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2010년 4월 25일]
사회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사회자 천징이고 오늘 모신 분은 천쥔입니다.
천쥔: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회자: 1999년 4월 25일,
만여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베이징 중난하이 부근에 있는
국가민원실에서 단체 청원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20일
중공은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했습니다.
탄압이 시작되자
중공은 ‘4.25’청원사건으로
사건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한테 ‘4.25’ 청원 사건은
파룬궁을 탄압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라는 인상을 주었지요.
천쥔: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4.25 만명 청원은
파룬궁 수련생이
이번의 전면적인 박해 발생을 제지하기 위한 것으로
완전히 자발적인
규모가 비교적 컸던 한차례 노력이었습니다.
중공은 선전을 통하여 고의적으로
한 가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숨겼지요.
그것은 바로 이번 청원의 동기는 무엇이었으며,
파룬궁 수련생의 가장 기본적인 요구가 무엇이었는가 입니다.
사회자: 4.25사건에서
파룬궁 수련생은 대화를 통하여 3가지 요구를 제출했습니다.
첫째, 이틀 전 톈진에서 체포된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하라.
둘째, 파룬궁에 공정하고 합법적인 수련환경을 달라.
셋째, 파룬궁 서적이 정상적인 경로로 공개 출판되는 것을 허락하라.
당시 주룽지 총리가 직접 파룬궁 수련생을 접견했고
민원국 책임자가 책임지고 수련생 대표와 대화로 해결하도록 일임했습니다.
천쥔: 이 세 가지 요구에서
여러분이 알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파룬궁 수련생들은 수련환경은 전국적으로
이미 심한 교란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탄압의 서막이 이미 시작된 것이지요.
사회자: 단지 매체는 이런 교란을 보도하지 않았으며
많은 사람들은 당시 파룬궁 수련생이
탄압 당한 정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곤혹을 느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중난하이에 청원 갔는지.
천쥔: 네, 사실 4.25 전에
신문, TV, 라디오에서는
파룬궁에 대하여 비방하고 공격하는
보도는 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공안부) 전국각지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교란을
소리 높여 선전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1996년
《광명일보》는 큰 비중으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하여 비방한 글을 보도했습니다.
그 후 중공 선전부는
파룬궁 서적을 출판하고 발행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그러므로 1996년 이후 파룬궁 수련생이 구매한 책은
모두 해적판입니다.
이어서 1997년 초
정법위원회 서기 뤄간은
그의 휘하에 있는 공안부에 전국각지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하여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죄명을 끌어 모으려는 의도였으며
그로써 파룬궁을 취조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1998년 공안부는 《파룬궁 조사를 전개할 것에 대한 통지》라는
하나의 문건을 발표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하여 전면적인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비록 각지에서 조사된 결과에서
모두 ‘아직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였고
조사 후 나중에 마무리를 짓지 못했지만
뤄간이 주최한 두 차례의 ‘조사’는
확실히 전국각지에서
심한 영향을 일으켰습니다.
사회자: 기층공안계통에 착오적인 신호를
발표한 것과 같은 건가요?
천쥔: 그렇지요. 때문에 많은 지역
헤이룽장, 신장, 허베이, 푸졘의
많은 기층 공안은 연공하는 군중을 몰아냈고
사사로이 민가에 뛰어들었으며
파룬궁 수련생의 물건을 몰수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발생되었습니다.
1998년 베이징 TV 한 프로그램
《베이징특급열차》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에 대하여
비방하는 보도를 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생은 TV방송국에 찾아가 사실을 밝혔고
나중에 그들은 이 착오를 시정했습니다.
1998년 기타 많은 매체에서도
모두 파룬궁에 대한 비방 글이 보도 되었습니다.
톈진교육단과대학에 《청소년과학기술박람》이라는
잡지를 출판하고 있었는데
1999년 4월 거기에 이런 한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역시 파룬궁을 비방하는 글이었으며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정신병에 걸린다고 했고,
파룬궁은 의화단과 같으며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톈진 파룬궁 수련생은
출판사에 사실을 똑똑히 알렸습니다.
출판사도 시정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그 말을 부인했습니다.
당시 4월 23, 24일이었습니다.
이 이틀간 톈진의 공안국은
300여명의 시위진압경찰을 동원하여
파룬궁 수련생을 몰아내고 구타했습니다.
또 40여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였습니다.
그들은(톈진의 공안)
“이 일은 톈진에서 해결할 수 없으니
당신들은 반드시 중앙에 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에 당장 탄압할 서막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수련생은 수련환경이 더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베이징에 ‘4.25’청원을 갔습니다.
사회자: 다시 말하면 ‘4.25’청원은
탄압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군요.
오히려 전면적인 탄압의 발생을 제지하려는 것이었군요.
천쥔: 그렇지요. 그러므로 ‘4.25’전에
파룬궁 수련생이 당한 이러한 교란은
국가의 구체적인 집행부문에 있는
예를 들면 공안부, 중공선전부의 일부 사람들의 행위입니다.
아직 국가 최후의 정책이라 할 수 없었지요.
‘4.25’청원은 마침
정부에 하나의 아주 좋은 기회를 준 것입니다.
그들이 파룬궁이 무엇인지
파룬궁 수련생은 어떠한 사람들인지를 알게 할 수 있었지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사회자: 많은 해외의 매체는 모두 관련 보도가 있었는데요.
모두 이 일의 평화적인 해결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천쥔: ‘4.25’이후 정부의 태도에서
‘4.25’청원은 확실히 효과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었지요.
우리 많은 시청자들도 그때 알고 있었습니다.
이틀 후
국무원 민원국 책임자가
신화사 기자의 인터뷰에서
파룬궁이 베이징에 ‘집결’했으며
그러나 각급 정부는
종래로 각종 신체건강활동을 금지한 적이 없으며
뿐만 아니라 부동한 의견도 모두 허용된다고 했다.
때문에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정부는
‘4.25’청원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 이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6월 14일
중앙 민원사무실과 국무원 민원사무실은
연합으로 통지를 내려
중앙각급정부는 종래로
어떠한 공파를 금지한 적이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정황으로부터
‘4.25’는 정부에게 파룬궁을 알게 하는데
확실히 목적에 도달한 것입니다.
사회자: 국무원 민원사무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 보아낼 수 있는 것이군요.
그럼 정부마저 태도표시를 했고
파룬궁 수련생의 수련환경도
마땅히 개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왜 7월 20일
또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된 건인가요?
천쥔: ‘4.25’는 확실히 정부가 파룬궁에
정면적인 태도를 가지게 하였지요.
그러나 속담에도 이르기를
군자는 방비할 수 있어도 소인배는 방비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중국과 같은 강권국가에서
한 지도자의 소행은
역사의 발전에 변수가 발생하게 할 수 있지요.
좋은 것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하고
나쁜 것은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게 하지요.
장쩌민은 당시의 지도자였고
그는 이렇게 나쁜 일을 한 전형적인 사례지요.
그는 완전히 한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장기적으로 파룬궁을 다스려
위로 진급하고 싶은 일부 사람을 이용하여
함께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발동했습니다.
사회자: 《구평공산당》제5평
‘장쩌민과 중공은 서로 이용하여 파룬궁을 박해함을 평함’에서
기술된 것을 저는 보았는데요,
장쩌민은 파룬궁 창시자를 아주 질투한다고 했더군요.
이것도 그가 탄압을 발동한 아주 개인적이나
아주 근본적인 원인이겠지요?
천쥔: 그렇지요, 장쩌민 이 사람은 떠벌이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덩샤오핑 사망 후
그의 황제아들장쩌민도 마지막까지 오게 되었지요.
때문에 그는 자신의 위신을 수립하기를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는 ‘6.4’를 통하여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웃음거리와 추한 일들이
전국에서 들끓을 정도로 파다했습니다.
그는 1996년에 이렇게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파룬궁 창시인을 존경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물론 이것을 아주 질투하고 미워했으며
아주 시기했습니다.
사회자: 해외에 출판된 책
《장쩌민 그 사람》에서도
장쩌민에 관한 아주 많은 양을 할당하여
장쩌민이 파룬궁 창시인을 질투한
일부 구체적인 사실을 기술했습니다.
천쥔: 네, 여기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시청자분들은
그 책을 구하여 한번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파룬궁을 탄압하는 문제에서
그것은 완전히 장쩌민 개인의 결정입니다.
그 당시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 7사람에서
오직 장쩌민이 고집스레 파룬궁을 탄압하려 했습니다.
기타 사람은 반대하였다.
장쩌민의 구실은
파룬궁의 문제는
‘당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에 연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중공당원은 인성과 당성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그럼 인성의 일면에 있어서
한 가지 일이 정상적이고 좋은 일로 될 수 있으나
당성에서 볼 때
잔혹한 투쟁을 필요로 합니다.
때문에 파룬궁을 탄압하는 문제에 있어서
장쩌민은 한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위하고
파룬궁에 대한 질투에 비롯되어
그리고 공산당이 정체를 동원하여
그것의 통치를 수호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파룬궁에 대한 탄압에서
일치한 목적이었습니다.
때문에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비로소 진행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4.25’자체는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를 제지한 한 차례 기회였습니다.
만일 ‘4.25’가 없었더라면 어떨지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톈진의 경찰이 이미 대대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기 시작했는데
파룬궁 수련생이 태도표시를 하지 않으면
필연코 사건은 더욱 악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사회자: 7월 20일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된 후
중공은 ‘4.25’청원사건에 대하여
파룬궁 수련생이 ‘불법집결’한 것이며
중난하이를 포위 공격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특별히 사람이 아주 많았고
조직이 아무 엄밀하다고 선전했으며
‘정치배경’이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천쥔: 우리는 여기에서 시청자분들에게 묻겠습니다.
만일 수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중난하이에 불법 집결했고
뿐만 아니라 포위 공격했다면
이것은 어떤 성질의 문제일가요?
그럼 공안부문으로서는 또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하여 수습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때 공안부문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정상적일가요?
사회자: 당시 사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데
파룬궁 수련생은 과정에서 모두 아주 평화로웠고
조용히 옆에 서있었으며
국가 민원국의 사람이 나와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천쥔: 때문에 소위 말하는 ‘포위 공격’은
단지 탄압을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자: 일부 시청자분들은 아마 생각할 것입니다.
집회는 허가증이 있어야 하며
파룬궁 수련생은 있었는가?
파룬궁 수련생은 ‘인(忍)’을 말하는데
왜 또 청원을 갔는가?
천쥔: 이 ‘청원제도’는 중국 특색이 있는
국민이 정부에 향하여 민원을 알릴 수 있는 제도입니다.
허가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숫자의 제한도 없습니다.
‘인(忍)’을 말하자면
개인의 ‘인’과 자신의 수련환경을 수호하는 것은
두 개 부동한 면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역사적으로 불교의 스님들이
자신의 사찰을 수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곤봉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개인은 세상과 아무런 다툼이 없지요.
그러나 당신이 그들의 사찰을 파괴하려 할 때
그는 곧 일어나 지켰지요.
파룬궁 수련생은
개인의 이익에서 그는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수련환경이
이러한 파괴를 당했을 때
그는 곧 자신의 합법적인 수련의 권익을 수호하게 되지요.
만일 스님이 곤봉을 들고 자신의 사찰을 수호했다면
여러분은 모두 이해합니다.
그럼 파룬궁 수련생이 완전히 평화적인 방식을 이용하여
정부에 향하여 진상을 알리고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함도
역시 여러분이 마땅히 이해해야 할 것 입니다.
사회자: 이비유는 아주 문제를 잘 설명해주는군요.
파룬궁 수련생은 출가하지 않고
사회에서 수련합니다.
그럼 사회에서 이런 하나의 공정하고
합법적인 환경을 유지하고 수호하려면
아주 필요한 일이겠지요.
중공은 ‘4.25’에 대한 비판에서
조직성이 엄밀하다고 선전했습니다.
단번에 만 명이 되는 사람이 왔고
중공이 생각하기를
당신들의 조직성이 너무 강한 것이 아닌가?
천쥔: ‘조직’은 대륙의 당문화에서
일종 특수한 의의가 부여되었습니다.
조직이란 말만하게 되면
마치 알릴 수 없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 같지요.
만일 당신이 이 당문화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소위 말하는 조직에 대하여
당신은 조직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보아낼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할 수 있지요.
때문에 불문곡직하고
오직 ‘조직’이기만 하면
마치 무슨 알릴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해서는 안 되지요.
사실 파룬궁에는
정말로 엄밀한 조직이 없습니다.
당신이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습니다.
명부가 없고
소위 말하는 조직은
아마 연공장을
책임진 보도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도원은 녹음기를 들고 와서 연공음악을 틀어줍니다.
이러할 뿐입니다.
때문에 파룬궁의 전파형식은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것이지요.
자신이 연공에서 수익을 얻었고
그것을 친척친우에게 알려주며
다른 사람도 와서 배우게 됩니다.
때문에 서로 알게 되지요.
무슨 일이 있어 말만하면 되지요.
‘4.25’에서도 내가 가려한다고 하면
아마 그의 친척친우도 가려 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파룬궁에는 엄밀한 조직이 없습니다.
완전히 아주 느슨하며 명부가 없는 거지요.
연공인 숫자는
그때 국가 체육위원회의 통계에 의한 것입니다.
전국에 7천만 명 되는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했습니다.
베이징과 그 주변의 성시에도 많은 수련생이 있었지요.
만일 정말로 호소하였다면
만 명뿐이 아니었을 것이며
아마 십만, 백만
심지어는 더욱 많았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의의에서 말하면
정말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갔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음에
장쩌민은 아주 크게 놀랐겠지요.
이렇게 강한 국민의 뜻은
동시에 역시 중공의 기타 고층 지도자들이 표현한
인성에 대한 일종 지지이기도 하였겠지요.
그러나 파룬궁은 조직으로 호소하는 방식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파룬궁 수련은 자발적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한 조직이 아닙니다.
사회자: 저는 일부 수련생이
그 당시의 심리상태를 회억할 때
가야 하는가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심리가 있었다고 했어요.
1989년 ‘6.4’의 음영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였던 것 같은데요.
중공의 독재 정권 폭정 하에
정부에 가서 뭘 요구하기란
사실 간단한 한 가지 일이 아니었지요.
천쥔: 당시 파룬궁은
청년 학생을 위주로 한 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은 문화대혁명을 겪었고
젊은 사람이라 해도
‘6.4’를 경험했습니다.
그럼 우리 시청자분들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폭정과 풍우를 경과한 단체는
공산당과 교제하면 어떤 후과인지를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럼 무슨 원인이 있어서
이 파룬궁 수련생들로 하여금
걸어 나올 수 있게 하였을까요?
사회자: 국가 민원 사무실은 중난하이 부근에 있어서
실제로는 아주 민감한 곳이지요.
그러므로 사람들한테 ‘정치를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요?
하물며 그 당시의 형식도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지요.
톈진의 경찰도 이미 사람을 체포하기 시작했고
중국인도 형세를 보기 좋아하는데요.
사실 걸어 나가 청원하는 것은
확실히 간단한 일이 아니지요.
천쥔: 맞습니다. 과거 역대의 운동은
모두 정치와 다다소소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파룬궁 수련생은 바로 ‘진, 선, 인’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합니다.
정치에는 완전히 관심이 없지요.
또한 ‘진, 선, 인’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정부가 허용해야 되는 건가요?
공산당은 늘 무슨 학습을 하여 좋은 본보기를 세운다거나
소위 ‘정신문명’을 말하고
사회도덕이 승화되기를 희망하지 않습니까?
과거에 정부는 사람들에게 뇌봉을 학습하라고 호소하였으나
사람들은 심드렁한 태도였고
좋은 사람 좋은 일도 바람이 지나가듯
형식으로 따라 했습니다.
내심에서 진정으로 한 사람을 개변하기 어려웠지요.
지금은 얼마나 좋습니까.
정부에서 어떤 재력, 물력, 인력을 들여
정신문명을 선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파룬궁 수련생은 자각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진, 선, 인’을 수련합니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이것은 틀린 것이 아니며
정부에서 바라는 일이지요.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번은
마땅히 가장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때문에 바로 이러한 생각에 입각하여
파룬궁 수련생은 몇 십 년 간 양성한
공산당 정치운동에 대한 공포를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베이징에 청원을 갔던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현장에서의 화면에서도
구호가 없고 표어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정황을 반영하러 간 것이지요.
정부에서 파룬궁에 느슨한
수련환경을 보장할 것을 바랐고
일부 집행부문이 파룬궁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를 제지하려 한 것입니다.
사회자: 우리도 ‘4.25’ 청원 사건은 독립적이고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관부문에서 연공단체를 압제하였기에
연공단체는 자신의 합법적 권리를 수호하려 시도한 것이지요.
자연적인 발전 과정이라 보아집니다.
오늘날 우리의 말로 한다면
바로 권익수호지요.
천쥔: 그렇습니다. 때문에 ‘4.25’는
탄압을 초래한 원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탄압의 서막이 이미 열린 배경에서
파룬궁 수련생은 이번의 박해가
전면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택한 한차례 대규모적인
자발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단지 ‘진, 선, 인’을 수련하고 있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하고 있으며
어떤 나라에서든지, 어떤 정부의 관리 하에서든지
마땅히 모두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증명하다시피
중국이라는 독재정권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은 일종의 사치입니다.
사회자: 중국 현재의 도덕적 위기, 성실과 믿음의 위기
신앙의 위기를 보게 되면
이러한 현상은 파룬궁을 박해한 십 몇 년 간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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