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 2007년 7월 29일] (명혜 기자 황 카이리 취재 보도) 2007년 4월 중순, 미국 국민 찰스. 차이(CHarles Cai)는 중국 후난 창사(湖南长沙)에 살고 계시는 모친이 병으로 위급, 입원하여 응급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여 보러 가게 되었다.그 기간, 중국 공산당, 국안의 불법 납치를 당했다.지금 찰스는 무사히 미국으로 돌아 왔다.
찰스 차이는 파룬궁 수련생이며 또한 신당인 TV의 직원이다. 그가 말하길 납치된 기간 ,중공 국안요원들은 신당인 TV에 관련되는 많은 문제들을 따져 물었는데 무용대회 및 그 찬조상에 대한 일 등등을 캐물었다 .그는 신당인 TV가 성립 되어서부터 중공 특무들은 줄곧 교란, 파괴를 감행해 왔다고 지적 하였다. 이번에 납치 당한 것은 아마 그가 신당인 TV에서 직원으로 일하기 때문인것 같다고 말했다.
*차이 선생에 대한 불법 납치는 신당인에 대한 중공 특무의 “관심”
차이 선생이 중국에 돌아가 병으로 위급한 모친을 돌보아 드린지 7일째 저녁, 손님 한 분을 배웅하려고 버스역에 갔다 돌아 오는 길에 갑자기 국안 특무 여섯 사람이 몰려와 인도에서 그를 둘러 쌌다, 뒤이어 검은 색 미국 세단 승용차 한대가 인도에 와 멈추어 섰다. 그는 이 차가 매일 그의 뒤를 미행하던 차라는 것을 알아 보았다. 후난 사투리로 국안 특무 한 사람이 그를 협박하면서 말했다.”우리 상위 책임자가 당신한테 물어 볼 말이 있다. 당신이 따르지 않으면 아마 중국을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 특무들은 차이 선생의 양 옆에서 끼어 잡고서 차의 뒤에 앉힌 후 차를 큰 길로 몰았다.
차이 선생은 특무들에게 말하였다. ” 나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할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 보시오” 그 중 두목 같아 보이는 특무가 말하였다. ” 우리 호텔에 가서 얘기하도록 합시다”
특히 그가 지적하기를, 그들도 모두 그들이 한 일이 떳떳한 일이 아님을 아는 듯이 그 특무들은 가는 길에 줄곧 침묵을 지키면서 별로 말을 하지 못하였다. 한 여관 방에 들어 가서야 50여살 되는 두목 같아 보이는 사람이 입을 열고 묻기 시작 하였다.
차이 선생은 회고하면서 말하였다. 그 특무는 본지방 말씨로 그에게 가정, 생활, 사업, 건강과 업무 문제에 관하여 묻기 시작 하였다. 빙빙 한 바퀴 돌린 후 곧 그들의 주제로 돌아 갔다. 파룬궁에 대한 허다한 문제를 물었는데 이를테면. ” 당신들은 어느곳에서 연공 하는가?”, ” 어떤 사람들이 연마하는가?”, ” 당신들의 이 대사님은 연공장에 오는가?”. ” 어떤 장소에서 당신들은 당신의 사부님을 만날 수 있는가?” ……
차이 선생은 표시하기를, 특무들이 특별히 관심하는 것은 여전히 신당인 TV라고 하였다. 화제는 아주 빨리 여기에로 돌려졌다. 그들이 묻는 것은. 신당인에는 어떤 부문들이 있는가?,매 부문의 책임자는 누구인가?신당인의 진정한 제1 책임자는 누구인가? 대만의 신당인과 미국의 신당인TV는 무슨 관계인가? 그들은 또 무용대회 일을 물었는데 이를테면, 무엇 때문에 무용대회를 열었는가? 그들은 또 찬조상이 누구냐고 누차 따졌다. 그들은 심지어 신당인 TV의 발전 계획과 국내에 대해 텔레비전을 삽입하는 일마저 물었다.
이 전반 과정에 나는 다만 여가시간에만 신당인을 도와 고객들에게 안테나를 설치해 줄 뿐이므로 내부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거듭 강조 하였다 .아울러 모친이 여전히 병으로 앓고 있다는 이유로 끝낼 것을 촉구 하였다. 그 특무 두목은 할 수 없이 나중에 나를 집에 태워다 줄 수 밖에 없었다.
차이 선생은 말하기를 이 일전에 중공특무들은 그를 납치하려 시도했고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운 행동이 있었다고 하였다.
* 중공특무의 첫번째 납치 의도가 달성 되지 못했다
차이 선생은 회억하면서 말하였다.고향에 돌아간 후 , 그는 날마다 병원에 가서 모친을 보살폈다. 그는 자신이 검은색 나는 미제 승용차에 미행 당하고 있었다는데 대해 주의 깊게 말하였다. ” 나중에 내가 납치 당할때 중국 국안이 몰고 온 차가 바로 이 차였습니다.”
처음으로 중국에서 국안 특무들을 대면하여 소란을 당할 때를 회상 하면서 그는 말하는 것이었다.그때가 고향에 돌아온 지 닷새 되는 날이다. 그가 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흰색 차가 그의 곁에 와 멈추어 서더니 몇몇 사복 특무가 뛰어 내리는 것이었다.그 중 30 여 살 쯤 돼 보이는 중년이 그를 막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서 하는 말이, ” 선배님, 우리는 국안국에서 왔습니다. 일이 있어서 선배님하고 좀 얘기를 나눠 볼까 하는데요, 다만 관례에 따라 공무를 수행 할 뿐입니다.”이와 동시에 다른 일남일여 두 특무가 그를 둘러 쌌다.
차이 선생은 당시에 말했다.” 안됩니다. 난 시간이 없습니다. 80세 되는 나의 노모가 지금 병이 위급하여 아무때건 돌아가실 위험이 있으니 나는 모친을 돌봐야 합니다. 나는 정말 바쁩니다” 말하면서 병위급 통지서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말 하였다. “그럼 후일에 다시 봅시다. ”
* 집에 와서 소란
이튿날, 차이 선생은 모친의 병이 조금 호전되자. 집으로 모셔 갔다. 친척 친구들이 알고 문안하러 갔는데 그 중에 두 불청객도 끼어 있었다.차이 선생은 그들이 바로 어제 큰길에서 그를 납치하려 하던 그 남자 여자 각각 한명, 국안 특무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그 두 특무의 손에는 수입제 분유와 과일이 쥐여 있었고 스스로 성 화교 연합회 사무실 사람이라고 자칭하면서 그의 모친 문안을 왔다는 것이다. “이건 족제비가 닭한테 세배 드리는 격이 아닌가?” 하고 그는 생각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모친께서 몸이 허약하셔 휴식해야 한다는 이유로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길 바랐다. 그 두 특무도 일어나 돌아 가는수 밖에 없었다.문을 나설 때 그들은 낮은 소리로 차이 선생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차이 교수님, 차이 전문가님, 우리는 당신 모친을 놀래우지 않기 위하여 화교 연합회 사무실 사람으로 가장하고 들어 왔습니다.우리의 지도자는 당신과 친구가 되려 하는데요, 당신과 함께 식사하려 합니다.”
차이 선생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 나는 미국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교수도 전문가도 아닙니다. 이번에 돌아온 것은 완전히 모친을 만나 뵙기 위해서입니다. 모친의 병이 나아지면 나는 될수록 빨리 돌아 가려 합니다. 그러니 접대받을 시간이 없습니다” 상대방은 토론해 볼 여지조차 전혀 없는 것을 보고는 화가 나서 가 버렸다.
*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 오다. 중공 특무들을 낭떠러지에서 돌아서라고 권계
더는 중공특무의 마수에 소란 받지 않기 위하여 차이선생은 모친이 아직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임에도 이튿날 어머님 곁을 조용히 떠나고 장사를 떠나 비행기 편으로 미국에 돌아 왔다.
차이 선생은 지적 하기를 그를 납치한 특무 중에 어떤 사람은 중공의 사악한 본질, 그리고 그가 역사적으로 저지른 하늘에 사무친 죄악을 폭로한 >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9평”의 서술에 대해 반박할 나위조차 없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마땅히 중공을 떠나고 있는 오늘의 인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차이 선생은 지금도 여전히 중공을 도와 나쁜 일을 하고 있는 특무들이 하루속히 악한 짓을 그만하여 하늘이 중공을 멸할때 그 속에 함께 따라가지 말기를 바랬다, 사실 그 날은 아주 빨리 도래할 것이다 .
문장발표 : 2007년 7월 29일
문장분류 : 해외소식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7/29/159813.html