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충(忠)’도 일종 ‘덕(德)’과 경지로, 신(信)과 선(善), ‘진선인(真·善·忍)’을 체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직무에 충실하고 역할을 굳게 지키면 곤란을 극복할 수 있는데, 그 속에는 ‘충(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흔한 ‘이직(離職)’도 사실 ‘충’이라는 덕목을 버렸기 때문인데 ‘직업을 바꾸고’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고’ ‘돈을 더 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또 다른 요인도 있다. 예를 들면 책임감, 강인함, 유혹을 어떻게 대하는지 등등인데 여기에서는 많이 말하지 않겠다. 어떤 개념도 속인 중에서 이용되고 속인의 마음과 정(情)이 뒤섞이면 다른 내용과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이 문제를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충(忠)은 수련의 높고 깊은 경지다. 대법제자는 악비(岳飛: 중국 남송 시대의 구국 영웅)가 황제에게 충성한 것처럼 사부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진회(秦檜)가 악비를 모함한 것을 황제가 몰랐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황제를 아둔한 군주로 여겼을 것이다. 후세 사람은 악비연의(岳飛演義)의 충(忠)을 아직도 분명히 알지 못하는데 마음이 확고하지 못한 대법제자도 수련에 참고해야 한다. 비록 이런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에 대한 일부 의혹과 의심이 있을지라도 충심으로 우직하게 사부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련해나갈 수 없다.
2천 년 황제 시대 동안 많은 충신이 황제에게 제거되고, 누명을 쓰고, 처형됐지만 황제에 대한 충성은 추호도 변하지 않았다. 후세의 많은 속인은 ‘어리석은 충성’[愚忠]으로 여기지만 ‘충(忠)’이야말로 높고 깊은 대법의 한 부분인 것을 분명히 알지 못한다. 자기 생명의 주(主)에 대해 이른바 ‘어리석은 충성’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고 그것은 충성의 최고 경지다. 역사는 헛되이 흘러가지 않는다. 악비의 충효절의(忠孝節義)는 왜 절세의 진리인가? 왜 인류에게 역대로 칭송받고 있는가? 그것은 사부를 대하는 제자의 근본 자세이기 때문이다.
악비는 사부님의 환생이다. 인류 역사에서 사부님께서는 매번 환생 때마다 개오(開悟)하셨으며, 가장 높은 우주의 주(主)의 신분으로 후세 대법제자에게 수련 최후시기를 위한 참조를 남겨주신 것으로 몸소 ‘충’을 연기하신 것이다. 요즘 일부 대법제자는 심성(心性)이 낮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사부님과 대법이 갈수록 믿기 어렵고 사부님께서 갈수록 엄해지신다고 느끼며 좋은 말만 듣고 싶어 한다. 이것은 자신의 심성으로 사부님을 판단하는 것인데 근본적으로 수련할 수 없다. 자신이 사부님을 판단할 수 있다면 사부님보다 높다는 것인가? 자신은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전체 우주의 가장 낮은 생명으로서 아무런 능력도 없는데 어디가 높다는 말인가?
밀레르빠 부처의 사부는 온갖 방법과 수단으로 수행 중인 밀레르빠 부처를 괴롭혔다. 속인이 볼 때 이해할 수 없고 도리도 없었다. 이 사부는 인간의 기본적 함양도 갖추지 못했고 인의선심(仁義善心)도 없었으며 더욱이 매우 악독했는데 이런 사부를 어느 속인이 믿겠는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온갖 험담을 하고 가짜이며 진불(眞佛)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대법제자의 일부는 마치 이런 속인의 심성 수준에 있는 것 같다.
사부님의 생각과 행위를 제자가 알 수 있겠는가? 제자의 집착을 제거하고 제자의 원만을 위해 마음을 쓰시며 제자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시는데, 우리 대부분 대법제자가 이 법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가 이런 높은 압력에서 확고부동할 수 있는가? 어느 수련생은 사부님을 친구처럼 대하려 하고, 자신에게 자비롭고 인자한 모습으로 손님을 모시듯 존중해 주기를 바라며, 사부님과 동등한 지위가 아니면 사부님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사부님을 의심하고 불신하는데 이는 그런 마음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밀레르빠 부처의 사부는 제자의 소업(消業)과 집착 제거를 위해 속인에게 악인으로 몰렸다. 밀레르빠 부처도 수행 중 하마터면 참을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장점이 있었는데, 비록 참기 어려웠어도 사부를 굳게 믿었고 이 한 점의 확고함으로 도태되지 않았는데 정말 대단하다.
일부 우리 수련생이 이런 시험이나 수련의 관문에 처했을 때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마땅히 밀레르빠 부처보다 나아야 한다.
본문은 개인 층차의 인식으로 사부님의 대법은 더 높은 내포가 있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1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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