또 올라왔다. 곧 30대가 되지만 줄곧 혼자서 비바람을 겪었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또 생겼다. 내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자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한 이성 친구가 갑자기 나타나 나를 매우 정성스럽고 알뜰히 대해줬다. 부지불식간에 귀찮은 걸 싫어하고 모든 걸 누군가 배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또 올라왔다. 서로 친구여서 더 잘 알고 있고 이러면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얘기를 나누고 알아가는 것에 비해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졸업 후에 바로 결혼할 수 있고 그가 다니는 회사에 출근할 수 있어 취직 문제도 해결되기에 만나기 시작했다. 차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빨리 결혼하려는 집착이 너무 강해 늘 ‘인내심’을 구실로 문제를 직시하지 않았다. 최대한 그를 잘 대해줬지만, 그는 나에게 점점 요구가 많아졌다. 나중에는 화를 내며 나보고 즉시 박사 공부를 그만두고 그를 따라 그가 있는 도시에 가서 살자고 하고 우리 가족에게 좋지 않은 얘기도 했다.

나는 지도교수와 항목에 대해 책임져야 했기에 중도에 포기하지 못한다고 고수했다. 그는 헤어지는 것으로 나를 협박하려 했지만 내가 헤어지는 것에 동의하자 바로 다시 나를 달랬다. 이렇게 밀고 당기기가 반복됐다. 현대인의 타락한 관념 속에서 타인에 대한 나의 진심은 오히려 어리숙함으로 비쳤고, 심지어 얕보이기도 했다. 괴로워 몇 번이나 밥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는 경험을 겪으면서 나는 우리 사이의 관계를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내가 급히 결혼하고 싶은 것은 다만 결혼이라는 표면 형식을 추구하기 위해서인가? 물론 아니다. 대법제자는 미래 인류에게 문화와 생활방식을 개척해야 한다. 혼인에 대한 정의는 고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서로 지키고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지 일시적인 열정에 덮인 이익 가늠이 아니다. 중후한 인품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평생을 맡길 수 없다. 만약 처음부터 둘 사이에 굳게 지켜주고 신뢰하는 태도가 부족하고 ‘총명’과 계략으로 상대방이 타협하게 만든다면 어찌 남은 평생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끝내 나는 이 표면의 ‘좋은 인연’이 또 한 번 고비를 넘고 집착심의 뿌리를 깊이 파내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시 한번 감정에 시달리는 것도 뭔가 갚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점점 이성적으로 되자 이 관계도 종지부를 찍었다.

속인 사회의 도덕 표준이 보편적으로 하락하면서 우리가 보기에 해서는 안 되는 많은 일을 주위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우리를 ‘고지식하다’라고 여긴다. 이것 때문에 합당한 상대를 만나기가 몹시 어렵다. 가끔 집착과 정이 올라올 때 너무 원칙을 고집하다가 훌륭한 동반자를 잃는다면 정말 아쉽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음을 고요히 하고 생각해보니 인간 세상의 혼인 중 유감 있는 부부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은 둘째치고, 완벽한 커플도 기껏해야 몇십 년에 불과하다. 그중에 또 삶과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가득 차 있다. 만약 이 몇십 년의 기쁨을 위해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놓친다면 얼마나 후회막급이겠는가.

게다가 지금 사회의 여성들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 결혼하지 않아도 과거처럼 이러쿵저러쿵 외부 압박을 감당할 필요가 없다. 아마 이렇게 혼자 수련하는 환경이 내 심성을 더 단련시켜 줄지도 모른다. 특히 의지하는 마음을 제대로 제거할 수 있다. 지금 나는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세 가지 일을 할 시간도 많다. 그 외의 인연은 마음을 내려놓고 순리에 맡기려고 한다. 나에게 이 방면의 인연을 배치해주시지 않았다면 대법제자는 각종 환경, 각종 상황에서 모두 미래를 위해 수련 형식을 개척할 수 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영향 주는 요소가 아니라면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 쓸쓸하게 늙어갈까 두려워하는 마음도 찾았다. 하지만 이것도 내려놓지 못한 사람의 관념으로 가늠한 것이다. 결혼하면 외롭지 않은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느낌은 모두 사람 마음, 업력과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물질 자체에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많은 젊은 수련생들이 결혼하고 연애할 때 수련생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물론 수련자와 속인은 생각 방식부터 차이가 크고 수련생 사이에는 더욱이 공통적인 언어가 있다. 하지만 이 배후의 일사일념에 대한 수련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수련생을 찾으면 보험에 든 것이 아니고 수련생을 찾았다 해서 일을 던 것도 아니다. 버려야 할 집착, 해야 할 노력과 서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 바로잡아야 할 가정에 대한 관념들을 모두 조금씩 닦아내야만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가 법공부만 하면 신경을 많이 써서 교육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뒤에는 여전히 자신의 책임에 대한 일종의 기회주의 심리가 있다. 수련의 길에서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수련생이고 가정에서 부모가 됐으면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육하고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 있다. 하나라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사람마다 각자 역할을 잘 완수하는 것 역시 이 한 층의 이치를 원용(圓容)하고 개척하는 것이다.

6. 모든 나쁜 일 좋은 일이 결국 모두 좋은 일로 되다

법에서 나는 신께서 무슨 일을 배치하실 때 표면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여러 해 동안 각종 시련을 겪으면서 나는 인생에 수많은 좌절과 순탄치 못한 일들이 있고 사람마다 각자 겪어야 할 고생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일체는 또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가장 좋은 일로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 깨닫고 착실히 수련해 제고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11] 또한 진정으로 마음을 내려놓으면 잃어버린 것들을 다른 형식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당신이 오직 대법을 수련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일인데, 틀림없다.”[5]

예를 들어, 나는 중국에서 대학입시에서 떨어져 이름 없는 대학에 들어갔을 때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내가 해외연구소에서 박사 연구를 할 때 바로 중국에서 다녔던 대학이 이름이 없었기에 해외국방부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중국 명문대 신청자들은 모두 자격을 박탈당했는데 지도교수마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대학 시절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는 나와 헤어지고 2년 뒤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스물 몇 살 나이에 사망했다. 사람마다 각자 운명이 있는데 만약 당시 내가 자기 살림을 차리기 위해 대법을 포기했더라면 그와 아무리 행복해도 2년이라는 인연에 불과했을 것이다. 또 그가 세상을 뜬 후에는 독신이 되어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고 더 많은 고생했을 것이다. 보기에 나는 그 인연을 잃었지만 사실 그 인연 자체도 허황한 짧은 꿈에 불과했고 내 것이 아닌 것은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또한 전에 그를 위해 좋은 취직자리를 포기해 경제적으로 궁핍해진 것이 나 홀로 외국에 나가기로 결심한 계기가 됐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나는 추천받아 대학원생이 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몰래 뒤에서 윗사람에게 뇌물을 주어 내 자리를 빼앗겼다. 당시 불공평하다고 화를 냈지만, 나중에 추천받아 간 사람들은 모두 대법을 비방하는 자료를 작성해야 정치심사에 통과할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 탈락한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보호로 변했다.

해외로 나가 공부할 때 졸업이 연기된 것이 보기에는 나쁜 일이고 게다가 당시 경제적 수입도 없어 부담이 아주 컸다. 하지만 시간이 남았기에 전심전력으로 션윈 홍보에 뛰어들 기회를 얻었고 중생 구도를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었다. 게다가 이때 합당치 않은 사람과 급히 결혼해 나중에 위험과 문제가 드러나는 상황도 피하게 됐다. 더욱 생각지 못한 것은 연장된 시간에 국적을 신청할 자격도 얻게 됐다. 모든 일이 발생하고 지나간 후에 모든 배치의 오묘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특수한 시대에 태어났고 사명을 갖고 왔다. 전심전력으로 법에 용해되어 작은 입자 역할을 잘해야만 정체(整體) 환경을 잘 원용할 수 있다. 이건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있다. 전체 우주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고 우리는 인류 미래의 희망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것을 그들은 보고 있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우리 존재는 법에 대한 실증이 될 것이다.

나는 어릴 적에 가족을 따라 대법을 접했기에 어른 수련생들처럼 병이 완치된 경험을 겪지 못했다. 게다가 천목이 열리지 않았기에 수련하면서 공능, 천목 등을 명확히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일반인 친구들이 왜 대법을 믿느냐고 물으면 나의 유일한 느낌은 대법이 확실히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고 생각을 바로잡아 주는 방식을 통해 내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미혹 속에 살기에 주위에 각종 유혹이 있고 느슨해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매번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자신을 느슨히 해 대법에서 빗나갔을 때 심신이 어떠하고, 정념정행할 때 심신이 어떠한지를 똑똑히 보아낼 수 있었다. 그건 가장 미시적인 입자부터 층층이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노력해 끊임없이 나쁜 것을 버리고 계속해 대법에 동화한다면 대법은 내 생명을 새롭게 만들어줄 것이다.

남은 시간에 계속해 수련생들과 함께 자신을 잘 닦고 사람을 많이 구하기를 바란다.

주:
[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7] 리훙쯔 사부님 저작: ‘캐나다법회 설법’
[8]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9]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 고생’
[10]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1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원문발표: 2021년 12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10/43458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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