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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방문한 시진핑, 곳곳에서 파룬궁수련생과 마주쳐

[밍후이왕] (밍후이 기자 무원칭, 화칭 호주 취재 보도) 방금 끝난 2014년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이 거느린 중국공산당 대표단은 차례로 호주와 뉴질랜드의 6개 도시를 방문했다. 중국공산당 지도자가 평소에 방문할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 대사관과 영사관은 대량의 중국인 유학생과 현지 화교 사회 구성원 및 중국 대륙에서 직접 파견한 사람들을 대량으로 고용해 가는 곳마다 ‘환영’하게 했다. 이 학생과 화교들은 명의상에서는 시진핑을 환영하지만, 사실은 대사관과 영사관의 지시에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저지하려 시도했다. 심지어 폭력을 사용하기도 했다.


习近平车队从堪培拉机场前往凯悦宾馆,路遇法轮功横幅
캔버라 공항에서 하얏트리젠시 호텔로 가는 길에서 파룬궁 현수막을 만난 시진핑의 차량 행렬

과정에서 파룬궁수련생의 활동은 각지 경찰의 지지와 보호를 받았다. 많은 파룬궁수련생은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마음으로 이러한 동포들과의 대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인내심 있게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기만당한 소중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렸다. 많은 유학생과 화교들은 이 기연으로 삼퇴(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에서 탈퇴)하고, 일부 대륙 관광객들은 해외에서도 벌어지는 문화대혁명식 운동에 매우 반감을 느껴 앞 다투어 삼퇴를 했다.

경찰이 곳곳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의 표현권 보호

시진핑이 가장 먼저 방문한 도시는 브리즈번이다. 영사관은 한 사람당 하루에 100호주달러의 가격으로 중국 유학생들을 고용해 파룬궁수련생들이 몇 주 전에 이미 허가를 받은 장소를 강점해 평화 청원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들을 길 건너편으로 추방해 파룬궁수련생의 현수막이 있는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그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경찰은 모든 참여자에게 여권이나 운전면허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하고 개인 신상정보를 등록했다. 이 학생들은 멋쩍게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흩어지고 다만 중국공산당의 혈기(血旗: 오성홍기) 몇 개가 차단용 울타리에 걸려 있었다. 정상회담 장소와 가장 가까운 현수막 지점에서 시진핑의 차량 행렬이 에돌아가려 하자 경찰은 친절하게도 도움을 주었다.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더욱 유리한 위치와 각도에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와 ‘파룬궁박해를 중지하라’ 등 현수막을 걸어 차량 행렬이 똑똑히 볼 수 있게 하고 마음의 소리를 명확히 전달하게 했다.


在布里斯本,警察登记组织者身份信息。
브리즈번에서 경찰이 집회 주최자의 신상정보를 등록하고 있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서 중국공산당 대사관은 많은 시드니 친공산당 화교 단체와 중국 유학생들을 고용했다. 캔버라의 활동 주최자 쑹(宋)씨는 이 학생들과 화교 단체 구성원들의 숫자를 최소 5백에서 7백 명으로 예상했는데 지난 몇 년간 가장 인원이 많은 해였다. 캔버라 경찰 측도 이 예상치에 동의했다.

11월 16일, 파룬궁수련생들이 아침에 가장 먼저 시진핑이 머물고 있는 하얏트리젠시 호텔 밖에 현수막을 올렸다. 중국공산당 영사관에서 이 사실을 알고 2백여 명의 학생들을 부추겨 강제로 파룬궁 배너와 격리대 사이에 끼어들어 몸과 혈기(血旗)로 현수막을 차단했다. 일부 학생들은 경찰의 여러 차례 권고도 듣지 않았다. 그러자 경찰은 격리대에 묶어 놓은 혈기를 풀어 버려 파룬궁 현수막이 가려지지 않게 했다. 시진핑의 차량 행렬이 지날 때 유학생들은 일부러 파룬궁수련생을 밀치고 현수막을 당겼지만,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어떤 학생은 혈기를 밖으로 뻗어 파룬궁 현수막을 차단했다. 그러자 경찰은 깃발을 끌어내더니 잔디밭에 던져 버렸다.

거리의 다른 한 편에서는 유학생 몇 명이 강제로 긴 현수막을 파룬궁 현수막 앞에 들고 있었다. 경찰이 철거를 요구했지만, 학생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경찰은 그들의 현수막을 잡더니 잔디밭에 던져 버렸다. 호텔 부근에서, 파룬궁수련생 리리(莉莉)의 현수막이 유학생에게 통째로 눌려버렸다. 이런 폭행에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다만 조용히 제자리에 서 있었다. 경찰들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일 저녁 시진핑의 차량 행렬이 지나갈 때 한 경찰이 갑자기 그녀 손에서 배너를 가져가더니 높이 쳐들어 혈기 밖에 걸어 놓아 시진핑의 차량 행렬이 똑똑히 볼 수 있게 했다.

다음날, 중국공산당 대사관 관계자 같이 보이는 남성 몇 명이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휘해 북을 치고 스피커로 공산당 찬양가를 틀어 놓았으며 강제로 혈기로 파룬궁수련생들의 진상 배너를 차단했다. 대사관은 또 전문적으로 변호사 한 명을 데려와 그들이 파룬궁수련생의 배너를 차단할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를 찾았다. 그들은 혈기를 파룬궁수련생의 배너와 같은 위치에 꽂되 배너보다 높이 꽂아 일부 배너를 차단했다. 그들은 바람으로 깃발이 그 위치로 간 것이지 그들이 일부러 차단한 것이 아니라며 ‘합법적’인 이유를 댔다. 한 유학생은 차량을 거리로 몰고 나가 고음 확성기로 공산당 찬양가를 틀고 차에는 혈기를 꽂았다. 경찰은 그에게 거리에 차를 세우면 안 된다며 떠나라고 했다. 그 학생은 궤변을 부리다가 그 자리에서 1300호주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파룬궁수련생은 18일 시진핑이 떠나기 전에 재차 박해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표현하기 위해 17일 저녁 하얏트리젠시 호텔 밖에서 밤새 기다렸다. 경찰은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련생에게 알려주었다. “저는 당신들이 가장 평화로운 청원 단체라는 것을 압니다. 만약 그들이 내일 아침에도 와서 소란을 피우면 직접 우리를 찾으십시오, 우리가 처리할 겁니다.”

태즈메이니아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은 여러 차례 시진핑 차량 행렬과 만났다. 동시에 현지 경찰측, 언론, 지역에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고 수천 장의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배포했다.

뉴질랜드 유명 도시 오클랜드와 웰링턴에서 경찰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도와 시진핑의 차량 행렬이 반드시 지나가는 곳에 배너를 걸었다. 영사관에서 고용한 유학생은 일부러 차량을 후진해 파룬궁수련생과 부딪쳤다가 호텔 경비원에게 강하게 제지당했다.

친공산당 단체가 모두 출동했지만, 시진핑은 여전히 곳곳에서 파룬궁 볼 수 있어

연일, 비록 영사관에서 대량의 유학생과 친공산당 단체를 고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파룬궁수련생의 청원을 방해했지만, 진실하고 평화로운 청원에 따라 파룬궁수련생은 성공적으로 시진핑에게 박해를 저지하라는 요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시진핑은 도로에서 파룬궁 배너를 수없이 목격했다.

캔버라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은 시진핑이 지나는 길목 20여 곳에 박해를 제지하라는 요구를 담은 배너를 설치했다. 17일 시진핑은 하얏트리젠시 호텔에 세 차례 출입하면서 파룬궁 배너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공항으로 오가는 길에도 상황은 여전했다.

영사관은 시드니에서 수천 명을 고용했는데 학생을 포함해 현지 친공산당 화교 단체 회원이나 중국 대륙에서 파견해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곳곳에서 파룬궁수련생의 청원을 제지하려 했다. 19일 조지 거리에서 중국공산당의 혈기를 든 한 무리 불량배들이 파룬궁수련생들의 활동구역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진상 배너를 빼앗고 또 난폭하게 파룬궁 여성 수련생을 땅에 넘어뜨려 하마터면 달려오는 버스에 치일 뻔했다. 이런 폭행도 파룬궁수련생들의 평화적인 청원을 막지 못했다. 수련생들은 시진핑이 머물고 있는 센츄리 호텔의 모든 출구 도로를 따라 조용히 차량 행렬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19일, 센츄리 호텔을 떠나는 시진핑의 차량 행렬은 정문을 이용하지 않고 측문도 이용하지 않았으며 지하 통로를 이용했다. 하지만 호텔을 벗어나 지면에 올라오자 길에서 여전히 파룬궁 배너를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시진핑은 호주를 방문하는 기간에 하이난(海南) 동향회의 일부 회원은 시드니 차이나타운에서 파룬궁을 비방하고 파룬궁 진상 장소를 파괴했다. 그들은 유학생을 고용해 오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어 파룬궁을 비방했다. 현장에 온 파룬궁수련생이 이 몇 명 유학생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들이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협회에서 시간당 10달러 가격으로 그들을 고용했는데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그들의 전단지가 한 면은 차(茶) 문화이고 다른 한 면은 파룬궁을 중상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학생들은 진상을 알고 더는 전단지를 배포하지 않았다.

전 수도사범대학 교육과학대학 부교수로 현재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는 리웬화(李元華)는 영사관에서 고용한 화교와 학생들은 본심으로 시진핑을 환영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영사관의 사주 하에 파룬궁수련생이 중국공산당에 박해중지를 요구하는 표현을 극력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환영’ 대열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지만, 며칠 동안 시진핑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도 ‘환영’ 대열을 지나지 않았고 에돌아갔습니다. 그 화교와 학생들 속에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시진핑을 만나고 싶었는데 첫날에 만나지 못하자 어찌된 일인지 알고 이튿날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점 사람이 적어졌습니다.” 호주 파룬따파학회 빅토리아주 판(樊) 분회장은 말했다. “캔버라에서는 시진핑을 환영한다는 배너를 몇 개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 혈기이고 공산당 찬양가를 틀어놓았는데 모두 보시라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시진핑을 환영하는 건가요?”

현장의 유학생이 파룬궁수련생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영사관으로 부터) 들었는데 파룬궁은 정부를 반대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배너를 막고 쫓아내야 하며 이것은 임무라고 했습니다.”

학생, 화교, 대륙 관광객이 앞다투어 삼퇴하다

이 며칠 동안의 평화적인 청원 중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은 배너를 차단하러 온 학생과 화교들과 대립하지 않고 반대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 귀중한 기회로 여겼다. 수련생 덩씨는 옆에 있는 유학생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들은 파룬궁과 관련된 문제를 아주 많이 제기했다고 했다. 꼬박 한 시간을 말해서야 학생들은 진정으로 중국공산당이 불법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진상과 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알게 됐다. 그들은 정말로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에 너무 깊게 기만당했고 또 진상을 알고 싶어 했다.

전 중국 항공부 제2연구소 엔지니어로 올해 75세인 웨창즈(岳昌智)는 자신 옆에 서있는 한 유학생에게 알려주었다. “이 붉은 색 깃발은 마귀가 피에 굶주린 표현이란다. 중국공산당은 8천만이 넘는 우리 동포를 살해하고 우리에게 역사를 숨겼단다…….” 이 학생 손에 들려 있던 붉은 깃발은 더는 펼쳐지지 않았다. 다른 한 학생은 줄곧 수련생을 따라 다니면서 배너를 막았다. 수련생들이 조금 비켜서면 그는 조금 더 다가갔는데 줄곧 그러했다. 여러 수련생이 반복적으로 그에게 이치를 이야기해주어도 통하지 않았다. 이후 웨씨가 자기 배너에 ‘박해 원흉 장쩌민, 뤄간, 류징, 저우융캉, 쩡칭훙을 사법처리하라’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들 중에 너는 누구를 좋아하니?” 그는 대답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자신에게 골칫거리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냐?” 그리고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 주었다. 이 학생은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또 한 학생은 스스로 과학지식이 풍부하다고 생각해 웨씨의 말을 못마땅해 했다. 웨씨는 과학적인 각도에서 그에게 분석해 주고 토론해 마지막에 그의 무신론을 타파하고 ‘유성(有成)’이란 가명으로 삼퇴를 시켜주었다. 웨씨는 즉석에서 학생 12명을 탈퇴시켰다.

만(滿)씨는 학생 21명의 삼퇴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불쌍해 보였어요. 이유도 모르고 얼떨떨해서 왔어요. 일부는 현장 상황을 보더니 이해하고 한 마디에 탈퇴했어요. 어떤 학생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요. 그들도 진상을 알고 파룬궁이 어찌된 일인지 알게 해야죠. 그들은 정말 한 번 말하니 이해하고 기꺼이 탈퇴했어요.”

바이(白)씨는 현장에서 한 팀의 중국인 관광객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도 끔찍한 붉은 깃발이 이렇게 많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했다. 바이씨는 그들에게 중국공산당이 어떻게 문화혁명식 물건 세트를 외국에 수출해 왔는지, 그리고 삼퇴하면 평안을 보증하는 조류를 알려주었다. 관광객들은 아주 흔쾌히 삼퇴했다. 또 다른 중국 건설노동자 두 명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에 파룬궁수련생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 그녀는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고 스스로 현장을 비교해 보라고 했다. 뒤이어 두 사람은 유덕(有德), 유복(有福)이라는 이름으로 공산당과 공청단에서 탈퇴했다.

허(何)씨는 캔버라에서 옆에 서있는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려 16명을 탈퇴시켰다. 뉴질랜드에서 장(張)씨는 줄곧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9평공산당’을 방송했다. 학생들은 진상을 알고 더 이상 배너를 가로막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슬그머니 ‘환영’ 대열을 떠났고 10여 명이 직접 삼퇴했다.

지금 시드니에 살고 있으며, 예전에 중국 중점 중학교에서 고급교사를 담당했던 자오(趙)씨는 줄곧 학생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점심을 먹을 때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한 끼 식사 시간에 11명 아이들이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했다. 그녀는 진상을 알고 탈퇴한 학생들은 변화가 아주 크다고 말했다. “유학생 두 명은 탈퇴하고 나서 다시 달려와 말했어요. ‘이모, 저쪽에 탈퇴하지 않은 학생이 또 한 명 있어요. 얼른 가서 그를 탈퇴시켜 주세요.’” 그들은 또 옆에 있는 젊은 대법제자에게 웨이신(微信) 계정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계속 연락해 더욱 많은 소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은 수련생 자리를 빼앗지 않고 그늘을 찾아 갔다. 또 어떤 학생은 자오씨에게 알려 주었다. “(조직자가) 우리에게 오라고 통지하면서 돈을 준다고 해서 우리는 왔어요.” 자오씨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면서 웃었다. “너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인데 붉은 깃발을 들면 너희들에게 좋지 않단다. 호주 국기를 들어도 마찬가지로 돈을 주는데 무엇 때문에 호주 국기를 들지 않니?” 그들은 정말로 수중의 붉은 깃발을 호주 국기로 바꿨다.

문장발표: 2014년 11월 25일
문장분류: 해외소식>지역보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25/3007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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