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캐나다 퀘벡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몇 년간 수련 과정을 뒤돌아보았습니다. 목적은 자신이 수련에서 부족한 점을 찾고 빨리 제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유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을 대하고 수련생과 교류하려 합니다.
학업과 수련을 평형시키다
학업과 수련을 병행하고 있는 것은 저도 여러분과 같습니다. 대법제자가 할 일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리기를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학업도 지체하면 안 되고 일상생활의 각종 일도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작년 가을, 저는 새 전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공 수업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학우들이 학업에 스트레스를 받아 자주 휴학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시간을 배치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가했습니다. 예를 들면 토요일 반(反)박해 서명 행사에 약 한 시간 참여합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 ‘만약 1시간 서명받으러 나가지 않으면 너는 효율적으로 기타 일을 완성할 수 있는가?’ 대답은 자주 ‘아니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자주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광장에 가서 먼저 발정념을 한 후 수련생이 교류한 것처럼 대담하게 행인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미안하지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런 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왜 이것을 하며 서명 내용을 해석합니다. 광장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저는 한 사람씩 다가가 그들에게 말을 겁니다. 대다수 사람은 모두 아주 선합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전염병에 대한 은폐, 홍콩에 대한 통제, 수용소를 이용해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 적출 한 등등의 죄업을 말하면 사람들은 물론 서명으로 반(反)박해를 지지합니다. 일부 사람은 중공의 악행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서명하지 않는 소수 사람을 만나면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감사하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번은 행인에게 서명을 청하자 처음에 그는 서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서명의 목적을 말하자 그는 서명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사람의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자신의 두려운 마음과 환희심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마음이 더욱 순수해야 하고 완전히 법에 용해돼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상태가 좋을 때 사부님의 가지 아래 한 시간이면 서명용지 4장을 서명받을 수 있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없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전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동시에 자주 자신이 환희심이 생기지 않게 일깨우고 상대방이 서명한 후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선의적인 지지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 시간은 아주 충실하고 돌아온 후 오늘 하루는 아주 의미있게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학업과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 외에 일반 사람들 사이에도 기타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장 기본적인 일만 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한번은 친구와 동아리 활동을 어떻게 조직하겠나를 토론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언제 시간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이 주는 안 되고 너무 바빠. 다음 주에 2개의 시험이 있어. 다다음 주는 실험과 시험이 있고 이어 또 많은 일이 있어.” 결론은 몇 개월간 모두 안 되고 시간이 없습니다.
이 후배 여자아이는 저에게 자신이 시간에 대한 인식에서 빠져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답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는 아주 동정하며 말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늘 항상 바빠요.” 그녀는 아주 유능한 후배이며 전에 이미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이미 여러 가지 책임을 지고 있는 그녀는 기타 동아리를 조직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 저는 늘 한 가지씩 시간표에 배치해 놓고 한 번에 단지 한 가지 일에 전념할 수 있고 한 가지 외의 기타 일은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지금 우리 이런 바쁨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만약 평소 바쁘다고 해야 할 일을 계속 밀어버리면 영원히 완성하는 그날이 오지 않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바쁨은 정상 상태입니다. 한동안 적응한 후 바쁨에 대한 민감도는 떨어집니다. 기계 설정 중의 기선 설정(baseline)처럼 제로와 같습니다. 만약 한가로울 때 상태가 현재의 베이스라인이라면 80%까지 바쁠 때 압력을 느끼지만, 기계처럼 시간이 좀 지나면 새로운 상태를 정상 상태로 인정하고 이 베이스라인은 제로와 같습니다. 80%의 바쁨에 적응한 기계는 제로 된 상태는 비록 일이 많지만 바쁨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80% 바쁨은 이미 묵인해 제로로 됐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바쁨’의 상태를 새로운 ‘정상’ 상태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많은 여유 시간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더욱더 많은 항목을 배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번은 한 수련생이 온종일 바쁘게 일하고 베란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 말했습니다. “바쁜 중에 틈을 내.” 마땅히 이러합니다. 일을 바쁜 일 중 비어있는 시간에 배치해 놓고, 한 가지 일을 한 후 다른 일을 하는 것을 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체 법공부 혜택을 많이 보다
저는 현지 악단의 단원입니다. 2020년 1월 악단은 아침 법공부팀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5시부터 ‘전법륜’ 1강을 배운 후 1시간 연공합니다. 처음에 주로 젊은 사람이 위주로 했는데 사람이 많을 때 몇십 명이 됩니다. 한 수련생이 일어나지 못할 때 수련생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일깨워줍니다. 모두 비학비수하며 좋은 수련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혜택을 많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전에 아침에 법을 외운 경험이 있지만 견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수련생이 아침 법공부팀을 조직할 때 저는 아주 적극적으로 제시간에 참가했습니다.
수련생은 많은 대가와 심혈을 기울여 이 환경을 유지했습니다. 예컨대 여러 사람의 편리를 위해 수련생은 온라인에서 여러 사람을 위해 발정념 음악을 틀어주고 법공부 후 연공 음악을 틀어줍니다. 비록 기술에서 복잡하지 않지만, 매번 수련생은 두 개의 컴퓨터를 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은 어떤 원망도 없습니다. 얼마 전 노년 수련생이 아침 법공부팀에 가입했습니다. 법공부팀을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제때 법공부를 하지 못하면 그녀는 자발적으로 전화를 걸어 수련생이 법공부 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본래 아침에 몇 사람이 법공부 하다가 얼마 후 10여 명이 됐습니다. 법공부 장면은 자비롭고 편안했고 아주 장관입니다.
수련생의 무사(無私)한 대가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름에 몇 개월을 중단했고 가을부터 법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침에 법공부에 참가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며칠간 아침에 수련생이 전화를 걸어 나에게 법공부에 참가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처음에 스스로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고 귀찮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에게 나에게 법공부에 불러 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하지만 자신의 그때 상태는 이전처럼 좋지 않았고 심지어 매일 ‘전법륜’ 한 강의를 배우는 것도 보장하지 못했으며 연공은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이미 자신의 안일심과 나태함에 묶여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로워 저를 포기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한번 또 한 번 제자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침내 어느 하루 수련생에게 전화가 왔을 때 저는 비록 괴롭게 일어났지만 빨리 온몸이 정화된 느낌이고 졸리는 요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아침 법공부팀에 돌아왔습니다. 수련생 아주머니는 오랫동안 RTC 플랫폼에서 당직을 서서 아주 고생스럽습니다. 저는 처음 수련하는 상태의 마음을 잃은 저를 포기하지 않은 수련생에게 감사했습니다.
과거 청년 수련생 되찾는 데 도움을 주다
한번은 수련생과 어떻게 청년 대법제자를 도와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리고 과거 수련생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토론했습니다. 수련생은 저에게 과거 수련생과 연락하는 책임을 맡겨 그들에게 연락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체면을 중시하기에 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귀찮아하고, 거절할까 봐 두려워했고 좋은 마음이 좋은 보답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수련생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어떤 사람은 전화를 몇 번 걸어야 받아요. 당신이 가장 적합해요. 전화벨 소리가 울리면 일어나요.” 자신이 아침 단체법공부에 참가할 수 있는 것도 수련생의 도움으로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렇게 내가 그를 부르고 그가 나를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단체 수련 환경을 형성하겠습니까? 저는 여러 차례 수련생의 대가에 혜택를 받았기에 마땅히 최선을 다해 다른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깨닫고 한 분씩 이전에 함께 법공부 한 청년 수련생에게 연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끊임없이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을 극복하고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해 고려하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놀랍게 수련생들은 귀찮아하지 않고 반대로 제가 그들을 연락하자 감사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여태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하루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걸어 나오지 못한 청년 대법제자는 만약 사교 기회가 있어 다른 수련생을 만나면 아마 더욱더 많은 수련생이 걸어 나올 것입니다. 저는 공원에 숯불 파티를 열자고 건의했습니다. 사람의 정으로 연공인을 이끌어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려 했습니다. 기점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더욱 좋은 방법은 없었습니다. 협조인이 단순하게 회식만 하지 말고 청년이 함께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청년 수련생이 반감할까 걱정했습니다. 뜻밖에 수련생이 이 일을 상의할 때 거의 모든 사람은 협조인의 건의에 찬성했고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의 정념은 저에게 큰 격려를 주었고 이런 좋은 환경에서 수련하기에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몇십 명 청년 대법제자가 처음으로 진상 거점에서 함께 단체 연공하고 서명하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나이는 열 몇 살부터 30세까지 되고 그중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단체 수련 활동을 이탈했습니다. 처음으로 서명 활동에 참가할 때 편안함과 무거운 사상 장애를 돌파하고 나왔습니다. 한 어린 대법 제자는 서명판을 가지고 자신과 만나는 행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녀의 순수함에 진심으로 사람은 감동받았습니다. 저에게도 노력해 착실히 수련할 것을 일깨워주었고 순수한 자신을 되찾게 됐습니다.
수련생 아주머니들은 묵묵히 행사 후의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청년 수련생에게 더욱 잘하라고 격려해 주었고 진정으로 정체에 용해하게 했습니다. 협조인은 말했습니다. “청년팀이 진상 거점에서 단체 연공 할 때 장은 아주 강하고 행인은 지나갈 때 눈을 크게 뜨고 여러 젊은이를 봤어요.”
행사에서 많은 속인이 진상을 알아보고 촬영하고 서명란에 서명했습니다. 청년 수련생이 떠날 때 일부 일반인들은 그들이 원래 있던 위치에 서서 파룬궁 연공 동작을 모방하고 보면서 배웠습니다. 정경은 아주 감동스러웠습니다. 수련생의 무사한 대가와 원용에 감사드리고 사존의 교묘한 배치에 감사드리고 청년 제자들에게 또 한 번의 제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외로움
최근 한동안 저는 어떤 이유로 새 도시로 왔습니다. 좀 외로웠습니다. 저는 속인의 방식으로 이 고통을 해결하려 했습니다. 운 좋게 사부님의 도움 아래 수련생과 교류에서 인식했고 속인의 방식으로 수련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생명으로서 당신이 초기에 법을 얻었을 때의 그런 흥분, 이 대법을 얻은 후 그런 자부심, 다른 사람이 얻지 못하였는데 당신이 얻은 그런 느낌을 포함하여, 왜 지금은 없어졌는가? 정진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가?”[1]
그렇다. 왜 정진하지 못하는가? 당초 법을 얻은 그 마음은 어디로 갔는가? 그때 정말로 어떤 고생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넘기 어려운 관을 만나거나 제거하기 어려운 집착심이 있을 때 정말로 열심히 행했습니다. 그런 후 환골탈퇴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고생을 두려워하고 이런 고생을 하기 싫어하고 속인의 안일심, 향락을 추구하려 합니다. 그것이 어찌 수련인이라고 말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아주 부끄러웠습니다. 비록 간혹 삼촌, 아주머니 수련생이 자비롭게 저의 ‘상태가 좋다’고 칭찬하지만 제가 젊어서 격려해주는 것이고 사실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단점은 어떤 일이든 다 잘해 어른의 칭찬을 받은 후 더는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른이 만족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더 노력하고 더 잘 하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노력해도 칭찬은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가는 배로 치루어야했습니다. 내심으로 부족함을 느끼지만 또 습관적으로 표면에 만족하는 면이 있었고, 제고해야 하는 공간은 끝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응해야 하는 고통과 치러야 할 대가도 끝이없습니다. 더욱 많은 고생이 두려웠기에 현 상태를 만족했습니다.
당초 수련으로 걸어들어올 때 일종 긴장감과 위기감이 있었고 지금 따라가지 못하면 시간이 없고 떨어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므로 노력해 용맹정진했습니다. 하지만 주변 동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낮은 수준인 것을 보고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에 대한 표준요구를 낮추면서 그런 긴장감은 갈수록 나에게서 더 멀어졌습니다.
한번은 수련생과 밍후이왕 교류 글 ‘정확한 연공 동작을 소홀히 하지 말자’을 읽고 토론할 때 저는 이해가 안 돼서 수련생에게 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동작은 “하나의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2]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수련생은 답했습니다. 그것은 사부님의 자비이고 사부님도 말씀했습니다. “내가 서서히 하라는 말을 당신이 듣고 당신은 스승님께서 서서히 하라고 알려주셨으니, 그럼 서서히 하자고 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서서히 제고함을 허용한다.”[3]
저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은 수련생의 입을 빌려 저에게 점화해 주셨고, 느슨하면 안 된다고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대법 수련은 정진 또 정진해야 하고 줄곧 사부님의 정법이 끝날 때까지 대법제자가 수련원만으로 갈 때까지입니다. 사부님의 한마디 법을 붙잡고 좀 했다고 만족하면 안 되고 용맹정진해야 합니다. 사부님의 경문에서 자주 한마디 말씀하십니다. “저는 그에게 더 높이 올라가 보라고 했다.”[3]
청년 제자로 저도 더 높이 올라가야 합니다. 저는 자만의 마음, 안일을 구하는 마음, 칭찬을 듣기 좋아하는 마음을 찾았고 폭로된 후 더는 그가 숨어 있는 공간을 주지 않겠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고독하다고 느끼는가? 가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절대 이런 느낌이 없다. 법공부를 하고, 정진하면 어찌 이런 느낌이 있단 말인가? 정진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런 속인의 그러한 느낌을 감수할 한가한 심정이 생기는데, 이렇지 않은가?”[1]
그렇습니다.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속인 중의 안일은 제가 가지면 안 됩니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 늘 잃어버릴까 봐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꼭 잡아주세요.” 사부님, 제자가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사부님께서 꼭 제자를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021년 캐나다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1년 8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25/43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