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기록 및 정리
[밍후이왕] 나는 수련한 지 20여 년 되며,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늘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느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야맹증에 청력도 좋지 않았다. 온순했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많이 당했다. 결혼 후에는 남편이 성격이 좋지 않아 내 말이 거슬리면 때리거나 욕했다. 그가 내게 욕하면 나도 그에게 욕했다. 늘 때리고 욕하기에 나는 그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식사하던 중 그는 갑자기 큰 사발을 들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큰 사발이 세 조각나고 사발 바닥이 두 조각 났다. 내 머리에는 즉시 큰 혈포(血疱)가 생겼고 또 윙 소리가 났다. 아이는 놀라서 내 머리를 감싸 안고 “엄마! 엄마!”라고 소리 질렀다.
또 한번은 그가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와 누구와 싸웠다고 했다. 나는 “당신은 왜 그렇게 늘 남과 싸우기를 좋아해요”라고 했다. 나는 그가 내 왼쪽 눈을 때릴 줄은 몰랐다. 왼쪽 눈이 멍이 들고 부어서 심하게 아팠다. 그 후 왼쪽 눈이 발개지고 눈물이 나면서 시력이 나빠지고 얼굴도 아파 계속 병원을 드나들었다. 의사는 눈 밑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 밑의 작은 혈관이 맞아서 충혈되어 눈 밑의 살이 익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 둘은 싸우는 것이 다반사인데, 말다툼하고 싸우면서 반평생을 보냈다.
남편은 삼 형제 중 맏이다. 나는 시어머니와 한 뜰에 산다. 시어머니는 동쪽 세 칸짜리 집에, 나는 서쪽의 세 칸짜리 집에 살고, 결혼 후 줄곧 분가하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나를 잘 대해주지 않고 늘 업신여기기에 나는 함께 살기 싫어서 분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원치 않았고, 우리가 돈을 벌어 두 시동생에게 집을 지어주고 또 두 집을 고치느라 진 빚을 갚아주기를 원했다. 나는 싫어서 분가했다.
나는 분가한 후 혼자 집을 지었다. 집의 벽돌을 다 쌓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물을 긷고 진흙을 이겨 흙벽돌을 만들어 칸막이 세 개를 쌓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시아버지가 칸막이 두 개를 무너뜨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울부짖으며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했다.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간단하게 구들장을 하나 만들고, 부뚜막을 하나 쌓고는 얼른 이사 갔다. 나는 단 1초도 시어머니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내가 이사 간 것을 보고 내가 자기를 부양하지 않을까 봐 인맥을 통해 어부대대(漁隊) 서기를 찾아가서 내게 증서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모든 가산은 내 몫이 없으며, 이후에 집을 사든 짓든 내가 부담하지 않아도 되지만, 매달 생활비를 내야 한다. 다시 말해 두 노인의 부양비는 전부 우리가 부담해야 하고, 이상의 내용을 절대 번복하지 않는다고 썼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두 시동생은 방이 네 칸인 집에 사는데도 부양비를 부담하지 않고, 나는 재산이 한 푼도 없는데 왜 내가 두 노인을 먹여 살려야 한단 말인가? 나는 농업대대(農隊) 서기와 어부대대의 부서기를 찾아가 처리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부당하다며 고소하라고 했다. 내가 어찌 감히 고소할 수 있겠는가? 고소하면 어부대대 서기가 우리 집에 와서 남편을 찾을 것이다. 나는 남편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주기 바라는데!
나는 울분을 참으며 아무 말도 못 했다. 이 일은 마을에 소문나서 영향이 매우 컸다. 이후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계속되었고 심해졌다. 시어머니는 우리 친정의 형님과 올케 집에 가서 이간질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내 소문을 퍼뜨리고 명예를 실추시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 나는 늘 어떻게 하면 시어머니를 죽일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나는 이 정도로 그녀를 미워했다. 가슴 가득한 원통함에 온종일 눈물이 났고 울어서 두 눈이 변했으며, 몸도 점점 나빠졌다. 쓸개염, 위염, 신장염, 자궁종, 심장병 등 많은 병이 생겼고, 청력과 시력도 갈수록 나빠졌다. 의사는 내 눈은 쉰 살이 되면 보이지 않을 것이며, 과로로 몸이 상했다고 했다. 살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아이가 크면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98년 7월 한 친구가 내게, 온몸이 병이니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해보라고 하며, 지금 적지 않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했다. 친한 친구의 권고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보지 않고 연공만 했는데도 몸의 변화를 느꼈다. 눈이 아프지 않고 몸이 무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볍고 매우 편안했다. 파룬궁이 너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는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아껴 부득불 그 돈으로 약을 사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자기가 번 돈을 전부 내가 약을 사서 먹었다고 했다. 연공 후 약을 모두 버렸다. 병이 모두 나았기에 약 먹을 필요가 없었다. 의사가 내 눈은 쉰 살이면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70세인데도 책을 볼 수 있다. 이전에 나는 늘 마을 진료소에 가서 쓸개염약을 샀다. 어느 날 의사의 아내가 나를 보고는 왜 약을 사러 오지 않는지, 쓸개염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물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좋아졌다고 했다.
나는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체험했다.
계속 법 공부하고 마음을 닦으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갈수록 담담해졌다. 이전에 남편이 욕하고 때리면 나도 욕했다. 그가 나를 때리면 나는 그를 때리지는 못하고 죽어라 욕했다. 분이 풀리도록 욕하고 미움이 풀릴 때까지 욕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배운 후에는 진선인(真·善·忍)으로 자신을 단속하고 선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고 이치를 말했다. 그는 내 변화를 보고 나를 잘 대해주었고 파룬궁을 배우는 것을 지지해주었다.
우리 마을에서 낡은 집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을 계획이었다. 시어머니는 우리에게 아파트 살 돈을 부담하라고 했다. 아들마다 돈을 부담하라고 했다. 당시 나는 섭섭해서 시어머니에게 “당시 증서에 어떻게 쓰셨었죠?”라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연공인으로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해야 하며 이익에 관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필경 시어머니가 아들을 키웠고, 어느 전생에 맺은 원한인지 모르지만, 이번에 갚자고 생각했다. 나는 두 시동생과 함께 노인에게 아파트를 사주었다. 나는 또 늘 맛있는 음식을 해서 시어머니를 뵈러 갔으며, 명절이 되면 선물을 사드렸다. 시어머니가 병이 생기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라고 알려주었다. 시어머니는 받아들였다.
사부님께서 내게 넓은 흉금을 주셨기에 20여 년간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을 내려놓아 가정이 화목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있다. 전에는 시어머니가 내게 만들어 준 증서에 관한 소문이 온 마을에 다 퍼져 마을 사람들이 나를 혹평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시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린 것이 온 마을에 소문이 났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번에는 이 일이 내게 불공평하다고 했다. 정말이지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이렇게 할 수 없다. 나는 시부모를 향해 ‘이생에 내가 어머님 집 문에 들어서는 것은 꿈도 꾸지 마시죠. 저는 영원히 어머님을 만나기 싫습니다’라는 독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일찍 죽었을 것이며,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 남편 때문에 생긴 화, 그리고 병의 고통으로 오늘까지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나와 내 가정은 사부님과 대법의 구도를 받았다.
구도해주신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1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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