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국 파룬궁수련생
[밍후이망] 한국 최고법원(대법원)은 최근 중국국적의 파룬궁수련생 선(瀋)씨가 제기한 난민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중국국적의 파룬궁 난민신청자가 처음으로 1, 2, 3심을 연이은 승소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파룬궁 난민승소사건을 전국법원 주요판결로 등재
파룬궁 난민승소사건 한국 전국법원 주요판결로 등재
선씨는 1995년 10월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을 시작했다. 중공이 1999년 7월 20일을 기해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선씨는 직장을 잃었고, 자유로운 수련환경도 박탈당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선씨는 2006년 3월 한국에 입국했다. 2010년 6월 당시 불법체류자신분이었던 선씨는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에게 적발되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된다.
선씨는 보호소에서 한국 법무부에 난민인정신청을 했으나 불허되자 이어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8월 18일, 서울행정법원은 “원고가 중국으로 돌아가더라도 한국 내에서의 파룬궁 관련활동으로 볼 때 파룬궁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결국 중국정부로부터 실질적인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파룬궁은 진(眞),선(善),(忍)을 수련하는 심신수련법으로 1999년 중국정부가 자체 조사한 자료에 근거하면 당시 파룬궁 수련생의 숫자는 1억 명에 달했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국제앰네스티 ‘2011년 연례보고서 중국편’, 미 국무부 ‘2010 인권실태에 관한 보고서 중국편’, 유엔인권위원회 2010년 2월 보고서, 영국 내무부 2009년 ‘난민인정처리지침’ 등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파룬궁에 대한 중국 내 억압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당국의 (파룬궁에 대한) 억압 수위도 완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 법무부는 패소 판결에 불복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올해 3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 승소판결을 유지해 법무부의 항소를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을 중요사건으로 분류하여 대법원 전국법원 주요판결로 등재했다. 법원은 이 판결을 등재하면서 판결 요지로 “파룬궁 수련자인 원고가 대한민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적극적으로 파룬궁 활동을 한 적이 없고, 중국 정부로부터 별다른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에 체류하면서 파룬궁과 관련한 활동을 한 것은 중국 정부로부터 주목받기에 충분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봄이 상당하고, 따라서 원고에게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법무부는 판결에 불복, 다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올해 6월 28일 한국 대법원 특별2부는 최종 승소판결을 내려 1심, 2심 판결을 유지했다.
‘외교관계’를 고려해 한국 법무부와 법원은 이제까지 ‘오직 파룬궁의 주요책임자만 박해를 받는다’는 이유로 파룬궁 난민신청자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왔다. 하지만 한국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중공의 압력과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을 하기만 하면 모두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국매체 중공압력 시사 내막 폭로
한국에서 진행된 파룬궁 난민 사건에 대해 중공은 줄곧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한국정부 및 사법부에 직접 압력을 가해 교란했다.
한국 ‘국민일보’ 2011년 9월 30일 보도에 따르면, 조병현 서울행정법원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그가 부산지방법원장으로 있을 때 우연히 함께한 자리에서 중공 부산총영사관의 한 외교관이 그에게 파룬궁 수련자 난민 문제를 꺼내면서 “한국은 파룬궁 수련자를 난민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론은 중공이 파룬궁 난민문제에 대해 외교관례를 벗어나 한국 고위층에 전 방위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중국국적의 파룬궁수련생들이 난민신청 및 행정소송을 진행하는 기간, 중공당국은 수차례 개입해 교란했다. 또 한국정부는 이러한 난민신청자를 중공을 대처하는 외교 카드로 삼았다. 특히 한국 법무부장관이 저우융캉을 만난 후 최초 난민신청자 30여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정해진 기간 안에 출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록 한국정부가 난민인정에 대한 조건이 엄격하다 하지만 2002년부터 시작해 파룬궁수련생이 제출한 난민인정신청을 접수했다. 2005년 5월 당시 한국 법무부장관은 중공의 파룬궁 박해 원흉(元兇)의 한명인 저우융캉을 만났다.
법무부장관이 귀국한 후, 한국 법무부는 최초 신청한 32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제기한 난민신청에 대해 바로 불허결정을 내렸다. 일부 파룬궁수련생들이 이에 대해 한국국회에 상황을 반영하였을 때 당시 한 국회의원이 법무부에 파룬궁난민 불허 이유를 물었는데 “기타 난민은 그래도 괜찮으나 파룬궁 난민을 허가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명확히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공 난민사건 ‘전 과정 미행’
2008년 1월 서울행정법원이 1심에서 파룬궁 수련생 2명에 대해 난민 승소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 주요 매체들도 세간의 예상을 깬 법원 판결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 판결이 나온 직후 당시 중공외교부 대변인 장위는 정례브리핑에서 ‘중공은 파룬궁 수련자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는 모든 국가의 행위를 반대하며, 파룬궁 수련자와 이에 협조하는 어떤 단체도 중국 법에 의거해 단속하고 있다’며 우회적으로 한국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이 후 한국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은 순차적으로 파룬궁난민소송사건에 대해 패소판결을 내렸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중공정치국 상무위원이며 홍보를 주관하는 리창춘(李長春)이 2008년 방한기간 한국정부에 대해 “파룬궁수련생을 한국에서 쫓아내야 한다”며 명확한 의사를 표시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법무부는 한창 난민심사 중인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신속히 불허결정을 내렸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의 2년 동안 한국 법무부는 6차례에 걸쳐 10명의 중국국적 파룬궁 난민신청자를 박해가 상존하는 중국으로 강제추방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일부 강제추방 결정은 결코 법무부장관이 아니라 한국의 ‘윗선’의 명령에 따른 것이며 또 그 ‘윗선’은 중공의 명령을 직접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한국법원이 최종적으로 파룬궁수련생 난민소송에 대해 승소판결을 내렸는데 이 역시 왕리쥔 사건 이후 장쩌민 등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들이 엄중한 징벌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정부가 중공 장씨 집단의 압박 속에서 해탈해 나오고 있으며 아울러 최종적으로는 도의와 양지의 최저선을 지켜 법률의 천평을 받들어 올렸음을 증명한다.
사건 진행 과정
2002년부터 시작해 100여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잇달아 한국 법무부에 난민인정신청 제기.
2005년 5월 10일부터 한국 법무부는 ‘귀국 후 중공당국에 박해받을 이유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30여명의 파룬궁수련생에게 잇달아 난민인정불허결정 내림.
2005년 5월 19일부터 시작해 난민불허결정을 받은 파룬궁수련생들이 한국법무부에 이의신청을 제기.
2006년 3월 10일부터 한국 법무부는 난민신청자들의 이의신청을 잇달아 기각.
2006년 4월 20일부터 파룬궁수련생들이 한국 법원에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소송 제기.
2012년 6월 28일 한국 대법원은 파룬궁수련생 선씨에게 승소판결을 내림. 1, 2, 3심 연이어 한국에서 승소한 첫 사례가 됨.
문장발표: 2012년 7월 13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7/13/2601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