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한국 파룬궁(法輪功)수련생
[밍후이왕] 지난 4월 25일, 한국 파룬궁수련생들은 서울 중공대사관 앞과 부산, 광주 중국영사관 앞에서 ‘4.25 파룬궁수련생 평화 대청원’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동시에 개최했다.
20년 전인 1999년 4월 25일은 중국 파룬궁수련생 1만 여명이 수련의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베이징에 가서 평화청원을 한 날이다. 수련생들은 이 역사적사건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중공의 박해를 폭로함과 동시에 중공을 해체하여 공동으로 박해를 저지할 것을 사회 각계에 호소했다.
4월 25일 오전, 서울 지역 파룬궁수련생들은 서울 중공대사관 인근 명동에서 ‘4.25 평화청원’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4월 25일 오전, 부산 지역 파룬궁수련생들은 부산 중국영사관 앞에서 ‘4.25 평화청원’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4월 25일 오전, 광주 지역 파룬궁수련생들은 광주 중국영사관 앞에서 ‘4.25 평화청원’ 20주년을 기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한국 파룬따파(法輪大法)불학회는 기자회견 성명에서 “그해 중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기본권을 되찾고자 베이징에 모여 평화적으로 진행했던 4.25 대청원의 정신은 수련자의 높은 자태와 도덕적 풍모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겨질 것”이라고 밝혔다.
4.25 사건을 되돌아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불리는 파룬궁(法輪功)은 중국 전통문화에 깊이 뿌리를 둔 불가의 고층차 수련공법(功法)으로, 우주의 최고특성 ‘진선인(眞善忍)’을 수련의 근본원리로 하여 심성을 닦고 다섯 가지 공법의 간단한 연공동작으로 신체를 연마하여 몸과 마음의 건강을 이루는 심신수련법이다. 1992년 5월 13일 중국 길림성 장춘시에서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에 의해 최초로 공개 전수되었다.
오세열 한국파룬따파불학회 사무총장은 서울 기자회견에서 20년 전에 있었던 ‘4.25’ 사건의 경과를 되돌아보았다.
오 사무총장은 “파룬궁은 처음 전해졌을 때부터 수련효과가 탁월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내에 중국 전역에 퍼져 수련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며 “당시 중공 당수인 독재자 장쩌민은 이에 강한 질투심을 느꼈고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된 좋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파룬궁을 금지시킬 구실을 찾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998년 하반기, 정년퇴직한 일부 전국인민대표 노 간부들이 파룬궁에 대한 상세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결과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게 백가지 이로운 점만 있고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는 결론을 얻었으며, 아울러 그해 연말 해당 조사보고서를 당시의 중공 당수 및 정치국에 제출했다.
위와 같은 조사보고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의 신속한 전파는 사람의 사상과 행위를 전면 통제하고 있는 중공 독재정권의 민감한 신경을 건드리게 되었다. 1998년 당시 중공정법위서기를 맡은 뤄간은 공안계통에 명령을 내려 전국적으로 ‘비밀 조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했고 구실을 찾아 파룬궁을 금지하려고 시도했으나 매번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함”이라는 조사결과를 얻을 뿐이었다. 그 무렵부터 각지의 일선 공안부문에서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연공하는 수련생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민가에 무단 침입해 개인의 사유 재산을 불법 몰수하는 등 인권 침해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한편 뤄간의 동서이자 중공 어용학자인 허쭤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각지에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글을 끊임없이 발표하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11일, 허쭤슈는 중국텐진교육학원(天津敎育學院)의 ‘청소년박람’이란 잡지에 파룬궁을 왜곡하고 음해하는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이에 톈진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톈진교육학원을 찾아가 시정을 요구했고, 잡지사는 내용정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톈진시 공안국은 갑자기 3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을 구타하고 45명을 체포했다.
4월 25일 베이징, 톈진, 허베이 등 지역에서 올라온 1만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국가 민원접수부문인 국무원 신방국(信訪局, 중국 국무원 소재지인 중난하이와 인접)에 모여 평화청원을 진행하며 텐진 등지에서 불법 체포된 수련생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청원은 일체의 구호와 표어가 없었으며 평화롭고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당시 주룽지 국무원 총리는 수련생 대표들을 만나 협상을 주선했고, 이 협상에서 정부는 수련생 대표들이 제기한 세 가지 청원 안건을 받아들였다. 세 가지 안건은 첫째, 톈진에서 체포된 파룬궁수련생들을 무조건 석방하고, 둘째,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평화적인 수련환경을 보장하며, 셋째, 파룬궁 수련서인 ‘전법륜(轉法輪)’ 의 출판을 허가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체포되었던 수련생들이 즉시 석방되었고, 청원에 참가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저녁 9시 경 모두 자리를 떠났다. 1만여 명의 수련생들이 모여 있다가 떠난 자리에는 휴지조각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전 세계의 언론은 파룬궁수련생들이 비폭력과 평화정신에 입각하여 청원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4.25’는 파룬궁이란 이름을 세계무대에 알리게 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4.25’의 평화적인 해결은 권력에 목마른 장쩌민의 질투를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4월 25일 당일 밤, 장은 ‘파룬궁과 싸워 이기겠다’고 부르짖었다. 그는 파룬궁을 탄압하려 했으나 믿을 만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게 되자 ‘4.25’는 ‘중난하이를 포위공격 한 것’이라고 음해했다. 장은 나아가 주위의 반대를 무시하고 그해 6월 10일 이른바 나치의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해당하는 파룬궁 탄압 전문조직 ‘610사무실’을 결성하고,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강행하여 이로부터 전 중국인들에게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오세열 사무총장은 “이제 중국 내에서 장쩌민과 공산당이 상호 이용하여 파룬궁을 탄압한 불법행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하고 파룬궁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하며 수련생들이 입은 피해는 모두 보상되어야 한다. 아울러 불법 탄압에 가담한 장쩌민과 그 일당들을 반드시 사법처리함으로써 중국 사회에서 20년 동안 잃어버렸던 정의와 도덕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4.25’ 청원을 통해 지켜본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1999년 4월 25일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 수련생들의 평화청원에 참가한 적이 있는 교포 수련생 옥씨도 이날 서울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그는 “당시 파룬궁수련생들이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인데 이 얼마나 좋은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게 뭐가 잘못인가? 중앙에서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니 베이징에 가서 정부에 바른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20년 전 상황을 회상했다.
“그 당시 베이징에 모인 수련생들이 매우 많았는데 비록 서로 간에 잘 알지 못했지만 다들 스스로 인도와 도로를 내주었고 떠들지 않았으며 아무런 구호 없이 아주 평화로웠습니다. 나중에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그 자리를 조용히 떠났습니다.”
그는 또한 당시 이 사건의 영향이 매우 커서 그 후 각 지방 경찰들이 모두 알게 됐다고 했다. 2000년 10월 경 옥씨는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경찰에 납치돼 선양 룽산교양원(龍山教養院) 세뇌반에 감금당했는데 그때 교양원의 교도관 대대장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이 좋은 사람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지휘가 필요 없을 정도로 담배 피우는 사람도 없었고 떠날 때 바닥에 종이 한 조각 남기지 않았는데 내 생각에 공산당이었다면 이를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 믿어요….”
단지 ‘진선인’의 수련 자유를 얻기 위해 평화청원을 하게 된 것
1994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올해 72세인 최씨도 서울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그해 ‘4.25’ 평화청원 당시 그녀 역시 마침 청원을 위해 베이징으로 향하는 길에 있었다. 최씨는 “텐진에서 40여명의 수련생들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을 체포한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에 우리 선양의 많은 수련생들은 함께 기차역에 가서 표를 끊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붙잡혔던 수련생들이 이미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바로 표를 반환하고 해산했습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녀는 당시 괴로웠던 심정을 언급하며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할 뿐인데 왜 탄압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됐지요. 중국 헌법은 사람마다 모두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우리 또한 다른 요구 없이 단지 수련의 자유를 요구할 뿐인데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어 “많은 분들이 수련을 통해 이전에 병원에서는 치료할 가망이 없었던 간암, 위암, 폐암 등 불치병이 다 나았는데 그야말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을 잊을 수 없어하는데 우리 수련생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대법(大法)이 터무니없는 누명을 쓰고 있는데 어찌 방관할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4.25’ 평화청원, 모범 보여줘…. 박해가 하루 빨리 종식되길 기원
4월 25일, 서울 중국 대사관 인근 명동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 수련생 정진현 씨.
2004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정진현 씨는 4.25 행사에 올해로 10번째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정씨는 “중국에선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어 1999년이면 질서가 없는 시기였을 수도 있었을 텐데 1만 명의 시민들이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는 사실이 획기적이고 놀랍다”고 했다.
4월 25일, 부산 중국 영사관 앞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 수련생 권은숙 씨.
부산 중국 영사관 앞 기자회견 행사에 참가한 권은숙 씨는 당시 중국 정부가 평화적 청원을 무시하고 탄압을 시작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심지어 “중국 공산정권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을 통해서 파룬궁의 참모습을 왜곡했다”며 “왜곡된 진실을 반증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가 바로 평화적인 4.25 청원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파룬궁 수련 전에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다는 권씨는 수련을 하면서 “우주와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 ‘진선인(眞善忍)’의 높은 가치를 본원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수련을 통해 삶에 대한 의의와 진리를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4월 25일, 부산 중국 영사관 앞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 수련생 심상신 씨.
2001년 5월부터 수련했다는 대구 수련생 심상신 씨도 파룬궁 정신을 보여준 ‘4.25’ 평화청원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 부산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심씨는 “파룬궁 수련의 원리를 깨닫고 수련을 하면서 건강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며 “기억력도 좋아지고 술‧담배를 끊었으며, 전 가족이 함께 수련하면서 파룬궁의 좋은 점을 직접 체험했다”고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4월 25일, 부산 중국 영사관 앞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국 수련생 김순옥 씨.
울산에서 온 한국 수련생 김순옥 씨는 “당시 그 자리에 없었지만, 그때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루빨리 진심이 전해져서 탄압이 중단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원문발표: 2019년 4월 30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문장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19/4/30/3857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