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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수련생의 비유로 문득 깨닫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느 날 저녁 A수련생 집에 갔는데, 그는 기분 전환차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아주 언짢아서 말했다. “대법제자는 다들 시간을 다그쳐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느라 일정이 이렇게 빠듯한데, 어떻게 놀러 갈 생각을 할 수 있어요?” 그 수련생은 마치 끝나는 때를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2028년이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요?”라고 했다.

말하면서 그는 또 집을 한 채 사서 인테리어를 잘해놓고 싶다고 했다. 내가 “지금 이 집도 좋은데 왜 또 사려고요?”라고 했더니 그는 말했다. “돈은 아껴서 뭐하게요? 혹시라도 중공(중국공산당)이 부추 베듯 빼앗아 갈지 모르는데.” 그래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련 시간은 제한돼 있어요. 그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고요. 그때까지 집착심을 다 제거할 수 있다고 장담해요?”

그 수련생이 궁색한 변명을 이어가자 나는 화가 났다. 그는 말하는 태도도 생뚱맞았다. 나는 그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 그만 집에 가야겠다 싶어 작별인사를 했다.

그 집을 나서는데 마음이 매우 괴롭고 다시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을 생각했다. 위대하신 창세주께서 물욕의 소용돌이에 빠져 길을 헤매는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 스스로 한 평범한 가정에 환생하셔서 일반인처럼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고 계신다. 사부님의 의식주와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부님께서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온 방면에 중생이 쉽게 깨우치고 제도되게 안배하셨고 말과 행동으로 제자에게 모범을 보이시며, 제자가 은연중에 감화되어 바른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고 생각한다. 속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제자는 사부님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서도 범상치 않은 세속을 초월한 각자(覺者)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초기에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실 때 많은 제자가 사부님의 의식주가 그렇게 소박한 것을 보고 마음속에서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유명한 대기공사(大氣功師)인데 어쩌면 전혀 그런 느낌이 없지?’ 사실 물질적 관점에서 보면, 보통 우아한 곳에서 살고 고상한 옷차림에 차를 타고 행차하며, 매체를 동원해 유명인사로 떠들썩하게 위세를 부려야 비로소 유명인에게 어울리는 겉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사부님께서는 이런 것을 전혀 중시하지 않으셨다.

무량한 고덕(高德) 대각자(大覺者)께서는 원래 겪을 고생이 없고, 오로지 중생을 구하고 제자를 제도하기 위해 비로소 고생을 겪으신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집에 돌아갈 수 있게 온갖 고생을 겪으시며 세간의 일체 집착을 내려놓도록 우리를 가르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서 잘살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감당하시며 제자와 세인(世人)에게 소중한 시간을 연장해 주시는데, 만약 소중함을 모르고 여기서 편안하고 안일한 삶을 살려 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부님의 자비롭고 고심한 제도에 떳떳할 수 있겠는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B수련생의 전화를 받았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마음속에 있던 불쾌한 마음을 하소연했다. 그러자 B는 “당신은 어디가 잘못됐는지 느껴지지 않나요?”라고 했다. 나는 “어디가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설마 내가 그(A)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해야 했다는 거예요?”라고 했다가, 생각 끝에 말했다. “화내고 마음을 움직인 것은 맞지 않았네요.” 그러자 B가 말했다. “예를 들어 말해볼게요. 어떤 사람이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친구 한 명하고만 어울리는데, 서로 사이가 좋으려면 그 사람이 경지가 반드시 높아야…” 나는 여기까지 듣다가 그 말을 자르고 “됐어요, 됐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이만 끊을게요. 그 말씀 기억할게요. 시간 나면 만나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B의 그 비유를 듣고, 무척 운 좋은 제자가 사부님과 함께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사부님을 뵙고 가슴이 벅차올라 사부님을 둘러싸고 서명을 받고 악수하고 사부님과 사진을 찍었는데, 사람이 많아 번갈아 사진을 찍느라 사부님을 한두 시간이나 서 계시게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사부님을 위할 줄 아는 다른 수련생은 사부님을 붙들고 보채는 수련생들이 좀 불만스러웠다. 그들은 철없이 자기 생각만 하고, 기쁜 나머지 사부님께서 힘드신 것은 고려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사부님께서는 조금도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으셨으며 귀찮게 여기지도 않으시고 여전히 그렇게 상냥하게 방긋 웃고 계셨다. 이는 어떤 마음이신가? 사부님께서는 당신께서 힘들고 고단하신 것은 개의치 않으시고 제자들을 생각하셨고, 이런 행동이 모두 집착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전혀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제자의 소원을 만족시켜 주셨다.

이로써 나는 깨달았다. 당시 내 마음은 사부님 곁에서 원망하며 화내던 수련생과 같았는데, 사부님에 대조해보며 내 잘못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게 됐다. 자비롭지 못했고 관용하지도 못했으며 그런 집착심이 있는 사람을 용인하지도 못했다.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이 나왔고 머리에는 부정적인 사유가 주도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검은 물질이 생겨났다. 이것이 수련생 간에 간격을 조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계속 가면 자기가 대단하고 여기고 남을 무시하는 마음이 형성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개선하고 제고해야 할 곳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큰 지혜를 갖고 계시므로 잠시 제자의 집착을 만족시켜 주시는데, 이것은 제자의 선(善)을 향하고 도(道)를 구하는 마음을 보호해주시기 위한 것으로, 이후 법공부 수련 중에서 그것이 자신의 집착이란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없애서 제고해 올라와야 한다.

이 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문득 깨달았다. 다른 수련생을 깨우쳐 주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그 수련생이 듣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면 잘못이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련하려고 왔다. 어느 수련생이 자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마음을 움직이거나 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필요도 없다. 다른 방면에서는 그 수련생이 자기보다 수련을 더 잘했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는 것이 좋다. 진수제자(眞修弟子)는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므로 혹여 사부님께서 다른 수련생의 집착을 이용해 나와 부딪히게 하시고 안으로 찾게 하셨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에게 이 한 층의 이치를 알게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최근 2년간 수련하는 가족이 법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화를 냈다. 늘 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 순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됐다.

깨달은 후 몸과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고 편안해졌으며 상화(祥和)로워졌는데 그런 미묘한 느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저 마음속으로 묵묵히 감사드릴 뿐이다.

 

원문발표: 2021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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