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의 글 ‘원고를 수정하며 법에서 단련하다’를 읽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어머니가 상황을 파악하고 담담하게 ‘올해엔 참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글을 읽으면서 나는 “왜 기회가 사라지기를 기다리는가?” 하는 다급한 말이 나왔다.
문장의 표면상으로 볼 때 글쓴이의 어머니는 법회 참가의 기회를 다른 수련생에게 준 것이기는 해도 결국 ‘기다림과 의타심’으로 손해를 조성한 것이다. 매 차례 법회 원고모집 기간은 1개월 반 정도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의 원고작성을 돕는 과정에서 경지를 높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글에서 “이렇게 8년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8년간 원고작성을 도와줬다고 했는데, 이제는 도움을 받았던 수련생들이 스스로 혼자 원고작성을 할 수 있게 됐는지 모르겠다.
나도 7년 전 다른 수련생의 원고작성을 도와주어 제출하게 한 적이 있다. 당시 한 지역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때였는데, 그 지역 수련생 대부분이 법회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법제자로서 법회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먼저 알게 된 A 수련생과 교류한 후 그녀와 함께 단체법공부 팀을 찾아가서 법회 참가와 관련해 말을 하자, 그곳 수련생들이 “원고작성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밍후이왕의 문장을 찾아 읽어보라고 했고, 몇몇 수련생은 즉시 원고를 작성하여 가져왔다. 이미 원고 마감이 끝났으므로 그중에서 잘 쓴 원고는 내가 가지고 왔는데, 해가 바뀌면서 적극적으로 원고를 제출하려는 수련생이 많았고, 잘 쓴 원고는 스스로 제출하게 했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은 적극적으로 권했어도 듣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는 수련생은 밍후이왕에 접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밍후이왕에 접속해 배우라고 격려해주었는데 늘 ‘나이가 많아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던 한 수련생이 갑자기 컴퓨터를 사서 밍후이왕 접속을 배우게 되자, 다른 수련생도 따라서 하게 되었다. 그 후 수련생들은 법 안에서 교류하게 되었고, 밍후이 문장을 통해 동료수련생들은 서로 배움을 비교하고 수련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 법회 원고 마감 당일 오후 B 수련생을 만났다. 그녀에게 원고를 제출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며칠 전 내가 수련생들에게 전자 우편함에 원고를 쓰라고 한 이메일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 밍후이왕 교류 방송에서 계속 원고모집공고를 한 달 사이에 18일간이나 했는데 어떻게 몰랐느냐?”고 나무라듯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녀가 왜 방송공고를 못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매일 밍후이 방송프로그램을 그녀 아들이 녹음해주면 비로소 들을 뿐이어서 아들이 편지함을 열어서 보여주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직접 밍후이왕에 접속하지 않는 것은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는데, 그것은 바로 숨 쉬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글에서 두 어머니는 모두 자기 자식들에게만 의지하면서 스스로 발전하고 제고할 기회를 포기했으니, 그 결과는 후회스러운 것이다. 수련생이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수련은 속인의 일과 다르므로 처음 시작할 때는 알려주고 도와줘야겠지만, 그 후부터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해줘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번 전부 해결해준다면 수련생에게 의타심을 조성시킨다. 그것은 기술 수련생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방식처럼 잘못된 것이고, 다른 수련생의 수련을 가로막는다.
어느 수련생은 모순 앞에서 진지하게 안을 향해 찾는다. 비록 어떤 집착심을 찾지 못했다고 해도 모순이 해결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사부님 말씀을 따랐기 때문이 아닌가. 원고 제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내심에서 우러나와 쓰려고 하면 우리 곁에 계신 사부님께서 반드시 쓸 수 있게 해주신다. 정말 글을 쓸 줄 모르는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에게 대필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고, 녹음 후 원고작성 능력이 있는 수련생에게 부탁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원고작성 부담은 수련생 한 사람에게만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다른 수련생과의 관계에서 원칙이 있다. 수련생 자신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격려해주며 스스로 하게 한다. 잘 못 하는 곳을 발견하게 되면 살며시 보충해 줄 뿐이다. 나는 수련과 관련 있는 속인의 모든 기능을 수련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것 역시 수련의 길을 잘 걷는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수련에는 뒷문이 없다. 부딪히는 모든 일은 수련으로 제고하는 단계이므로 주동적으로 수련해야 비로소 유감을 덜 남기게 된다.
개인의 깨달음으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9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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