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에 ‘기술 관련 수련생에게 드리는 몇 마디 말’ 등 기술 수련생에 관한 문장이 여러 편 올라왔다. 기술 수련생으로서 이는 전면적으로 생각하고 되돌아볼 기회였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 역시 이 길에서 더듬거리며 19년을 걸어왔다. 최근에 몸소 느낀 점이 있어 기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2001년 말,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받고 돌아왔을 때 우리 지역의 자료점은 얼마 전 심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자료점 수련생을 포함해 중생구도에 참여했던 수련생 10명 정도가 납치됐다. 어떤 수련생은 고문을 당하고 실려 나올 때 바지와 옷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이런 끔찍한 소식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하지만 가족 수련생의 도움으로 그래도 소중한 진상 전단(수련생이 빗속에서 주운 전단을 가져다 복사한 것)을 아파트 집집이 붙였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했다. 한 부를 남겨 잘 아는 복삿집에 가서 또 몇백 부 복사했다. 두려워서 매번 전단 10장과 스티커 몇 개만 갖고 나갔고 거의 매일 했다.
이렇게 견지하는 과정에서 복사 품질이 갈수록 떨어지고, 내용이 너무 단일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때 우리는 지역에 자료점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주위에 컴퓨터나 프린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하나? 방금 박해받고 돌아온 나는 여전히 몹시 두려웠지만, 그때 많은 일이 나를 그 위치에 놓았고, 피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생명 깊은 곳에 있던 사명이 깨어난 듯, 나는 어떻게 해야 가장 안전하게 자료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아래 세 방면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1. 방금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내가 집에서 자료를 만들려면 위험이 너무 커 어머니 댁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고통 속에서 1년간 나를 기다렸기에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두렵고, 걱정된다면서도 나에게 보증금을 주면서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자료점에서 감히 하룻밤도 묵지 못했고, 내 생일에 오셨다가 기계 소리를 듣고는 집으로 가셨다. 나중에 사존(師尊)의 점화로 어머니는 자료점에 오기로 했고, 날마다 바쁘게 CD를 굽고 본을 뜨며 자료를 나누어 넣었다. 그때 사존께서는 어머니에게 천목을 통해 다른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격려해주셨다. 이렇게 80여 세 되는 어머니도 운 좋게 정법 수련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박해 형세가 더 심각해지자 어머니는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심장에 문제가 생겼고, 갑자기 자료점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머니의 부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전에 나는 어머니 앞에서 악인에게 납치돼 노동교양소로 붙잡혀 들어갔는데 이 일이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당시 직접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없었기에 나는 매주 피시방에 가서 수련생이 메일함에 올려놓은 암호화 파일을 내려받아 USB에 저장했다. 나처럼 나이가 좀 있고 종래로 피시방에 가본 적 없는 여성에게 이건 어려운 일이었다. 컴퓨터마다 USB 포트 위치가 달라 찾는 것도 서툴렀고, 대부분 뒤에 포트가 있어 눈에 띄기도 쉬웠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음이 줄곧 긴장돼 있었고, 내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처음 피시방에 갔을 때는 사존께서 ‘2004년 부활절뉴욕법회 설법’을 발표하셨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내려받을 곳이 없어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젊은이도 몇 명 찾았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피시방에 갔는데 밖에서 발정념하는 수련생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얼굴을 유리에 대고 발정념 했고,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내가 나왔을 때 수련생은 거의 울 뻔했다. 이때부터 나는 피시방에 가서 내려받기 시작했고, 비록 긴장됐지만 사존의 보호가 있었기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나중에 기술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개인 컴퓨터를 장만했고, 안전한 시스템을 설치해 다들 자유롭게 밍후이왕에 접속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이러한 과정은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수련 경험이 되었다.
2. 후에 일부 일들이 발생한 후 나는 전화를 쓰지 않고 개별 연락하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지혜는 오직 사존의 인도가 있어야만 나올 수 있다.
3. 돈을 쓰는 방면에서 몇 가지 규정을 정했다. 수련생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만약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준다면 그 돈을 특별비용으로 단독 사용한다. 자료점의 돈을 건드리지 않는데, 설사 내가 넣은 돈이라도 내 개인 용도로 써서는 안 된다. 자료점의 돈을 보증금이나 월세에 쓰지도 않는다. 이런 생각의 틀이 잡히자 사존께 말씀드렸다. “사존님! 저는 자료를 만들기로 했고 끝까지 하고 싶습니다. 가지(加持)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대법제자의 길은 사존께서 일찌감치 다 마련해 주셨다. 내가 자료점을 만들고 싶어도 어떻게 기계를 사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사존께서 마침 신경문을 발표하셨다. 인쇄할 곳을 찾는데, 마침 한 수련생이 나를 그 회사로 데리고 가서 직원들이 다 퇴근했고 내일이 휴일이라 문제없다고 말했다. 한창 인쇄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젊은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퇴로가 없어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수련생은 놀라서 계속 내 옷을 잡아당기며 말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 나는 자리를 뜰 수 있었지만, 수련생이 그녀와 같은 회사인데 수련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그 여성은 전에 파룬궁을 수련한 적이 있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수련을 그만뒀고, 게다가 방금 감정상의 상처를 받고 온 터였다. 이런 공교로운 배치는 우연이 아니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재빨리 자료점을 세울 수 있었다. 그녀가 컴퓨터를 다룰 줄 알기에 나는 컴퓨터와 소모품을 대신 구매해달라고 그녀에게 비용을 맡겼다. 또한 밍후이왕과 연락이 닿아 이때부터 ‘밍후이주간’과 진상 자료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나중에 연달아 몇몇 자료점을 세웠는데 모두 수련생이 단독으로 완성하고, 게다가 모두 가정 자료점이었다. 자료점 수련생들은 아주 바빴고 새로운 항목도 해야 했다. 나도 줄곧 바삐 보냈는데 수련 상태가 교류문장에서 말한 것과 비슷했다. “어떤 수련생은 바쁘기 시작하면 법공부와 연공을 중시하지 않고 심지어 오랫동안 법공부를 별로 하지 못한다. 연공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발정념할 때 손도 떨어져서 사악을 제거하는 작용을 전혀 일으키지 못하고,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다.”
내 주변에 확실히 수련생이 말한 것과 비슷한 상황들이 나타났다. “여러 해 동안 수련생들이 하나하나 박해받고 납치되며 심지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때 가장 괴로웠다. 그러한 고통은 무어라 형용하기 어렵다.” 한 여성 수련생이 있는데 정념이 강하고 발정념만 하면 입정 상태에 들어갔다. 그녀는 법공부도 많이 하고, 반 개오(半開悟) 상태에 처해 있었지만, 장기간 바삐 보내다 보니 심성에 문제가 생겼다. 이사하고 나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해외로 나가 수련하면서 돈도 벌려고 했다. 이 수련생은 자아(自我)가 비교적 강하고, 말하기를 싫어한다. 어느 날 그 집에 갔을 때 그녀는 나에게 며칠 뒤면 해외로 나간다고 말했다. 당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명백한 일면이 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하지만 수련생을 숭배하던 나는 그녀를 저지할 용기가 전혀 없었다. 그 후 얼마 안 돼 수련생은 다시 돌아왔고, 몸에 병업 가상이 나타났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에 마난(魔難)에 처했다는 것을 전혀 몰랐고, 중시하지도 않았다. 다시 찾아갔을 때는 그 남편(수련생)이 그녀가 성 병원에 뇌종양 수술을 받으러 갔다고 말했다. 너무 의외였다. 그녀가 수술하고 돌아온 후 그 집에서 단체 법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바빠 다른 자료점 수련생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옆집에 공안이 산다며 수련생이 오는 것을 만류했고, 내가 가져다준 신경문을 읽고 나서는 머리가 아파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이렇게 마난에 처한 수련생은 강대한 자아에 가로막혀 스스로 자신을 집안에 단단히 묶어 놓았고, 얼마 안 돼 세상을 떠났다.
원래 그렇게 수련을 잘했던 수련생이 자료점에 있으면서 수련이 따라가지 못했고, 일은 많이 했지만, 심성이 제고되지 않아 결국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었다. 만회할 수 없는 손실을 초래했고, 그녀 남편도 얼마 뒤 폐암 가상이 나타나 세상을 떠났다. 우리가 그들 집에 소모품을 정리하러 갔을 때, 원래 대법을 아주 지지하던 아들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인쇄하느라 숯가루를 많이 들이마셔서 폐암에 걸려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이 우리 두 집 돈을 다 써버렸어요.” 당시 나는 수련생에 대한 정, 특히 숭배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내가 만든 자료는 그보다 더 많다.’라는 일념이 스쳐 지나갔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결과 가래를 뱉을 때 가래 안에 핏기가 있었고 악취를 풍겼다. 처음에 냄새 때문에 참기 힘들었고, 나중에 냄새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면 핏기가 섞인 가래를 뱉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나중에는 납치되어 사오(邪悟)해서 큰 죄를 범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사존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갑절로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주셨다. 사존에 대한 감사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야만 조사정법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나중에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나는 안전 때문에 장기간 닫힌 상태에 처해있었는데, 강한 자아가 형성돼 쉽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다. 두려움이 많은 기술 수련생이 만약 자아를 내려놓지 못한다면 법리를 바르게 깨닫기 어렵고, 사존의 배치를 똑똑히 보아내기 어렵다. 이 방면의 교훈은 정말 아주 심각하다.
며칠 전, 사존의 호탕한 불은(佛恩) 속에서 나는 한차례 특수한 수련 과정을 겪었는데 이는 내 목숨을 구해주신 배치였다.
1년 전, 내 오른쪽 유방에 단단한 덩어리가 생겼는데 별로 개의치 않았다. 모두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빨리 자라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안으로 찾아보았고 많은 문제를 발견했다. 굽은 길을 걷고 큰 죄를 지었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 업력이 너무 크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고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죄책감에 눌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주위 수련생들은 나의 이런 생각이 시끄러움을 불러올까 봐 나와 관련 법리를 교류하기도 했다.
나는 사악이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법공부 팀에서 속인 때부터 시작된 색욕 방면의 문제를 폭로했다. 수련 후 이것이 아주 더럽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악한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꿈속에서 여러 번 고비를 넘지 못했다. 특히 젊은 수련생이 자료점에서 병업 가상으로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기분이 소침했다. 또한 사악의 교란으로 두려운 마음이 점점 강해져 이성 수련생과 함께 살았는데 이 누락이 사악에게 빌미를 잡혀 자료점에서 납치됐다. 수십 일간 단식과 반(反)박해를 하고, 생사를 내려놓아서야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로 정념으로 소굴을 뛰쳐나올 수 있었다. 같이 사는 동안 비록 그릇된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전통문화를 파괴한 것이기에 죄가 아주 크다. 나는 이런 것들을 최대한 다 폭로했고, 신체 상황도 법공부 팀 수련생에게 공개했다. 또한 여러 해 동안 동공(動功)을 거의 하지 않았고, 바쁘면 동공을 연마할 시간을 점유했지만, 종래로 보충하지 않아 이 방면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듣고 나서 수련생들은 모두 많이 놀랐지만 내가 확실히 바빴기에 다들 나를 위해 마음 아파하고, 내가 고비를 넘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어느새 반년이 흘렀다. 자료점을 하지 않는 한 수련생이 천목으로 내가 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의념 속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 그가 본 장면을 말했다. 그 며칠, 다른 자료점 수련생도 꿈에서 내가 박해받아 죽는 것을 보았고, 꿈에 본 모습을 분석해보니 숭배심이 박해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찾아보니 매번 내가 받은 박해는 모두 숭배심과 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발정념하여 제거했고 착실한 수련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 얼마 전, 한동안 다리에 힘이 없었는데 찾아보니 밥을 많이 먹는 이유가 기운이 없을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 당연히 시끄러움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른 바로잡고, 고비를 넘기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사존께서 바로 내 옆에 계신다는 걸 느꼈다. 이틀 동안, 저녁에 오른쪽 유방이 아파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래서 아파 깨어나면 제2장 공법을 연마하겠다고 결심했다. 그건 기운이 없을 때 제2장 공법을 연마하기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고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내가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닌가? 그럼 반대로 하겠다. 연공을 한 후 자고 싶으면 잘 것이고, 평소 집안일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하겠다. 아무리 기운이 없어도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고, 반드시 더 부지런해져야만 사악이 나를 죽이려는 배치를 타파할 수 있다. 명확히 인식한 후 이튿날 저녁에도 이렇게 했다. 결과 3일 째부터 다시는 자다가 아파 깨어난 적이 없었는데 이는 사존께서 나를 위해 감당해주신 것이었다.
내가 자신의 관념을 고수하면서 고비를 넘으려고 했기에 여전히 누락이 있었다. 겉보기에 단단한 덩어리는 아주 빨리 자랐다. 이번에 사존께서는 고비를 넘도록 수련생을 배치해주셨다. 천목으로 내가 수련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본 수련생에게, 갑자기 십여 일 머물 수 있는 집이 하나 생겼다. 그래서 믿을만한 수련생 몇 명을 조직해 나와 함께 대량으로 법공부, 연공과 발정념을 하자고 건의했다. 나와 얘기할 때 나는 관념에 단단히 가로막혀 이것이 사존의 배치가 아닐지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는 구실로 거절하자 수련생은 가슴 아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가로막는 것이 구세력이기에 내 처지가 더 위험해 한 가닥 희망만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경지는 정체 교류와 비학비수 환경이 없는 기술 수련생 사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러 해 동안 자연스레 형성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일하는 관념 때문에 기술 수련생들은 다른 수련생과 만나려 하지 않고 나 역시 이러했다. 이건 강요이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거부감이 들었다.
내 주위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기가 세고 가부좌를 오랫동안 할 수 있다. 많은 걸 감당하고 이곳저곳에 자료점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수련생은 줄곧 연공하지 않았고 가부좌하는 것이 바로 연공이라고 말하면서 아무리 교류해도 듣지 않았다. 나중에 한 번 납치된 후 간 경화 가상이 나타나 집으로 돌아온 후 배가 많이 부어오르고 피까지 토했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다른 수련생이 선의로 일깨워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뱀이 있는 작은 시골집으로 피해갈지언정 솔직하게 수련생들과 마음을 털어놓고 교류하지 않았고 자신을 꽁꽁 싸맸다. 물론 남의 시간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는 확실히 그녀에게 남이 뭐라고 말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체면을 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아냈다. 예전에 그녀는 병업 가상에 처한 수련생에게 해서는 안 될 말들을 해서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큰 부담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오는 것은 좋아하고 나 혼자만 올 수 있게 허락하면서 날마다 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주 바빴고, 가사도우미까지 하고 있어서 매번 가면 1~2시간 정도만 머무를 수 있었다. 특수 상황이면 3일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해 밥을 가져다줄 때도 집 안으로 감히 들어가지 못했다. 아이와 같이 왔는데 아이가 놀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다른 수련생들이 와서 함께 법공부하는 것을 거부했고, 나에게 준 열쇠마저 다시 가져갔다. 얼마나 강한 자아인가! 자신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의 마음도 아프게 했다. 그녀가 세상을 뜬 후 정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감당하고, 착하고 인내력이 강한데 왜 고만한 자아를 내려놓지 못해 구세력에 육신을 빼앗겼단 말인가? 정말 그럴 가치가 없다!
다행히 나는 자비로우신 사존의 점화와 수련생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 소중한 기회를 붙잡았다. 수련생이 다시 한번 내 현재 몸 상태를 묻자 나는 더 심각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말했다. “천목으로 당신이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을 본 수련생이 꿈을 하나 꿨어요. 나쁜 사람들이 한 사람을 단단히 묶은 후 죽으라고 말하면서 그를 내던졌는데 주위에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다들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수련생만 달려가서 ‘어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러면 사람이 죽지 않겠어요?’라고 말하고는 두려워하면서도 꽉 묶인 밧줄들을 하나씩 풀었어요. 다 푼 후 그녀에게 얼른 떠나라고 했고, 그녀가 강을 건너 맞은편에서 말을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본 후 깨어났다고 합니다.” 공교롭게 그가 이 꿈을 꾼 전날, 나는 법공부 팀에서 무의식중에 세뇌반에 있을 때 앞잡이에게 20시간 묶인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사실을 처음 들은 수련생들은 놀라워했고,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꿈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공교롭다고 생각하며 웃기만 했다. 꿈 얘기를 들었을 때 나의 첫 느낌은 그 묶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자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고 있기에 구세력이 내 육신을 없애려는 음모를 타파하려면 수련생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련생에게 좀 더 생각해보겠으니 약속 장소를 정한 후 8시 전까지 내가 도착하지 않으면 수련생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하지만 수련생은 계속 기다릴 거라고 확고히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거리를 지날 때 드물게 모두 녹색 신호등이 떴다. 그래서 속으로 이건 사존께서 가라고 하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치 않아, 만약 앞 거리에 있는 철제 난간이 열려 있다면 가라는 사부님의 점화라고 믿겠다고 생각했다. 철제 난간은 열려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아침에 갔을 때도 닫혀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도착했을 때 철제 난간 하나가 톱질로 잘려 나갔고 자전거가 지나갈 만한 통로가 생긴 것이 보였다. 그제야 이 일은 사존께서 다 배치해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감동했다. 이 일을 가족들에게 말하자 다들 희망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했고, 일부러 나를 위해 열린 그 작은 통로를 보러 갔다.
수련생들과 함께 고비를 넘는 19일 동안, 비록 가끔 자아에 가로막혀 이것저것을 거부했지만 사존께서 나를 위해 철제 난간을 열어주신 것을 생각하니 그 자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잘못을 승인하고 자신을 바로잡았다. 비록 고비를 넘기 힘들었지만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으로, 수련생들이 착실한 수련 상태에서 깨달은 법의 위대함을 보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고비를 넘은 후의 기쁨도 느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 결가부좌를 3시간 견지했고(천으로 다리를 묶음), 처음으로 포륜(抱輪)을 연속 두 번 2시간 견지했다. 사존께서 배치하신 수련환경은 정말 사람을 용련(熔煉)시킨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19일 동안 관념이 많이 개변됐고, 자신의 고만한 자아를 고집하는 것이 참으로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때 비로소 사존께서 말씀하신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1]의 다른 한 층 뜻을 깨닫게 됐다.
나는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와 수련생들의 커다란 헌신을 몸소 느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신심이 가득 찼다. 자료점을 위해 고생스레 헌신하지만, 수련이 따라가지 못해 사악이 누락을 틈타 병업 형식으로 세상 뜬 수련생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 부끄럽다. 만약 모두 나와 같은 환경이 있다면, 자비로우신 사존의 배치를 편협한 자아와 관념으로 가로막지 않았다면, 수련생들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체면을 내려놓고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면 본인과 가족, 수련생들이 가장 괴로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존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소중히 여기신다. 오직 사존의 가르침대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조사정법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우리는 법을 실증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기술을 선택했다. 이는 우리의 책임이자 영광이다. 여러 해 동안 우리 주변의 수많은 소중한 수련생들이 잇달아 박해와 납치를 당했고, 심지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형용하기조차 힘든 고통은 바로 우리 곁에서 발생하고, 실제로 겪고 있다. 우리 이 특수한 중생구도 항목에서 객관적으로 형성된 관념과 강한 자아가 구세력에 빈틈을 보였다. 그것들은 우리 육신을 없애 사전에 약속한 조사정법의 사명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마땅히 정신 차려야 하고, 다시는 그것을 방종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자기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정법(正法)에 속한다. 우리에게는 육신을 구세력에 맡겨 망치게 할 권리가 없다. 이는 사적인 일, 작은 일처럼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자아’가 법리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더는 그것을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 얼른 자아를 내려놓고 법리를 바르게 깨달아 사존께서 배치하신 길을 바르게 걷고 조사정법의 사명을 완성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신생(新生)’
원문발표: 2021년 9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16/4285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