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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악을 해체하며, 난관을 벗어나도록 돕는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4년에 법을 얻었다. 운 좋게도, 사부님께서 1994년 12월 광저우에서 개설하셨던, 중국에서의 마지막 법 전수반에 참가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만나 뵀으며, 광저우 하늘의 큰 파룬(法輪)을 보았다. 그 감동적인 장면은 내 마음에 영원히 새겨져 그 후의 수련에 튼튼한 기반을 다져 주었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라는 비할 바 없는 자부심과 행복한 마음으로 수련의 길을 확고하게 걸을 수 있었다.

대법이 박해받는 초기에 나는 여러 번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다. 여러 번 납치되어 갇혔고, 어떤 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이 넘도록 불법 감금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보호 아래 매번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사부님께서 돌봐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도저히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위대하심과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몇 가지 진실한 이야기로써 교류하고자 한다. 부적절한 점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사부님께서 연공장을 지켜주시다

우리 연공장은 한 대학 캠퍼스 내에 있었다. 연공장이 설립된 초기의 어느 날 아침 연공 시간에 연공하는 사람이 모두 오자 보도원은, 대학 측이 교내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연공 장소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했기에, 그날 연공이 끝나면 우리는 해산하며, 그것이 마지막 연공이라고 했다. 수련생들은, 어떤 공에 대해서는 원로 간부들에게 실내 연공장까지 제공하면서 우리에게는 밖에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듣기만 해도 불합리하다고 했다. 나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연공장의 책임자 다섯 명(나도 그중 한 사람임) 중 네 사람은,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연공 장소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그만두어야지 지도자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면서 해산에 동의했다. 이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퇴직 전에 대학의 서기였고, 한 사람은 대학의 처장이었으며, 한 사람은 대학의 학내 의사였는데, 그들은 모두 담당자를 찾아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도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막노동자였던 내가 담당자를 찾아가 봤자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연공 음악을 담당한 내가 사람들이 헛기침을 끝낸 후 음악을 틀자 우리는 연공을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아무리 해도 안정되지 않았다. 심장 박동 속도가 빨라지고 손이 떨리며 눈꺼풀도 계속 떨렸다. ‘설마 우리가 막 설립한 연공장이 이렇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해체된단 말인가? 이런 고덕대법(高德大法)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고 인류 도덕을 회복할 수 있기에 학생과 학교 환경에 좋은 점이 있다. 내가 찾아가 봐야겠어.’ 그러나 또 생각해 보니 내가 찾아가면 대법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수련하기 전에 제가 지도자를 찾아간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제가 개인의 이익과 상관없이 지도자를 찾아가려는 것은 우리의 연공 환경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가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바로 저를 차분해지게 해주십시오.’

이 생각을 하자 바로 쏴 하고 마음 가라앉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졌으며, 호흡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아서 매우 편안하고 미묘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길을 잃은 제자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자신 있습니다.’

나는 집에 도착한 후에 전화로 보위처장(保衛處長)을 찾아서 이 일에 관해 말했다. 처장은 연공 장소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장소를 바꾸라면서, 본 대학 부속 공장 부지로 장소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이것은 우리 연공장의 전체 수련생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모두 사부님과 법을 더욱더 굳게 믿게 되었기에, 박해 초기에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사악을 억제하여 보편적으로 잘했다.

자비는 악을 해체하며, 우리가 난관을 벗어나도록 돕다

1999년 8월, 나는 A, B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했다. 우리 세 사람은 빌린 방에서 잡혔다가 그곳 간수소로 납치되었다. 우리가 사악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고 평소처럼 법을 학습하고 연공했기에, 경찰이 우리를 이웃 현으로 보내 불법 감금한 것이었다. 이웃 현의 간수소에 가니 대법제자는 한 명도 없었으나, 간수소 교도관이 우리가 온 소식을 전하였기에, 이웃 현의 대법제자들이 잇달아 베이징으로 가서 법을 실증했다. 이렇게 해서 매일 베이징에서 잡혀 온 대법제자들이 간수소에 불법 감금되어 80여 명으로 늘어났다.

어느 날 밤, 간수소 복도에서 교도관 몇 명이 우리 방문과 창문을 지나 곧장 안쪽 감방으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세 사람은 얼른 앉았다. 안쪽 감방에서 문 차는 소리, 욕하는 소리, 사람 때리는 소리, 족쇄 소리가 섞인 매우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A 수련생이 우리가 경문을 외우는 것이 이웃 현의 대법제자를 성원하는 것이라고 해서, 우리는 큰 소리로 사부님 경문을 외웠다. 교도관이 고개를 돌려서 우리를 보더니 허둥거리면서 A 수련생도 데려갔다. B 수련생은 우리 둘이 연공하여 A 수련생을 성원하자고 해서, 나는 좋다고 했다. 내가 족쇄 때문에 가부좌를 할 수 없어 우리 둘은 포륜(抱輪) 동작을 취했다. 얼마 후 교도관이 A 수련생을 돌려보내자 B 수련생은 바로 손을 내려놓았다. 교도관이 내가 그곳에서 혼자 연공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을 부수고 들어와 나를 발로 차서 쓰러뜨린 후, 한쪽 팔은 어깨 위로, 다른 쪽 팔은 등 뒤로 하여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등 뒤에서 수갑과 족쇄를 쇠사슬로 묶었다. 이런 가혹한 고문을 받으면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으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했다. 오직 대법 사부님께만 무릎을 꿇는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몸을 옆으로 눕히고 양 옆구리를 번갈아 바닥에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동료 수련생이 솜이불로 두 옆구리를 받치고 좌우로 몸을 돌려주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나는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동료 수련생은 내 몸을 뒤척여 주느라고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정말 미안했다. 이때 나는 간수소 소장이 오는 것을 보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그가 교도관에게 손에 채운 수갑과 발에 채운 족쇄를 함께 묶은 쇠사슬을 빼라고 지시하였기에 나는 일어설 수 있었고, 수련생은 나를 보살필 필요가 없어져 잠잘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지만, 날은 밝지 않았다. 한쪽 팔은 어깨 위로, 다른 쪽 팔은 등 뒤로 하여 수갑을 찬 채 세 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몇 걸음 걸으려고 했지만, 무거운 주철 족쇄로 인해 생긴 발의 물집이 터졌고, 가슴이 아파서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 것 같지?’ 홀연 간수소 벽에 ‘이번 생에 후회는 없다’라고 새겨진 글을 보았다. 나는 단번에 정신을 차렸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격려하시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다. 그래, 나는 대법제자가 될 수 있어. 정말 이번 생에 후회가 없어.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다음 날 아침, B 수련생이 “너희 둘은 두려워하지 않고 잘했는데, 나는 잘못했어. 오늘은 나도 연공할 거야.”라고 말한 그때, 마침 그 교도관이 왔고 교도원이 뒤따랐다. B 수련생은 바로 정공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교도관은 문을 쾅 차고는 “네가 다시 연공을 해. 너도 수갑을 채우겠다.”라고 했다. B 수련생은 계속 연공했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교도관이 내게 “그녀의 손을 끌어 내려라.”라고 했다. 내가 “수갑을 채워라. 우리 모두에게 채워. 우리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즐겁고 후련하겠지, 그렇지?”라고 하자 그는 얼떨떨해지더니 “에이”라고 하면서 가버렸고, 교도원도 뒤를 따라갔다. 이때 나는 눈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들이 매우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가련했다. 아마 그들도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수련생이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수갑이 등 뒤에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건대 그도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대법제자를 박해한 죄가 하늘처럼 큰데 그가 어떻게 갚을 수 있겠는가?! 그 자신도 모르는데, 그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의 가족은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했다.

이때 우리 몇 사람은 모두 울었다. 묵묵히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가혹한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나, 이때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했고, 조급해졌다. 그날 오전 교도관들은 회의를 열었고, 오후에는 간수소 내의 대법제자를 고문하는 도구를 모두 철거했다. 우리가 대법 중에서 수련해 낸 자비심은 우리가 위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 자비로울수록 이 에너지는 더욱 커서 어떤 좋지 못한 것도 모두 해체할 수 있다.”[1] 몇 년 후 우리는 사부님의 이 설법을 보고 정말 감개무량하여 더욱 신사신법(信師信法)하게 되었다.

며칠 후, 연공하는 중에 교도관은 또 우리 세 사람에게 등 뒤로 수갑을 채웠다. 그들은 떠날 때 “너희는 너희 사부에게 너희를 모두 풀어 달라고 할 능력이 있구나. 내일 아침에 내가 와서 보고, 다 풀었으면 너희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라고 했다. 그가 떠난 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은 잠시 후 좀 노력하자 우리 세 사람 수갑이 연이어 벗겨졌다는 것이다. 교도관이 감히 그렇게 말한 것은, 그가 수갑을 매우 단단히 채웠기 때문이었다. 대법은 이렇게 신기하다! 다음 날 아침, 수갑이 풀린 것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비록 그가 약속을 지킬 방법은 없었지만, 그는 대법의 신기함을 깊이 느꼈다.

그 후로 우리가 다시 연공하면 그들은 못 본 척했고,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사부님 경문을 들려주었다. 한 교도관이 우리에게 닭 다리를 보내왔으나, 우리는 완곡히 거절했다. 가족이 우리에게 물건을 보낼 때, 교도원은 가족이 보낸 음식을 옷 속에 숨겨 가져다주었다.

사부님께서 위난 중의 제자를 구해주시다

1999년 10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할 때, 나는 납치된 후에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신문을 받고 고문에 시달렸으며, 주소를 말하라고 강요당했다. 그 간수소는 대법제자 50여 명을 불법 감금했는데, 나중에는 5, 6명만 남았다. 어느 날, 또 지하 신문실로 끌려갔다. 그때는 날씨가 매우 추운 11월이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문을 통해 신문실로 들어서자 너무 추워서 부들부들 떨렸다. 신문 중에 키가 작고 뚱뚱한 외지 경찰 한 명이 와서 내게 주소를 말하라고 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 오른쪽 팔을 뒷등 위에서 아래로, 왼쪽 팔을 뒷등 아래에서 위로 당긴 다음,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쌍배검(雙背劍)’이라는 이 가혹한 고문은 고통이 매우 심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나를 벽으로 밀고는 내 머리채를 잡고 벽에 들이박았다. 나는 매우 화가 났다. 이 사람은 정말 인성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나는 박해를 반대했다. 그는 나를 잡아당겨 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밀쳤다. 그리고는 술병을 수갑 사이에 넣고 두 번 비틀었다. 나는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땀이 흘렀다. 그는 주소를 말하지 않으면 세 시간 동안 수갑을 채워 불구로 만들겠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매초가 다 고통이었다. 이때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며 나를 관장하시는 사부님이 계신다는 것을 상기했다. 곧 사부님의 법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이 평소 늘 자비로운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늘 자비롭고 선(善)으로 남을 대하며,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가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가 안 되는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2]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나는 관(關)을 넘고 있고, 난(難)을 넘고 있다. 내가 화낸 것은 옳지 않다. 화내는 것은 마성이다. 대법제자는 언제나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떤 일도 우연한 것이 아니다. 왜 그가 나를 박해하러 왔을까? 우리는 생면부지이고 원한도 없다. 아마도 내가 몇 생(生) 전에 그를 해쳤을 것이고, 그는 내가 진 빚을 갚으라고 왔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대법에 대해 확고한지를 시험해 보았고, 나의 역사적 은혜와 원한이 평형을 이루게 했다. 나는 화를 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를 원망해서도 안 된다. 나는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대법의 이치를 깨닫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각자들의 수련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가 다시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나는 갑자기 통증을 느끼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자 나는 평온하고 확고하게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말하지 않아도 수갑을 풀어 주겠다고 했다. 얼마 안 되어 그는 수갑을 풀어 주었지만, 수갑을 풀어준 후에도 나는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내 두 팔을 잡고 힘껏 흔들자 나는 비명을 질렀다. 팔은 서서히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나를 감방으로 돌려보냈다. 큰 감방에는 나 혼자였다. 나는 널판 위에 서서 조용히 창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 장면을 회상해보니, 사부님께서 나를 극심한 고통 속에서 구해주셨고, 대신 고통을 감당하셨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 옷자락이 흠뻑 젖었다.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기에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신 것을 확실하고 확실하게 느꼈다. 내가 오랫동안 판자 위에 서 있었더니, 작은 창문 가까이에 온 교도관이 내게 “왜 그래요? 왜 그래?”라고 물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썼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펼쳐졌다. “구세력이 강제로 가한 마난(魔難) 중에서 바르게 걷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중국 대륙의 대법제자는, 마난의 박해 중에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관건적이다. 당신이 잘하고 못하고, 당신이 박해를 받고 안 받고, 당신이 바르게 하고 못하고, 박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두 당신 자신이 걷는 길, 당신의 사상이 생각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3]

중생은 모두 우리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말하고 그들을 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결코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된다. 지금,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각종 재난이 잇따르고 있다. 중생들은 생사의 고비에 처해 있다. 우리는 시간을 다그쳐 사람을 많이 구하고 우리의 역사적인 큰 소원을 이루어야 한다.

항상 제 손을 잡아 이끌어 주시고, 첩첩난관을 걸어 지나도록 보살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심 없이 도와주신 수련생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각지설법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각지설법11–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발표: 2021년 9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13/4307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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