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9월 13일 일요일, 2015년 한국 ‘파룬따파(法輪大法) 심득교류회’가 속리산 유스타운에서 개최됐다. 각지에서 온 파룬궁 수련생 천여 명이 당일 교류회에 참석했다. 수련생 9명이 대법 수련 후 ‘진(眞)ㆍ선(善)ㆍ인(忍)’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심신의 건강을 얻으며 사회 각계에 진상을 알린 체득을 여러 수련생들과 공유했다.
법회 당일 새벽, 수련생들의 단체연공 장면
2015년 한국법회 전경
2015년 한국법회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심득체득을 발표하고 있다.
모순 중에서 자신을 찾아 온 가족이 대법을 얻다
경북 영주 수련생 김조이 씨는 대법 책을 처음 읽던 그날 평생 처음으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어떤 문제든지 자신은 잘했고 상대방이 전부 잘못했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그녀였다.
김씨의 아들은 또래보다 영특하지 못하고 말수도 적은 탓에 그녀는 아들에게 늘 야단과 잔소리로 일관했으며 그렇게 키워 온 아들은 언제나 그녀에게 심적 고통을 안겨줬다. 법을 얻은 후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아보게 됐다. 결국 고통은 아들을 키우면서 자신의 욕심으로 인한 좋지 못한 행동과 말들이 업력이 되어 자신과 아들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자신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자 부족하게만 느꼈던 아들이 어려운 시험에 하나하나 합격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법을 얻기 전에 그녀는 자신을 힘들게 한 부모님, 남편, 자식이 늘 원망스러웠고 동료 몇 명과도 늘 불편했었는데 법을 얻은 후에는 그 모든 것들은 자신의 업력 때문에 생긴 고통임을 알게 됐다. 모순 중에서 안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으니 남편과 아들, 심지어 결혼한 딸까지 가족 모두가 잇달아 대법을 얻어 함께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신수련생인 그녀는 최근 장쩌민 형사고발 연대서명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법노정을 바짝 따라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수시로 안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심태를 바로잡으며 정념으로 진상을 알렸다. 그렇게 두 번에 걸쳐 주말에 영주에서 받은 서명이 900여명에 달했다.
“대법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꿨고 선타후아를 실천하게 됐다”
서울수련생 기용길 씨는 수련 전 무리한 노동의 후유증으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몸이 비만해지고 고혈압에 혈액순환까지 되지 않아 얼굴이 빨갛고 푸르스름해서 남 앞에 잘 나서지도 못했다고 한다. 비싼 약물치료를 하면서 억지로 버텼지만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고 사는 것이 마냥 답답하고 힘들기만 했다.
처음 대법을 접하던 날, 그는 1장부터 4장까지의 연공동작을 수련생을 따라 해보기만 했는데도 연공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는 걸음이 누가 밀어주는 것처럼 빨라 참 신기했다고 한다. ‘파룬궁’이라는 책을 처음 다 읽고 난 후 그는 먹고 있던 모든 약을 전부 쓰레기통에 버렸고 그러면서 ‘죽든지 살든지 나는 여기에 전념을 하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에는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는데 먼저 빨갛고 푸르스름하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배가 들어가고 몸이 가벼워져서 멜빵도 벗어 버렸다. 남 앞에 서기도 부끄러웠던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다고 칭찬을 했다. 힘들고 답답한 인생을 살다가 행운으로 대법을 만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원래 성격이 불같이 급하고 이기적인 마음도 강했던 그는 버스운전을 직업으로 하면서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운전이 더 거칠어지고 교통법규도 위반하는 경우가 잦았다. 배차시간 때문에 택시와 자가용이 끼어드는 것도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그는 ‘사부님께서 선타후아(先他後我)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선타후아를 했는가를 생각해보며 굳이 택시나 자가용이 끼어들겠다는데 못 비켜 줄 필요가 있을까? 그들도 바쁜 사정이 있으니 끼어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타후아를 못했다는 생각에 택시나 자가용이 끼어들려고 하면 알아서 먼저 멈추고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자 그 이후로 신기하게도 그가 가는 도로가 더 확 트이고 배차간격도 더 잘 지킬 수가 있게 됐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그는 급한 성격을 고치고 여유 있게 남을 배려하면서 운전할 수 있게 됐다. 마음을 바로잡자 새로 옮겨간 버스회사는 배차간격이 길어 교통법규를 위반할 필요도 없어졌다.
2009년에 법을 얻은 후 그는 보도소 단체 법학습에 착실히 참가하면서 교류를 통해 법공부뿐만 아니라 진상 알리기의 중요성도 인식하게 됐고 시간 나는 대로 열심히 각종 진상 알리기 활동에 참여했다. 2010년 현지 션윈(神韻)공연 홍보기간에 그 역시 홍보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신수련생이었던 그는 매표 경험도 없고 말재주도 없었으며 외모에도 자신이 없어 과연 표를 팔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루는 그가 자주 다니던 단골집 청과물 사장님을 찾아 홍보를 했는데 “기씨가 권하는 거면 좋은 걸 거야”라며 종업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해야겠다며 단번에 티켓을 50장 달라고 했다. 당시 그는 자신같이 말주변도 없는 신수련생에게 매표의 기회를 주신 사부님의 배치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법 얻은 후 온 몸 가뿐해져, 자신을 잘 수련해야 사람을 잘 구할 수 있어
1998년 9월 중국대륙에서 법을 얻은 량청잉(梁成英) 씨는 원래 찬 음식과 매운 음식을 먹지 못했는데 사부님의 설법비디오를 본 첫날부터 먹을 수 있게 됐다. 연공한지 보름도 안 되어 전에 앓고 있던 관절염과 복통이 전부 사라졌다. 매일 일을 많이 해도 집에 돌아와 연공만 하면 피로가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이익도 담담히 보라고 하신 대법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요구했고 남편이 자신에게 편안한 삶을 주지 않았다고 더는 원망하지 않았다. 일을 해주면 어떤 사람은 돈을 적게 주거나 혹은 돈을 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들과 쟁론하지 않았다.
99년 대법이 박해를 당한 후 경찰과 가도위원회(주민센터)에서 매일 그녀 집에 찾아와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2004년 중국경찰의 체포를 벗어나기 위해 량씨는 한국에 왔다. 그 후 그녀는 매일 인천국제여객터미널 부두에서 중국관광객을 상대로 진상을 알렸다. 태도가 좋지 않은 관광객을 만나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늘 조용하고 느린 말투와 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렸다. “대륙에서 여러분 집 문에 대법제자가 붙여놓은 진상자료를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십니까? 대륙에서 진상자료 하나도 대법제자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만든 것입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는 것)를 권하고 있겠습니까? 우리 중화의 아들딸들은 모두 소중합니다. 대법제자의 대선대인(大善大忍)은 모두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단지 좋은 사람이 평안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소멸할 때 중국인이 연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비심에서 우러나는 그녀의 진상을 듣고 많은 중국관광객들이 모두 삼퇴 성명을 했다.
가족과의 모순을 극복하고 션윈매표에 적극 참여
창원수련생 김홍곤 씨는 대학 졸업 후 뛰어든 개인 사업에 두 번 실패한 후 뒤늦게 선택했던 공직생활로 마음 한구석이 항상 위축되어 있었고 게다가 가정생활마저 순탄하지 않아 지친 심신을 이끌고 세상의 미혹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한번은 고등학생인 아들의 두발 상태가 몹시 불량한 것을 보고는 이발을 하라고 언성을 높였는데 왜 소리를 지르느냐고 아들은 크게 반항했다. 반성해보니 자신을 연공인으로 여기지 않고 작은 일마저 넘기지 못해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들을 믿기로 하고 두발에 대해 더는 꾸짖지 않고 부드러운 말로 자기 의견을 말했다. 아들이 장시간 컴퓨터 게임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봐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아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며칠 후 아들은 태도를 바꾸어 그에게 말을 걸어왔으며 요즘은 스스로 외모를 단정히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진로에 관해 수시로 아버지에게 상담을 요청할 정도로 그들 부자 사이는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수련 중에서 부인과 관련된 관은 정말 격렬하게 다가왔다. 처음에 매번 아내가 안하무인격인 언행을 할 때마다 그 역시 업력에 따라 배치된 수련 중의 관임을 망각한 채 아내와 함께 크게 화를 내곤 했다. 이후에 아내와의 관계는 수련 중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임을 깨달았다. 한번은 악을 쓰며 이혼을 요구하던 아내는 결국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법이 있고 사부님께서 계시기에 꼭 이 관을 넘을 것이라 생각하며 아내를 원망하지 않고 아들을 챙기는 데에만 마음을 썼다. 대법을 믿고 마음을 내려놓으면 아내는 돌아올 것이며 가정이 깨지지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서슬 퍼렇던 아내는 며칠 후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반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 후 아내는 조금씩 변하여 예전에 마구 화내던 상태도 수그러졌고 가족이 갈수록 화목해지고 있다.
가정 외에도 그는 션윈 매표에 적극 참여하는 중에서 또 심성을 제고하고 중생을 구도했다. 지금까지 창원에서는 션윈 공연이 세 차례 개최됐다. 처음에 그는 직장 일이 바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고 직장 생활에 매여 있는 그로서는 션윈 매표활동에 가장 중요한 시간인 평일 낮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션윈 매표가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는 바로 대법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이것은 조사정법의 사명을 짊어진 대법제자의 당연한 소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태를 바로 잡은 후 2010년 션윈공연 홍보에서 그는 평일 근무시간에도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매표대상 명부를 작성해 틈틈이 매표에 참여하기로 생각했다. 동료들의 근무에 너무 지장을 줘서도 안 되고 그 역시 장시간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그는 대법제자의 정념과 지혜를 발휘해 하루에 한 두 부서 정도만 짬을 내서 찾아가 이성적으로 션윈을 알렸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가운데 매표에 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거절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구하려는 마음과 명(名)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했다. 주춤하는 마음이 나올 때마다 다시 심태를 바로잡고 좀 더 당당한 자세로 임했다. 그의 션윈 소개를 듣고 다른 부서의 두 사람이 매표에 응했다. 어떤 부서에서는 평소 잘 알지 못하던 사람이 관심을 보이더니 표를 구입하기도 했다. 인연은 꼭 자신이 염두에 두었던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님을 느꼈다.
2013년 션윈공연을 준비할 때 그는 매표의 방향을 친척들로 확대했다. 평소 그가 집안 행사를 귀찮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처리하면서 친척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련인이 평소 속인에게 심어준 좋은 이미지는 대법의 이미지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유사시 중생구도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2015년 션윈공연 때 그는 이미 지인과 친인척 매표에서 한 걸음 더 내디디어 일반 주류층을 대상으로 매표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장쩌민 고발 서명 활동에서 용량을 키우다
소방관인 인천수련생 신상교 씨는 2003년 가을 대전 실내연공장 건물 입구에 비치된 파룬궁소개 소책자를 보고 법을 얻었다. 수련시작 후 아직 진정으로 정체(整體)에 합류하기 전인 처음 몇 년간, 그는 주로 혼자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단계에 머물렀고 단체 법공부에 참여한 횟수는 많지 않았으며 진상 활동은 주말에 단체 진상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그리하여 안으로 찾고 집착심을 제거하는 면에서 단지 인식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수련의 제고는 상당히 더딘 상태였다.
2009년에 신씨는 부두와 공항, 차이나타운이 있는 인천으로 발령받았다. 처음에 단체법공부나 진상 활동 참가에는 여전히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보도소장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그는 점차 진상과 단체법공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인천 월미도 진상거점에서 진상을 책임지게 되면서 그는 책임감을 실감했고 중생구도를 잘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용맹정진하게 됐으며 현지 수련생들과 정체적으로 협력하며 정체의 위력을 체험하기도 했다.
최근 신씨는 밍후이왕을 통해 대륙에서 박해받는 수련생들이 생사의 집착을 내려놓고 장쩌민 고소에 동참하고 있는 글을 보면서 정법노정의 긴박함을 느꼈다. 7월부터 그 역시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쩌민 고발 연대서명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서명 활동을 하다 보면 적극적으로 다가와 서명해 주는 사람, 장쩌민의 반인류 범죄를 이해하고도 서명하지 않는 사람, 듣지 않으려는 사람,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급히 지나가는 사람 등 세인들의 수많은 반응에서 마음의 용량은 커졌고 역시 그의 심성을 제고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체득을 이렇게 교류했다. “만약 장쩌민 고발 서명운동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쟁투심, 질투심, 남을 무시하는 마음 등을 똑바로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심성 수련과 중생구도가 함께 한다는 사부님의 말씀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고, 이전의 모든 것은 대법을 위해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또 말했다. “계속된 서명 활동을 통해 제자는 점차 단련되어 이제는 상대방의 눈치를 보기보다 정정당당하게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고 상대방과 눈을 맞춘 후 장쩌민의 반인류 범죄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장쩌민 고발 서명운동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면 세인들은 흔쾌히 서명했고 서명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보였습니다. 제가 주저하는 심태로 다가서면 세인은 듣고 나서도 서명하기를 주저하지만 정정당당하게 마음속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당신은 진상을 듣고 구도 받아야 합니다’라는 일념으로 다가가면 세인은 흔쾌히 서명을 합니다.”
수련심득교류회는 원만히 끝났고 이후 수련생들은 단체촬영을 하며 추석을 맞이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추석문안 인사를 삼가 올렸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22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2/316124.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5/9/23/1526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