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샹루이(祥瑞)
[밍후이왕] 각 고을의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 자료를 나눠주는 과정에서 우리를 교란하고 심지어는 공안에 신고하거나 대법제자를 구타하는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늘 만나게 된다. 우리는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로 위험에서 벗어났고 순조롭게 진상 자료를 세인들의 손에 전해주었다.
1. 순정한 선념을 내보내다: 저는 바로 당신이 잘되길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광산 구역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1시가 넘었다. 진상 자료 한 권을 한 광부의 집 문 위에 놓자마자 개가 한바탕 짖었다. 내가 재빨리 이 집을 떠나려 할 때 어구의 전등이 갑자기 켜지면서 문이 열리더니 한 남자가 소리쳤다. “뭐 하는 사람이야? 거기 서!”
당시 나는 이렇게 떠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발길을 돌려 다시 그 집으로 가 마주 서서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진상을 선물하러 왔습니다.” 동시에 진상 자료 한 권을 건네주었다. “보세요!” 그는 “난 안 봐!”라고 소리쳤다. 나는 또 말했다. “당신들은 갱(坑)에서 채굴하는데 아주 위험해요. 당신이 평소에 성심성의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생각한다면 위험을 당하지 않을 거예요. 위험을 만났을 때도 이 아홉 글자 진언을 성심성의껏 염하면 반드시 위험에서 벗어나 평안을 보장받을 거예요.”
그 사람은 태도가 180도로 바뀌더니 “그런가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그에게 당부했다. “꼭 기억하세요. 당신의 집 문 위에 진상간행물이 한 권 있으니 가져가서 잘 보세요. 진상을 똑똑히 알면 복을 받을 거예요. 당신이 쉬는 데 지장을 주어 미안합니다.”
내가 갈 때 그는 뒤에서 당부했다. “개에게 물리지 마세요!”
이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 몇 년간 자주 만났다. 어떤 때는 정말 긴장했지만, 아무리 긴장해도 나는 모두 마음으로부터 그를 위했고, 상대방의 태도가 얼마나 나쁘던지 간에 선의로 그에게 알려주었다. “아홉 글자 진언을 진심으로 읽으면 평안을 지키고 복을 받습니다.” 그에게 알려줄 때, 내가 이 아홉 글자를 읽을 때, 모두 진심으로 우러나와 말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상대방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히도록 일념을 보냈다.
사실 내가 상대방을 위하는 선념을 내보낼 때는 이미 공간장의 두려운 요소를 약화하거나 해체해버린다. 그때는 오로지 상대방이 구원받을 수 있기만 바랬다.
대략 2016년 여름, 우리는 비교적 큰 마을에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다. 그때도 이미 자정이 넘었다. 내가 어느 한 집 앞 삼륜차에 진상간행물 한 권을 놓고 돌아가는데 키가 장대한 한 남자가 웃통을 벗은 채 손에 칼톱(옛날에 사람을 처형하는데 쓰던 형구)을 들고 걸어오면서 내게 말했다. “뭐 하는 사람이야? 내 삼륜차에서 뭐 하는 거야?” 나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 안 주무셨어요? 방금 당신 차에 소책자 한 권을 놓았어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에요. 당신에게 진상 자료를 주러 왔어요. 우리가 만난 것도 인연이니 두 권 더 드릴게요. 많은 고위 관원이 왜 낙마했는지 보세요.” 이때 그의 말투는 누그러졌다. “왜 낮에 와서 배포하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낮에는 출근해야 하고, 또 제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인데 공산당은 사람들이 진실 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요. 이렇게 늦었는데 당신의 휴식에 지장을 주었네요.” 그는 이어 관심 있게 말했다. “조심하세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다른 사람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는 마음가짐과 말투를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한다. 당(黨)문화에서 형성된 냉담, 의심, 경계, 난폭 등 의식과 행동도 제약할 수 있다.
2. 돌발상황에 직면하면 반드시 사부님께서 곁에 계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번은 아주 외진 한 마을에서 한 수련생이 괭이와 쇠몽둥이를 든 4~5명의 마을주민에게 둘러싸였다. “당신, 어디에서 왔어? 뭐 하는 사람이야? 몇 명인가?” 나는 아주 멀리서 듣고 수련생에게 문제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급히 그 무리를 향해 달려갔다.
가까이 가서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가 물은 사람을 향해 말했다. “형님, 우리는 진상 자료를 드리러 왔습니다.” “무슨 진상인가? 어디 봐봐.” 나는 그에게 진상간행물 한 권과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CD를 건네주었다.
그는 보더니 말했다. “오, 파룬궁인가!, 우린 파룬궁을 상관하지 않아.” 그사이 말투가 완전히 변했다.
“우리는 이곳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데 당신들 4~5명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집집이 돌아다니니 우리가 묻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말했다. “네, 물은 게 당연해요. 이곳은 외진 곳이라 우리가 좀 늦게 도착했어요.”
나는 이어 그들에게 말했다. “현재 비록 교통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래도 또 시간적 과정이 있어요. 누구든 일단 어려움을 당하거나 급병에 걸리면 성심성의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읽으세요. 꼭 위험에서 벗어나고, 재난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은 웃고는 가버렸다
그중 한 젊은이는 당시 아주 흉했는데 다시 나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개에게 물리지 마세요.” 세인의 선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그들이 모두 구원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리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나갈 때마다 제자의 정념을 가지해달라고 사부님께 부탁드린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 사부님께서 곁에 계시기에 당연히 두려움이 없으며, 위태로워 보였던 일체가 또한 모두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 세인에게 진상 자료를 전달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생겨서는 안 된다
아주 멀고 또 걷기 힘든 작은 마을에서 진상 자료를 방금 다 배포했을 때,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한밤중에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가?” “당신들에게 진상을 알리러 왔어요.” 그는 못마땅해하며 말했다. “보세요, 당신들이 온 마을의 개들을 건드려 짖어대는 바람에 잘 수가 없잖아요.” 내가 말했다. “미안합니다, 우리는 곧 갈 겁니다.” 동시에 진상 소책자 한 권을 건네주며 “진상 소책자 한 권을 드릴 테니 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안 봐요!”라고 했다.
나는 아주 실망하면서 갔다. 마음속에 약간의 원망과 분노가 올라왔다. 왜냐하면, 그는 평범한 농민 같지 않은 인물이라 호감이 갔고, 그가 진상을 받아들일 것으로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싫다는 한마디가 당문화에서 형성된 나의 원망을 불러일으켰고, 머릿속에서는 “점잖아 보이는 놈이 진상을 주어도 거절하다니, 좋고 나쁨도 모르네.”라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생각하며 걷다가 어느새 주차된 곳에 도착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운전하는 수련생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다. 수련생은 듣고 말했다. “그 생각은 옳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을 구하러 왔는데, 그들이 받아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서는 안 돼요. 마땅히 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야 해요.” 수련생이 이렇게 말하자 나도 아까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 마땅히 제때 내 생각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우리도 곧 읍내에 도착하게 되었다. 맞은편에서 승합차 한 대가 오더니, 우리에게 좀 기다리라는 뜻을 비쳤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상대방은 우리를 조사했다. 핸드폰으로 차 번호판을 찍고는 또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읍에 들어서면 바로 파출소였기에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수련생은 차에서 발정념을 했다.
이때 뒤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오더니, 우리에게 협박하는 말을 했다. 당시 우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냥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승합차 기사에게 진상간행물 4권을 주었더니 그는 모두 받았다.
나중에 온 그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차 안에 있는 두 수련생을 보려고 하자 나는 보라고 했다. 원래는 그가 승합차 기사에게 앞에서 우리를 막으라고 지시하고 자신이 오토바이를 타고 뒤쫓아와 뭐 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다. 그는 우리를 나쁜 짓을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겉으로는 이렇게 보이지만 진정한 원인은 나의 그 당문화 마음이 불러온 것이 아닌가? 수련생이 제때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어떤 교란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시 사악한 중공의 탄압박해가 시작되려고 할 때 나는 여러분에게 한마디 말을 했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一個不動能制萬動)! 라고.”[1]
이 일을 통해 나는 자신의 집착심을 찾았다. 중생을 구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나의 자비가 부족한 것이다. 진상을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우리는 마땅히 자비롭게 중생을 대해야 한다. 당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영원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양지(良知)를 불러오지 못하리라 믿지 않노라”[2], 일 것이다. 우리는 악념으로 대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순정한 선념을 내보내야 한다. 그가 진상을 알리는 다른 대법제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그때는 꼭 진상을 들음으로써 다시는 대법 구도의 기연을 놓치지 말기를 바라야 한다.
“선의 최대 표현은 바로 자비이다. 그는 거대한 에너지의 체현이다. 그는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해체할 수 있다.”[3]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은 이 몇 년간 잔상을 알리는 중에서 나는 감명이 아주 깊다. 우리가 더 큰 자비를 수련해내어 더 많은 중생을 구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5 – 2005년 캐나다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가: ‘홍음3 – 제세’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 – 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8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22/4298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