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정위옌 기자 대만 보도) 1999년 4월 25일 중국대륙에서 1만 명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국무원 민원처리 사무실 앞에서 평화적인 탄원을 펼쳤다. 그들은 톈진(天津)에서 불법으로 체포된 파룬궁 수련생들의 석방과 파룬궁 서적의 합법적 출판 및 합법적인 수련 환경 보장을 요구했다.
탄원 과정은 평화롭고 이성적이었으며 해산된 자리에는 종잇조각 하나 없이 깨끗했다. 심지어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던진 담배꽁초마저 개인이 갖고 온 쓰레기봉투에 넣어 갔다. 이 소식은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고 큰 관심과 뜨거운 토론을 일으켰으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6년 전인 1999년 4월 25일, 중국대륙의 1만 명 파룬궁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베이징 중난하이 국무원 민원처리 사무실 앞에서 탄원했다. 질서 정연하고 스스로 엄격한 그들의 풍모는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들이 보여준 풍모로 인류 도덕 역사에 기념비적인 사건이 됐고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들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중국대륙과 바다를 사이 둔 대만의 많은 시민들도 ‘4.25’ 대규모 탄원 사건 보도를 접하고 파룬궁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파룬궁은 그때부터 번창해져 현재 수련생 규모가 50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하여 대만은 중국대륙 밖에서 파룬궁수련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됐다. 아래 그들 중 몇 사람을 소개한다.
충격과 호기심이 파룬궁 수련 동기 돼
여우쥔(佑君.좌) ‘4.25’사건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이 보여준 비범함과 풍모에 끌려 수련을 시작했는데 생각지 못한 큰 수확이 있었다.
여우쥔은 영국 명문 런던정경대(LSE)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대만에 돌아온 후 금융업에 종사했다. 그 후 승진해 이사가 됐고 같은 회사 임원인 남편과 결혼, 학업과 사업 모두 순조로웠고 가정도 행복했다. 하지만 양쪽 어깨와 목 사이에 심한 통증이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이런 증상에 시달렸는데 안마, 등산, 수영 등 온갖 방법을 써 봐도 낫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우쥔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이 병은 한평생 나를 따라다니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1999년 5월 여우쥔은 TV에서 ‘4.25’ 대규모 탄원 사건을 보게 됐는데 중국인들의 이미지와 중국 사회 질서에 대해 가졌던 인상과 너무나 달라 큰 충격을 받았고 또 신기했다. ‘그들은 다양한 신분을 가진 것 같은데 어떻게 그처럼 질서 있고 점잖고 해산된 자리에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떤 공법이고 어떤 사부님이기에 비판과 투쟁 속에서 생활해 온 사람들이 기꺼이 스스로 단속하게 한 걸까?’ 그녀는 빨리 알아보고 싶고 배우고 싶었지만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던 2000년 10월, 한 동료가 몇몇 파룬궁수련생들을 회사로 청해 공법을 가르쳤다. 여우쥔은 너무나 기뻐 열심히 따라 배웠다. 그 후 매일 점심시간 단체로 연공했는데 2, 3개월 후 어느 날 어머니가 놀라워하며 물었다. “너 왜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니?” 여우쥔은 그제야 놀랍게도 시큰거리던 통증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그렇지, 그동안 점심마다 파룬궁을 수련했지!’라고 생각했다.
연공하는 외 그녀는 대법 서적을 손에서 놓기 아쉬울 정도로 열심히 읽었다. “한번은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아 심란했는데 ‘전법륜’을 몇 번 읽었더니 마치 지혜를 열어주는 열쇠가 있는 것처럼 갑자기 마음이 탁 틔었어요. 대법 내용은 자석처럼 제 마음을 끌어 당겼지요. 그래서 저는 잠을 자지 않고 밥을 먹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법공부를 했어요. 한 권 한 권씩 이어서 보았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을 느꼈어요.”
과거 여우쥔은 성격이 예민하고 고집스러웠으며 말 또한 날카로웠다. 하지만 수련한 후에는 진선인(眞善忍)을 심성과 언행의 표준으로 삼았다. 또 법공부를 깊이 하면서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용량이 넓어져 대인 관계나 일을 처리할 때 더 이상 극단적이지 않고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여부를 먼저 고려했다. 그녀는 더 이상 마찰이 있는 일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심신이 편안했으며 생활이 충실하고 즐거웠다. 여우쥔은 “대법 수련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에요. 저라는 생명의 가장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진선인’에 탄복
국영기업 엔지니어인 리궈친(李國欽)은 ‘4.25’ 1만 명 탄원 뉴스를 접한 후 파룬따파가 천재일우의 고덕 대법임을 알고 확고하게 대법 수련에 몰두했다.
리궈친은 국영기업의 엔지니어다. 아내도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는데 맞벌이어서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다. 두 딸도 걱정을 끼치지 않아 그야말로 만족할만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인생이 바로 이런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한 수련법문에 입문해 10여 년 동안 수련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1999년 ‘4.25’ 1만 명 대규모 탄원 뉴스에 그는 큰 호기심이 생겨 사이트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5월 말 서점에서 ‘전법륜’을 사서 읽었다. 그러자 많은 의문이 해결됐고 많은 어려운 매듭도 모두 쉽게 풀렸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서점에 나와 있는 대법 서적을 모두 사다가 정중하게 읽었다. 리궈친은 놀라면서 ‘이것은 천재일우의 고덕 대법이다!’라고 생각했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4.25’ 사건을 여동생에게 알려주었더니 저와 마찬가지로 대법 수련생이 됐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심신이 건강해지고 원망 사라져
그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4.25’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법을 얻어 수련했다. 신주(新竹) 주민인 천슈위(陳秀玉)도 바로 그 중 한 사람이다.
인생의 갖은 고초를 겪은 천슈위는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이 홀가분하고 편안해 다시는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천슈위는 남편이 도박에 중독돼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다가 가끔씩 남편의 도박 빚까지 갚아야 했다. 그녀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병원 산모 병실에서 도우미를 하면서 고정적으로 심야 근무를 했다. 때문에 몸이 힘들고 피곤하여 여러 가지 병을 얻었다. 나중에 세 아들이 성인이 되고 기술을 익혀 반듯한 직업을 갖게 되자 남편과 1년 별거한 이후 이혼했다.
1999년 여름 천슈위는 교통사고를 당해 집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병원 치료로 6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자 한 친구가 그녀에게 파룬궁을 배워 보라고 권했다. 그녀는 5월 중순 한 친구가 ‘4.25’ 탄원 사건을 들려줄 때 찬탄이 절로 났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도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천슈위는 일주일 동안 자세하게 관찰했는데 파룬궁은 확실히 매우 좋았다. 그리하여 안심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체가 건강해졌어요. 20여 년 동안 저를 괴롭히던 알레르기성 비염, 요도염, 무릎 관절염 등 질병이 모두 약을 먹지 않고 나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천슈위는 또 인생의 진리를 알게 됐으며 심신이 홀가분하면서 고뇌도 적어졌다. 그리하여 아들 그리고 손자까지 3대가 즐겁게 어울렸으며 전 남편에 대한 원망심도 점점 사라졌다. 천슈위는 전 남편에게 션윈 공연을 소개하고 ‘전법륜’을 주어 그가 정상 생활을 하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랐으며 심지어 자신처럼 진선인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천슈위는 “대법제자가 된 것은 정말 행운이고 큰 행복이에요”라고 감탄했다.
바다 건너 대만에서 법 얻어
왕차이슈(黃彩秀)는 중국 광시(廣西)에서 대만으로 시집 왔다. ‘4.25’ 대규모 탄원 사건에 감동됐고 마침내 2001년 2월 법을 얻어 수련했다.
중국 광시(廣西)에서 대만으로 시집 온 왕차이슈는 1999년 TV에서 ‘4.25’ 대규모 탄원 사건 뉴스를 보고 아주 놀랐다. 어려서부터 공산당 통치 하에서 생활한 왕차이슈는 당시 환경이 얼마나 심각하고 압력이 큰지 잘 알고 있었다. 1만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그런 환경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탄원에 나선 것을 보고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하여 파룬궁은 비범하다는 것을 의식했고 배우기를 갈망했지만 기연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2001년 2월 8일 ‘파룬궁 소개’ 전단지를 보게 됐는데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왕차이슈는 즉시 전화로 9일 학습반을 알아보았고 다음날 바로 서점에 가서 ‘전법륜’을 사왔다. 소파에 기댄 채 한 두 페이지 읽던 그녀는 즉시 몸을 일으켜 단정하게 앉아 책을 읽었다. 평소 독서를 좋아해 많은 책을 읽었던 왕차이슈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 책은 정말 대단했어요. 그런 책은 본적이 없어요. 글자 하나든 문구 하나든 모두 기억에 새겨둘 가치가 있었어요. 저는 그 책을 손에서 놓기 아쉬워서 잠도 식사도 잊고 반복해서 읽었어요.”
3월 1일 첫 번째 9일 학습반에 참가한 왕차이슈는 마음이 격동되고 설렜다. ‘내가 얼마나 행운이 있으면 파룬궁을 수련할 인연이 있게 됐을까!’ 그녀는 여전히 갈증을 느껴 4월 1일 두 번째로 9일 학습반에 참가했다. 남편은 함께 법을 얻지 못했지만 아내의 수련을 지지했고 진상 알리기와 관련 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매우 지지했다.
작년에 87세 고령이었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왕차이슈는 현재 자신 명의로 된 주택에서 유족 연금을 받아 근심걱정 없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해외 관광지에 가서 진상자료 배포 등 활동에 동참하기 위해 습관처럼 근검절약했다. 왕차이슈는 “어떤 친지들은 제가 쓸쓸할까 봐 걱정하는데 그럴 리 있겠어요?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진상을 알리다 보면 늘 시간이 부족해요. 대법을 통해 생명의 가치와 인생의 진리를 알게 되어 저는 아주 착실하고 의의 있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5년 4월 2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지역보도
원문위치: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15/4/23/3079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