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호주 캔버라 파룬궁수련생
[밍후이왕] 2021년 4월 23일 밤, 호주 수도 캔버라 파룬궁수련생은 중국대사관 앞에 모여 촛불 추모 집회를 열고 22년 전 ‘4.25’ 1만 명 평화청원을 기념하고 중국공산당(중공) 박해로 생명을 잃은 파룬궁(法輪功) 수련인을 추모했다.
캔버라 파룬궁 단체 대변인 하오리(郝麗)는 말했다.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4.25’ 청원은 정의와 양심을 수호하는 도덕적 용기를 보여줬습니다. 이는 파룬궁수련생의 대선대인(大善大忍) 정신의 체현이자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신앙자유를 수호하고 진선인(真·善·忍) 우주 진리를 견지한 것입니다. 또한, 아무런 정치적인 요구도 없이 정부가 우리 수련인의 진실한 상황을 이해하도록 행한 것일 뿐입니다.”
“한 정부로 놓고 말하자면 이것은 진선인을 믿는 1억 민중을 받아들이고 민의를 따라 민심을 얻을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중공 당수인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로 파룬궁수련생 1만 명이 중난하이(中南海)를 포위 공격했다고 모함했고 국가 언론을 이용해 중국과 해외에 거짓말을 퍼뜨렸습니다. 아울러 이는 1억 명의 선량한 민중을 정부의 적으로 간주해 잔혹하게 괴롭히고 박해하며 모략을 꾸며 살해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이미 최소 4641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했습니다.”
하오리는 또 말했다. “스물두 번의 봄과 가을이 지나갔습니다. 대법제자들은 비록 그 공포와 피비린내가 가득한 밤낮을 지나오면서 이 지구상 전대미문의 사악한 박해를 감당해왔지만, 전 세계 파룬궁수련생은 20여 년 이래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갈수록 파룬궁 반(反)박해 진상을 알게 됐고 갈수록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희망을 존중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선악에는 응보가 따르는 것은 천리이며 정의는 마침내 악을 이긴다는 것을 확고히 믿습니다.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및 그것들을 추종하는 자들이 범한 천인공노할 범죄 행위는 반드시 법률과 천리의 제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안하무인 격의 중공은 파룬궁 박해 과정에서 해체로 나아갈 것인데, 바른 믿음을 박해하는 정권은 역사상 성공해본 적이 없으며 정의는 결국 악에 승리할 것입니다.”
‘4.25’의 산증인 “매우 소중한 기억”
캔버라에 거주하고 있는 파룬궁수련생 루(陸) 씨는 감개무량해 하며 그해 청원에 참가했던 경험을 전했다. “1999년 4월 25일, 저는 파룬궁수련생으로서 파룬궁을 위해 바른말을 하고 싶어 베이징 국무원 민원실에 갔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1. 불법 체포된 45명의 톈진(天津) 파룬궁수련생의 석방을 요구했고, 2. 파룬궁 서적의 합법적인 출판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3. 우리에게 합법적인 수련환경과 신앙 자유의 권리를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해 루 씨는 28살이었다. 그녀는 4월 24일 밤에 다른 수련생이 그녀에게 톈진 경찰관이 무리하게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붙잡아서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고, 경찰관에게 석방을 요구해야 하기에 당일 밤 베이징 민원실로 청원하러 간다고 전한 사실을 회상했습니다. “그때, 저는 즉시 함께 청원을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랴오닝(遼寧)의 한 작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밤이면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가 한 대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겉옷을 한 벌 입고 기차표를 챙겨서 곧장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매우 운 좋게 제가 기차에 탑승하자마자 기차는 곧 출발했고 다음 날 아침에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중난하이 서쪽[푸유제(府右街)]의 국무원 민원국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어보고 나서야 모두 각지에서 온 파룬궁수련생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서로 알지 못했지만 모두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습니다. 사람은 많았지만 매우 조용했고 남몰래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는 사람이 없었으며 다만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줄을 잘 서 있었고 조용히 서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록 4월 베이징 날씨는 많이 덥지는 않았지만 점심이 되자 그래도 20도 이상에 달했습니다. 저는 두꺼운 겉옷을 입고 있어서 매우 더웠지만 옷을 벗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 영향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바른 에너지장이 매우 강한 것을 느꼈습니다.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시간이 길어져도 날이 너무 덥다든가 식사하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희망을 가득 안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반 청원 과정에는 표어가 없었고 구호가 없이 고요했습니다. 마음속에 선념을 품고 중공 정부에 파룬따파 수련자들의 마음의 소리를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반드시 이 한 무리의 선량한 민중에게 원만한 답변을 해줄 것이라 믿으면서 이렇게 모두들 온종일 서 있었습니다.”
루 씨는 말했다. “저녁 무렵 소식이 왔습니다. 청원은 당시 국무원 총리의 직접적인 접대와 진보적 처리로 톈진 수련생들이 석방됐다는 소식에 모두들 돌아갔습니다. 매 한 사람은 돌아갈 때 자발적으로 묵묵히 자신의 주변을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루 씨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22년 이래 수련 과정에서 많은 비바람을 겪어왔습니다. 그때 ‘4.25’ 장면은 여전히 생생하며 매우 소중한 기억입니다. 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상이 폭로되는 것이고 파룬궁수련생이 세계에 광명과 희망을 전하는 것입니다. 더 많은 호주인과 모든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중공의 사악함을 똑똑히 간파하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5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5/42379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4/27/1920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