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허난성 정저우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올해 78세(여)이다. 정저우에서 60여 년 동안 생활했으니 정저우 토박이라 할 수 있다. 내 기억으로는 이곳에도 많은 비와 폭우가 있었지만, 올해 7월 20일 대홍수 같은 것은 들어본 적이 없고, 난생처음이다.
그날은 우리 팀이 법학습하는 날이었다. 나는 멀리서 살고 열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좀 일찍 가서 문을 열어야 했으며, 다른 사람이 나를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오후 1시, 집에서 나왔는데 당시에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법학습장에 와보니 아직 모두 오지 않았다. 비가 많이 올수록 아마 오지 못할 것이다. 4시 30분, 내가 법학습장을 나설 때 도로의 물은 이미 무릎까지 왔다.
다행히 버스 한 대가 왔다. 차에 사람이 많았는데, 내가 차를 타고 막 앉으니 어떤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아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나는 바로 자리를 양보하여 그녀의 시어머니를 앉게 했다. 그녀는 나에게 매우 감사했다. 시어머니가 앉은 후에 그녀(며느리)는 나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가 79세로 양띠라고 말하자 그들은 모두 쑥스러워했다. 그녀는 나와 나이 차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녀보다 나이가 이렇게 많으니 참 민망스럽다고 했다. 나는 수련인이라 건강하므로 사양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시어머니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원래는 온몸이 병이었지만, 대법을 수련하여 모두 나았습니다. 1999년, 장쩌민의 질투로 파룬궁을 박해한 지 22년이 되었어요. 대법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곳곳에서 먼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사양하지 마세요. 내가 당신이 과거에 가입했던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재난이 왔을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세요. 이것은 생명을 지키는 호신부로써 늘 외우면 영원히 평안을 보전합니다.” 그들은 모두 승낙했다. 그녀의 고맙다는 말에 나는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리세요.”라고 했다. 세 정거장을 지나서 나는 내렸다.
비가 많이 와서 더 갈 수 없게 되자, 버스는 어쩔 수 없이 되돌아 가버렸다. 길에는 사람이 없었고 집까지 가는 길이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나는 큰길 중간 가드레일 옆에 서 있었다. 차도 사람도 없었다. 이때 한 아가씨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데리고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다리 밑에 가서 차를 갈아타야 하는데 한 정거장도 안 된다고 설명하자 그녀는 시원시원하게 자전거에 타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고 어떤 조직에 가입했는지 물었다. 그녀는 류(劉) 씨로 퇴근하여 집에 돌아가는 길이며, 공청단(共靑團)과 소선대(少先隊)에 가입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당초에 선서한 적이 있어서 목숨을 당에 바쳤다. 그래서 사악한 당에서 탈퇴하여 짐승의 표지(獸印)를 지우고 평안을 보전해야 한다. 지금은 하늘이 중공을 멸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8천만 동포를 죽였다. 그렇기 때문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真善忍好)’를 기억하여 생명과 평안을 보전하기를 바란다며 그녀에게 성심으로 단, 대에서 탈퇴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진정으로 승인했으며,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 헤어졌다.
다리 밑에 이르니 많은 사람이 정류장에 갇혀있었다. 나는 또 중년 부인을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가시겠냐고 물었고 나는 길이 좀 멀어서 버스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묻고, 어떤 조직에 가입했는지 물었다. 그녀의 성은 궁(龔) 씨고, 공청단과 소선대에 가입한 적이 있다고 해서, 그녀에게 삼퇴의 좋은 점을 알려 주었다. 그녀는 “할머니와 할머니 사부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비가 갈수록 많이 왔다. 누군가 동쪽으로 가자 나도 모르게 동쪽으로 갔다. 나는 키가 작아 물이 허리까지 왔으며 아직도 집까지는 멀고 법학습장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우니 역시 두렵지 않고, 오로지 물 흐르는 것만 살피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두 여자아이를 만났는데, 그녀들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녀들은 나에게 “할머니, 혼자서 어디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께 서로를 부축하며 급류를 건너 길 건너편으로 갔다. 그들 둘은 같은 부서에 속해 있으며 모두 재무 업무를 한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우리 같이 가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꼭 기억하렴.”
말하는 사이, 도로 중앙분리대에 도착했는데, 꽤 길었다. 이때 물이 가슴까지 올라왔고 물살이 아주 급했다. 가드레일을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여자아이 한 명은 길 남쪽으로 가는 길목을 찾았고, 나와 다른 한 명은 북쪽으로 갔다. 이때 청년 한 명이 있어서 나는 길 남쪽으로 가는 여자아이를 집 앞까지 잘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와 북쪽으로 가는 여자아이는 길을 따라가는데, 가슴까지 오는 깊은 물로 발을 땅에서 뗄 수 없었고 급류에 부딪혀 언제든 떠내려갈 위험에 처했다. 나는 그녀에게 발을 땅에서 떼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발로 바닥에 끌면서 가까스로 인도에 올랐다.
그녀는 혼자 살았다. 나는 그녀를 따라 그녀의 거처로 갔다. 어떤 건물인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마당 안의 물도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7층에 살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마당 안에 전기도 식수도 없었다. 올라가 보니, 그녀가 사는 이 공동주택 현관에는 전기는 있었지만 물은 없었다. 나는 당시 두 손을 모아 허스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에게 젖은 옷을 입고 자지 않도록 잠옷을 찾아 주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녀의 휴대 전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자신을 잘 보호하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이 1층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내가 언제 법을 얻었는지, 원래 몸에 병이 있었는데, 수련 후 20여 년 동안 병에 걸리지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내가 50세, 60세가 채 안 된 사람처럼 보이며 곧 80세가 되는 그녀의 할머니보다 훨씬 젊다고 말했다.
7월 21일 새벽, 나는 거실에서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했다. 비가 밤새 그치지 않아서 거리에 물이 빠질지 걱정되었다. 젖은 옷으로 갈아입고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물이 느리고 급류가 없었다. 나는 가야 한다고 했고 그녀는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럼 아침거리를 살 수 있는지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큰 홍수에 누가 나와서 아침을 팔겠어요? 그녀는 나를 붙잡고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나왔다. 며칠 후 나는 또 과일을 사서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는 후일담이다.
우리 집까지 아직도 여섯 정거장 반이 남았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9자진언(九字眞言)을 읽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길가의 많은 사람이 홍수 속에서 꼬박 하룻밤을 서 있었다! 집의 담장을 따라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연세가 많은데도 나오셨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어제 나와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70세 인지 80세 인지를 물었다. 내가 일흔아홉 살이라고 답하니, 그들은 모두 놀라며 노인네가 정말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길에서 중(鐘) 씨라는 젊은이를 만났고 나는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두 정거장만 데려가 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성이 무엇이며 어떤 조직에 들어간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공청단과 소선대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진상을 분명히 알고 난 후, 그는 매우 기뻐했다. “탈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미 아무 소용이 없어졌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한 후, 그는 동쪽으로 갔다.
집까지 두 정거장이 남았을 때, 또 한 식당의 사장을 만났는데 그는 내가 나이가 많은 것을 알고 나를 부축해 걸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말하자 그는 즉시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그는 “이렇게 연세가 많은데도 생각이 뚜렷하고 신체는 건강하시니, 신기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우리 집 1층 입구까지 데려다주었고 재미있게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맡겼어요, 안녕!” 나는 그에게 거듭 감사했다.
지금은 ‘7·20’ 정저우 홍수가 발생한 지 이미 두 달 반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두 여덟 명의 인연 있는 사람들이 생사고비 중 사당(邪黨)에서 나와 대법 편에 서는 것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지만, 위험한 순간이 되면 마치 안배된 것처럼 마음 좋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보살피고 지켜 주셨다. 동시에 마난(魔難) 중에서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정념을 확고하게 했다.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수련인 임을 기억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과거에 수련할 때에 많은 고인(高人)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재난 중에 보살펴 주신 사부님께서 감사드립니다! 홍수 속에서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상관하지 않고, 나는 확고하게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 길의 마지막까지!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10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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