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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수련생, ‘파룬궁이 나를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다’

[밍후이왕] (밍후이 기자 독일 취재 보도) 독일 서부 라인 강변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가 유명한 도시 쾰른에는 관광객이 꼭 찾는 명소인 쾰른 성당이 있다. 2003년부터 대성당 문 앞 ‘파룬궁(法輪功) 진상 알리기’ 장소에는 늘씬한 몸매의 서양인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인내심 있게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권했다. 그녀는 17년 동안 이 고장에 있기만 하면 주말마다 날씨가 어떻든지 막론하고 계속 진상 알리기를 진행해왔다.

그녀의 모습에서 관광객들은 독일인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웃음과 어색함, 근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늘 상냥하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깊고 지혜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图:德国北威州旅游胜地科隆大教堂广场上的法轮功学员集会中,碧尔姬特发言揭露中共迫害。'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도시 쾰른 대성당 광장의 파룬궁 수련생 행렬에서 수련생 비르기트가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폭로하기 위해 연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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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비르기트(Birgit)이며, 60대에 가깝다. 20년 전,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은 그녀를 절망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했고 진정한 자신을 되찾게 해줬다. 1년 내내 진상을 알리면서 낯선 관광객에게 성심을 다해 긴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그녀를 수줍어하며 몇십 년간 말재주가 없는,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얼마 전 쾰른 성당 앞 우연한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쾰른 성당 앞의 우연한 만남

주말 어느 날, 비르기트는 다가오는 한 관광객에게 다가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세 걸음 걸었을 때 비르기트는 이 중국 관광객이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온화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망설이면서 눈을 마주 보며 그녀를 훑어보았다. 재빠르게 주변을 한 번 둘러보니 광활한 쾰른 대성당 앞에는 관광객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들 두 사람을 주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와 함께 감시당하지 않는 곳으로 가실 수 있나요?” “좋아요.” 비르기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근처의 한 카페로 들어갔다. 반 시간 남짓 그는 비르기트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당신은 왜 파룬궁을 수련합니까? 어떻게 배웠습니까? 누가 동작을 가르쳐줬습니까? 파룬궁을 배우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얼마나 오래 수련하고 건강해졌습니까?” 비르기트는 일일이 답했다. 헤어질 무렵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이것은 제가 줄곧 매우 알고 싶었던 문제에요. 오늘 드디어 알게 됐어요. 아낌없이 저에게 답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비르기트는 어린 시절에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젊은 시절의 그녀는 자신이 중국 관광객을 따라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몰입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방에 숨어 있던 여자아이

비르기트의 어린 시절은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자랐다. 잘못을 저지르면 어머니는 엄하게 체벌했다. 조금 더 큰 후에 어머니는 더는 그녀를 때리지 않았다. 대신 며칠 동안 그녀를 외면하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비르기트는 가능한 한 조용하게, 어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방에 숨어 있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텔레비전 시청을 하는 것은 그녀가 ‘위험’을 피하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방에서 그녀는 편안하고 안전하며 환상이 가득한 세상을 찾았다.

10대 때, 비르기트는 자신의 두려움이 그녀의 삶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비록 학교에서 일반적인 시험 성적은 매우 좋았지만, 종합 성적은 중간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수업에서 늘 말을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발언하지 않아, 학우들과 선생님의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늘 참여하지 않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는 발표할 때에 유난히 긴장했다.

계속된 두려움은 늘 그녀를 걱정과 비관에 빠뜨렸다. 그녀는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갖지 않았고 우울하고 소극적이었다. 대략 25살 때, 그녀는 몸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늘 독감과 화농성 편도선염에 걸려 약을 먹었고 약에 내성도 생겼다. 그 외에, 그녀는 모든 유제품에 알레르기성 천식을 앓았다. 격렬한 기침은 그녀를 하룻밤도 편안히 잘 수 없게 해 그녀의 업무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밑바닥까지 떨어지다

어느 날 밤, 그녀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온몸이 무척 가려운 것을 느꼈다. 애써 눈을 뜨려고 했지만 거의 볼 수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변형되었고 눈은 퉁퉁 부어서 한 가닥 틈만 남았다. 그녀의 온몸이 붉은색 발진으로 뒤덮여 가렵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일시적으로 가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10분 간격으로 차가운 물로 샤워해야 했다. 다음날, 의사로부터 그녀가 혈관 신경성 부종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은 순환기 부전과 사망을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이다. 비르기트는 다시 한번 강력한 약을 먹어야 했다.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 극에 달했다. 삶이 힘들고 지루해졌으며 어떤 때는 죽을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그녀는 각종 값비싼 보약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비타민 보충제와 자연 요법 또는 약초 요법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영적인 수련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자연 의학 및 질병에 관한 책과 심리적 문제들에 관한 책을 다량으로 샀다. 그 외에, 그녀는 각종 자신감 강화와 이완 및 호흡 기교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한 번에 수백 유로씩 쏟아부었지만, 희망과 노력으로 바꾸어 온 것은 또 한 번의 실망이었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없었고 극도로 허약했으며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져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2001년 여름, 한 건강 잡지에서 그녀는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에 관한 짧은 기사를 읽었다. 그녀는 왜 이런 평화로운 기공이 박해를 당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가장 심한 박해를 겪었으며, 여전히 신앙을 견지하는 이런 힘은 그녀에게 대단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는 정말 이 사람들이 가진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으며 즉시 파룬궁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러나 당시 비르기트는 파룬궁을 중국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마음속으로 아무런 희망도 품지 않았다.

얼마 후, 그녀가 쾰른 도심 거리를 산책할 때 문득 먼 곳에 ‘파룬궁’이 인쇄된 현수막을 보게 됐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즉시 다가가 보았다. 정보를 알리는 부스에서 한 파룬궁 수련생이 그녀에게 파룬궁이 중국에서 널리 전해진 것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을 알려줬다.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파룬궁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때 그녀의 건강 상태는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비르기트는 한 파룬궁 수련생 부부와 연락하게 됐고 부부는 매우 열정적으로 그녀를 손님으로 초대했다. 이 부부의 집에서 여주인이 그녀에게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물었을 때, 비르기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말은 저를 깊이 감동하게 했어요. 이것은 바로 제가 줄곧 찾아 헤매던 것이었어요. 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요.”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날, 그들은 함께 리훙쯔(李洪志) 대사의 1994년 광저우 설법 비디오를 봤다. 비르기트는 추억하며 말했다. “사부님의 말씀과 그분에게서 발산되어 나오는 자비는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저는 즉시, 마침내 자신이 되돌아가는 길을 찾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에 따라 살기로 다짐했어요.”

자신감을 되찾고 사부님의 가르침을 새기다

그녀는 마음이 매우 설렜고 규칙적으로 연공을 시작했으며 ‘전법륜’을 읽어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그녀는 자신에게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기나긴 하루 동안의 업무를 하더라도 더는 힘들지 않았다. 먼저 천식이 사라졌고 이어서 알레르기도 약해져서 결국 사라졌다. 심리적으로도 그녀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비록 수줍고 두려운 마음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조금 용감하게 변했다. 자신감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몇 사람 앞에서 말하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는 파룬따파를 찾게 되어 매우 기뻐요. 저에게 있어서 마치 기적과도 같아요. 대법은 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줬어요. 저는 마음속에 감동이 가득해요.” 몇 년 이후, 비르기트는 감사의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2003년 비르기트는 그녀의 남편 랄프와 함께 관광객이 많은 쾰른 대성당 앞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대법의 신기함과 수련이 한 개인의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직접 체득했다. 그녀는 파룬궁의 좋은 점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특히 귀한 중국인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박해당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이 자연스럽고 대범하게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몇 년간 중국 관광객은 보편적으로 해외 관광지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감히 접촉하지 못했고 감히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비르기트는 늘 앞에 녹일 수 없는 빙산이 가로막힌 것 같았다. 그리고 수줍음과 뛰어나지 못한 말솜씨가 그녀에게 장애로 느껴졌다. 쾰른 대성당에서 기차역까지 백미터 떨어져 있었고 사람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쭈뼛쭈뼛하며 말하게 된 것은 “당신은 파룬궁이 박해를 당하는 진상을 아시나요?” “우리가 박해를 제지하도록 도와주세요”라는 말이었다. 목소리가 낮아서 그녀 자신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

2004년 여름, 비르기트는 남편과 일주일간의 휴가를 이용해 미국 뉴욕에 왔다. 맨해튼 중심의 센트럴 역 부근에서 오가는 직장인에게 진상을 알렸다. 처음에 인파가 몰리자 비르기트는 손으로 전단을 나누어 줬다. “안녕하세요.”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바쁜 직장 엘리트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비르기트는 곧 불안과 망설임에서 벗어나 말하는 속도를 조정했다. 사람을 따라 몇 걸음 함께 걸어가면서 동시에 그녀는 가능한 한두 마디 말을 신속하게 마쳤다. 매일 8시간 동안 그녀와 남편은 물 몇 모금을 마시고 시리얼 초콜릿 한 조각을 먹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냉담하고 도도한 뉴욕인들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은 빠르게 지나치며 거절했다.

넷째 날, 아침에 깨어나니 그녀는 온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그녀의 말투에는 애원과 남편 랄프를 떠보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가요. 우리는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해요.” 남편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평온하게 말했다. 말투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연이어 7일 동안, 그 두 사람은 센트럴 역 앞에서 휴가가 끝날 때까지 무수히 여러 차례 ‘거절’을 당하며 다시 오갔다.

“저는 여러분의 나라에서 온 모든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뉴욕보다 생활 리듬이 상대적으로 느린 고향 쾰른으로 돌아와 보니 그녀는 문득 현지 시민과 관광객에게 인사를 건네고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 관광객은 이 늘씬한 몸매에 완곡하고 온화한 분위기의 서양 여성을 피하는 일이 드물었고, 심지어 그녀에게 의존하려 했다. 그녀는 중국 관광객들의 마음속 공포를 이해하며 늘 당황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중국 관광객에게 다가가 전단 한 부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상대방이 질문하고 싶어 하는 눈빛을 보이면 그녀는 웃음을 더하며 성심껏 이야기해준다. “중국인은 위대한 민족이에요. 중국인은 마땅히 아름답고 훌륭한 미래를 가져야 합니다.”

중국인을 만나면 그녀는 늘 리훙쯔 사부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그녀는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중국인을 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셨어요. 중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거짓말 속에 살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며 마음은 중국공산당의 목적에 따라 왜곡되죠.” 그녀는 사부님의 자비를 느꼈고 중국인을 매우 동정하게 됐다. 그녀가 중국 관광객에게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중국인은 매우 훌륭한 민족이에요. 마땅히 훌륭한 미래가 있어야 해요.”였다. 그녀는 늘 자신에게 말한다. ‘중국인을 구해야 한다. 중국공산당과 함께 파멸해서는 안 된다.’

한번은 그녀가 쾰른 기차역을 서둘러 가는 여성에게 인사를 건넨 후, 그녀에게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를 알려줬다. 그 중국 여성은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멈춰서 비르기트의 말이 끝날 때까지 들은 다음 비르기트에게 알려줬다. “문화대혁명 동안, 제 가족들은 거대한 고통을 감당한 후 살해당했어요.” 그 중국 여성은 이야기할 때 계속 눈물을 흘렸다.

비르기트는 마음속으로 중국인 여성과 마찬가지로 슬펐다. 비르기트가 말했다. “저는 그녀 마음속의 거대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어요. 사실 중국인이 실제로 입게 되는 상처는 이보다 덜하지 않아요. 저는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고문에 시달린 적이 있는 파룬궁 수련생으로부터 매우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10여 년간 해외 파룬궁 수련생들은 끊임없이 각 관광지에서 중국 관광객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있다. 쾰른 대성당 앞에서 수련생은 1년 내내 파룬궁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사진, 진상 현수막 표어, 다양한 양식의 전시 보드를 전시하며 신문, 잡지, 서적, CD 등 진상 자료도 있다. 대담하게 파룬궁 수련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접촉하는 중국인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하루는 비르기트가 한 중국 청년이 정보 부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서 한참 동안 보다가 마침내 전시 부스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말없이 파룬궁의 현수막을 봤고 매우 오래 봤다. 그 현수막 내용은 박해를 당하는 파룬궁 수련생의 사진과 중문 설명의 글이었다. 비르기트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을 때 비르기트는 매우 성심껏 말했다. “저는 여러분의 나라에서 온 모든 것을 매우 소중히 여겨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해요. 파룬궁은 제 생명을 구해줬어요.” 남성은 말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중국은 여전히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어요. 심지어 파룬궁 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해 이익을 도모해요.” 그가 말했다. “중국공산당은 대단히 악랄해요. 그러나 당신들 파룬궁에서는 진실을 이야기하죠.” 비르기트는 역대로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약탈한 이래에 각종 악랄했던 행적과 성행했던 살인을 그에게 알려주면서 방화벽을 뚫는 정보가 담긴 작은 카드를 그에게 건네줬다. 남성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러나 그는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비르기트는 단번에 깨닫고 그에게 삼퇴 표를 전해주었다. 그는 즉시 적었다. 그제야 그는 기뻐하며 비르기트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려는 갈망은 비르기트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녀는 중국인이 그런 거짓말과 유언비어를 더는 듣지 말고 파룬궁 진상을 알기를 희망했다.

또 다른 주말이 다가왔다. 그녀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몇 번 빗었다. 몸을 돌려 문을 닫고 차를 운전해 쾰른 성당 방향으로 향했다.

원문발표: 2020년 2월 5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5/4007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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