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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꿋꿋이 참으며 앞으로 나아가다

법률을 이용해 수련생을 구하고 중생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24년이 되었습니다. 밍후이왕 중국법회를 맞아 지난 1년간 법률을 이용해 중생을 구한 수련 체험을 사부님께 말씀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어려운 선택

하루 사이에 고향 수련생 몇십 명이 납치되었고, 나중에 또 십여 명이 구치소에 불법 수감되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박해에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고민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수련생이 납치당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연루되어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서, 피해 수련생의 가족에게 연락할 수 없고 진상을 알릴 줄도 몰라 수련생의 가족을 설득할 수 없어서, 법률을 몰라 설득력이 없어서,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20여 년 동안 주변 수련생이 중공사당(中共邪黨)에 납치되었을 때 수련생을 구하는 데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고생하기 싫어서 한 번도 근거리 발정념을 하지 않았어요.”

순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는가? 해야 한다고 인식했는데도 왜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이 하길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도 하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면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칭호에 어울리겠는가?’

이 길을 선택하여 박해당한, 두렵고 막막하며 무기력한 수련생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려 수련생을 구하라고 권해야 하고, 변호사와 소통해야 하며, 또한 수련생들과 법에서 교류하고 상의하여 의견을 합쳐야 하고, 심지어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을 대면해야 하는데, 이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 말수가 적고 언변도 없는 제게는 넘기기가 극히 어려운 고비였습니다.

처음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오전 내내 돌아다녔으나, 수련생을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너무 힘들어 걸을 수 없었기에 수련생의 집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속으로 사부님께 ‘정말 힘드니 들어가서 좀 쉬게 해주십시오. 게으름 피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꼭 계속 찾겠습니다. 수련생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수련생이 잠이 덜 깬 채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다른 수련생을 찾아갔으며, 박해 소식을 알려줄 수 있는 모든 수련생에게 알려주고는 정념으로 박해를 부정하자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고향에 내려갔을 때는 현지에서 한 수련생을 찾았습니다. 박해당한 수련생의 한 가족(수련생)을 여러 사람을 거쳐서 찾았지만, 몇 번이나 약속을 잡았는데도 결국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훗날 이 가족이 한 수련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찾은 사람을 믿어도 됩니까?’ 그가 찬물을 끼얹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전혀 경험이 없고 법률도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며칠 멈추고 있자, 납치당한 한 수련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또다시 고향에 내려가 며칠 묵었지만, 아무런 정보도 수집하지 못했고 수련생 가족에게도 연락하지 못했습니다. 포기하기로 하고 한 수련생에게 문자로 상황을 설명해주자 그는 이런 답변을 했습니다. “이것은 협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10여 명(납치, 박해됨)이 걸려 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협력 없이 한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너무 무리하지 마시지요.” 저는 포기하는 이유와 핑계를 찾았습니다. 연락한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수련생 구출 경험이 많은 수련생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상반된 답변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대법제자이므로 한 사람이 해도 충분합니다.” 이 답변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는데, 협력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데 집착해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수련생 십여 명이 모함받은 이 사건을 혼자 맡기로 했습니다.

밍후이 라디오에서 ‘법률을 이용해 중생을 구하다’를 듣다가 잘 모르겠으면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수확이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또 기점을 바로잡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것은 법률을 이용해 중생을 구도하고 법을 실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 상대방이 탈퇴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있지만,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은 다릅니다. 한 예로, 가족을 설득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유일하게 연락이 되는 수련생 집에 찾아가서 피해 수련생의 가족을 찾고 싶다고 했을 때, 어떤 수련생은 납치당한 수련생은 다 미행당하고 오랫동안 감시당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밍후이왕의 한 교류 글에서는, 납치당했던 수련생이 집에 돌아오자 파출소 경찰이 집으로 찾아가 오토바이 배기관에 설치해놓았던 도청기를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수련생도 제게 안전에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발정념을 하면서 수련생 집으로 가는 짧은 몇 분 사이에 ‘가려 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은 ‘꼭 가야 한다.’였습니다. 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유명무실’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시시각각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피해 수련생의 가족은 방에서 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있었지만, 두려워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이번에 수련생의 가족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연속 네 번 모두 다른 시간에 계속 찾아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문밖에 서서 ‘오늘 반드시 수련생의 남편을 만나야겠다.’라고 발정념하고 또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바로 ‘누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순간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문이 열리면서 구원의 문도 열렸습니다. 수련생의 남편은 제게 다른 수련생 가족의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이 피해 수련생의 가족(대법을 수련하지 않음)은 그 후에 큰 노력을 기울이며 줄곧 우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 같지만, 사실 사부님의 고심 어린 배치가 깃들어있었습니다.

납치당한 한 부부 수련생의 집에는 막 성인이 된 아이 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 찾아갔을 때 그 딸은 울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변호사를 선임해주고 싶은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와 삼촌 등 친척들은 어리다고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자기는 변호사를 찾을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외할머니는 그녀의 부모가 수련하는 것을 몹시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성인이 되었으니 법규에 따라 의뢰인이 될 수 있어요. 만약 비용 문제라면 함께 방법을 찾으면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동의가 없어도 부모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변호사를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변호사가 오는 날, 딸의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이 왔습니다. 우리가 선임한 변호사가 아이들의 돈을 뜯어 갈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딸이 변호사 선임비를 지급하려고 하자, 그 돈은 우리 대법제자가 내기로 했으니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돈은 변호사 선임 비용일 뿐만 아니라, 수련생의 가족을 구하고 그들이 이해하고 인정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딸이 친척들의 지지를 얻게 하고, 그녀의 압력을 덜어주며, 이후에 그녀가 적극적으로 협조할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입니다.

그 후 어느 날 그녀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신 후 제게 ‘변호사가 참 좋아. 그 수련생(나를 가리킴)이 말을 잘했어. 비록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핵심을 찔렀어.’라고 했어요.” 언변이 없는 제가 이런 긍정적인 말을 듣는다는 것은 사부님의 격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변호사와 가족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서로 이해하도록 했고, 함께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했을 뿐입니다.

이어서 그녀에게 변호사가 쓴 법률 문서와 관련 자료를 친척들에게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가족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파룬궁 수련생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딸의 엄마가 돌아오자 외할머니는 태도가 좀 좋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구도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의 일념에 달렸는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2. 협력에 따른 정념

비록 수련생이 “당신은 대법제자이므로 한 사람이라도 충분합니다.”라고 했고 사부님의 격려하에 이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전체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 변호사가 전화로 구치소에 면회 절차를 문의하자 구치소는, 두 지역의 코로나 검사 결과 원본이 두 지역에 제출되어야 하고, 변호사와 모든 가족의 30일간의 일정을 제출해야 하며, 면회 예약은 한 달 후에 하되 감시대대의 허락을 받아 경찰이나 검찰 그리고 변호사만 구치소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지역 변호사라면 일률적으로 면회하지 못하게 하니 오지 말라고 직접 말했습니다. 이 같은 조건은 변호사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으며, 구치소로 가던 변호사는 경악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수련생들이 인식을 높이고 의견을 일치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지 수련생을 한 명씩 찾아가 교류했습니다. 10일 후 우리는 모든 불합리한 요구를 타파했습니다. 두 변호사는 수련생을 면회했고 검찰원의 사건 기록도 보았는바, 이 과정은 순조로웠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또 협력의 힘을 체험한 것은 첫 번째 재판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안팎으로 협력하여 첫 번째 불법 재판을 막아냈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전염병 기간에 비대면 재판이 성행하던 환경에서 수련생들이 한마음으로 비대면 재판에 동의하지 않아 불법 재판은 열릴 수 없었고 사건은 중지되었습니다.

제일 기쁜 것은 한 수련생이 무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여러 해 동안 무죄 변호를 해온 변호사는, 기소되지 않고 무죄 석방되는 사건은 보기 드물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냈다는 것은 일부 중생이 진상을 알게 함으로써 그들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불법 재판 당일, 근거리 발정념하는 사람을 실은 차가 십몇 대 왔고, 대형버스와 택시를 타고 온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다른 성(省)과 시(市)의 수련생들도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운전해서 왔습니다. 이번에 모두 협력을 중시했고, 그 기회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이번에 많은 수련생이 적극적으로 와서 근거리 발정념을 했습니다. 어떤 노년 수련생은 좁은 차 안에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온종일 앉아있었고, 이번의 정념이 특별히 강하다는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수련생은 이후에 협력할 일이 있으면 꼭 참여하겠으니 부르라고 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어떤 수련생은 휴가를 받아 집에서 발정념했고, 진도를 몰라 역시 종일 앉아있었습니다.

불법 재판 당일, 저는 많은 수련생이 와서 근거리 발정념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 대법제자는 하나가 되어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라는 일념을 내보냈습니다. 정념은 피해자 수련생과 가족 그리고 변호사의 정념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다른 공간에서는 바로 정사대전이었습니다.

변호사들과의 면회를 통해, 불법 수감되어 있는 수련생들에게도 정념을 보태주어 모두 잘 해냈습니다. 수련생 몇 명은 불법 재판을 거부하고 감방에서 나오지 않아 나중에는 강제로 끌려 나왔습니다. 한 수련생이 법정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크게 외치자, 피해자 수련생들은 크게 격려되었습니다.

재판하는 날 수련생 다섯 명의 가족과 변호사 세 명이 검찰원과 법원, 기율검사위원회, 중급법원, 중급검찰원 등에 가서 고소하고 신고했습니다. 전날 변호사는, 다른 지역에서 재판하기 때문에 이번에 몇 개 지역의 정법위 관계자들이 다 참여할 수도 있으니, 만약 경계선을 쳤다면 가족들은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법원에 도착하니 재판하지 않는 것처럼 경계선도 없었으며, 길을 가로막지도 검문하지도 않았습니다. 전에 변호사가, 법원에 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니 나눠서 숙박해야 하고 한 곳에 몰려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변호사 네 명은 세 곳으로 나눠서 숙박했는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변호사는 법정에 순조롭게 도착했습니다. 협력하는 전체 수련생 정념의 위력은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모두 해체함으로써 그것들이 사악한 공포의 환경을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3. 사부님의 격려

전염병 기간에는 많은 제한과 정책 때문에,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가 어려웠기에 선(善)을 권하는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편지에 우리 온 가족이 파룬따파 수련으로 심신에 혜택을 받은 경험과 우리가 박해당한 경험 그리고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이 응보를 받은 실례를 썼습니다.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양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수련생과 그 가족 그리고 변호사에게도 이 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 변호사는 글귀마다 주옥같고 귓전을 때린다고 했고, 한 수련생의 가족은 정말 감동적이라고 했으며, 한 수련생은 정말 잘 썼다고 했습니다.

선을 권하는 편지를 대량 복사해 두 지역의 공·검·법·사(公·檢·法·司)와 정법위에 부쳤습니다. 편지봉투를 쓸 때 어떤 사람은 “민감한 부서에 부치면 압류되거나 걸러지지는 않을까? 수신자 손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오후에 부쳤는데 이튿날 오전에 한 수련생의 가족이 볼일이 있어 파출소에 갔다가 이 편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편지를 보는 사람이 “글씨를 참 예쁘게 썼네. 한번 봐야겠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선을 권하는 편지를 베끼는 수련생이 편지를 베낄 때 자신의 자비를 담았다고 했습니다. 나도 편지를 쓸 때 이 편지가 대법제자의 자비와 정념을 담아 수신자의 손에 도착하게 해달라고 했으며, 중생이 구원을 기다리고 있으므로 누구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몇백 리 밖에 있는 수련생을 만나러 갔다가 돌아올 때 세로로 펼쳐진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끝없이 뻗은 무지개는 마치 오로라 같았습니다. 변호사는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도 했습니다.

4. 수련 심득 체험

(1) 원망

‘원망’, 공산사령(共產邪靈)의 이 산물은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이 심합니다. 처음에 현지에는 박해받은 수련생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수련생이 없어 수련생을 구하는 일을 하기로 한 후, 일이 많은데도 분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혼자서 변호사에게 연락하고 박해받은 수련생 가족과도 교류해야 했으며, 수련생이 박해받은 정보와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추적 보도하고, 악인을 고소해야 했습니다. 또한, 진상 전단을 만들어 붙이고, 차와 기사를 찾아야 했으며, 변호사를 맞이하고 보내야 했고, 선을 권하는 편지를 쓰고 각종 법률 문서도 배우면서 써야 했습니다.

어느 날, 서로 다른 시간에 여러 가지 교통수단으로 하루에 변호사 네 명을 접견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의견에도 대응해야 했습니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나열하고는 누가 뭘 할 수 있으니 빨리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 어떤 수련생은 “우리는 가정도 직장도 있습니다. 당신처럼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들을 잘하지도 못합니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줄밖에 모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제게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걱정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저는 잠시 일하지 않아 1년에 3000위안(한화 약 56만 원) 정도의 생활비밖에 없는데도 대부분을 오가는 차비와 식비에 썼습니다. 바쁠 때는 하루에 한 끼만 물에 밥을 말아 소금에 절인 채소만 가지고 먹었습니다. 신경이 곤두설 때는,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거나 극단적이고 급해져서는 안 되고 평화롭고 이성적이어야 하며, 전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나와 잘 협력하는 수련생이 “당신에게 잘못 이끌리지 않도록 잘 생각해보아야 하겠어요.”라고 갑작스레 던진 말에 타격을 받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을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예상했는데도, 실제 직면하니 어찌 넘기지 못한단 말인가?’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법공부했습니다. 새벽 4시까지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읽고 이튿날 또 한 번 읽었습니다. 일주일에 사부님의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녹화를 다섯 번 본 후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납치당한 한 수련생이 정념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수련생이 나의 부족을 보완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박해받은 가족의 신분으로 정정당당하게 공·검·법(公·檢·法) 관계자를 접촉할 수 있고 진상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박해받은 수련생의 가족 중 성인은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아이들만 수련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박해받은 수련생은 전혀 앞장서지 않고 여전히 아이를 내세웠습니다. 근거리 발정념하는 것 외의 일은 모두 예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박해받은 수련생의 가족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데, 가족도 아닌 난 뭐냐고 생각했습니다. 이 수련생에 대한 실망이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불법 재판 후 수련생이 제게 이후에 어떻게 하려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빠지려고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말을 내뱉는 순간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원망이라는 사령(邪靈)이 틈을 타고 나와 수련생 사이에 간격이 생기게 했습니다. 그러나 마성에 지배된 저는 이성을 잃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수련생과 그 가족 그리고 변호사를 원망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잘하지 못했다고 자신까지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빠지겠다는 결정이 몹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판 후 변호사와의 만남이 몇 번 있었는데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 일을 하려던 초심을 잊었습니다.

10일 후 다른 변호사를 만나야 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제가 강력하게 추천한 대리 변호사였기에 제가 가지 않으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갔습니다. 비록 사람의 마음이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 한 수련생의 가족이 꿈에서 사부님을 뵈었으며, 수련하지 않은 한 수련생의 가족이 나와 함께 사부님의 곁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참여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없다고, 상의할 사람이 없다고 원망했던 마음이 완전하게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므로 견지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이미 최고의 파트너를 배치해주셨는데 수련하지 않는 속인이라는 이유로,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것은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박해받은 수련생의 수련하지 않는 가족은 확실히 잘 협력했습니다. 그와 연락이 되었을 때부터 외국의 일자리를 포기하고 의연하게 귀국하여 지금까지 일하지 않고 꾸준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이리저리 부지런히 뛰어다녔습니다. 그에게 힘든 일을 맡겨도 받아들여 아주 잘 완성했습니다. 그는 판사의 깡패 같은 얼굴을 보고도 웃으며 조용하게 이치를 말했고, 판사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화내지 않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공산당의 사악한 면을 철저하게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노력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족이 받는 박해를 덜려고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구세력은 우리가 서로 원망하고 간격이 생기며 협력하지 않아 사람을 구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원한을 품지 말고 당신의 선(善)을 지켜야 할지니”[1] 라고 하신 사부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겨 두고자 합니다.

(2) 질투심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규정이 있다. ‘사람이 수련 중에서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하면 정과(正果)를 얻지 못하는데, 절대로 정과를 얻지 못한다.’”[2]

수련 중 질투심을 없애지 못해 크게 곤두박질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련할 줄 몰랐습니다. 이번에 협력하면서 질투심이 또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나와 협력하는 한 수련생은 일주일에 ‘전법륜(轉法輪)’ 한 강을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법공부할 시간이 많지만, 저는 바빠서 하루에 한 구절만 반복해서 외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질투했습니다. 그 수련생이 박해받은 수련생 가족에게 칭찬받을 때는 열등감이 생겨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 1년을 통해 이 더러운 생각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똑똑히 알아보고 해체했습니다. 그러자 질투심이 다시는 저와 수련생 사이를 멀게 하지 못했기에 저는 잘한 수련생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수련생이 좌절할 때는 진심으로 수련생을 도와 고비를 넘겼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질투심을 버리지 못하면 사람이 수련한 모든 마음이 모두 아주 취약하게 변해 버린다.”[2]

저는 질투심으로 수련생을 배척했고 수련생과 협력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러면 사람을 구할 수 없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 사람을 구하겠다는 것만 생각하고 서약과 사명 그리고 책임을 잊지 않는다면 이런 마음은 전진하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개인 수련이 아니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저는 더는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질투심도 마찬가지로 조사정법하며 수련하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3) 두려움

관건이 되는 시각에 두려움이 우리의 길을 막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가 할 일, 완성해야 할 사명을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나올 때는 정말 누구를 봐도 다 미행하는 사람 같고, 어디를 봐도 카메라가 있는 것 같으며, 어디에 가든 안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번은 변호사, 박해받은 수련생 가족과 함께 일을 마치고 식사하러 식당에 갔습니다. 나올 때 문 앞에 경찰차 한 대가 멈춰있는 것을 보고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까지 미행한 거 아니야?’ 그러나 그것은 모두 가상이므로 승인하지 말고 해야 할 것을 해야 했습니다.

또 한번은 변호사가 법원에 가서 사건을 조회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신[鞋: 邪와 鞋의 중국어 발음(xié)이 같음]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발 더미에서 발에 맞는 것을 골라 신기도 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 일어난 후 가족(수련생)에게 “이 꿈은 사악(邪惡)한 것이 있다는 것을 점화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번에는 가지 말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약속했는데 어찌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집을 나선 후 정말로 순조롭지 않았고 길이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섰습니다. 그때 이번에는 가지 말라는 사부님의 점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행한 수련생은 “긍정적으로 문제를 봐야 합니다. 당신이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악이 만들어낸 가상입니다. 가지 못하게 해도 반드시 가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자. 어떤 사악한 것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기만 하면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가족과 변호사는 이미 법원과 검찰원에서 나왔습니다.

한번은 20여 년 동안 전혀 겪어본 적이 없었던 두려움이 다 나와 정말로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박해받은 수련생의 가족 몇 명과 상의하기 전에 그들에게 휴대전화기를 꺼놓으라고 했는데, 상의한 후에야 휴대전화기를 꺼도 끄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온 후 두려움이 올라왔습니다. ‘이번에 큰일 나겠구나.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하지 말아야 할 말도 전부 했는데. 도청했으면 할 일을 다 알아버렸겠네.’

계획대로라면 이튿날 수련생 가족과 함께 내비게이션에 따라 모든 변호사 사무소에 찾아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법률 자료를 가득 준비해서 현지 변호사에게 보여주고 진상을 분명히 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곳밖에 찾아가지 않았는데 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저는 수련생 가족을 수리센터에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 후 감히 나가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이 나와서 어디에도 가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지금 나가서 일할 것이 아니라, 집에서 마음을 조절하고 두려움을 없앤 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3개월 동안이나 요청했는데도 시간이 없다던 변호사가 갑자기 시간이 있다며 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집에서 두려움을 없애고 있던 터라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기회였고 일주일에 한 번씩 요청해서 이 변호사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납치당한 수련생이 많아서 변호사도 많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각 방면으로 다 적합하고 또 시간이 있어 오겠다는 변호사는 정말 많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가 터지는 바람에 많은 곳이 봉쇄되어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때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만약 이 한 마음을 굳게 먹으면 어떤 곤란도 가로막지 못할 것인즉, 그러면 문제없다고 나는 말한다.”[2] 그리하여 마음을 굳게 먹고 변호사를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는 영원히 두려움을 없앨 수 없으며, 집을 나가기만 하면 두려움도 자연적으로 없어질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이 두려움을 없애지 못합니다.

저는 바로 변호사를 만날 시각과 장소를 정하여 수련생 가족과 기사에게 연락한 다음 차를 준비해놓았습니다. 이번에 뜻밖에 너무 순조로웠고 결과도 가장 좋았습니다. 이 변호사가 맡은 수련생은 훗날 검찰원이 고소하지 않아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3]

정말 어떤 것이 이지(理智)이고 두려움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이지(理智)를 핑계로 두려움을 덮어 감추는 행동은 사람을 구하는 우리의 길을 막아버립니다. 구세력이 우리에게 억지로 가한 두려움을 자기라고 인정했다면 속임수에 걸려든 것입니다.

제가 1년간의 수련에서 환골탈태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이번 교류로는 자신의 수련상태를 다시 가다듬고 이 길을 걷겠다는 초심을 되찾았다고 할 것입니다. 사악이 제멋대로 수련생을 박해하고 중생을 훼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4]라고 하신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이 수련의 길을 끝까지 확고하게 걷고자 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4-미혹의 올가미를 풀다’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3-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밍후이왕 제18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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