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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에 대한 얕은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법공부를 할 때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수련인의 정념은 집착을 포기하는 것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마치 하나의 용기(容器)와도 같아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다.”[1] “수련생으로서 머리에 담은 것이 모두 대법(大法)이라면 이 사람은 반드시 진정한 수련자다.”[1]

사부님의 설법에서 수련인은 미시적인 데에서 거시적인 데에 이르는 하나의 용기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공간장의 우주 특성에 동화해야 할 불성(佛性)이 있는가 하면, 아직 바로잡지 못한 바르지 않은 요소가 있다. 수련인이 끊임없이 불성을 증강하고 마성을 억제하거나 해체하면 수련상태에 반영되는데 바로 사람들의 집착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성은 점점 강해지며 사람이 갈수록 선해진다. 그러면 용기(容器)도 갈수록 깨끗해진다.

때로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면 수련생이 신사신법(信師信法)하고 사람을 구할 때 참으로 정념정행(正念正行)하며 조사정법(助師正法)에서 신적(神跡)이 나타난 것을 본다. 수련생의 체득을 보니 나는 그렇게 강한 정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진상을 알리거나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법에서는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른 일이고 누구도 교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사상 속에 일부 부정적인 생각이 튀어나온다. 진상을 알렸다가 이 사람이 신고하면 어떡하지? 지금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있는데 자료를 배포하다 찍히지 않을까? 머리로는 ‘가짜 나(假我)’의 교란인 것을 알지만 이 악순환에서 배회했다.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왜 정념이 부족한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때 머릿속에 물질이 나타났다. 이 물질은 자신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명백해졌다. 원래 자신이 정념이 강하지 않다고 느낀 원인이 속인의 일을 중하게 보기 때문이다. 하나의 용기처럼 이 용기에 이 사람의 일체 요소가 담겨 있는데 대법제자는 사부님의 법에서 끊임없이 마성을 제거하고 불성에 충실해야 한다. 마성 즉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하는 동시에 불성이 충실해지고, 수련상태에 나타나면, 바로 정념이 강한 것이다.

원인을 찾고 내려다보니 사람의 물질이 왜 나를 괴롭힐 수 있을까? 나는 ‘탐내는 마음(貪心)’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 탐심은 이익심이 돌출되는 표현 중 하나이다. 이 탐심 때문에 현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고 탐심의 주도하에 생각은 상상을 통해 이익의 만족을 달성하고, 이는 사상업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때 만약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심성을 높이지 못하면 이런 무형의 부정적인 물질에 의해 통제될 것이며, 마치 그 사람이 잠든 것처럼, 주왠선(主元神)이 느슨해져, 좋지 않은 부정적인 물질이 교란한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주왠선(主元神)이 법을 얻는다. 주왠선이 자신을 느슨하게 하면 변형된 삿된 길로 갈 것이다. 때로 생각해본다. 수련한 지 20여 년이 넘었다. 사부님께서는 명백히 설법하셨다. 그런데 왜 사람의 것을 그처럼 실속있게 보는 것인가? 사부님의 법에서 나는 게으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수련인에게 사자처럼 용맹정진하라고 하는가? 사자는 목표를 정하면 멈추지 않는다. 그럼 나는 왜 게으름을 피우는가? 법공부를 진정하게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이 있어야만 어떻게 더욱 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법이 있어야만 길을 잘못 걷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법 역시 당신들 자신을 성취시키고 있다.”[2]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수련인이 정진하는 보장이자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체현이다. 우리 이 ‘용기(容器)’에 진정으로 법을 담아 사람의 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의 것을 많이 제거하고, 법을 많이 담을수록, 법에 동화하는 생명의 요소가 점점 더 많아진다.

개인의 체득이며, 층차에 한계가 있으니 맞지 않은 곳은 수련생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溶於法中)’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독일법회에 보냄’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9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5/4304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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