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선양(沈陽) 다둥(大東)공원을 몇 번이나 찾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봄바람은 여전히 버드나무를 스치고 따스하네요. 시후(西湖) 10경을 본뜬 고전적인 정원 풍경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달리 ‘반월정(半月亭)’ 아치와 고풍스러운 긴 회랑이 더해졌지만, 어머니는 이것을 볼 수 없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어렸을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닷가재를 먹을 때 찔릴까 봐 매번 껍질을 벗겨주셨지요. 가재수염에 손이 찔려도 만물을 녹이는 어머니의 미소… 포근한 어린 시절이 가끔 떠오릅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여섯 살 때 어머니는 저에게 한 권의 책을 읽도록 가르쳐 주셨지요. 어머니는 이 책에서 층층의 우주와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되었고, 어머니 일생의 믿음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생명이 다시 태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딸은 오늘도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로운 수확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가르쳐주신 대로 ‘전법륜(轉法輪)’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입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아빠는 직장에서 늘 모범 근로자였습니다. 주말이나 휴일에 야근하면 수당이 없어 야근할 사람을 찾지 못했을 때 상사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대법제자는 수련인이기에 명리를 담담히 보아야 합니다”라고 아빠를 격려하셨지요. 몇 년 후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불법적으로 잡혀 수감당한 기간에도, 공장에서 설 명절에 물품이 나오면 항상 마음씨 좋은 동료가 아버지 몫을 집으로 가져오고, 또 사비를 털어 쌀과 밀가루 그리고 식용유를 적지 않게 보내왔습니다. 중공의 거짓말은 한때 살벌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감정이 있어 다른 사람의 호의를 느낄 수 있기에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거울처럼 똑똑히 보아내었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한때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요. 할머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시기 힘든 분’이셨습니다.
매사에 참견이 심하셨지요. 할머니께 밥을 해드리려고 채소를 씻으면 항상 물을 많이 쓴다고 하셨고, 요리할 때면 기름을 많이 쓴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작은 일도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야단을 치셨지요. 할머니의 성격에 두 고모도 견디지 못하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여 할머니의 온갖 억지에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지요. 그 후부터 46㎡의 작은 집에 다툼 대신 다섯 식구의 따뜻한 웃음꽃이 피어올랐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제가 여덟 살 되던 해,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밭에 나가실 수 없고 대소변도 혼자서 보실 수 없으셨지요. 어머니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아 드리고, 목욕시켜 드리고, 빨래해드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데 아무런 짜증도 불평도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이 지극해서 늘 야박하게 대하시던 할머니는 감동하셨죠. 그 후부터 할머니는 사람을 만나시면 “우리 며느리는 딸보다 더 가깝다네”라고 자랑하셨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그해 윗집 난방 배관이 터져 물이 새는 바람에 우리 집 벽면이 벗겨졌습니다. 남들은 윗집에서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괜찮아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요”라고 웃으며 말하면서 손해 배상을 포기했지요. 좋은 사람에게는 좋은 보답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감옥에 있었던 암담한 나날에 남자 가사도우미를 청해 외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지요. 나중에 윗집은 남자 가사도우미가 저를 성추행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남자 가사도우미에게 “그 집안에 감시 카메라가 있어요!”라고 겁을 줬습니다. 또 현관 밖 찬 바람 속에서 무려 두 시간이나 제가 퇴근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웃의 걱정하는 말투 속에서 저는 어머니의 덕분에 보호받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어머니, 기억나세요? 1999년 7월 이후, 중공이 국가 기구를 동원해 파룬궁을 모독하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대법제자를 참혹하게 박해했지요. 적색 공포의 그 세월 동안에도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꾸준히 알렸습니다. 불광의 혜택을 입은 일가족은 모두 어머니를 굳게 지지했어요. 그 기간 우리 집은 진상 자료점이 되어 언제나 수련생들이 왕래했습니다.
어머니, 분명히 기억하겠지요. 어머니는 2006년 5월 중공의 국보대대에 납치됐습니다. 선양시 구치소에서 모진 고문과 협박으로 자백을 강요받으면서 사악한 경찰에게 맞아 앞니 2대가 부러져도 어떤 수련생도 연루시키지 않았어요. 결국 불법 재판에서 어머니는 7년 형을 받았습니다. 랴오닝(遼寧) 여자교도소에서 사악의 박해로 간경화 복수 말기로 임종할 즈음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좋은 사람은 죄가 없고 진선인 신앙은 더욱 죄가 없음을 믿었기 때문이죠. 대법제자의 굳건하고 강직한 지조로 대법제자가 짊어진 사명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머니, 딸은 어머니와 헤어진 지 이미 8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선악에는 결국 응보가 따릅니다. 중공이란 이 마귀는 나타나면서부터 멸망하도록 그 운명이 정해졌습니다. 그것은 법륜불법(法輪佛法)을 박해하고 진선인을 믿는 많은 사람을 계속 박해하고 살해해 중화민족의 도덕적 기반 전체를 철저히 파괴하는 것에 점점 더 속도를 더해 갔습니다. 오늘, 전체 사회 심지어 모든 중국인은 모두 세도(世道)가 망하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중공 조직의 모든 구성원은 모두 큰 죄를 범해 업보를 분담해야 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견정함은 제가 암흑을 헤쳐나갈 힘을 줬습니다. 딸은 지금도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중공의 박해 진상을 알리고 있습니다. 또 어머니가 제게 준 호신부 목걸이를 줄곧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윗면에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는 9자진언(九字真言)이 새겨져 있습니다. 햇빛을 받으면 더욱 투명하고 밝게 빛납니다. 진상을 알리다 좌절하는 때는 호신부를 봅니다. 이 안에는 어머니의 간곡한 가르침과 위안이 되는 격려, 자애로운 모성애와 그리고 어머니의 천사 같은 웃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중공이 전면적으로 청산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딸은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꾸준히 진상을 알리고 중생에게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권해 천멸중공(天滅中共)의 대재난 속에서 살아남아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하도록 할 것입니다.
오늘, 이제 딸은 성장했습니다. 다둥공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의 따뜻한 동행이 없지만, 어머니의 굳센 진선인 신념은 딸이 수련 중에서 용맹정진할 수 있도록 격려해줍니다!
지극히 선한 것은 물과 같고, 큰 사랑은 소리가 없습니다.
원문발표: 2021년 10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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