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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를 직접 겪은 감수(사진)

【밍후이왕 2010년 4월 24일】[밍후이기자 화칭(華清) 취재 보도]1999년 4월 11일 허쭤슈(何祚庥)는 톈진 교육단과대학 《청소년과학기술박람》잡지에 《나는 청소년이 기공을 연마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글에서 허쭤슈는 파룬궁을 모함하여 수련하면 정신병에 걸린다고 했다. 그리고 파룬궁의 원칙에 뚜렷이 위배되는 표현들을 모두 파룬궁에 뒤집어씌웠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은 사실을 밝혀내지 않으면 수련자의 합법적 연공권리가 위협을 당하게 될 뿐만 아니라 연공자들이 다른 의도가 있는 정객들에게 이용당하여 더러운 정치투쟁 속에 휘말려 들것이라고 느꼈다. 그리하여 1999년 4월 25일 만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베이징에서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

수련자들은 시종일관 질서정연했고 조용하였으며 어떠한 표어와 구호가 없었다. 국무원 총리는 접견을 하고 적절한 처리를 했으며 파룬궁 수련생은 조용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이 사건은 후에 왜곡되어 장××가 파룬궁을 장장 십여년간 잔혹히 박해한 구실로 됐다.

상하이 두방(杜邦)회사에서 일하는 파룬궁 수련생 덩궈핑(鄧國平)은 당시 회사대표로 베이징의 한 합자회사 ‘베이징 두방 ­ 다위안비직조유한회사’에 파견되어 일했다. 그와 아내는 함께 1999년 4월 25일 청원에 참가했다. 아래는 기자가 덩궈핑을 취재한 내용이다.


사진 (파룬궁 수련생 덩궈핑과 아내)

기자 : ‘4.25’를 직접 겪은 사람으로서 그때 어떤 감수가 있었는지 말씀해주세요.

덩궈핑 : ‘4.25’ 이 사건은 내가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더욱 더 이 사건의 의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실제 당시 나는 어떤 특별한 느낌이 없었다. 그날 사람이 아주 많았으며 모두 선량하고 평화로웠다. 정부에 대하여 아주 신임하고 있었다. 나는 1996년 6월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그때 이미 파룬궁을 수련한 지 3년이 되었다. 수련후 사상과 행위에 모두 천지개벽 할 변화가 일어났고 선의로 사람을 대했다. 남에게 억울함을 당해도 나는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았다. 다른 사람을 더 동정하고 이해하려 했으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타인을 위하여 생각했다. 우리 수련하는 수련자 사이에는 더욱 상화로움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때문에 ‘4.25’ 그날은 그 무슨 특별한 것이 없었으며 일체는 모두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단지 이 날은 우리 대법제자가 수련 후 승화된 경지가 사회에서 단체로 체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자 : 그날 누가 당신들을 조직하여 중난하이로 단체 청원하게 하였는지요?

덩궈핑 : 사실 우리는 무슨 조직이 없다. 그날 몇만명은 모두 사면팔방에서 왔고 서로 모르며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완전히 대법을 수련한 후 사상경지가 승화된 후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우리는 무(조직)에서 왔고 무(조직)로 돌아갔다. 예를 들면 그날 나와 아내는 비교적 늦은 밤에 자리를 떠나게 됐는데 어떤 사람도 우리한테 뭘 하라고 알려준 적이 없다. 우리는 곧 땅에 떨어진 쓰레기와 경찰이 버린 담배꽁초를 깨끗이 주었다. 나는 주위에도 많은 기타 파룬궁 수련생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련생들은 이것을 특수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마치 집이 어지러워지면 깨끗이 치워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 종일 서있는 동안 누구도 정식적인 서면 통지를 하지 않았고 우리더러 마땅히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라는 그런 것이 없었다.

나는 몇 번 물건을 사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모두 질서있게 줄을 섰고 화장실에가는 횟수를 줄이려고 물도 적게 마셨다. 밤 9시경 중난하이 서쪽 문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말이 전해져왔다. 한사람 한사람씩 옆 사람에게 전했다. 이미 지도자를 만났고 톈진에서 사람을 풀어주었고 그들은 며칠 후 계속적으로 지도자들과 면담할 것이라면서 오늘은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이리하여 수련생들은 우리가 이미 중앙 지도자와 만났음을 믿었고 지도자들이 정황을 조사한 후 우리가 좋은 사람이며 사회에 백가지 이익이 있으면 있었지 한가지 해로움도 없을 것임을 알게 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수련생들의 마음은 그렇게 순정했고 그렇게 선했다. 수련생들은 사면팔방에서 왔고 서로 알지 못하나 서로를 그렇게 신임했으며 우리는 당시 중앙 지도자들에게 신임과 선의로 가득했었다.

기자 : 그때 일부 보도에서 파룬궁 수련생의 대선대인의 정신은 정말로 하늘땅을 감동시켰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파룬궁이 너무나 규율이 있고 군대보다 더 강하다고 했다. 물론 집권자는 그것에게 어떤 위협이 있을 것이라 아주 근심했을 것이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가?

덩궈핑 : 만일 이 사회에 모두 이렇게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 정부에 모두 이렇게 선의로 가득하다면 통치자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두려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산당은 두려움을 선택했다. ‘4.25’평화청원사건도 늘 사당 매체에서 고의적으로 왜곡했고 국민들한테 만일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으면 국면을 수습하기 어려울 것이며 사회가 어지러워질 것이라 암시했다. 많은 국민은 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정황에서 모두 그 한쪽 말만 믿었다.

사실 공산당은 파룬궁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누구보다 똑똑히 알고 있다.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럼 왜 박해했을가? 《구평공산당》 이 책에서 아주 똑똑히 천명했다. 장쩌민이 질투심이 극히 강하고 흉금이 좁은 원인외에 공산당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

《구평공산당》의 한마디 말을 빌면

파룬궁은 ‘진’을 제창한다.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한 일을 함을 포함한다. 그러나 중공은 줄곧 거짓말에 의거하여 국민을 세뇌했다. 만일 사람마다 진실한 말을 하면 국민은 곧 중공은 원래 소련에 의거하고 살인하고 붙잡고 달아나고 아편을 심고 가짜 항일하는 등으로 일어섰음을 알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룰 수 없다.’ 집권 후 역대 운동에서 피로 얼룩진 빚을 수없이 졌다. 이것은 중공으로 놓고 말하면 막바지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파룬궁은 ‘선’을 제창한다. 일에 봉착하여 타인을 생각하고 사람과 선하게 대한다. 그러나 공산당은 줄곧 ‘잔혹한 투쟁, 무정한 타격’을 제창했다. 중공의 모범 영웅 뇌봉이 말했다. ‘적을 대함에 있어서는 엄동설한과 같이 냉혹히 무정하게 대해야 한다.’ 사실 중공은 적에 대하여 이럴 뿐 아니라 자기의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공의 개국원로, 원수, 국가주석을 포함하여 모두 가차없이 투쟁, 혹독한 구타,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 ‘계급의 적’에 대한 도살은 더구나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하게 했다. 만일 ‘선’이 사회에서 우세를 점하면 그런 ‘악’을 기초로 한 폭정과 군중운동은 나타날 수가 없다.

다시말하면 공산당의 생존 ‘철학’과 파룬궁에서 가르침은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다. 이것이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본질적인 원인이다. ‘4.25’는 그것이 박해한 구실이며 만일 ‘4.25’가 없었어도 그것은 다른 구실을 대고 박해를 감행하였을 것이다.

기자 : 왜 그때의 많은 중국인이 사당의 요언과 선전을 믿을 수 있었는가요?

덩궈핑 : 그것은 현재의 중국사회는 중공이 의식적으로 국민에게 몇 십년간 당문화적인 세뇌를 하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아주 긴장하고 성실과 믿음이 없으며 쉽게 타인을 믿을 수 없다. 많은 사람은 사람은 이기적이며 사람의 행위는 필연적으로 자기를 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파룬궁 수련생이 그렇게 고상한 줄을 믿지 않는다. 공산당은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고의적으로 인도하여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사당의 선전을 믿게 했다. 사람들은 이렇게 비자각적으로 공산당 선전의 속임수에 빠진 것이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여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11년이 된다. 수천만에 달하는 파룬궁 수련생은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나 자신도 불법으로 2년간 노동교양을 당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인가, 세상사람에게 파룬궁은 좋은 것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우리는 억울한 것이다. 우리 ‘진, 선, 인’에 대한 신앙은 틀리지 않았다. 11년간 정확한 증거가 있고 신원이 확인된 박해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은 3천3백여명에 달한다.

유랑생활을 하고 일자리를 잃고 가정이 파괴되고 노인은 가족이 파룬궁 수련으로 경찰에게 위협을 당하여 사망한 일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중국에서 당신이 파룬궁을 수련하기만 하면 중공의 박해로 각종 불행들이 잇따라 오게 된다. 사람들이 ‘4.25’를 거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이렇게 좋은 줄을 몰랐다면 그후 11년간 파룬궁 수련생은 자신의 생명으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권리를 수호했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파룬궁 수련생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때 ‘4.25’에서 파룬궁 수련생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은 마땅히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 세상에 아직도 가장 고귀한 사람들이 있음을.

‘4.25’는 집권자와 국민이 평화적인 대화로 모순을 해결한 가장 좋은 사례이다. 만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지 않고 ‘4.25’에서 파룬궁 수련자의 이념과 행위준칙이 사회에 가져다 줄 희망을 보아내고 이 신앙단체로 하여금 사회에서 자유로이 살아가게 하였다면 중공은 현재와 같이 생존위기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그 사악한 본성은 그것이 ‘진, 선, 인’과 적으로 할 것을 선택하게 했다. 한차례 통치자로 하여금 형상을 수립하고 민심을 얻을 좋은 기회를 놓쳤으며 그로부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었다. 현재 표면상에서 파룬궁단체가 중국에서 여전히 공산당의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으나 자고로 ‘사기는 정기를 누르지 못했다.’

‘4.25’는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며 천고의 인류에게 도덕의 기념비로 빛날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24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24/222035.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10/4/25/1163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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