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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파룬궁이 아들을 구해줬습니다!”

글/ 둥베이 대법제자 한메이(寒梅)

[밍후이왕] 남편은 어려서부터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라 성격이 거칠고 이기적이며, 일도 하지 않고 남을 욕하기만 했다. 남편의 사촌 형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기분 나쁘면 개도 못 버틴다.”

어느 날 밤 남편이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그때는 아직 인력거였다. 이미 승객이 타고 있었기에, 인력거꾼이 정차하지 않자 남편은 욕설을 퍼부었다. 때마침 차에 탄 사람은 파출소 경찰이었고, 경찰이 차에서 내려 남편을 파출소로 데려가 난방용 파이프에 수갑으로 묶어, 하룻밤을 감금했다.

남편과 내가 퇴직(실업) 후, 친정아버지가 화물차 한 대를 사서 남편에게 운영하게 했다. 남편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든 악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먹고 마시고 외도하며 큰 도박을 했다. 남들은 모두 화물차를 운전해 돈을 벌었지만, 남편은 쓰는 돈이 버는 돈보다 더 많았다.

1998년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다.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로 자신을 가늠하며 엄격하게 수련했다. 수련 후 남편에게도 사사건건 양보하고 잘 대하며 다툰 적이 없었다. 남편도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수련을 지지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좋다고 알리며 배우라고 권하기도 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과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에 대해 전면적인 박해를 강행했다. 그해 9월 나는 베이징에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하러 갔다가, 내 거주지 경찰에게 납치돼 현지로 끌려와 1개월간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이 기간에 친정아버지는 우리가 운영하던 화물차를 팔았다. 돈줄이 끊기자 남편은 모든 화를 나에게 퍼부었다. 나의 대법 수련을 구실로 난동을 부렸으며, 나를 보기만 하면 어떤 경우든 욕했다. 나는 두렵긴 했지만, 남편과 따지지 않으며 계속 선하게 대했다. 남편은 중공 매체의 거짓말을 믿고 부처님과 대법을 비방했다. 남편에게 “당신은 자신에게 죄를 늘리고 있고, 그 죄는 용서받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전혀 말을 듣지 않으며 도리어 나를 욕했다.

남편은 내 화를 돋우려고 밖에서 사귀는 여자가 있고, 사이가 아주 좋아 그 여자가 돈을 대준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만, 그녀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원망하며 말했다. “당신네 집에서 차 한 대가 아니라 비행기를 사준다 해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야!”

나는 친정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했다. 낮에는 바삐 보냈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밥을 해 주고 집안일을 했으며, 아이도 돌보면서 변함없이 잘 대했다. 남편은 늘 낮에 실컷 휴식하고 밤이면 침대에 누워 나를 욕했다. 가끔 온종일 피곤하게 일한 나는 남편의 욕설 속에서 잠들었다. 남편은 잠든 나에게 욕을 들으라며 깨웠고, 나는 그저 묵묵히 들었다. 남편이 생트집을 잡는다고 깨달은 나는 줄곧 말대꾸하지 않았고, 남편은 욕을 하다가 지치면 그만했다.

한번은 나와 남편, 남편 친구와 함께 아래층 바비큐 노점에서 꼬치를 먹고 있었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나는 듣기 싫어서 일어나 친정집으로 가려고 했으나, 남편의 친구가 막아섰다. 남편은 술을 다 마신 후 위층에 있는 집으로 달려왔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매서운 표정으로 쏘아보더니 목을 졸랐다. 한참 지나서야 남편은 손을 떼고 또 한바탕 욕했다.

가끔 남편은 외식하면서 술만 마시면, 한밤중에 돌아와 소란을 피운 후 잠자곤 했다. 내가 어떠한 말을 하든지 아니라고 하며 말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남편은 무시하느냐며 욕했다. 결국 어떻게 욕해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남편은 더욱 화냈다. 나는 매일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했다.

2002년 말 어느 날 밤, 남편은 왠지 모르게 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무방비로 있는 상황에서 힘을 다해 내 왼쪽 머리를 한 대 때려 나는 멍해져서 방향을 분간할 수 없었고, 머리와 귀가 윙윙거렸다. 머리, 귀, 얼굴 반쪽이 모두 부어올라 며칠 동안 살갗에서 뼈까지 아팠다. 이번에는 심리적·정신적 감당이 한계에 다다랐다. 여덟 살짜리 아들조차 “우리 아빠는 ‘냉혈동물’이다”라고 말했다. 며칠 후 남편과 이혼했고, 나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2003년 초, 막 설을 쇠고 난 어느 날 저녁, 남편은 전화로 만나자고 했다. 나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남편은 갑자기 달려와 덥석 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전에 나를 그렇게 대한 것이 후회된다면서, 남들은 다들 부부 동반인데 자신은 혼자 외롭게 가족도 없이 살아간다며 나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남편이 이렇게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중에 봅시다”라고 말했다. 그 후 나에게 자주 전화로 돌아오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돌아가지 않으면, 나와 남편 및 시댁 사람들이 악연을 맺게 될 것이고, 모든 시댁 사람이 구원되지 못할 것이다. 시부모는 장사 때문에 남편과 함께 살 수 없다. 이혼으로 남편을 챙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시부모는 아들을 몹시 걱정한다. 내 아들도 아버지가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차별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문제를 처리할 때 당신은 선의로 남을 돕고 될수록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1] 나는 생각했다. ‘편하게 살려고 남편과 시댁 가족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마땅히 대법에서 수련해낸 자비심으로 가정을 다시 이루어야 하는 게 아닌가?’ 부모님께 재결합을 결심했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눈물을 펑펑 흘리셨고, 내가 다시 불구덩이에 뛰어든다고 생각하시며 나의 앞날을 걱정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사명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다른 생각은 더 하지 않았다.

2003년 여름 나는 남편과 재결합했다.

나는 돌아가서 이전의 일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없었던 일처럼 했다. 비록 남편이 여전히 예전처럼 일하러 나가지도 않고 돈도 벌지 않으며 가족을 부양하지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원망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대법을 이해해 구원될 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예전처럼 매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거나 사줬다.

남편에게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는 파룬따파의 진상을 철저히 이해해 더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과 아들에게 대법 서적을 읽어주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아들과 함께 법공부하면, 그가 “나도 좀 읽게 해줘!”라고 말해 남편이 대법을 읽고 나와 아들은 들었다.

남편은 더는 예전처럼 나를 대하지 않았다. 또한 나의 친정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점차 더 화목하게 지냈다.

2008년 남편은 밖에 나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했고, 사람을 대하고 일 처리하는 것이 이전과 많이 달라져,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남편은 더는 시댁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았고, 특히 시어머니와 시누이는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시어머니는 “파룬궁이 아들을 구해줬다!”라고 말했다. 시누이도 동생이 이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내가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편은 많이 변했지만, ‘강산은 쉽게 바뀌어도 사람의 본성은 바뀌기 어렵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남편의 불같은 성격은 가끔 드러났다. 달라진 것은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남편의 태도는 바로 누그러들었다. 때로는 바로 화를 내려다가 180도로 바뀐 평온한 어투로 말했다. 한번은 남편이 감격하며 말했다. “우리 다음 생에도 가족이 되자, 싸우지 않고 사이가 좋으니 말이야.”

2013년 시어머니와 내가 함께 돈을 내어 남편에게 택시를 한 대 마련해줬다. 그때부터 남편은 매일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돌아오며 열심히 일해야 함을 알게 됐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남편은 더는 먹고 입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고, 돈도 함부로 쓰지 않았다. 택시는 서비스업종이라 여러 부류의 승객을 접하기에, 일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년간 남편은 아무런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고, 나는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가끔 남편이 밖에서 불공평한 일을 당해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와 하소연하면, 나는 대법의 법리로 일깨워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화는 풀렸다.

나는 늘 남편에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2]는 법리를 말해줬다. 승객들이 늘 차에 소지품을 두고 가면, 남편은 무엇이든 주인에게 돌려줬다. 자주 휴대폰을 줍는데, 한번은 가치가 7천 위안(약 129만 원) 되는 아이폰은 주웠지만, 주저하지 않고 주인에게 돌려줬다. 예전에는 길을 가다가 5위안(약 920원)만 주워도 아주 기뻐했었다.

통상적으로 택시 기사들은 노인들을 태우기 싫어했다. 노인들이 택시에 오르내리는 것이 느리고 불안정하며 어떤 노인은 자신이 가려는 곳의 주소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택시를 타려고 손짓하면 많은 기사는 태우려 하지 않지만, 남편은 여태껏 거부한 적 없이 만나는 대로 바로 태웠다.

남편이 파룬따파가 좋다는 진상을 알고 복을 받았다. 택시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한번은 시골에서 도시로 돌아오는데, 눈이 많이 쌓이고 미끄러워 차가 도로 옆 도랑으로 돌진해 나무에 ‘꽝’하고 부딪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남편과 승객 두 명은 털끝만큼도 손상되지 않았다. 다행히 도랑이 그리 깊지 않아서 세 사람이 차를 도로로 밀어 올렸고, 차는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시내로 돌아와서 두 승객은 남편을 원망하지 않으며 요금까지 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 큰 난은 당신의 목숨을 앗아가기 위해 온 것이지만, 당신이 파룬따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기에 복을 받아 난을 최소화해 주어, 단지 차를 수리하는 3천 위안(약 25만2천 원)만 들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운이 좋은 겁니다.” 남편의 친구가 운전하다가 나무에 부딪혔는데, 차가 파손되고 사람이 죽어서 남편은 내 말에 수긍했다.

남편은 예전에 류머티즘이 있어서 양쪽 무릎뼈가 일기예보보다 더 정확하게 예보했다. 아프기만 하면, 흐린 날이거나 비가 내렸다. 몸의 다른 곳은 모두 뜨끈뜨끈한데, 무릎뼈는 오히려 늘 차갑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남편은 다리가 더는 아프지 않은 것을 발견했고, 이미 10여 년이 지났어도 아프지 않았다. 남편은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자신이 진선인(真·善·忍)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받은 혜택으로 여겼다.

2001년 중국공산당은 파룬궁(法輪功)을 모함하기 위해 이른바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을 꾸며낸 후, 미친 듯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했다. 나는 친정집의 상점에서 일했다. 가족들이 나의 안전을 걱정해 며칠 동안 집에 머무르라고 했다. 남편은 내가 출근하지 않은 것을 보고 이유를 묻고 나서, 노발대발하며 나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출근을 강요했다. 2007년 11월 나는 또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저의 아내가 저를 정말로 잘 대해줍니다! 돈을 얼마를 쓰든지 데려오겠습니다(구해내겠습니다).” 시어머니도 말했다. “내 아들에게 아내가 없게 할 수 없고, 손자에게 엄마가 없게 할 수 없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포함해 가족들이 큰 노력을 들여 나를 구해냈다.

내가 밤에 밖에 나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남편은 항상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집에 돌아와서야 안심하고 잠을 잤다.

내가 정성을 다해 노력했기에, 시어머니 온 가족은 파룬따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를 존중했으며, 모두 구원됐다. 시누이가 말했다. “이렇게 만나기 어려운 좋은 며느리를 우리 가족은 맞이했습니다!” 시누이의 아들이 말했다. “외숙모님은 정말로 좋습니다, 우리 외삼촌에게 시집오신 것은 정말로 눈이 멀었습니다!” 친척들도 모두 말했다. “이 집 며느리는 예쁠 뿐만 아니라 현숙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모두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으면, 저도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파룬따파가 정말로 좋다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3]는 이 법의 한 층차의 깊은 함의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다년간 중공이 파룬따파를 잔인하게 박해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두려워하고 나를 걱정하며, 큰 고통과 압력을 감당한 것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또한 남편이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했기 때문에, 나는 아주 뿌듯하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법해’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9/29/4284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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